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쓴 편지

일상적인 여행

2016년 2월, 대만 타이베이.



벌써 6개월이 지났습니다. 이런저런 것들을 하다보니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요. 그동안 적지 않은 것들이 변했겠지만 이제라도 시작할 수 있게 되어 다행입니다.

2015년의 끝자락, 정확히 말하면 지난해 마지막 날인 12월 31일에 여행을 떠나기로 결정한 후 2월 22일까지 제법 긴 시간이 있었지만 어째 여행 준비는 0에 가까웠습니다. 몇 번의 여행을 통해 '가면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안이함이 몸에 배어버리기도 했거니와 유럽이나 러시아, 오세아니아 대륙이 아닌 같은 아시아권 국가는 긴장감을 주지 못하더군요. 물론 언어의 장벽은 체코나 대만이나 다르지 않습니다만은 그냥 대만은 '어떻게든 잘 놀고 올 것' 이라 생각했습니다.



- 게다가 대만 여행 직전에 프라하 겨울 여행이 있었죠 -


아마 제게는 특별한 도시인 프라하 여행에 신경을 집중해서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프라하에서 돌아온 후 약 열흘 후에 타이베이로 출발한 2016년 두번째 여행이었습니다.

저처럼 더위 많이 타는 사람은 여름이면 꿈도 못 꾼다는 대만 여행, 그래서 더 늦기 전에, 본격적으로 더워지기 전 2월 마지막이 적당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다녀온 후의 소감은 대만 여행 하기엔 12월 부터 2월까지의 겨울이 가장 적합한 것이 사실이지만 날씨를 잘 확인해야 겠다는 것을 일깨웠달까요, 물론 두달 전에 티켓을 예약 했으니 어쩔 수 없었겠지만 일주일간의 여행 내내 비가 내리니 이게 여행인지 유배인지 헛갈릴 정도더군요.


그렇게, 준비 없는 여행이 시작됐습니다.

역시 이런 여행이 제 여행 답습니다. 모스크바에서 그렇게 고생해 놓고서도 아직 정신을 못 차렸다죠.




얼마나 준비가 없었냐면 환전도 공항에서 급하게 했습니다. 항공과 숙박이 해결 됐으니 일주일간의 생활비 정도만 준비 했는데, 조금 남겨올 요량으로 약 50만원, 당시 환율로 12200 타이완 달러를 환전 했는데 어찌어찌 하여 대부분 다 쓰고 돌아왔습니다. 남은 돈을 고국의 부모형제연인을 위한 선물 구입에 모두 턴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대만의 먹거리에 반해 매끼 호화롭게 즐긴 것이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오랜만에 혼자 떠나는 여행인만큼 적은 경비로 알차게 즐기자는 이 날의 목표는 결국 어느 여행보다도 호화로운 식도락 여행으로 물거품이 되어 버렸죠.




새신발까지 신고 간만에 찾은 김포공항, 제가 이용한 항공은 중화항공의 김포-송산공항 노선이었습니다. 만약 다시 타이베이를 찾게 된다면 일부러라도 이 김포-송산 노선을 골라 갈만큼 만족스러웠습니다. 침체된 김포 공항 검색대에는 사람이 없어 수속이 무척 빨랐고 도착한 송산 공항 역시 타이베이 시내와 매우 가까워서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거든요. 타오위안 공항에서 타이베이 시내로 가는 시간과 가격, 노력을 고려하면 송산 공항을 일정에 맞춰 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 것입니다.



서울-타이베이, 두시간 삼십분의 비행



김포에서 송산 공항까지는 두시간 삼십분 정도가 소요됩니다. 간사이나 후쿠오카 공항이 한시간 반 내외로 '비행기 탄 촌놈의 설렘'을 즐기기엔 다소 아쉽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 정도의 비행이 딱 기분좋은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기내식이 제대로 제공 되기도 하고요. 비행 시간이 짧다보니 비행기가 뜨고난 직후 기내식이 나오는 편입니다. 처음 비행기를 탄 이후 몇 번의 여행에선 이 기내식만 기대했는데 점점 앉아서 밥만 먹는 것이 사육 당하는 기분이라 요즘은 기내식이 반갑지 않더군요.



역시나 같은 아시아권인만큼 익숙한 요리와 간식이 나와 특별할 것은 없었습니다. 오예스까지 간식으로 챙겨주니 국내 항공사 못지 않습니다. 다만 좌석에 스크린이 없는 비행기가 있다는 것을 이 비행으로 처음 알게 됐습니다. 3x3 배열의 작은 비행기는 오래돼 보였고 종종 위태롭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만 그럼에도 나쁘지 않은 비행이었습니다. 적당한 체공 시간(?) 덕분입니다.



타이베이 여행에 최적, 시내에 인접한 송산 공항



송산 공항에 도착하니 잔뜩 찌푸린 하늘이 저를 맞이합니다. 날씨가 참 안좋더군요. 그리고 이런 날씨가 일주일간 계속되며 종종 비를 뿌렸습니다. 덕분에 대만 여행의 악명과 달리 날씨가 선선해서 여행 다니기는 좋았지만 사진이나 지인들의 여행담 속에 있던 그림같은 풍경은 남의 이야기가 되어 버렸죠.


송산 공항은 타이베이 여행을 계획 중이신 분들께 추천할만한 곳입니다. 보통은 인천-타오위안 노선을 많이 이용하시지만 서울에 거주하시는 분이라면 김포-송산 노선을 이용하시는 것이 집에서 공항까지, 그리고 공항에서 타이베이 시내까지 소요되는 시간을 크게 줄여줍니다. 송산 공항은 타이베이 시내에 약 20분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거든요. 두번째 숙소에서는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거리라 아침 비행기에 맞춰 숙소에서 공항까지 걸어가기도 했습니다. 중샤오푸싱 역 근처의 숙소에서 송산 공항까지 걸어가는데 약 20분이 소요 되더군요. 타오위안 공항보다는 작고 낡은 공항이지만 그래도 시간 절약하는 게 여행에는 더 중요하지 않겠어요?



본격적인 여행을 위한 준비 - 데이터 플랜 / 교통 카드



여행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에게 타이베이 여행을 첫번째 여행지로 추천하는 이유 중 하나로 여행자를 위해 잘 갖춰진 시스템을 꼽을 수 있습니다. 특히나 성공적으로 여행 일정을 맞추는 데 그리고 돌발 상황에 대응하는 데 필요한 데이터 플랜과 교통요금 시스템이 무척 잘 되어 있거든요. 첫번째로 스마트폰 사용을 위한 데이터 플랜, 공항 출구쪽의 통신사 창구에서 날짜별로 판매하는 심카드를 구매하면 로밍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스마트폰 데이터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가장 많이 사용하시는 중화 통신을 저도 이용했습니다. 일주일 플랜 가격이 약 2만원으로 하루에 3천원 꼴입니다. 데이터 무제한 플랜이 하루 만원이 넘어가니 이 정도면 정말 매력적인 가격입니다. 게다가 아시아권 여행에서 많이 사용 하시는 Wi-Fi 라우터의 가격보다도 저렴하니까요.




중화통신의 창구 앞에서 번호표를 뽑으면 차례대로 원하는 데이터 플랜을 구매할 수 있습니다. 혹시라도 당황할 필요가 없는 것이 이미 먼저 내린 한국인 관광객이 함께 대기중일 테고 한글로 인쇄된 설명 전단도 마련돼 있습니다. 원하시는 날짜에 맞는 플랜을 구매하면 끝. 개통된 유심을 스마트폰에 삽입 후 테스트까지 완료해 건네 줍니다. 이제 걱정없이 무제한 LTE 데이터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데이터 로밍에 비해 가격이 저렴할 뿐 아니라 LTE 무제한으로 통신 속도도 비교할 수 없이 빠릅니다. 제가 방문한 도시 중 통신 요금이 가장 저렴한 편에 속하고 공항에서 바로 구입할 수 있는 시스템도 유용했습니다. 여행에서 스마트폰 데이터가 빵빵 터지는 것만으로도 절반은 수월해지는 느낌이 듭니다. 날씨며 현재 위치, 그리고 즉석에서 다음 방문지 정보나 경로를 검색할 수도 있으니 여행이 정말 쉽다는 생각이 듭니다.



- 부끄럽지만 이렇게 활용도 -




다음은 교통. 타이베이의 교통 시스템은 '이지 카드'라는 교통 카드로 이용하게 됩니다. 지하철 역에 위와 같은 자판기가 있어 카드를 구입하거나 금액을 충전할 수 있습니다. 각 언어로 된 메뉴가 있어 구입도 수월한 편입니다. 물론 지하철 역 안내 창구에서도 구매 및 충전이 가능합니다. 교통 시스템 역시 통신 못지 않게 여행객이 이용하기 쉽게 되어 있습니다. 심카드를 구매하고 이지카드를 구매하는 동안 저는 단 한마디의 영어나 대만 언어를 하지 않았을 정도니까요.




이지카드로 지하철과 버스를 사용하게 되며 부족한 금액은 무인판매기와 지하철 창구 등에서 즉시 충전이 가능합니다. 남은 금액은 환불도 가능하니 아까워하지 말고 넉넉하게 넣으셔도 되겠습니다. 다만 잔액에 따라 공제액에 차이가 있다고 하네요.




이렇게 통신과 교통이 손쉽게 해결되니 캐리어를 든 손이며 발걸음이 한결 가볍습니다. 지하철 역시 노선이 많지 않아 한국 지하철을 탈 때보다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환승 역시 역 내에서 이뤄지도록 간편하게 되어 있고요. 다만 한가지 어려웠던 것은 타이베이 메인 스테이션 같은 큰 역과 환승역의 경우 출구 숫자가 매우 많고 그 간격이 멀어 숙소나 원하는 관광지를 찾을 때 자칫 헤맬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특히나 타이베이 메인역이 출구 수가 무척 많고 지하 쇼핑몰이며 기차역까지 이어지는 통로 때문에 처음 방문할 때는 무척 어지럽더군요.


보통 타이베이 중앙역이나 시먼쪽으로 숙소를 많이 잡으시는데, 송산 공항은 갈색 웬후 라인이며 시먼과 타이베이 메인역은 파랑색 반냔 라인에 위치합니다. 중샤오 푸싱 역에서 환승하면 어렵지 않게 갈 수 있습니다.



숙소 가격이 비싼 도시 타이베이



타이베이의 물가는 체감상 서울의 약 7-80% 정도로 비교적 저렴한 편이지만 유독 숙박에서는 서울 못지 않을 정도로 높게 느껴졌습니다. 그리 좋지 않은 시설에도 다른 도시보다 비싼 가격이 책정 됐으며 그마저도 비수기인 2월말 조차 숙소를 구하기가 쉽지 않더군요. 타이베이는 관광객을 위한 호텔 등의 숙소가 많지 않아 물가에 비해 숙박 요금이 비싸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들을 수 있었습니다. 때문에 다른 곳보다 매우 작은 규모의 1인실 호텔이 성행중인데 저도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1인실과 공동 화장실/욕실을 사용하는 호텔에 묵었습니다. 운 좋게도 비교적 시설이 좋은 타이베이 메인역 인근의 포시패커(Poshpacker) 호텔에서 3박을 했는데 공동 화장실이 매우매우 마음에 걸렸음에도 전반적인 소감은 '가격대비 훌륭하다' 였습니다. 혼자 여행할 때는 이 쪽이 오히려 경비 절약 면에서 더 좋더군요.


다만 아침마다 화장실 가득 퍼지는 모닝 변 냄새는 다신 경험하고 싶지 않습니다.



- 포시패커 호텔의 1인실, 창문 있는 방은 조금 더 비쌉니다 -


창문의 유무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는 것이 인간의 잔혹함에 대해 생각하게 하지만 3만원대의 가격에 낯선 도시에서 몸을 누일 수 있는 곳이 또 어디 있겠느냐 생각하면 이 호텔의 만족감은 생각보다 컸습니다. 딱 한 사람이 누울 만한 침대, 캐리어와 가방 정도를 세워둘 수 있는 작은 공간과 작은 테이블 그리고 냉장고. 넉넉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또 없는 건 딱히 없는 것이 1인실 호텔의 매력입니다. 그나마도 객실마다 냉장고가 있는 곳도 흔치 않다고 하니 저는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물론 주말 요금이 비싸 마지막 이틀은 다른 곳에 묵어야 했지만요.


포시패커 호텔 후기는 별도로 남기려고 합니다. 혼자 타이베이 여행을 하는 백패커들에게 자신있게 추천할 수 있는 곳입니다.


그렇게, 타이베이에서의 첫번째 밤.



한시 이십분 비행기를 탔음에도 타이베이 송산 공항에 네시에 도착했고, 심카드와 교통카드를 구입한 후 숙소에 도착하니 다섯시 정도였습니다. 집에서 나와 타이베이 메인역의 숙소까지 도착하는 데 약 여덟 시간이 소요 됐으니 이 정도면 경제적인 여행입니다. 포시패커 호텔의 좁은 1인실 방에 짐을 대강 놓아두고 저녁을 먹으러 나왔습니다. 짐을 푸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작은 방이라 아침마다 입을 옷가지를 빼고 벗은 옷을 넣어야 했던 경험도 지나고 나니 혼자 떠난 여행에서 얻은 새로운 추억입니다.


타이베이 메인역에 숙소가 있다는 것은 저렴하고 깨끗한 1인실 호텔에 이은 두번째 행운이었습니다. 타이베이 어디든 금방 닿을 수 있는 지리적 장점 외에도 다양한 타이베이 맛집들이 모여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딘타이펑은 조금 멀지만 또 다른 샤오롱바오 맛집인 단 수이 러우 그리고 유명한 우육면 가게나 버블티의 고향 춘수당 그리고 역 뒤편으로 이어진 가게들 중에는 화덕 만두집이나 유명한 훠궈 레스토랑 등이 모여있어 밤 늦은 시각까지 타이베이를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저는 호텔에서 나서기 전 스마트폰을 통해 숙소 근처에 유명한 훠궈집 훠궈 쥐(聚)가 있다는 것을 찾아내고 마침 다섯시 반부터 시작인 저녁 타임에 맞춰 첫번째 손님으로 입장했습니다. 검지 손가락 하나를 세워 '나 혼자 왔어 어떻게 해'라며 머쓱한 표정을 지었지만 생각해보니 저는 서울에서도 자주 혼자 밥을 먹었습니다. 그렇게 타이베이에서의 첫번째 식사이자 최고의 식사를 마치고 마침 근처에 있던 얼얼바 평화 기념공원 (二二八和平公園)를 산책하며 타이베이에서의 첫번째 밤을 맞았습니다. 20도 내외의 선선한 날씨와 익숙한 듯 이국적인 거리 분위기에 기분이 무척 좋았던 날입니다.



'역시 일단 떠나면 어떻게든 되는거야'



그렇게 특별할 것 없지만 가슴 언저리가 간질간질 설레는 타이베이에서의 첫번째 밤이 깊어 갑니다.







특별하지 않음에서 오는 행복, 2016 타이베이 (Taipei)

2016년 여행의 시작, 타이페이 여행 카운트다운

#0 타이페이 여행의 시작- 유독 잠이 오지 않는 이유는 부족한 준비 때문일까?

#0.5 특별하지 않음에서 오는 행복, 2016년 겨울의 타이페이

#1 출발, 타이베이 - 수월한 여행을 위한 준비해야 할 것들 (통신, 교통, 숙소)

#2 대만에서의 첫번째 만찬, 타이베이 훠궈 쥐(聚)

#3 나홀로 타이베이 여행자를 위한 숙소 추천, 포시패커 호텔 (Poshpacker hotel)

#4 저렴한 가격 빼고는 추천하지 않는 타이베이 메이스테이 호텔 (Meistay hotel)

#5 대만을 지탱하는 정신, 타이베이 중정기념당

#6 타이베이에서 가장 맛있는 거리, 융캉제(永康街)

#7 대만 현지에서 즐기는 딘 타이 펑의 샤오롱바오 (타이베이 딘 타이 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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