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려 그래서 더 망설이게 되더군요.

GX85를 받을 때까지 참 좋았습니다만, 역시나 기본 번들렌즈에 대한 불만이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제대로 사용해보기도 전에 저는 이미 이 작은 12-32mm F3.5-5.6 표준줌 렌즈에 점점 불만이 커져가고 있었습니다. 작고 가볍고 그런대로 예쁜 렌즈이지만 3.5-5.6이라는 숫자가 미워 보였고 광각 촬영에선 주변 왜곡이, 망원 촬영에선 사진 주변부 화질이 신경 쓰였습니다. 그래서 언제나처럼 이 기본 렌즈를 대체할 것을 찾게 됐습니다. 물론 늘 그렇듯 표준 초점거리의 단렌즈로.

마음은 두말할 것 없이 LEICA DG SUMMILUX 15mm F1.7 ASPH였지만 머리는 생소한 이 렌즈를 계속 떠올렸습니다. 1/3의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 이 렌즈는 그동안 제가 사용하던 렌즈들과 비교하면 고민하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저렴하고 마음에 드는 면을 여럿 갖추고 있었습니다만 오히려 그것이 더 저를 망설이게 했습니다. 아마 GX85가 제겐 너무 근사해 보였나 봅니다.

하지만 아직 출시한지 일년이 되지 않아 렌즈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던 것,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50mm 단렌즈에 대한 새삼스런 호기심 그리고 무엇보다 이 저렴한 렌즈를 제가 어느정도 활용할 수 있을지가 궁금했습니다.

LUMIX G 25mm / F1.7 ASPH. (Lens H-H025)

- 구성 : 7군 8매 (비구면 렌즈 2매, UHR 렌즈 1매)

- 초점거리 : 25mm (35mm 환산 약 50mm)

- 조리개 : F1.7 - F22

- 조리개 날 수 : 7매

- 최단 촬영거리 : 25cm

- 배율 : 0.14 배

- 필터 규격 : 46 mm

- 크기 : 60.8 x 52 mm

- 무게 : 125 g

35mm 환산 50mm의 표준 초점거리에 해당하는 25mm 렌즈로 F1.7의 밝은 개방 조리개 값을 갖는 것이 장점입니다. 이미 발매된 LEICA DG SUMMILUX 25mm F1.4 ASPH 렌즈의 하위 버전격에 속하는 렌즈로 작고 가벼운 표준 단렌즈를 원하는 마이크로 포서드 사용자의 요구가 반영 됐습니다. 25mm F1.4 렌즈가 좋은 평을 받았지만 발매 시기가 오래되었고 비싼 가격에도 느린 AF 속도와 최대 개방 촬영에서의 화질 저하 등 단점이 꾸준히 지적된 만큼 새로운 25mm 렌즈의 등장이 반갑습니다.

무엇보다 이 렌즈의 가장 큰 장점은 '가격'입니다. 외관에서 이미 눈치 채신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 25mm F1.7 렌즈는 저렴한 가격에 준수한 성능을 최대 강점으로 내세워 엔트리 유저가 렌즈킷의 기본 표준줌 렌즈 다음으로 선택할 만한 포지션에 위치합니다. 출시 당시 발표된 가격은 299달러였지만 판매 시작과 함께 249달러로 조정됐고 지난 블랙 프라이데이에 99불로 깜짝 세일해 뭇 마이크로 포서드 포토그래퍼들을 흥분시켰죠. 현재도 정품 신품 기준 약 20만원에 구매가 가능합니다.

패키지를 보고 다행이라 생각한 것은 저렴한 렌즈라고 상자까지 얇은 혹은 푸석한 종이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유갑만한 작은 상자에는 렌즈 제품명이 인쇄돼 있습니다.

상자를 열어 렌즈를 들어보고는 앞선 안도가 점점 낮은 한숨으로 바뀌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은 저렴한 렌즈였습니다. 단단하지 않아 보이는 플라스틱 경통은 윤기 없이 퍽퍽한 질감이고 초점링 디자인마저 맥없이 보입니다. 크기가 작고 가벼워 GX85에 마운트한 모양새가 썩 마음에 들지만 열심히 꾸며놓은 GX85의 고급스런 차림새엔 마치 싸구려 비닐 가방처럼 보입니다.

기본 구성품으로 어쩌면 렌즈보다 더 저렴해보이는 전용 후드가 포함됩니다. 이것은 아마 오늘 이후로 꺼낼 일이 없을 것 같습니다. -고이 다시 잠드소서-

혹평을 난사했지만 GX85와 25mm F1.7 렌즈는 썩 좋은 편입니다. 경통의 두께와 길이가 GX85의 콤팩트 디자인에 이상적이고 무게 역시 12-32mm 표준줌 렌즈를 마운트 했을 때와 큰 차이를 느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단렌즈 특유의 뛰어난 화질에 F1.7 개방 촬영의 심도 표현을 활용할 수 있으니 앞선 평가가 생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역시 플라스틱 경통의 느낌이 GX85의 완성도에 생각보다 큰 누를 끼칩니다. 라이카 15mm 렌즈가 마치 렌즈 일체형 카메라처럼 어울렸던 것과 비교하면 3배의 가격차를 생각해도 아쉬움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성능에서는 크게 부족함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AF 속도는 이전에 사용했던 12-35mm F2.8과 15mm F1.7 렌즈와 큰 차이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빨랐고 아직 많은 사진을 찍어보지 못했지만 최대 개방 촬영에서 특별한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으니까요. 가격대비 무척 좋은 표준 단렌즈, 마치 DSLR 카메라의 50mm F1.8 이른바 '쩜팔 렌즈'를 연상하게 됩니다.

제가 GX85에 이 렌즈를 선택한 이유는 오직 두가지입니다. 그만큼 이 렌즈는 장단점이 확실합니다.

아, 세어보니 사실은 세가지군요. 라이카 15mm F1.7 렌즈의 가격이 숨은 첫번째 이유요, 나머지 둘은 다음과 같습니다.

99달러짜리 렌즈.

100불이 되지 않는 초저가(?) 렌즈, 사실 너무 저렴한 가격이 오히려 이 렌즈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렸습니다. 물론 저는 정품으로 10만원대 중반에 구매했지만 제게는 여전히 '99달러짜리 렌즈'입니다. 캐논 DSLR 카메라를 사용하던 시절 중고가격으로 6-7만원의 '쩜팔' 렌즈로도 재미있게 사진을 찍었던 것을 떠올려 보면 가격 때문에 이 렌즈에 지레 겁을 먹을 필요는 없겠죠. 그동안 제가 얼마만큼 성숙한 시선을 갖게 됐는지 평가하기에는 오히려 이런 렌즈가 더 적합할 것입니다.

자타공인 '스탠다드 뷰'

이 렌즈의 초점거리는 25mm로 135포맷 카메라 기준 약 50mm입니다. 많은 포토그래퍼들이 찬양해 마지않는 바로 그 '표준 단렌즈'입니다. 개인적으로 35mm를 가장 좋아하지만 사람의 시선과 닮았다는 50mm의 편안함은 과거 DSLR 카메라와 50mm F1.8 쩜팔 단렌즈를 사용할 때 충분히 느낀 바 있습니다. 묘하게 그 시절이 떠올라 가슴이 떨려옵니다. 지금 저는 그 시절처럼 카메라에 담긴 모든 장면들을 신기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35mm에서 이제 28mm 광각에 적응하고 있는 제 프레임이 갑자기 재회한 50mm에 숨이 턱 막히지는 않을까 걱정이긴 하지만 아주 오랜만에 그 '표준'의 힘을 느껴볼 기회가 될 것입니다.

저렴한 가격 그리고 사진의 역사와 함께한 50mm의 힘. 이 둘만 믿고 GX85 & 25mm F1.7을 한동안 사용해보려 합니다. GX85의 고성능과 이미지 품질 그리고 4K 동영상 촬영에서 어느정도 성능을 보일지 아직까진 우려가 51%이지만 이 도전은 실패해도 그리 잃을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무척 즐겁습니다. 마치 처음 '쩜팔 렌즈'를 구매했던 20대 어느 날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