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쓴 편지

설렘 x 감성

낯선 도시에서 출발하는 짧은 기차 여행


- 고양이 마을 허우통(侯硐) -


이 낯선 도시가 채 익숙해지기도 전에 가방을 챙겨 기차를 탔습니다. 이곳까지 와서 기차 여행을 할 것이라곤 기대하지 않았던 터라 적잖이 두근거립니다. 대만 여행을 가게 된다면 꼭 이 작은 열차를 타 보라고 했던 어떤이의 말이 기억나 여행 후반의 하루를 몽땅 털어 넣었습니다. 기차표와 점심 식사를 해결할 여비와 기억력이 나쁜 저를 보조해 줄 사진기 그리고 수첩, 마지막으로 두 손을 자유롭게 해 줄 작은 가방을 챙기면 여행 준비가 끝납니다. 아, 오늘 하루의 배경 음악이 되어 줄 노래 한 곡도 골라야겠군요. 모처럼 트렁크가 없는 가벼운 여행입니다.




타이베이 메인 스테이션은 MRT와 고속철 THSR, 일반 열차 TRA 그리고 고속버스까지 등 어디든 떠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핑시선은 그 중 가장 원시적으로 낡은 여행으로 손꼽힙니다. 여기엔 역시 느리고 덜컹대는 일반 열차 TRA가 어울리겠죠. 타이베이 메인역에서 49 타이완달러를 주고 루이팡역으로 가는 열차 티켓을 구입했습니다.


열차를 기다리며 바라본 건너편 플랫폼의 풍경이 재미있습니다. 조금 더 설레게도 하고요.


대만 핑시선(平溪線)

- 루이팡역부터 징통까지 이어지는 핑시선 라인 -



지우펀과 예류 지질 공원이 변치 않는 타이베이/대만 여행의 추천 코스라면 핑시선은 최근 여성과 청춘 여행객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코스입니다. 루이팡(瑞芳)역에서 징통(菁桐)역으로 이어지는 노선에는 각 정류장마다 개성있는 마을 풍경이 테마파크처럼 이어지는데, 고양이가 가득한 고양이 마을부터 대나무에 소원을 적어 거는 대나무 마을 그리고 대만 여행의 필수 코스 중 하나인 천등으로 유명한 스펀까지 하나같이 매력적이라 인기가 많습니다. 티켓 하나를 구매하면 어디서든 내려 원하는 시간만큼 머물고 올 수 있는 것이 매력. 시골 마을의 소박한 분위기와 고즈넉한 매력이 '대만의 감성이 이런 것이구나'라는 생각을 들게 합니다. 물론 요즘은 관광객 때문에 '여유'와는 거리가 멀어졌지만요.


- 고양이 마을 허우통과 천등으로 유명한 스펀, 대나무 마을 징통이 핑시선 라인에 있습니다 -


고양이 마을 허우통은 여성 관광객에게, 대나무 마을 징통은 가족 단위의 여행객 그리고 스펀의 천등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인기가 있습니다. 타이베이 메인역부터 루이팡역까지 약 한 시간이 걸리니 아침에 출발해 저녁에 돌아오는 당일치기 나들이로 더 없이 좋은 코스입니다. 



타이베이 메인 역 -> 루이팡 역


핑시선의 시작은 루이팡(瑞芳)역입니다. 타이베이 메인역에서 TRA를 타고 한시간 정도 걸리는데 일반 노선과 Express 노선이 있습니다. Express 노선은 좌석이 지정석이고 시간이 20분 정도 단축되는 '고급'라인입니다. 저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냥 저렴한 일반선 표를 달라고 했는데, 후에 알고보니 일반선은 대만 교통카드 이지카드로 탑승이 가능하더군요. 혼자 여행하면 이렇게 헤매는 일이 잦습니다. TRA 일반 열차는 한국의 지하철과 비슷한 열차이고 좌석 역시 비지정석이라 경쟁이 심합니다. 다행히 저는 아침 일찍 출발해서인지 날씨가 궂어서인지 한가한 열차를 편하게 타고 왔습니다.


- 허허, 이런 사진 잘 안 찍는데.. -


루이팡역에서 내린 사람들 대부분이 핑시선을 이용하기 때문에 눈치껏 발걸음을 늦추면 저보다 준비를 철저히 한 관광객들을 따라 매표소에 닿을 수 있습니다. 사람 수 정도만 말하면 티켓을 살 수 있고, 가격은 80 타이완달러, 한화로 3000원대입니다. 이거 하나면 종일 기차타고 놀 수 있으니 저렴하죠?


- 그래서 사람이 많습니다 -


저렴한 가격에 시골 기차 여행의 낭만을 즐길 수 있다보니 인기가 무척 많습니다. TRA 열차에 있을 때까지만 해도 '오늘은 한가하네'라고 생각했는데 핑시선 열차를 기다리는 플랫폼에는 어느새 인파가 가득합니다. 정신 바짝 차려야겠습니다.




예쁜 색의 그림이 웃음을 짓게 하는 열차가 도착했습니다. 누가 봐도 이것이 오늘 하루를 안내할 핑시선 열차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열차는 90년대 서울 지하철을 떠오르게 할 만큼 낡았지만 이것 역시 기차 여행의 낭만이라 생각하면 훨씬 즐겁습니다. 플랫폼에 가득했던 가득했던 사람들이 어느새 열차를 가득 채웠습니다, 사진을 찍다 자칫 외톨이가 되겠습니다. 얼른 올라 탑니다.



핑시선 열차의 첫번째 역,

고양이 마을 허우통



덜컹대며 한참을 달린 핑시선 열차가 첫번째로 서는 역은 고양이 마을 허우통(侯硐)입니다. 열차는 매 역마다 정차하지만 내리는 것은 자유입니다. 원하는 역에서 원하는 시간만큼 머물 수 있는 것이 핑시선 열차의 매력이니까요. 하지만 첫번째 허우통 역에서 대부분 내립니다. '나는 오직 천등만을 위해 왔다'는 분이 아니라면 말이죠. 특히나 고양이를 좋아하는 분들에게 이 곳은 세상에서 가장 멋진 테마파크입니다. 꼭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세상에서 가장 포토제닉한 동물 중 하나인 고양이와 함께 사진을 찍고 이 마을의 아기자기한 풍경을 감상하는 것 역시 좋은 시간이 될 것입니다. 다음 열차까지 한 시간 정도의 여유가 있으니 서두르면 충분히 볼 수 있습니다.


- 입구부터 야옹야옹(?) 해 -


고양이 마을이라는 이름에 맞게 기차역부터 동네는 온통 고양이와 관련된 장식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기차역을 나서 마을까지 가는 길에도 고양이 얼굴이 그려진 장식물이며 제 키만한 고양이 모형이 잔뜩 걸리고 서 있으니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사진찍기도 좋은 곳입니다.


- 기차역 입구에 있는 커다란 고양이상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시는 분이 많습니다 -


참으로 야옹야옹(?)해


비가 오고 흐린 날씨에 고양이들은 어딘가에 모여 비를 피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벽면에 그려진 고양이 그림들과 곳곳에 세워진 고양이상, 마을 사람들이 고양이들을 위해 마련해준 작은 고양이집들이 고양이 마을 허우통의 분위기를 충분히 느끼게 해 줍니다. 일본에서 보았던 고양이 그림들이 연상되는 허우통의 벽화와 글씨들은 하나하나가 예쁘고 귀엽습니다. 일본에도 유명한 고양이 마을들이 있는데, 대만 여행에서도 이런 감성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즐겁더군요.




벽화는 물론 마을 표지판이며 곳곳에 세워진 조형물 역시 모두 고양이를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한가한 오전시간, 관광객은 물론 현지 주민들까지 눈에 띄지 않아 이 날은 이 마을의 주인이 온전히 고양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 허우통에서 개는 그야말로 서럽습니다 -


허우통의 주인공들


한참을 마을 곳곳을 돌아봐도 고양이들이 눈에 띄지 않아 내심 서운했는데, 기차역을 중심으로 좌,우로 나뉘어진 마을의 반대편으로 가니 곳곳에 비를 피해 웅크리고 있는 냥선생님(?)들이 눈에 띕니다. 수많은 관광객의 사랑을 받아서인지 사람이 가까이 가도 경계하거나 도망가지 않고 조심스레 머리를 쓰다듬어도 살짝 인상만 쓸 뿐 싫지 않은 눈치입니다. 졸음이 왔는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고양이의 모양이 귀엽습니다. 저 원래 고양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말입니다.


첫번째 선생님을 발견한 후로는 동네 곳곳에 숨은 다른 선생님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고양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허우통의 고양이들은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맛있는 간식거리와 사랑을 준 덕분인지 몰라도 하나같이 친근하고 때때로 먼저 무릎 위에 올라와 '야 처음 왔으면 여기 좀 쓰다듬어 봐'라는 듯 등을 곧추세우기도 합니다. 혼자 타이베이에 날아온 제게는 이곳에서의 첫번째 스킨십입니다. 다양한 색깔과 얼굴 그리고 표정들을 보니 역시 그들은 하나같이 능숙한 모델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 오늘 장사 안 해 -



시작부터 끝까지 고양이 천국

- 고양이 고양이, 온갖 고양이들로 가득한 상점들 -


마을에 가득한 벽화와 조형물, 그리고 주인공인 고양이들도 모자라 이 마을에 문을 연 상점들에는 세상 모든 고양이 관련 상품들이 모여있는 듯 다양한 것들로 가득합니다. 고양이 사진과 그림이 그려진 엽서부터 크고작은 인형, 지갑과 파우치같은 공예품 그리고 고양이 얼굴 모양으로 빚은 전통 과자 '펑리수'까지. 그야말로 고양이 축제입니다.


상점들은 이 마을의 테마와 감성에 맞게 화려한 색상과 아기자기한 그림들로 꾸며져있어 보는것만으로도 즐겁습니다. 저도 이날 저도 모르게 한 가게에 들어가 고양이가 잔뜩 그려진 작은 파우치 하나를 선물용으로 구매했습니다.



기념품숍뿐 아니라 카페와 식당 역시 고양이를 테마로 꾸며졌습니다. 물론 고양이밥을 먹는 건 아니고요.



떠나기 전, 기념도장 쾅!



허우통을 떠나기 전 해야할 것이 하나 있으니, 다름아닌 기차역에 있는 기념 스탬프입니다. 대만의 주요 관광지에는 이렇게 스탬프가 비치되어 있는데, 챙겨간 수첩에 하나씩 찍다보면 여행의 재미가 배가됩니다. 저는 일주일간의 대만 여행에서 오직 이곳에서만 스탬프를 찍었는데요, 열차 시간까지 기다리는 것이 따분하기도 했지만, 막상 찍고나니 꽤나 흐뭇합니다.



- 이쯤되면, 악마일지도 -


스탬프를 찍기 위해서는 이 녀석들의 방해를 물리쳐야 합니다. 끝까지 야옹야옹(?)한 곳입니다.




고양이들의 애교에 마음을 뺏겨 열차 하나를 놓쳤습니다. 벌써 한 시간 반을 보냈습니다. 삼십분 후에 도착할 다음 열차를 기다리는 기차역 안에서 왼쪽을 보니 지루함을 달래줄 까만 고양이 네..ㄹ 한마리 가 있네요.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 제게도 허우통은 마을 특유의 감성과 포토제닉한 선생님들의 표정과 포즈 덕분에 기억에 남는 곳이 되었습니다.




다음 열차가 도착했습니다. 다음 목적지는 천등으로 유명한 스펀(十分)역입니다.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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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낯선 도시 그리고 기차 여행, 대만 핑시선 여행 - 1. 고양이 마을 허우통(侯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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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lainy 2016.12.13 22:39 신고

    다녀온지 얼마 안되는 곳이라 그런지 더 반갑네요 고양이 마을 허우통은 정말 예쁜 마을이어요

    1. 여성분들이 좋아하실 것 같더라고요. 물론 사진찍는 것 좋아하시는 분들도요 :) 화창한 날씨가 아닌 것이 아쉬웠습니다.

  • BlogIcon sword 2016.12.15 13:52 신고

    고양이를 보다 박스를 다 갉은거 보고 진짜 터졌습니다 ㅎ
    진짜 사랑스러운 마을이네요 촬영도 너무 잘하셔서 한장한장 잘 감상하였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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