많은 대만 여행객에게 이 작은 마을의 이름은 수도 타이베이 못지 않게 유명합니다. 그리고 '대만'하면 떠오르는 풍경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밤이면 오히려 그 빛과 낭만이 더 밝게 빛나는 홍등 거리와 길을 따라 늘어선 상점들 그리고 동화나 만화에서나 볼 법한 멋진 분위기의 건축물까지. 저 역시 대만 여행을 준비하며 가장 크게 기대했던 곳이 지우펀입니다. 주펀(九份)이라고도 하죠. 타이베이 시내를 한 바퀴 둘러봤다 싶은 여행 셋째날, 아침일찍 버스를 탔습니다. 시내를 벗어나 시골길을 달리는 기분이 묘하더군요. 그렇게 한시간 반쯤 달려 지우펀 입구 정류장에 도착했습니다.
대만의 대표적인 관광지 중 하나인 지우펀은 그만큼 많은 인파가 몰리는 곳입니다. 홍등거리의 낭만 때문에 낮보다 오히려 저녁 무렵 더 많은 사람이 작은 마을의 좁은 골목들을 가득 메우는 곳이기도 합니다. 타이베이 시내에서 버스로 약 한시간 이십분정도 걸리며 예-스-진-지 버스 투어로도 많은 분들이 방문하십니다. 중샤오푸싱역 인근 버스 정류장에서 1062번을 타면 바로 갈 수 있습니다.
지우펀은 바다가 보이는 작은 시골 마을입니다. 지대가 높은 산골 마을은 거주자가 단 아홉 가구 뿐이라 늘 물건을 아홉으로 나눴다 해서 구분(九份)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청나라 시대 금광으로 유명해지며 인구가 많아졌고 현재는 홍등 거리와 영화, 드라마 속 장면을 찾아 온 전세계 관광객으로 붐빕니다. 그 중에서도 랜드마크격인 찻집 아메이차주관, 비정성시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죠. 모든 길은 계단으로 되어 있는데, 하나같이 골목이 좁아 한가로운 관광은 기대하기 힘듭니다.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등장하는 배경의 모티브가 이 곳이라고 하죠 -
하지만 낭만은 비에 씻겨 내려가고
후에 들은 이야기로 화창한 하늘 아래 지우펀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날이 일년에 며칠 되지 않는다는 것에 위안을 삼지만, 사진과 책 속 장면을 기대하고 아침 일찍부터 버스를 타고 도착한 저는 흐리고 비가 내린 이 날 날씨가 무척 서운했습니다. 하늘은 잿빛이었고, 산골 마을 곳곳은 구름과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속상했던 것은 좁은 골목길을 사람들의 우산이 가득 채워 걷기조차 쉽지 않은 시간이 많았던 시간이었습니다.
바닷가 산골 마을인 지우펀은 일조량이 부족하고 날씨 변하가 잦은 편이라고 합니다. 종일 내리는 비를 보며 그래도 한 순간은, 잠시라도 비가 그치고 화창한 날씨를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빗방울은 오히려 더 굵어지더군요. 지우펀의 풍경에 반할때를 대비해 이 곳에서 하룻밤 머무를 계획까지 내심 세우고 있었던 저는 일찌감치 그 계획을 구겨 버리고 해가 질 때만을 기다렸습니다. 꽤 긴 마을 시장길을 몇 번씩이나 왕복해도 해가 지지 않았던, 유독 긴 하루였습니다.
남은 것은 사람 구경뿐
그 유명한 지우펀의 아메이차주관(阿妹茶樓)까지 단숨에 달려가겠다는 걸음에 힘이 빠져 버스 정류장부터 길게 뻗은 골목길을 터벅터벅 걸었습니다. 천천히 걸으면 삼십분 이상 걸리는 긴 마을 골목길에는 각종 기념품 상점과 음식점들이 빽빽하게 늘어서 있습니다. 종일 비가 그치지 않았던 지우펀, 때문에 랜드마크와도 같은 아메이차주관보다는 이 인파 복작복작한 골목길 풍경이 제게는 대만 지우펀으로 남아있습니다.
지우펀에서 가장 유명한 스팟은 단연 홍등이 환히 불을 밝힌 밤의 아메이차주관 그리고 그 주변의 좁고 가파른 계단 골목이지만 그곳까지 걸어 들어가는 이 좁고 낡은 시골 시장 풍경 역시 이 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매력적인 풍경입니다. 대만에서 먹을 수 있는 각종 음식들이 있고, 선물로 사갈 음식이며 기념품, 공얘품들이 즐비합니다. 그 중에서 이미 한국 관광객들에게 꽤 유명한 곳들도 있습니다.
이른 아침 이 곳에 도착한 저는 해가 지길 기다리며 이 골목을 몇 번이나 걷고 또 걸었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꽤 좁은 골목길까지 빠짐없이 다 들어가 보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중에는 이곳의 명물인 동물 모양의 오카리나며 알싸한 냄새 풍기는 전통 음식이, 보기만 해도 미소 지어지는 깜찍한 공예품들이 있었습니다. 골목에 가득하고 가게마다 몰려있는 사람들의 풍경도 사람 냄새가 폴폴 풍겨 좋았습니다. 지우펀에 온 것을 잠시나마 후회했지만 이내 이 풍경에 한참 빠져 시간을 보냈습니다.
지우펀 골목에는 개와 고양이 등 동물들도 어엿한 주인 노릇을 합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을 봐서인지 거리낌 없이 그 속에서 함께 걷고, 종종 함께 사진도 찍어 줍니다. 특히 먹을 것에 무척 적극적인데, 그 때면 마을 사람들이 기꺼이 음식을 내어 주거나 아예 골목 한 편에 식사를 차려 놓더군요. 소박하고 푸근한 시골 인심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여행자를 달래는 먹거리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관광지에 먹거리 풍경이 빠질 수 없습니다. 지우펀에 가득찬 수백개의 상점 중 절대 다수는 전통 음식부터 선물용 가공 식품등을 파는 곳입니다. 특히나 밤에 '본 공연'이 펼쳐지는 지우펀의 특성상 그 시각까지 여행자의 빈 속을 채워줄 음식점이 많이 보였는데요, 생소한 대만 전통 음식부터 우리에게도 익숙한 서구의 간식류까지 먹기만 해도 제법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입니다. 특히나 골목에 서서도 간단히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완자, 국수 등의 간편 요리가 많은 사랑을 받는 모습이었습니다.
그 중 한국인들에게 가장 유명한 간식거리로 땅콩 아이스크림을 꼽을 수 있습니다. 아이스크림 한 스쿱 가량을 땅콩 가루와 함께 전병에 말아 내는 간식인데 한 손으로 들고 먹기에 좋습니다. 아이스크림의 단맛에 설탕까지 더한 고당분, 고칼로리 간식으로 하나 먹으면 저녁까지 힘이 나는 기분입니다. 그 외에도 완자와 두부 요리 등은 우리에게도 친숙한 음식이죠.
"아, 근데 이거 무슨 냄새야"
지우펀 골목을 걷다보면 종종 참을 수 없을만큼 강한 냄새가 코를 찌르곤 합니다. 말로만 듣던 취두부 냄새인데요, '이걸 대체 어떻게 먹을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강한 냄새에 시커먼 모양새까지, 그리 맛깔스러워 보이진 않지만 대만 사람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음식 중 하나입니다. 좁은 골목길이라 그런지 지우펀에는 유독 이 취두부 냄새가 곳곳에 진동했는데, '우리 청국장 냄새가 이들에게 이렇게 지독할까.'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냄새가 너무 강렬해서 취두부 요리에 한 번 도전해볼까도 생각했지만, 결국 용기를 내지 못했습니다.
지우펀의 대표 스팟,
아메이차주관(阿妹茶樓)과 홍등 거리
지우펀 하면 흔히 떠올리는 곳이 바로 이 고풍스러운 건물과 홍등 가득한 골목길입니다. 영화 비정성시의 배경이 되기도 한 아메이차주관(阿妹茶樓)은 이름 그대로 언덕 위에 위치한 찻집입니다. 이 건물과 주변 홍등 거리가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모티브가 된 것으로도 유명하죠. 아쉽게도 날씨가 도와주지 않아 비에 젖은 축축한 찻집 풍경만 보았지만 그 규모며 창문과 기와 등의 운치가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 마침 배도 고프고 종일 비를 맞아 몸도 으슬으슬해서 계단을 올라 안으로 들어갔지만 예약 없이는 입장할 수 없다더군요. '그럼 그렇지'라며 나왔습니다.
아메이차주관은 이 곳에서 가장 인기있는 건물이며 모델입니다. 골목길 옆에 마련된 작은 간이 전망대에는 이 건물의 모습을 담거나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늘 가득합니다. 저도 오후부터 밤까지 몇 번이나 이 곳에 올라 사람들 사이를 파고들며 기회를 엿봤지만 역시나 '인증샷'을 위한 사람들의 열정을 이기기란 쉽지 않습니다. 비까지 오니 종종 사람들이 든 우산에 가려 앞도 제대로 볼 수 없더군요. 생각보다 더 큰 건물은 광각 렌즈를 챙기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했습니다.
그렇게 낮에 두세 번, 밤에 다시 두어 번 이 곳을 찾았지만 날씨와 인파에 치여 기대했던 멋진 장면은 담지 못했습니다. 아니 그보다는 인파에 치여 제대로 골목길을 걸을 수 조차 없던 것이 무척 힘들었습니다. 한국이며 일본, 중국 등 주변국에서 모인 수많은 여행객들이 얼마나 많던지, 게다가 밤이 깊어갈 수록 점점 더 모여드는 것이 '이것이 유명 관광지의 현실'이라는 생각을 절로 들게 했습니다. 비는 떠나던 순간까지 멈추지 않았지만, 저녁쯤 되자 매력적인 남색 하늘이 펼쳐지며 홍등 거리를 꽤 멋지게 연출했습니다. 그 풍경 역시 인파에 덮여 제대로 남길 수 없었지만, 적어도 눈에 담으며 이곳이 왜 그리 유명한지 이해하는 정도로 만족하기로 했습니다.
아쉽지만,
이 정도만 기억하기로 해
운치있고, 사람 냄새가 진동하며 누군가에게는 꿈 같은 여행의 종착지일 수도 있지만 사실 지우펀은 아쉬움이 컸습니다. 물론 애초에 이 낭만적인 장면을 한가로이 혼자 독점하겠다는 꿈을 꾼 제가 어리석었을 지도 모르지만요. 사진 속에서 본 멋진 찻집 건물은 그저 '이게 정말 있구나'라는 정도로, 낭만적인 홍등 거리는 뒷사람에 밀려 지나쳤지만 '그래도 그 날 내가 거기 있었어'라며 위안 삼아야겠지만 그 곳에 가득한 사람들이 풍긴 사람 냄새 만큼은 실컷 맡고 온 날이었습니다. 솔직히 다시 지우펀을 갈 용기는 나지 않지만 골목 가득 퍼진 취두부 냄새와 시장통에서 사람들이 시시각각 만들어내는 장면은 언젠가 화창한 날 다시 한 번 보고싶긴 합니다.
가장 기대했지만 제일 볼 것 없었던 하루가 이렇게 지나갑니다.
특별하지 않음에서 오는 행복, 2016 타이베이 (Taipei)
#0 타이페이 여행의 시작- 유독 잠이 오지 않는 이유는 부족한 준비 때문일까?
#0.5 특별하지 않음에서 오는 행복, 2016년 겨울의 타이페이
#1 출발, 타이베이 - 수월한 여행을 위한 준비해야 할 것들 (통신, 교통, 숙소)
#3 나홀로 타이베이 여행자를 위한 숙소 추천, 포시패커 호텔 (Poshpacker hotel)
#4 저렴한 가격 빼고는 추천하지 않는 타이베이 메이스테이 호텔 (Meistay hot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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