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기에는 이미 늦은 시각, 하지만 서울 못지 않게 차가웠던 동유럽 겨울 공기에 헛헛해진 속을 달래고자 카페에 들어섰을 때, 무척이나 멋진 실내 장식과 사람들의 옷차림, 여유로운 표정에 백년쯤 전으로 돌아간 것만 같았습니다. 근사한 프라하 시민 회관 1층에 자리한 이 카페는 커피 한 잔과 케이크 값인 수백 코루나를 놓고 오기에 어딘지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로 멋진 공간이었습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이 가격에 이런 황홀한 시간 여행을 했다는 것이 고마웠달까요. 아쉽게도 이 카페를 발견한 것은 공항으로 돌아가기 두시간 전이었고, 때문에 더 아쉽고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프라하 시민 회관 카페 - Kavárna Obecní dům
- 건너편에 보이는 우아한 건축 양식의 건물이 프라하 시민 회관(Obecní dům) 입니다 -
프라하의 대표적인 관광 스팟 중 하나인 화약탑 곁에는 우아한 금빛 벽과 에메랄드색 돔이 인상적인 건축물이 있습니다. 1912년 건축돼 백 년이 넘은 프라하 시민 회관으로, 당시 꽃을 피운 아르누보(Art Nouveau) 양식의 대표적인 건물입니다. 프라하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손꼽히는 시민 회관은 공연장과 레스토랑, 카페 등으로 구성된 문화 시설인데, 1200 석을 갖춘 공연장인 스메타나 홀 (Smetana Hall)이 가장 유명합니다. 체코의 음악 축제인 <프라하의 봄(Pražské jaro)>의 개막식과 폐막식이 열리는 곳이자, 체코 국립 교향악단이 상주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화약탑 옆에 있어 프라하 관광 중 어렵지 않게 찾으실 수 있습니다. Obecní dům 혹은 Municipal House로 검색하거나 지하철 Namesti Republiky역을 통해 갈 수 있습니다.
제가 찾은 카페는 이 시민 회관 1층에 있는 카페 Kavárna Obecní dům입니다.
주황색 실내 조명과 샹들리에, 고풍스러운 테이블과 의자 등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멋진 장소 같습니다. 꽤 넓은 공간에 비교적 테이블이 많아 한창 시간에는 붐빌 것으로 보이지만 늦은 오후에는 적당히 사람들이 채워지고 사람들의 말소리 역시 부족하지도 과하지도 않아 낭만적인 오후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점심 시간에는 다양한 메뉴를 먹을 수 있는 뷔페가 운영된다고 하네요. 저는 오후 두 시에 들어서 잠시 티타임을 갖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지만요. |
일부러 가장 구석 자리까지 들어간 것은 모서리에 바짝 등을 붙이고 이 낭만적인 풍경을 빠짐 없이 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메뉴판 하나 허투루 보이지 않는 이 곳에서는 차와 함께 오믈렛, 케이크 등 간단하게 허기를 채울 수 있는 메뉴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저는 커피와 초콜릿 케이크를 주문했습니다. 물가 걱정이 없는 체코에선 이렇게 근사한 곳에서도 한국의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가격에 티타임을 즐길 수 있습니다. 만약 여행이 조금 더 남은 날이었다면 아마 한,두시간은 여기서 카페 안 풍경을 감상하며 보냈을 것입니다.
- 느낌있는(?) 초콜릿 케이크 -
그렇게 숙소에 놓아 둔 짐을 들고 공항으로 가기까지 프라하에서의 마지막 시간을 이 카페에서 남김없이 보냈습니다. 낭만의 도시에서의 시간을 짧게나마 돌아보며 여행을 마무리하는 데에 이 카페의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더 없이 좋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언젠가 다시 프라하에 온다면 하루의 오후는 이 곳에서 보낼 수 있기를 기원하면서, 그래서 더 멋진 시간으로 기억합니다.
벽과 유리창을 사이로 백년쯤의 시차가 있는 듯한 이 곳. 아쉬움을 안고 일어나 카페를 나서며 창가 자리에 앉은 노부부의 다정한 오후를 보니 떠나는 아쉬움이 잠시나마 사그라들고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집니다. 짧지만 이 곳이었기에, 기억에 남을 멋진 오후였습니다. 제가 방문한 프라하의 카페 아니 공간을 통틀어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만큼 낭만적인 곳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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