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쓴 편지

두번의 여행, 하나의 이야기

2015-2016 프라하 그리고 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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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기억 속 어떤 장면보다 빛나던 2015년 프라하의 봄, 다시 만나기를 무척 바랐지만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재회를 약속하면서 미리 미안한 마음이 들었으니까요.


2월 첫 목요일, 인천에서 프라하로 가는 열한시간 내내 마음이 한없이 들뜨고 어깨는 한껏 우쭐해진 이유는 인사치레인 줄 알았던 그 약속을 지켰다는 뿌듯함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그것도 일 년이 되기 전에 재회하게 됐으니 이 날 하루는 괜히 제가 조금 잘나 보이기도 했습니다.

같은 곳을 두 번 여행하는 것은 흔하지도 않거니와 그리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두번째 프라하 여행은 매우 특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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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서 프라하는 비행기로 꼬박 열한시간을 날아야 도착합니다. 십수년간 그저 사진속 세상이었던 프라하 그리고 체코가 지난 여행 덕에 이제는 꽤 친근해졌습니다. 두번째 이용하는 체코 항공 그리고 기내 모니터를 통해 보는 주변 도시 이름까지 괜히 익숙하게 느껴집니다. 두번째 여행이라고 이 비행시간이 짧게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전보다 훨씬 편안하고 즐거웠습니다. 떠올려보면 눈 한번 붙이지 못한 지난 비행은 기대감보다 긴장감의 비중이 조금 더 컸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한 번 가본 곳이라며 이번 비행은 맘 놓고 낮잠을 잘 수 있었거든요. 물론 비행 내내 잡은 짝꿍의 손 덕분이기도 했습니다만.


한국 이용객이 많은 체코항공의 인천-프라하 노선은 그때문인지 기내식이 한국인 입맛에 쏙 맞습니다. 대체 뭘 먹었는지 잘 기억 나지도 않는 지난 여행에 비해 이번 여행은 '맛있다, 맛있다'를 연발하며 심지어 체코 맥주까지 한 잔 하며 즐길 수 있었어요. 한식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개인적 취향이 더해져 이번 비행의 체코항공 기내식이 최고였습니다. 그렇게 두번째 비행은 고향집 가듯 설레는 맘으로 지나갔습니다.




같은 곳을 다시 찾는다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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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는 그저 감탄사뿐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완전히 생소하지만 동시에 아주 멋진 것을 볼 때 공통적으로 나오는 반응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주변에 이런저런 감상을 함께 이야기할 사람이 없던 것이 더 큰 이유였습니다. 당연하겠지만 일년여 만에 다시 찾은 프라하 바츨라프 공항 풍경 역시 그날과 꼭 같았습니다. 그 날 제 기분을 머리 끝까지 끌어올린 이름 PRAHA가 눈에 보이는 순간 '그대로네'라는 상투적이기 짝이 없는 말을 하며 꼭 잡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열한시간을 날아야 갈 수 있는 거짓말 같은 땅에 언제든 떠올릴 수 있는 익숙한 풍경이 있다는 것, 두번째 여행이 결코 첫번째 여행보다 가볍지 않은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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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영어 단어가 그리 많지 않지만 그 중 다섯개의 알파벳 조합으로 저를 가장 설레게 할 수 있는 것을 꼽으라면 주저없이 이 PRAHA를 꼽을 것입니다. 생각보다 늦은 도착 시각에 곧 해가 질 것 같아 황급히 차에 올라타 창 밖 장면을 보며 내린 결론입니다.

'마지막 날이 꼭 저랬지'라며 지난 여행의 끝을 떠올립니다. 마치 지난 일년간 아무일 없었던 듯 두 여행이 하나로 이어집니다. 첫번째 여행의 마지막날 같기도 한 두번째 여행의 첫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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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제 의지로 뱉은 것이 아니니 '아아-' 였는지 '와아-' 였는지 -혹 '으어-'나 '으잉? 이었을 수도 있겠죠- 정확히 기억나진 않습니다만 창 밖에 그토록 그리워한 장면이 비치기 시작했을 때 몰려온 감정은 또렷하게 기억합니다. 분명 저 도시가 보이는 것보다 조금 더 멀리 있기를 바랐습니다. 지난 봄, 저를 사랑에 빠지게 한 풍경이 다시 한 번 저를 무너뜨린 것이 몹시 유쾌하기도 했지만 그보다 옆자리에서 함께 환호하는 그녀와 이 순간을 좀 더 즐기고 싶었거든요. 저 성이 제 기억보다 훨씬 더 더 커서 이대로 한참을 더 가기를, 물론 어떤 성도 이 날 제 바람을 채울 수 없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차는 그렇게 몇 분을 더 달려 블타바(VLTAVA) 강을 건넌 후에 멈춰 섰습니다.


공기가 차가웠습니다. 오늘 아침 서울보다 분명 포근한데도 꽤 싸늘하게 느껴지는 것을 보니 저는 어느새 지난 봄 여행 마지막 날의 그가 되어있나 봅니다.

그렇게, 두번째 여행이 시작됐습니다.




몹시 그리웠어, 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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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 짐을 던져두고 곧장 뛰어 나왔습니다. 그 날 밤 저는 숙소는 프라하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프라하의 겨울은 봄과 무척 달라 금방 해가 떨어져 버렸거든요. 프라하 성이 처음 보일 때 어둑어둑해지던 하늘이 숙소를 나서니 깊은 검정색이 되어 있었습니다. 첫걸음에 달려간 곳은 프라하 구시가 광장. 숙소 위치가 구시가 광장 요세포프(Josevov) 지역에 있었던 것은 이번 여행의 가장 큰 행운 중 하나였습니다. 덕분에 매일 여행의 시작과 끝에서 구시가 광장의 아침과 밤을 감상할 수 있었거든요.


비현실처럼 노란 조명, 같은 것 하나 없는 건물의 실루엣과 아마도 나처럼 오랫동안 이 곳을 그리워한 끝에 서 있는 사람들.

무척 바빴던 지난 봄 여행에서 후회했던 것 중 하나가 구시가 광장의 야경을 보지 못하고 돌아왔던 것이었는데 이번 여행에서 한껏 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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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이 지난 여행을 떠올리게 되지만, 사진을 찍지 않고 여유있게 바라볼 여유가 생겼습니다. 일어나고 싶을때까지 늦잠을 자는 것도,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는 것도 '나의 여행'이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이날 피곤함을 무릅쓰고 이 구시가 광장에 한참을 서있던 이유가 아마 지난 여행이 가장 생생하게 떠오르는 곳에서 그 추억을 털어내고 온전히 내 여행을 시작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늦은 밤에도 무척 많은 사람들이 광장에 모여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늦은 밤의 공연 주위에 몰려 있었고 몇몇은 함께 노래를 부르며 햇살을 대신해 광장을 채웠습니다.


어느새 돌아갈 날까지 남을 시간을 세기 시작한 저는 여행 첫날 밤에 다시 약속합니다. 또 다시 오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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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가 광장이 특별히 시간이 빠른 곳도 아닐텐데 시간은 벌써 열시가 훌쩍 넘었습니다. 비행기에서, 공항과 차 그리고 구시가 광장에서 전에 없이 가슴이 말랑해져 있었습니다만 낭만은 밥을 먹여주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잊지않고 있습니다. 사실상 몇 조각밖에 즐길 수 없었던 여행 첫 날, 본격적으로 여행을 즐기기 위해 장을 보기로 합니다. 아직도 생생한 길을 따라 향한 수퍼마켓, BILLA라는 이름이 이제야 눈에 들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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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 전역에 있는 수퍼마켓 BILLA는 대형 마트로 식자재부터 공산품까지 필요한 물품이 대부분 갖춰져 있어 여행자 뿐 아니라 현지인도 즐겨 찾는 곳입니다. 체코 물가가 워낙 저렴한 편이라 마트에서 장 보는 즐거움이 다른 도시보다 컸습니다. 토마토와 감자, 빵 같은 주식들은 한국 가격을 생각하면 놀라울 정도로 저렴하더군요. 프라하 화약탑과 대형 쇼핑몰 팔라디움에 인접한 이 BILLA는 첫날밤 뿐 아니라 종종 들러 부족한 찬거리(?)를 사고 초콜릿과 과자 등 선물거리도 구입했던, 나름 Hot 플레이스였습니다. 지난 여행에서도 저는 매일밤 이곳에 들러 초콜릿 푸딩으로 외로운 여행자의 밤을 달래곤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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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아침 먹을 것을 고르다보니 어느새 이렇게 목록이 늘었습니다. 2리터 생수 가격이 한화로 약 500원, 맥주가 1000원 내외에 사랑하는 누텔라가 1500원 정도였으니 맘껏 사도 부담이 없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들른 PAUL의 샌드위치까지 더해지니 이걸 돌아갈 때까지 다 먹을 수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언제부턴가 여행의 큰 즐거움으로 손짓으로 해결하는 장보기, 직접 차려먹는 아침이 추가됐는데, 프라하 여행에서 원없이 즐길 수 있었습니다. 물가 저렴한 프라하에서는 대표적인 음식인 굴라쉬, 꼴레뇨, 립을 저렴한 가격에 즐길 수 있지만 식자재 가격이 저렴해 이렇게 직접 해 드시면 경비를 크게 절약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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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첫날은 지난 여행의 끝과 새 여행의 시작 사이 그 어딘가에 있었습니다. 깊은 밤, 부쩍 차가워진 공기를 열린 창 틈으로 삼키며 바라본 요세포프의 골목길 풍경이 새삼 낯설어 기뻤습니다. 이 장면에선 도무지 지난 여행을 떠올릴 수 없었거든요.



'내일 일어나도 여전히 프라하겠지?' 라며 아쉬운 잠을 청했던, 두번째 여행의 첫 밤이었습니다.







2016 프라하 - 두 개의 여행, 하나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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