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풍경은 GUM이 최고 ГУМ
열시간을 꼬박 날아 이 춥고 먼 모스크바에서 올 겨울 두 번째 크리스마스를 맞았습니다. 그리고 러시아의 크리스마스 1월 7일을 맞아 모스크바의 크리스마스 풍경을 직접 느껴보고자 모스크바의 상징 붉은 광장을 찾게 됩니다. 꿈에 그리던 성 바실리 성당 못지 않게 제 눈을 사로잡은 건물이 바로 이 굼 백화점인데요, 최초 건립이 1893년이라고 하니 자그마치 120년이 넘은 그야말로 전통과 역사의 백화점입니다. 현재는 러시아에서 가장 호화스러운 백화점으로 명품 브랜드들이 즐비하며, 크리스마스 장식 역시 모스크바 어느 곳보다 화려합니다. 굼 백화점의 크리스마스 풍경만 따로 포스팅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죠.
아마 모스크바 여행객이면 모두 이 굼 백화점을 보셨을겁니다. 모스크바의 중심 붉은 광장에 있어 따로 찾아갈 필요도 없는데다, 모스크바에서 가장 큰 건물 중 하나니 일부러 피하지 않고서야 꼭 찾게되는 곳입니다. 저에게도 여행 전엔 그냥 '러시아의 백화점'이었지만, 실물로 보고 나니 그 규모와 건축물의 아름다움 때문에 감탄했던 기억입니다. 게다가 이 호화스러운 건물이 밤에는 조명 장식으로 몇 배는 더 예뻐지니까요. 굳이 안에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감상하는 것 만으로도 멋지지만 보고 있다보면 '대체 저 안은 어떻게 생겼을까?'라는 궁금증에 저절로 발걸음이 향하게 됩니다. -저는 너무 추워서 도망치듯 들어갔지만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모스크바 최고의 백화점 GUM (http://www.gum.ru)
굼(GUM, 껌이 아니에요)백화점은 러시아어로 ГУМ(굼)으로 국영 백화점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Универсальный Магазин)의 앞글자를 딴 줄임말입니다. 1889년 최초 건립 때는 국영 상점이란 이름의 공장 건물이었지만 러시아 혁명 후 러시아 전통 건축 양식을 적용해 현재의 외형으로 개조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벌써 60년이 넘은 건물이네요. 과거에는 국가에서 운영하는 국영 백화점이었지만 소련 붕괴 후 현재는 민영화되었다고 하네요. 하지만 이 국영 백화점 ГУМ이라는 이름의 상징성 때문에 현재도 이 이름은 동일하게 사용되고 있답니다.
크리스마스를 맞은 굼 백화점
마침 크리스마스를 맞아 붉은 광장은 물론 굼 백화점에도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한창이었습니다. 입구부터 사람 기죽이는 저 거대한 트리 장식과 해 진 후가 기대되는 조명 장식이 건물 전체를 빼곡하게 두르고 있었어요. 역시 호화 백화점 답게 스케일이 어마어마합니다. 저 백화점 면적이 서울의 대형 백화점 2-3개를 합쳐놓은 정도니 그 규모를 어렴풋이 상상해 볼 수 있죠. -역시 땅 넓은 나라라 뭐든 큽니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붉은 광장은 물론 굼백화점에도 사람이 가득했습니다. 외관 뿐 아니라 실내 크리스마스 장식도 워낙에 화려해서 크리스마스 기분 내기에는 그만이었거든요, 그리고 어느 나라 사람이던 크리스마스에 백화점 가고 싶은 건 매한가지인 것 같습니다. 선물도 받고, 기분도 내고 좋잖아요-
러시아의 크리스마스 풍경은 '정말 가족 위주'라서 좋았습니다. 커플들의 날이 되어버린 한국의 크리스마스에 지친 저에겐 백화점으로 들어가는 손 잡은 가족들 행렬만 봐도 괜히 흐뭇
-장가갈 때가 됐나-
입구마저도 고급스러운 굼 백화점
들어서기 전 괜히 옷매무새 한 번 다듬고 콧물도 닦습니다.
С РОЖДЕСТВОМ! (메리 크리스마스!)
굼 백화점의 크리스마스 풍경은 정말 '휘황찬란'합니다. 역사와 전통의 고급 백화점 다운 아름다운 건축물에 예술 나라 러시아의 크리스마스 장식이 그야말로 반짝반짝 빛나는 크리스마스 풍경을 보이고 있습니다. 광장도 아닌 실내 장식이 이렇게 아름다워도 되나 하고 생각하면서 연신 천장을 바라보며 걷다가 셔터를 눌러댑니다. 한동안 저는 이 곳이 백화점이었다는 사실마저 깜빡 잊었습니다. 자그마치 4층 짜리 대형 건물 세 개가 이어진 이 대규모 건물에 수백 개의 상점이 가득 차 있음에도 이 아름다운 장식 때문에 여긴 정말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백화점 같지 않습니다. 복도에 전시된 향수며 시계며 선글라스도 이 날만큼은 그냥 크리스마스 장식같아 보일 정도였으니까요.
주변을 둘러 보니 저만 그런 생각을 한 건 아닌가봅니다. 붉은 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만큼 많은 인파가 이 백화점을 가득 메우고 있었는데요, 이 거대한 건물이 사람으로 가득 차 움직이기조차 힘들 정도였으니 대단했죠, 이 땅 덩어리 큰 나라에서 다시 해보지 못한 경험이었습니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장식에 감탄하는 건 비단 저같은 여행객뿐만은 아니겠죠,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내러 이 곳을 찾은 가족, 연인들도 즐거운 표정으로 굼을 즐기는 모습입니다.
이 날의 굼 백화점은 고급 백화점이라는 인식과 달리 붉은 광장의 크리스마스 마켓처럼 '동화 속 세상' 같은 느낌을 줬는데요, 평상시의 굼 백화점 내부 사진을 보면 차가우리만치 딱딱하고 정돈된 실내가 다소 어려워보였으니, 이 날은 확실히 특별한 날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 정말 많죠? :)
60년 된 건물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한 실내는 러시아 건축 양식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붕이 유리로 되어 있어 날씨가 화창했던 이 날은 실내가 더욱 아름다웠고요. 복도마다 상점마다 이렇게 빈 틈 없이 크리스마스 장식이 가득 있었습니다. 일 년 중 가장 공들인 시즌이 아닐까 생각 될 정도로 그 규모가 엄청났어요.
배경이 아름다워서인지 여느 백화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복도를 걷는 사람들의 풍경이나, 상점에 쌓인 음식이며 기념품들, 쇼윈도의 마네킹까지 다른 곳보다 더 특별해보입니다. 수십가지 색들이 눈을 현혹시키는 이 백화점의 크리스마스 풍경은 붉은 광장의 야경과 함께 러시아의 겨울 풍경 중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이기도 합니다.
앗 그만 길을 몇 번 잃었어요
밖에서 볼 때도 느꼈지만 실제 안에 들어오면 굼 백화점의 엄청난 규모를 체감하게 됩니다. 각 구역엔 매장들이 일정한 모양과 간격으로 늘어서 있고, 각 구역은 계단과 고가 다리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내부 구조가 워낙 자로 잰 듯 정확하고 균일해서 자칫 그 곳이 그 곳 같아 길을 잃기 십상입니다. 두 번째 방문했을 때는 이 굼 백화점에 있다는 라이카 매장을 찾기 위해 백화점 내를 몇 바퀴 돌았는데요, 아까 본 삼성 매장이 여기에도 있고, 왜 또 여기에도 있는지..? 굼 백화점에선 정신 똑바로 챙기시고, 구경하다 길 잃지 않게 조심하세요! 뭐 물론 길을 좀 잃어서 몇 바퀴 도시더라도, 이렇게 아름다운 크리스마스라면 마냥 나쁜 일은 아니겠네요.
이런 멋진 곳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사진
굼 백화점의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장식에 연신 셔터를 누르다 문득 이 곳이 백화점이라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주위를 둘러봅니다. 철저한 '상점' 개념인 한국의 백화점에서는 대부분 사진을 찍는 것이 제제를 받거든요. 하지만 이 곳은 러시아, 모스크바죠. 일년에 단 며칠 동안만 볼 수 있는 이 멋진 광경을 눈으로만 보기에는 아쉽다는 듯 많은 분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습니다. 많은 곳에서 느낀 것이지만, 러시아 사람들의 사진 사랑은 한국인 못지 않습니다. 어느 관광지나 공원을 가도 함께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가득하고, 심지어 남자들조차 서로 사진을 찍어주는 것에 익숙한 풍경이니 말이에요. -물론 경직된 포즈는 한국 아저씨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물론 대상은 가리지 않습니다. 아이들부터 연인, 친구는 당연하고 이 굼백화점의 크리스마스 장식이나 예쁘게 생긴 빵까지, 아마 종일 있어도 질리지 않을만큼 풍요로운 풍경이었죠.
예술의 나라 답게 전통 음악을 연주하는 밴드 공연까지
저도 이 축제에 작게나마 합류하고자 빵 두 개와 차를 마셨습니다. :)
- 사실은 너무 추워서.. 추워서.. 얼어버릴 것 같아서... -
백화점 중앙 광장에는 크리스마스 장식과 함께 선물용 디저트 등을 파는 화려한 상점이 인상적이었고, 각 구역을 연결하는 통로에는 이렇게 카페가 운영됩니다. 저기 앉아서 차 한 잔 하면 그야말로 크리스마스 분위기 물씬 느낄 수 있겠네요 :) 왠지 저긴 좀 비싸도 용서해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줄은 굼 백화점의 자랑(?)이라는 아이스크림을 먹기 위해 늘어선 줄입니다
바깥 날씨가 영하 30도인데도 아이스크림 인기가 대단하네요?
안추워요?
굼 백화점의 밤
굼 백화점의 밤은 역시 안보단 밖이 더 멋집니다. 낮부터 저의 기대를 자아냈던 외부 조명 장식이 세찬 눈발에도 굴하지 않고 화려하게 빛났습니다. 이 엄청난 건물을 저렇게 장식하기 위한 노력과 전기세(;;)등이 먼저 생각나는 저는 확실히 어른이 되었나봅니다. 어쨌든 이 날 굼 백화점의 야경은 오히려 폭설 때문에 더 아련하게 마음 속에 남았던 것 같습니다. 모스크바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밤 풍경으로 소개하고 싶어요.
해가 빨리 지는 겨울에는 굼 백화점의 밤도 일찍 시작되죠, 날씨가 흐려 시야가 좋지 않은 날에는 오후 두시부터 저 조명이 빛을 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굼 백화점 앞에는 대형 스케이트장과 마켓이 열립니다. 이 셋이 붉은 광장의 환상적인 야경을 만들어 내죠.
이 붉은 광장의 크리스마스 풍경은 이전 포스팅(http://mistyfriday.tistory.com/2077)에서 다시 보실 수 있습니다 :)
백화점 뒷편에도 이 호화로운 길이 계속 이어집니다. 끝 없는 전등 장식 아래 이 곳이 고급 백화점임을 알려주는 고급 자동차들이 늘어선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사람이 적어 한적한 이 뒷길을 따라 걷거나, 이 곳에서 기념 사진을 찍으셔도 좋겠네요. 앞뒤가 똑같이 아름다워서 좋습니다 :)
러시아가 품은 보석, 굼(ГУМ)
건물의 아름다움과 그 안의 화려함을 보고 나니 이 굼 백화점은 모스크바의 보석으로 제 기억에 남았습니다. 러시아 건축 양식의 진수를 볼 수 있는 건물은 그 자체로 아름다워서 구석 구석 걸으며 찾아내고 느끼는 즐거움이 있고, 크리스마스를 맞아 참았던 예술혼이 백화점 곳곳에 터져, 넘쳐, 흐르고 있었으니까요. 고급 백화점 답게 이 곳은 모스크바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입니다. 붉은 광장보다 이 곳의 크리스마스 장식이며 풍경들이 기억 속에 더 예쁘게 남아있으니까요. 게다가 먹거리도 많고, 쇼핑할 것도 많으니 '관광지'로서는 최고 아니겠습니까? 물론 백화점이다보니 고급 브랜드 위주로 매장이 구성되어 있고 가격도 비싸다고 하네요, 때문에 러시아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별로 인기가 없다는 안타까운 소식입니다. -사실 저도 이 곳에 두 번째 방문한 목적이 어딘가 오늘내일 하는 외장하드를 대신할 제품 구입이었는데요, 소니 스토어에서 가격을 보고 발길을 돌렸습니다.-
Anyway, 아름다운 모스크바의 이 굼 백화점은 기회가 되신다면 낮과 밤 한 번씩 두 번을 꼭 방문해보시길 바랍니다. 햇살을 가득 받은 러시아 건축물의 아름다움과, 해가 진 후 펼쳐지는 동화 속 같은 밤풍경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줄 수 없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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