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국, 미지의 땅으로 떠나는 날.
누구나 일생에 한 번쯤 미친 짓을 하곤 합니다. 일 년, 아니 며칠만 지나도 ‘대체 내가 무슨 생각으로 그랬지?’라며 뒤통수가 뜨끔해질 그런 '실수 아닌 실수’들이요. 2015년의 첫 월요일, 그야말로 새해 벽두부터 떠난 러시아, 모스크바 여행이 돌이켜보면 아마 제 33년 인생에서 가장 미친 짓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누구나 꿈꾸던 유럽 여행마저 어렴풋한 목표로 삼고 있던 제가, 살아 생전 밟게 될 것이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던 땅으로 떠나게 된거죠. 얼마나 몰랐으면 러시아는 일년 내내 눈에 덮여 불곰과 눈싸움 하는 곳인 줄 알았다니까요. - 오늘도 러시아는 평화롭습니다 -
- 내가 지금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건지 -
어쨌든 이번 여행의 행선지는 비행기로 아홉시간을 꼬박 날아야 도착하는, 러시아의 심장부 모스크바입니다.
아시아를 벗어난 적이 없는 저의 여행 기록에서, 러시아 행은 비행편 선택부터 만만치 않았습니다. 제주도나 일본 간사이 공항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비행편이 있어 편한 시간대를 고를 수 있는 환경은 커녕, 비행편이 있는 주 2-3일에 그것도 하루 두어대에 필사적으로 매달려야(?)합니다. 그 중 가격이 저렴한데다 현지 홀리데이 시즌까지 겹친 나름 골든 데이(?)에 비행기를 타게 됐죠.
월요일 아침 공항 리무진(이라고 하고 인력거)
새해 첫 월요일, 인천 국제공항 풍경
- 무사히 면세점 미션을 마치고 도착한 26번 게이트 -
지금 나만 모스크바로 가는거야..?
해가 지지 않는 열 시간의 비행
얼마나 왔지?
아, 아직 아홉시간 반이 남았구나
이 곳이 시베리아 벌판으로 추정(?)되는 곳입니다.
'창 밖에 겨울이 가득해 그대인 줄 알았네.'
생각보다 즐거웠던 열 시간의 비행이 마무리 되어가는 시각, 착륙이 가까웠다는 기내 방송을 들으니 그 동안 외면 해왔던 제 안의 긴장감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됩니다. 오후 네시 삼십분, 이미 어둠이 깔린 모스크바에 도착했습니다. 해가 지지 않는 열 시간 비행이 마무리되었다는 것이 실감이 됩니다.
도착이 임박한 시각, 작은 창 밖을 보며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연발하는 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 순간 저는 정말로 미쳤던 걸까요? 난생 처음 보는 창 밖 풍경은 보는 것 만으로도 손 발이 차가워질 정도로 '추위' '한기' '냉기'가 가득했습니다. - 그러구나, 아 여기가 러시아구나 -
빈 틈 없이 눈이 쌓인 마을 풍경 하며, 배가 있지 않았다면 바다인 줄 몰랐을 꽁꽁 얼어붙은 얼음바다까지. 네, 러시아에 잘 도착했군요. 그리고 수속을 위해 걸어가던 길에 잠시 서서 뱉어본 입김을 보며 이 곳이 러시아임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헛웃음은 점점 더 잦고 망측해졌고, 머릿 속엔 한 문장만이 남았습니다. ‘당황하지 말자'
현지시각 오후 4:30
무사히 셰레메티예보 공항에 도착
내 여행의 시작은 ‘시계 맞추기'
모스크바의 첫인상, 셰레메티예보 국제 공항
모스크바를 처음 찾는 Stranger 들이라면 누구나 이 셰레메티예보 공항을 통해 모스크바의 첫인상이 머릿 속, 맘 속에 각인되고 오랜 시간동안 선입견 아닌 선입견이 될 것입니다. 오후 네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도착한 이 공항에서 처음부터 적지 않게 당황했던 기억은 현재까지도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 - 내내 실성한 듯 실실 웃고 다닌 제 모습까지도요 - 아직 한창인 시간에 텅텅 빈 이 공항의 풍경이라던가, 열 시간 비행의 피로가 한 번에 몰려오는 깊은 밤 풍경, 역시나 딱딱하고 불친절한 공항 직원들의 반응들과 택시 호객에 실패하자 알 수 없는 말들을 궁시렁대던 저의 첫 대화 상대 등등. 돌아오는 날 다시 찾은 이 곳에서 그 오해들이 많이 희석되었지만 첫 날 느낀 이 공항의 모습은 이 큰 도시의 대표 공항답지 않게 공허하고 고요한 느낌으로 남습니다.
단 하나의 빛이 있었다면 수속을 마치고 나온 길에 본 공항 내 상점 여직원의 얼굴을 보고 저도 모를 심쿵에 사로잡힌 후 ‘아 이게 러시아구나’라며 처음으로 이 미친 여행의 보람을 느낀 순간이었어요.
- 모스크바에서의 첫 해프닝, '이거 당신 맞아?' -
여행을 살찌우는 것은 예측하지 못한 '해프닝'이라는 것이 평소 제 생각이지만, 그리고 러시아 입국 심사가 다른 나라보다 까다롭다는 이야기도 익히 들었지만 저에게 이런 일이, 그것도 도착하자마자 일어나리라고는 기대도, 바라지도 않았습니다. 러시아 여성다운 아름다운 얼굴에 한 없이 딱딱한 표정으로 러시아어와 영어의 경계를 오가는 알 수 없는 대화를 시도하던 공항 직원분의 시선이 제 여권에 꽂히던 순간, 사건은 시작되었습니다.
6년 전 발급한 제 여권 사진과 제 얼굴을 번갈아보며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또 다시 무언가를 끊임 없이 묻기 시작합니다. 내가 여기서 어떤 대답들을 할 수 있는지 머릿 속 단어 주머니를 뒤져보고 그 추운 도시에서 땀을 흘려가며 해명 아닌 해명을 한참 하고 난 후에야 비로소‘석방’ 될 수 있었습니다. 기회가 되어서 이 곳 러시아 친구가 생긴다면 꼭 제 여권 사진을 보여주며 그렇게나 달라 보이냐고 물어보리라 다짐합니다.
한 숨 돌리고 땀이 좀 식고 나니, 러시아 밤바람이 소매 틈으로 스며듭니다.
아무래도 여행은 이런 것들로 완성되는가 봅니다.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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