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여행에서 관광지 못지 않게 중요한 맛집 소개, 두 번째입니다. 첫 번째 소개해 드린 쉑섁 버거(http://mistyfriday.tistory.com/2071)가 두 번 방문한 레스토랑으로 기억에 남았다면 이 베이커리는 이틀에 한 번 꼴로 찾았던 그야말로 제 모스크바 여행의 단골집(?)입니다. 폴(Paul) 베이커리인데요, 프랑스가 본점인 베이커리로 유럽 지역과 러시아에도 매장이 있습니다. 몇 해 전에 한국에도 오픈했지만 지금은 철수했다고 하네요. 안그래도 빵을 좋아하는데 한국의 가짜 파리빵집들과는 차원이 다른 진짜 프랑스 베이커리를 만났으니 불이 붙은 것이 당연합니다.
제 마음을 뺏어간 폴 베이커리는 스몰렌스카야 역 앞에 있는 폴 아르바트점입니다. 숙소였던 골든링 호텔이 바로 길 건너여서 저녁식사 후 디저트를 먹으러 가거나 호텔로 들어가는 길에 야식용 초콜릿 케이크를 종종 구매했습니다. 매일 오다시피 하는 동양인이 인상적이었는지 언젠가부터 점원분께서도 얼굴을 알아보신 듯 웃으며 대해주십니다. 아마 이번 여행 기간 중 가장 많이 대화한 러시아인이 아니었나 싶어요. 물론 기본 러시아어와 영어를 섞어가는 제가 답답하셨겠지만, 미소를 잃지 않고 대해주신 덕분에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 베이커리는 러시아 전통 베이커리가 아닙니다. 본점이 프랑스에 있고, 세계 여러 도시에 매장을 가지고 있는 글로벌 브랜드죠. 그럼에도 제가 모스크바에서 이 곳을 추천하는 이유는 '맛있으니까'. 모스크바에서 맛있는 빵을 맛 볼 수 있는 곳 중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1889년에 오픈했다고 하니 자그마치 백년이 훌쩍 넘은 전통의 빵집(?)이네요.
아르바트점은 점포 규모가 상당히 작은 편입니다. 테이블 수도 많지 않구요. 그래서 주로 매장에서 먹기보다는 숙소에 포장을 많이 해 가지고 갔습니다. 덕분에 익힌 러시아어가 '싸보이-'. 이렇게 얘기하면 포장해주십니다. 하하하. 실내 분위기는 역시 유럽 베이커리 느낌이 나죠?
이 날 디저트로 마카롱과 티를 마셨는데, 한화 기준 약 4천원 하는 마카롱이 크기도 주먹만하고 맛도 굉장히 좋아서 기억에 남습니다. -원래 마카롱을 좋아하지 않았거든요- 한국에서 그런 마카롱을 먹을 수 없겠죠. 오늘따라 쉑섁버거보다 더욱 그리운 곳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종종 귀가(?)길에 폴을 들러 케이크와 빵 등을 사오는 것이 제 여행 중 생긴 습관이 되었습니다.
그 중 가장 좋아한 것이 이 초콜릿 케이크였는데요, 이 때쯤 여행 스트레스 때문인지 칼로리 보충 때문인지 누텔라를 퍼먹으며 밤의 외로움을 달랬던 제게 폴의 초콜릿 케이크는 높은 수준의 초콜릿 맛과 향을 느끼게 해 준 '오아시스' 같은 존재였죠. 떨어진 환율을 기준으로도 한 조각에 8000원에 육박하는 높은 가격이었지만 까짓꺼 밥은 한 먹더라도 이 초콜릿 케이크는 포기할 수 없다 싶어서 서너번 사먹었던 생각이 납니다. -설레서 사진 떨린 것 좀 보세요-
이렇게 폴에 빠져서
오늘도
내일도
이 곳을 찾게 됩니다. 이 날은 저녁도 먹지 못하고 붉은 광장에서 눈을 맞으며 떨다 온 날이라 큰 맘 먹고 바게트까지 함께 구입했던 기억이 나네요.
혼자 묵는 주니어 스위트룸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종종 혼자 이렇게 파티를 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봐도 저와는 어울리지 않는 식사였는데요 -저 때는 저것들이 왜 그렇게 맛있었던지-
후에 말씀드릴 기회가 있겠지만, 러시아의 식자재와 음식들은 생각보다 품질이 무척 좋아서 이 곳 사람들의 주식 격이라는 토마토도 무척 싼 가격에 한국에서 먹었던 토마토보다 맛이 좋았고, 치즈 역시 무척 다양했습니다. 유럽과 머지 않은 국가라 그런지 와인도 선택권이 넓은 편이었구요. 그래서 이런 혼자만의 파티가 종종 열렸죠
- 근데 왜 파티가 계속될 수록 나는 더 울적해지는가 -
그리고 언제나 파티의 주인공은 폴의 저 초콜릿 케이크였습니다.
이 날 함께 구입한 바게트 역시 Good, 토마토, 치즈와 함께 먹으니 아 내가 해외에 있구나 하는 느낌이 절로 납니다.
매일 이렇게 먹으면 참 건강해지겠다는 생각도 들구요 -맵고 짠 한식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빵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부모님의 말씀과는 다르게 현지에서 롤 몇 개 외에는 쌀을 먹지 않고 빵과 토마토로 연명(?) 했지만 소화도 잘 되고 컨디션이 참 좋았어요
역시 제대로 된 것을 먹어야 하나 봅니다.
폴 베이커리는 일반적으로 모스크바에서 볼 수 있는 베이커리 혹은 식당보다 가격이 조금 높은 편입니다. 하지만 그래봐야 최근 빵 가격이 비싼 한국의 고급 빵집과 비슷한 가격이구요, 퀄리티는 물론 비교할 수 없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레시피가 정통(?) 이니까요
-그건 그렇고, 사진 속 저 토마토는 정말 맛있어 보이네요-
그래서 눈이 와도 갔습니다, 맛있으니까요
모스크바에서의 마지막 식사에도 저 초콜릿 케이크는 함께했습니다.
심지어 저 때는 숙소를 아파트로 옮겨 전철을 타고 가야 함에도 기꺼이 오후 시간을 쪼개서 사왔죠.
결국 귀국길에도 저 몹쓸(?) 베이커리에 들러 케이크를 사왔습니다.
비행기 타기 전에 먹으려구요 X-D
이 폴 베이커리는 이번 여행에서 제가 얼마나 잘 먹고 잘 지냈는지를 지인들에게 설명할 때 빼놓지 않고 소개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비록 모스크바 전통은 아니지만, 먼 땅에서 빵 한개, 케이크 한 조각으로도
'아 내가 여행 오기를 참 잘 했다'라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 폴 베이커리를 추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따라 더욱 그립네요, 저 파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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