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진짜 '러시안 뷰티'
노보데비치 수도원 (Новодевичий монастырь)
폭설 너머로 본 노보데비치 수도원의 모습 역시 충분히 '모스크바' 다웠지만, 구름이 걷혀 파란 하늘 아래 깨끗한 한겨울 햇살을 맞은 이 건축물들의 모습은 보는 순간 '러시안 뷰티'라는 단어를 생각나게 했습니다. 언제나 인파로 가득한 붉은 광장의 성 바실리 대성당이 동화 속 건물 같은 느낌을 주었다면, 비교적 모스크바 외곽에 큰 연못과 공원을 끼고 유유히 솟아 있는 이 풍경은 그보다 더 비현실적이었습니다. 아마 노보데비치 공원을 먼저 방문하지 않았다면 이 멋진 풍경도 볼 수 없었고, 폭설 속에서 제대로 수도원에서 쫓기듯 나와야 했겠죠. 그래서 그 해프닝이 더 좋은 기억으로 남았나 봅니다. (노보데비치 공원 탐방기 : http://mistyfriday.tistory.com/2127 )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빛나는 '러시아의 보물' 노보데비치 수도원을 찾지 않고는 모스크바를 제대로 여행했다고 하기 힘들 것입니다. 붉은 광장과 성 바실리 성당만 있는 줄 알았던 러시아, 그리고 모스크바의 역사적 유산 중엔 이렇게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숨은 보석이 있습니다. -숨은 보석이라기엔 너무 유명하긴 하네요- 사실 이 노보데비치 수도원을 여행 계획에 넣는 것에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모스크바의 대표 관광지이긴 하지만 아시다시피 '성 바실리 바라기'인 저에겐 러시아의 전통 건축물이라면 그것으로 충분했고, 나머지는 그저 평범한 이 곳의 삶을 느끼자는 것이 이번 여행의 모토였기 때문이죠. 물론 크리스마스 이후로 계속 흐리고 눈이 오는 날씨가 계속되어 제대로 된 관광을 기대할 수 없었던 것도 중요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열이틀간의 여행기간 중 다른 곳은 두서너번씩 찾으면서 노보데비치를 외면한다면 분명 후회할 날이 올 것이라는 생각에 귀국을 얼마 앞둔 날에 잠깐 시간을 내어 찾게 되었죠.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결국에 이 곳을 찾은 것은 정말 좋은 선택이었지만, 오전-점심까지의 짧은 시간만을 할애했던 것은 이 세계 문화 유산을 얕잡아 본 저의 패착이라고 하겠습니다.
뚝섬보다 가기 쉬운 노보데비치
적어도 여행 열흘째를 맞는 저에게는 그랬습니다. 낯선 땅 모스크바에 도착한 지 삼일째쯤 되어 모스크바에선 전철로 갈 수 없는 곳은 없다는 깨달음을 얻고 난 후
여행에 큰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아마 교통편이 불편했다면 노보데비치 공원을 찾지 않았을 제가 결국 노보데비치를 찾아온 힘도, 그리고 남은 여행 기간동안 구석구석 모스크바를 탐방(?)할 수 있었던 원동력도 모두 이 편리한 교통수단 때문이었습니다. 조금 지저분하지만 누구보다 성실하고 착한 친구 같은 모스크바 지하철 미뜨로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노보데비치 수도원은 비교적 모스크바 외곽에 위치한 곳이지만 지하철을 통해 비교적 편하게 방문할 수 있습니다.
빨간색 노선을 타고 중심부를 조금 벗어나 도착하게 되는 스포르티브나야(Спортивная)역이 노보데비치 수도원에 가장 인접한 지하철역입니다.
이 곳에서 도보로 약 5-10분 정도가 소요됩니다. 내리자마자 보일 정도의 위치는 아니지만 여행자에게 도보 10분 거리 정도는 기꺼이 감내할 만 합니다. 도심지에서 벗어난 곳이라 가는 길의 거리 풍경도 운치있어요 :) 수도원은 모스크바 강과 인접해있으며 비교적 큰 규모의 노보데비치 연못 -이라기엔 호수에 더 가까운-과 건너편에 산책로가 좋은 노보데비치 공원이 있습니다. -물론 저는 눈 밖에 본 것이 없습니다만-
공원 건너편으로 보이는 저 건물들이 노보데비치 수도원과 스몰렌스크 대성당, 표트르 성당 등의 건물입니다. 제가 본 러시아의 건물들은 이런 유적 뿐 아니라 거리의 빌딩과 주택들도 그 건축 스타일과 색상 등이 제각각인 경우가 많았는데, 신기하게도 그것들이 아주 멋진 조화들을 보였습니다. 이 노보데비치의 건물들도 그렇습니다.
- 왠지 저 사이에 전설 아이템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기분 탓이겠죠 -
자, 그럼 노보데비치 수도원이 어떤 곳이냐,
< 출처 :http://www.cha.go.kr >
뜨내기 여행객의 설명보다 신뢰가 가는 소개글을 인용했지만 문장이 길고 복잡해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간단히 설명 드리자면 16세기 바실리 3세가 폴란드 영토였던 옛 스몰렌스크 지역을 탈환한 것을 기념해 건립한 곳인데요, 수도원이라는 이름답게 러시아 정교회의 수도사들을 위한 건물로 건축, 사용되었지만 러시아 혁명 후엔 박물관으로 격하되어버렸고, 현재도 역사박물관의 분관으로 전시가 이뤄지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내부에 국립 묘지 구역이 함께 운영되고 있으니 관광객에게는 좋은 관광지가 되겠습니다. 거대한 성벽에 둘러싸인 캠퍼스(?)에는 노보데비치 수도원과 스몰렌스크 대성당, 표트르 성당, 대종루 등의 건물들이 모여있습니다.
러시아 건축 양식의 아름다움이란 이런 것이다
노보데비치 수도원 내부의 수 많은 '유산'들
노보데비치 수도원의 많은 건물 중 가장 먼저 저를 반겨 준 것은 성모 승천 교회(Church of the Assumption)입니다. 파란 하늘과 새하얀 눈밭 사이에서 가장 매력적으로 빛나는 빨간색 건물이며 호화스러운 금색 지붕으로 번성했던 시절의 종교적 가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규모는 수도원 내부의 다른 교회들보다 작은 편이지만 가장 아름답고 보존 또한 지은지 십여년 된 건물로 보일 정도로 매우 잘 되어 있습니다.
사실 제가 노보데비치 수도원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았던 이유는, 연못이 인접한 지리적 특성상 눈이 쌓이고 날씨가 흐린 겨울에는 상대적으로 봄이나 여름보다 풍경이 주는 아름다움에서 부족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인데요, 실제로 노보데비치와 관련된 많은 사진들은 맑은 날씨와 연못에의 반영이 필수로 들어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마 이런 겨울의 노보데비치 수도원 모습은 보시기 쉽지 않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날씨가 사진처럼 맑다면 설원 위 풍경이 주는 색다른 매력이 있겠지만, 아마 오늘 제 사진들을 보면서 겨울 모스크바 여행의 방문지 리스트에서 노보데비치를 삭제하시는 분이 생기실 지도 모르겠네요.
수도원에서 가장 크고 잘 보이는 중심부에 위치한 이 새하얗고 고급진 건물은 스몰렌스크 대성당(Smolensky Cathedral)입니다. 16세기 러시아 제국이 스몰렌스크 지역을 탈환 기념으로 건립된 이 수도원을 상징하는 건물이 바로 이 스몰렌스크 대성당이 아닐까요? 때문에 가장 잘 보이는 위치에 자리잡고 있고 지붕의 갯수나 화려함에서도 다른 건물들을 압도합니다. 하얀 설원 위에서 자칫 그 빛이 바랠 수 있는 이 하얀 건물이 오히려 반짝반짝 돋보이는 것도 저 사치스러운 금칠(?)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더불어 여러 건물 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건물이었습니다.
스몰렌스크 대성당과 성모 승천 교회는 이렇게 나란히 있습니다. 하나만 보아도 감동인 이 멋진 러시아 건축물들을 이렇게 한 곳에서 모아 볼 수 있다니, 이 곳은 그 종교적인 의미와 더불어 관광객을 위한 배려까지 갖추고 있는 곳이 아닐 수 없습니다.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저 금덩어리(?)들 보세요, 어느 나라든 그렇지만 조상들은 참 사치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그 때 이렇게 써버려서 지금 금이 이렇게 비싼건가 싶어요
출입구를 기준으로 수도원 끝쪽에 위치한 이 아름다운 건물은 성모 마리아 교회 (Church of the Holy Virgin)입니다. 바깥쪽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 덕분에 탁 트인 풍경을 배경 삼아 햇살을 맘껏 받으며, 마치 이 수도원의 주인공인 듯 그 높이와 아름다움을 뽐내는 건물이기도 합니다. 남쪽 출입구와 연결되어 있다고 하지만, 입장료를 받는 내부 관람으로 운영되는 현재는 관리를 위해 닫혀 있었습니다.
이 성모 마리아 교회가 노보데비치의 상징처럼 느껴졌던 이유가 또 한 가지 있었는데요, 바로 이 수도원을 감싸는 거대한 성벽과 연결되어 수도원 전체를 양 팔로 감싸는 듯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스크바 바로크 양식으로 불리는 16-17의 전통 건축 양식이 빚어낸 이 아름다운 건물과 성벽은 이 곳이 왜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선정될 수 밖에 없었는지를 보여줍니다. 마침 화창한 날씨에 햇살을 받아 정말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좁지 않은 이 수도원 내부를 걸으며 이 아름다운 교회를 하나하나 지나치다보니 마치 성 바실리 대성당을 몇 개로 나눠 놓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는 이 러시아 전통 건축 양식이 정말 좋은가 봅니다.
이 외에도 많은 성당과 중앙의 대종루 등이 있습니다. 짧은 시간을 할애해 이 곳에 방문한 저는 예상치 못한 노보데비치 공원 방문까지 하게 되어 아쉽게도 내부에 들어가보지 못하고 수도원 내부를 두어번 돌며 이 '러시안 뷰티'들을 감상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현재 박물관으로 운영되는 성당 앞에는 관광객을 위한 표시와 전시 소개 등이 보기 좋게 안내되어 있었습니다. 내부 전시는 입구에서 판매하는 입장권으로 관람할 수 있다고 하네요. 그리고 러시아 정교회와 관련된 그림과 공예품 등을 파는 기념품 가게도 있으니 관광하실 분은 참고하세요.
하지만 모처럼 활짝 갠 날씨에 저는 굳이 이 건물 내부에서 크게 관심 없는 러시아 역사에 대한 자료를 보는 것보다는 그저 이 건축의 아름다움을 실컷 감상하는 것이 좋은 선택이겠다 싶어 수도원 내부를 산책했습니다. 러시아에서도 월요일 아침은 관광지가 한산했는지 이 넓은 캠퍼스에 관광객은 저 혼자였습니다. 종종 사람들이 보였지만 성직자들이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성당 등 내부 건물 중 일부는 현재도 종교 시설로 활용되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제가 이 곳 내부를 산책하는 동안에도 성직자 혹은 수녀 복장을 하신 분들이 건물 사이를 오가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었거든요. 물론 그 중에는 박물관으로 운영 중인 이 곳을 관리하는 직원들도 있었겠지만요.
노보데비치 수도원 내부의 건물들은 굳이 이 곳이 그들의 종교를 위한 시설, 건물이라는 것을 말하지 않아도 절제된 색상 선택과 다른 건축물들보다 다소 보수적으로 느껴지는 외관에서 충분히 그 엄숙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 몇몇은 우리가 흔히 어릴 적 만화영화 속에서 '교회'로 보아왔던 바로 그런 형태를 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플란다스의 개에 나오는 시골 마을에 있을법한 그런 교회 건물들 말이죠, 바로 옆에 커다란 종탑까지 있으니 더할 나위가 없습니다.
현재도 역사를 만들고 있는 노보데비치
앞서 말씀드린대로 노보데비치 수도원은 내부 성당과 건물들은 박물관으로, 수도원 내부 공간의 일부는 러시아 국민들의 묘역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러시아 정부의 승인이 있다면 누구든 묻힐 수 있는 이 묘역에는 구소련 시대부터 현 러시아 시대까지 역사를 만든 인물들이 잠들어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국립 묘지와 비슷한 개념이지만, 그 폭이 훨씬 넓으며 묘지 역시 한국의 국립 묘지가 획일화되어 있는 반면에 이 곳은 잠든 분의 업적과 뜻에 따라 흉상부터 십자가, 묘비까지 서로 다른 모습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현재 2만명이 넘는 분들이 이 곳에 잠들어 계신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모두가 저렇게 거대한 묘지를 가진 건 아닌지 눈에 띄는 것은 많지 않았습니다. 연이은 폭설로 인해 땅이 눈에 덮여 더욱 그랬겠지요.
수도원 내부 건물뿐 아니라 이 곳을 감싸고 있는 이 거대한 성벽 역시 러시아의 보물 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아름다움도 아름다움이지만 500여년 전에 지어진 이 건물이 어쩜 이렇게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을까라는 생각에 부러움도 생기더군요. 상당히 넓은 노보데비치 수도원 부근을 성벽을 따라 도는 것도 특별한 경험이 될 것입니다. 특히 수도원과 연못 사이로 걷는 길이 아주 아름다웠습니다. 물이 녹고 공원이 녹색으로 물드는 봄에 온다면 얼마나 더 아름다울지 상상만으로도 즐겁습니다. :)
이렇게 걷다보니 어느덧 모스크바의 짧은 해가 지고 있네요
오늘 해는 유난히 더 짧은 것 같습니다.
마치, 보물 상자를 열어본 느낌
저에게는 그만큼 신비스러운 곳이 이 노보데비치 수도원이었습니다. 러시아 건축 양식의 진수를 볼 수 있는 건축물들의 아름다움 때문이기도, 짧은 시간과 궂은 날씨 때문에 제대로 다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이 곳을 '러시아의 보물'로 부른다는 말을 들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성 출입구처럼 생긴 수도원 입구에 들어서면 곳곳에 위치한 형형색색의 서로 다른, 하지만 한 데 모여 조화를 이루는 성당과 대종루, 그리고 성벽까지. 마치 보물 상자를 열어 서로 다른 모양의 보물들을 하나씩 꺼내 감상하는 느낌이 들었달까요? 왜 진작 이 곳을 찾지 않았을까,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슬쩍 눈치로 들어가 본 한 전시장에서 '러시아의 근대 역사'를 주제로 푸틴 사진전(?) 같은 전시가 진행 중인 것을 본 후로는 이 건물들 내부에 들어가보지 않은 것은 후회하지 않지만, 모스크바의 어떤 것과 비교해도 빛이 나는 이 건축물들을 산책길에 강 건너 아파트 단지 보듯 감상해야 했던 스케쥴이 아쉬웠습니다.
성모 승천 교회, 역사의 기록이 새겨진 스몰렌스크 대성당, 이 곳의 경건함을 대변했던 대종루 등 많은 건물들이 품고 있는 그 거대한 의미들을 일부나마 알고 느끼는 것이 이 노보데비치를 즐기는 방법일 것 같습니다. 때문에 생각보다 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겠죠? 그만큼 역사적인 자료도 많으니 모스크바 여행에서 하루 정도는 이 노보데비치 수도원에 투자하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물론 노보데비치 공원에서 호수와 함께 바라보는 이 수도원의 기적같은 풍경을 포함해서 말이죠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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