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쓴 편지

매일 아침을 너와 함께 하고 싶어,



두번째 프라하 여행의 첫번째 아침, 시차 탓으로 오전 다섯시쯤 눈을 떠 세수도 하지 않은 채 숙소 앞 구시가 광장에 섰습니다. 대략 중간쯤 되는 위치에 선 것을 확인한 후 오른발 뒤꿈치를 중심 삼아 제자리를 한바퀴 크게 돈 후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매일 이 아침을 가질 수 있다면, 다른 것은 하나도 욕심내지 않고 살 수 있겠다.'


프라하에 다녀온 많은 사람들은 눈부신 봄 그리고 가장 많은 사람들이 있는 오후의 구시가 광장을 기억하지만 제가 기억하는 구시가 광장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아직 많은 이들이 그 매력을 알지 못하는 겨울 그리고 이제 막 해가 뜨기 시작하는 아침이었습니다. 굳이 첫번째 여행이라야만 첫 아침이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어쩌면 프라하의 아침 그 자체가 유독 특별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AM 9:00, 프라하 요세포프(Josevov)의 한 아파트



커튼 너머로 아련하게 밝아오는 아침, 첫번째 아침이라 그 의미가 더 크고 반가웠습니다. 일년만에 다시 프라하에 도착한 오후 다섯시, 도시에는 이미 짙게 어둠이 깔려 있었으니까요. 기다렸던 여행이고 그리웠던 도시였기 때문에 첫번째 밤을 그냥 보내지 못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식사를 위한 장보기를 핑계로 화약탑 앞에 있는 대형 마트에 갔고 그 길에 구시가광장을, 그토록 그리웠던 길들을 걸었습니다. 그렇게 자정이 훌쩍 지난 시각에 겨우 잠들었고 해가 뜨기 전에 눈을 떴습니다.


그리 춥지 않은 동유럽의 겨울이지만 실내 난방이 꽤나 후끈했던 탓인지 눈을 떴을 때 겨울이라는 걸 잠시 잊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첫번째 아침 하늘이 지난 봄처럼 파란색이었거든요. 날씨가 무척 좋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급하지 않았습니다. 한참을 일어나지 않고 침대에 누워 하늘을 감상했습니다. 사실 몇시간 전 이른 아침을 마중다녀왔기 때문입니다.



AM 5:30, 프라하 카렐교 그리고 구시가 광장


빵이며 치즈, 주스와 과일 등 장봐 온 것들을 정리하느라 그리고 창 밖으로 펼쳐진 프라하의 밤을 조각이나마 감상하느라 두시쯤 겨우 잠들었던 것 같은데, 다섯시쯤 눈이 반짝 떠졌습니다. 일곱시간의 시차 때문인 것 같기도 하지만 눈을 뜨자마자 외투를 들쳐매고 숙소를 나선 것을 보면 짧은 잠이 여행의 설렘을 조금도 진정시키지 못한 것 같습니다.


도시는 아직 깊은 밤이었지만 시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곧 약속된 빛이 내려오리라는 것을. 걷다보니 저멀리 아래부터 붉은 빛이 올라와 아침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붉은 빛 앞으로 제가 그토록 사랑했던 그 실루엣이 떠올랐을 때,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도시가 전부 밝아오기 전 저는 아무 도움 없이 카렐교를 찾아왔고, 그 건녀편으로 프라하 성의 실루엣이 보였습니다.


아마도 내가 제대로 이 도시에 찾아온 것을 확인하는 의식이 아니었을까요, 프라하 성이 저 멀리 있다는 것을 확인한 후 미련없이 발걸음을 돌려 다시 익숙한 골목길로 들어섰습니다. 기억이 가물가물한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그저 보이는 대로, 눈에 띄는 방향으로 걸었지만 불안하지 않았습니다. 이 도시의 모든 길이 결국 그 곳으로 향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그 동안 저멀리 우뚝 솟은 틴 성당의 실루엣이 점점 가까워집니다.


AM 6:50, 프라하 구시가 광장


이윽고 구시가 광장에 도착했을 때, 겨울같지 않은 햇살이 빛망울처럼 터지며 광장의 색을 온전히 밝혔습니다. 간간히 몇몇 이들만 마치 길을 잃은 듯 바쁘게 지나치는 텅 빈 광장 가운데에서 오롯이 프라하의 아침을 맞았습니다.

하나하나 세심한 손으로 깎은 듯한 건축물의 우아한 실루엣과 겨울을 잊게 하는 햇살, 이 도시는 아무리 큰 그대를 해도 실망 시키지 않습니다.




유독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체코 프라하. 드라마나 미디어 등의 영향도 있겠지만 이 도시의 낭만적인 분위기며 이국적인 건축물이 유독 우리에게 감동적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합니다. 하늘 한 번 보기 힘든 회색 도시에 살면서 늘 꿈꾸는 동화속 세상이 어쩌면 이런 형태가 아니겠냐고. 그것이 제가 유독 이 도시를 사랑하고 늘 그리워하는 이유기도 합니다.


프라하에서 가장 유명한 곳으로 프라하 성과 카렐교 그리고 구시가 광장을 꼽을 수 있습니다. 세 곳 중 어느 하나를 꼽으라면 그 개성과 매력이 뚜렷해 쉽게 선택할 수 없을 정도로 세 곳 모두가 프라하를 대표하는 풍경과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곳을 꼽으라면 구시가광장을 꼽겠습니다, 하루를 24시간으로 나누면 24가지, 720분으로 나누면 720가지 표정을 가진 곳이거든요. 그 중에서도 저는 이 광장의 텅 빈 아침을 가장 좋아합니다.


프라하 강을 가로지르는 블타바(VLTAVA) 강을 기준으로 구시가 광장은 오른쪽 구시가 지역에 위치합니다. 왼쪽으로 프라하 성, 오른쪽으로 구시가 광장 그리고 그 둘을 연결하는 카렐교까지. 하루쯤 이 긴 길을 발이 아프도록 걷는 것도 프라하를 여행하는 좋은 방법이 될 것입니다. 세 곳은 연결하는 골목 하나하나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으니까요.




아침 광장의 햇살을 독점하는 기분을 만끽한 후에는 텅 빈 광장이 가장 잘 보이는 거리까지 물러서서 이 도시를 스쳐간 작가와 화가, 사진가들이 유독 사랑했던 장면을 감상합니다. 600년간 쉬지 않고 흐르는 천문 시계탑과 틴 성당을 동시에 담을 수 있는 이 위치에서 많은 화가와 사진가들이 영감을 얻었습니다. 지난 봄 저도 이쯤 어딘가에 주저앉아 가득찬 오후를 감상한 적이 있죠. 눈 깜빡하는 시간이 아까웠던 그 설렘을 여전히 기억합니다.


- 천문 시계탑과 틴 성당 -

- 그리고 이름없는 광장의 주인공들 -


오후가 되면 이 광장이 가득 찰 것입니다. 매 정시가 가까워오면 천문 시계탑 앞은 전세계에서 모인 이들이 시계탑이 울리기를 기다릴 것이고 그 뒤로 거리 공연이 펼쳐질 것입니다. 그 모든 순간에는 거리의 악사가 연주하는 음악이 배경처럼 흐를 것입니다. 텅 빈 아침의 광장에 서서 그 오후를 추억하고 또 상상해 봅니다. 아침의 구시가 광장은 텅 비었지만, 그래서 제 추억과 바람, 설렘으로 채우기가 쉽습니다. 낭만 가득한 오후의 광장을 직접 눈으로 감상하는 것보다 이렇게 가슴 떨리게 떠올리는 것이 저는 더 좋습니다. 그래서 이 날 이후에도 아침이면 늘 구시가 광장으로 향했습니다.



이른 아침에는 정시가 되어도 시계탑이 울리지 않지만 대신 이렇게 가까이 다가가 올려다 볼 수 있습니다. '낭만'에 가려져 있던 이 시계의 시간, 나이테를 감상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수백년간 저와 같은 이유로 아침마다 이 광장을 찾고, 사랑했노라 고백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제는 굳이 십수시간동안 비행기를 타고 날아오지 않아도 앉아서 세계를 여행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다녀와서 추억할 만한 방법도 수없이 많아졌지만 오히려 전보다 여행을 사랑하는 사람이 더 늘어난 것은 이런 순간들 때문이 아닐까요.


천문 시계탑이 유독 특별했던 것은, 십수년간 그리워하면서도 내내 제게 '비현실'이었던 엽서 속 이 도시의 한 장면에 바로 이 시계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난 봄 처음으로 이 시계탑 앞에 섰을 때 뭔가 울컥하는 기분을 느꼈죠. 이 후 더 멋진 건축물과 거리, 눈부신 날씨 속을 여행했지만 어떤 순간도 이렇게 감격적이지는 않았습니다.



- 2015년 봄, 구시가 광장의 아침 -


그 여행에서도 저는 이른 새벽 구시가광장을 찾았습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봄과 겨울의 공기는 달랐지만 두 아침의 햇살은 무척 닮았습니다. 그 날 텅 빈 광장을 쉬지 않고 걸으며 했던 생각들을 모두 기억할 수는 없지만 한가지는 또렷합니다. 그리고 언제든 다시 떠올릴 수 있습니다. 이 아침, 이 곳에서 저는 처음으로 이 도시에 한 번 더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 한 번 감격하고 다시 추억하고.


세시간 남짓 눈을 붙이고 나온 아침 여행은 제가 기다린 것과 같은 하지만 그보다 더 감격적인 시간이었습니다.


매일 이렇게 아침을 맞을 수 있다면.


광장에서 저는 다시 한 번 이 곳에 돌아 오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AM 10:00, 다시 요세포프의 아파트


지난밤 장 봐온 것들로 간단히 차린 아침이 꽤나 그럴듯해 보이는 것은 벌써 짙은 추억이 된 아침여행 때문일 것입니다. 식사를 하는 동안 지난 아침인지 오늘 아침인지 모호한 그 시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우리가 여전히 이 도시에 있다는 것을 확인합니다. 웃음이 끊이지 않습니다. 이것이 낭만의 도시가 가진 힘입니다.



AM 10:50, 다시 프라하 구시가 광장


아직 오후가 되지 않았지만 구시가 광장은 이미 사람으로 가득합니다. 열한시를 십분 앞두고 사람들이 천문 시계탑 앞에 가득 모였습니다. 곧 종소리가 열한 번 울리고 사람들은 환호할 것입니다. 그리고 열두시, 한시, 두시 매 시간마다 사람들은 마치 이 광경을 처음 보는 어린 아이처럼 몇번이고 환호할 것입니다. 광장을 지나치는 저는 몇 시간 전 텅 친 광장에서 상상했던 모습들을 눈 앞의 장면과 맞춰보며 즐거워합니다. 같은 도시를 두 번 여행한다는 것은 이렇게 같은 장면에서 새로운 감동을 얻는 방법을 배우는 것인가 봅니다.


PM 9:00, 여전히 프라하 구시가 광장


하루를 마무리하며 다시 구시가 광장을 찾았습니다. 숙소까지 향하는 이보다 더 빠른 길이 많았지만 굳이 서둘러 가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 광장을 가로질러 가는 선택에 한번도 의심이 없었으니까요. 하늘은 짙은 남색으로 바뀌고 오색으로 빛을 내던 건물들은 비현실처럼 붉은 조명으로 새로운 광장 풍경을 만들었습니다. 많은 것이 오후와 다르지만 같은 것이 있다면 여전히 사람들로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하루 세 번, 구시가광장은 그 때마다 다른 감동으로 저를 더욱 설레게 했습니다. 



하루를 아침, 오후, 밤 셋으로 나눠 하나씩을 고른다면 저는 프라하의 아침과 바르셀로나의 오후 그리고 모스크바의 밤을 선택하겠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다시 맞는 프라하의 첫번째 아침은 꼭 이 구시가광장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날처럼 해가 지기 전 이른 아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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