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밤을 수놓는 대만 최대의 축제
타이완 등불 축제 (臺灣 慶元宵, Taiwan Lantern Festival)
더 없이 화려한 축제였지만 이제는 기억 속,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지난 2월 타이베이 여행에서 만난 가장 큰 행운 중 하나를 꼽는다면 운 좋게도 대만 최대 축제 중 하나인 등불 축제(타이완 랜턴 페스티벌) 기간에 그 곳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티켓 유효 기간에 쫓겨 가능한 날짜를 짜낸 것인데 마침 그 기간이 정월 대보름부터 이어진 축제 기간었어요. 여행 초반의 하루 밤, 타이베이 시내에서 열린 '타이베이 등불 축제'를 관람했는데, 이왕 이 곳까지 온 거 대만 최대의 축제를 직접 느껴 보고자 타이베이에서 꽤 멀리 떨어진 타오위안(桃園) 시까지 고속철을 타고 갔습니다. 타이베이를 크게 벗어나지 않고 일주일을 보낸 제게는 그럭저럭 장거리 여행이었던 셈입니다.
http://taiwan.net.tw/2016taiwanlantern/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부터 약 열흘간 개최되는 대만 등불 축제는 대만 내 최대 축제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음력 설이 지나고 본격적인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축제로 대만인들은 정월 대보름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합니다. 실제로 정월 대보름에 맞춰 수도 타이베이뿐 아니라 대만 전역에서 크고 작은 축제가 개최됩니다. 대표적인 것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축제 중 하나로 손꼽히는 핑시(平溪) 천등(天燈)축제를 꼽을 수 있죠. 대만 등불 축제는 정월 대보름 축제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합니다.
축제 장소는 해마다 바뀌며 주로 대만 고속철 THSR(Taiwan High Speed Rail) 역 인근에서 열립니다. 축제 규모가 매우 큰데다 찾아오는 관람객 수도 수만명에 달하기 때문에 넓은 공간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요. 지난 2월 개최된 2016 대만 등불 축제는 THSR 타오위안 역 인근에서 열렸습니다. 타이베이 메인역에서 고속철로 약 35분이면 갈 수 있습니다.
HSR 타고 타오위안역으로
대만 전역을 연결하는 대만 고속철(THSR)은 대만인들은 물론 북부 타이베이부터 남부 타이난, 가오슝까지 대만 곳곳을 여행하는 여행자들에게 사랑받는 이동 수단입니다. 국내선 비행기가 있지만 비교적 저렴하고 간편한 이동수단인 HSR 역시 많은 사랑을 받습니다. 타오위안부터 타이베이 메인역을 35분에 주파하는 빠른 속도와 편안한 승차감이 장점입니다. 티켓은 역에 배치된 HSR 창구에서 구매할 수 있는데 무인발권기가 있어 혼자 구매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영어 메뉴가 지원되고 현금, 카드 모두 사용이 가능합니다. 편도/왕복을 선택하고 목적지를 지정한 뒤 좌석을 고르게 되는데요, 지정석과 자유석 티켓이 따로 있습니다. 자유석 티켓은 10-12번칸에 탑승하는 티켓인데 가격이 저렴한 대신 탑승객이 많은 경우 서서 가야 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지정석은 가격이 비싼 대신 편안하게 갈 수 있겠죠. |
경비를 아끼고자 했던 저는 잠시 고민한 후 자유석 티켓을 골랐고 플랫폼에 서자마자 크게 후회했습니다. 축제 기간에 주말이 겹쳐 타이베이에서 타오위안역으로 가는 사람들이 매우 많았고, 때문에 입석도 쉽지 않은 만원 고속철을 타고 가야 했습니다. 게다가 무인 발권기에서 티켓만 후다닥 빼서 가느라 거스름돈을 그냥 두고 오는 실수까지 했죠. 결과적으로 지정석보다 비싼 가격을 지불하고 만원 객차에 서서 간 셈입니다. 사람으로 가득찬 입석 고속철에서는 35분이 무척 길게 느껴졌습니다.
후끈한 고속철 안에서는 타오위안에 도착하면 한 숨 돌릴 수 있을거라 생각했지만 오산이었습니다. 타오위안 역에 내리자마자 보인 것은 축제를 위해 대만 각지에서 모여든 엄청난 인파. 작지 않은 현대식 기차역을 가득 채운 인파는 그대로 행사장까지 조금도 줄지 않고 길게 이어졌습니다. 저는 인파에 밀려 가끔 축제 장소를 알려주는 표지판만 확인한 채 그대로 타오위안 공원으로 향했습니다.
사람들의 뒷통수만 새까맣게 보였던 눈 앞이 조금씩 환해지고 이윽고 알록달록 조명들이 시선을 현혹할 때쯤, 축제를 알리는 커다란 연등 앞에 섰습니다. 아마 이 지점부터 대만 등불 축제가 시작되나 봅니다. 비가 추적추적 내려 땅이 질퍽거렸지만 축제에 대한 기대 때문인지 마음 속으로는 계속 신이 났습니다. 서울에서 열리는 연등 축제에는 몇년간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던 제가 말예요.
현장을 가득 채운 축제의 열기
일본 사람들 못지 않게 조용하고 점잖은 대만인들은 이렇게 일년에 몇 번, 축제를 통해 에너지를 발산하나 봅니다. 축제장은 이 날 서너시간 동안 돌아도 다 보지 못할 정도로 그 규모가 엄청 났지만 구석구석 빈 곳이 없을 정도로 사람이 가득했습니다. 인파가 이대로 타오위안 역과 축제장 옆 야시장까지 이어졌으니 족히 수만명은 되었을 것 같습니다. 대만 최대의 축제답게 전역에서 모여든 대만인들의 열기가 대단했습니다. 물론 간간히 저처럼 이 축제를 찾아온 외국인 여행자들도 보였고요.
축제장은 그야말로 빈 틈 없이 메워졌고 밤이 늦도록 계속됐습니다. 아마 이 축제를 구석구석 모두 보겠노라 욕심을 냈다면 이 날 타이베이에 돌아갈 수 없었을 거예요. 주인공인 등불과 연등은 그 종류와 규모가 매우 다양했고 중앙의 넓은 광장에선 춤과 노래 공연이 이어졌습니다. 깔끔하고 조용한 타이베이 시내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시끌벅적한 축제 분위기였습니다.
까만 밤을 수 놓는 화려한 연등
대만 등불 축제는 새로운 해의 시작을 알리는 정월 대보름 축제입니다. 이 날의 2016 대만 등불 축제 역시 2016년의 시작을 알리는 축제로 새 해희 희망을 담은 다양한 주제의 연등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연등 축제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서유기, 삼국지 등의 캐릭터와 인물들 그리고 최근 인기를 끄는 미니언즈, 곰돌이 푸우 같은 서구 캐릭터까지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해 눈이 즐거웠습니다. 그 연등들 사이에 뻗은 그리고 그 사이를 잇는 길에는 천장에 수천개의 연등을 달아 밝혔습니다. 아래는 2016 대만 등불 축제의 주인공이었던 다양한 연등들의 모습입니다.
연등의 숫자가 얼마나 많던지 이 날 네시간 가까이를 바쁘게 다녔지만 결국 이 축제장을 모두 훑어보지 못하고 나와야 했습니다. 한국에서 볼 수 없는 대규모의 축제에 대만 사람들의 뜨거운 열정이 비치더군요. '이보다 더 큰 연등 축제가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길 정도였습니다.
대만에서 개최되는 축제인만큼 연등의 주제와 주인공은 대부분 그들이 좋아하는 신화 속 인물과 행운의 상징인 동식물, 대만 내 유명 건축물의 모양을 본딴 것이었습니다. 같은 아시아지만 이 날 본 연등들은 대단히 이국적인 느낌이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감상했습니다.
가장 인기있는 포토 스팟은 바로 이곳
2016 대만 등불 축제의 최고 인기 장소 중 한 곳을 꼽는다면 단연 이 곳입니다. 넉넉한 표정과 몸짓으로 팔을 벌린 승려 형태의 이 연등은 2-30m는 족히 되어 보이는 크기로 눈길을 잡았는데요, 자세히 보면 표정도 익살스러워서 많은 사람들이 이 앞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저도 이 연등 사진을 찍어 서울에 계신 어머니께 보냈죠. 왠지 새해에 복이 들어올 것 같은 느낌에.
- 이렇게 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
연등 축제의 트레이드 마크인 하늘을 가득 채운 빨간 연등 풍경. 고개를 들어 눈 앞에 가득한 새빨간 등불을 보다 보면 황홀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괜히 감상에 빠지기도 합니다. 캐릭터와 신화 속 인물들을 그린 연등들도 충분히 신선하지만 아무래도 가장 마음을 크게 움직이는 건 이 빨간 연등 물결이 아닐까 싶어요. 바람이 불 때마다 파도처럼 일렁이는 모습 역시 장관입니다.
직접 참여하는 축제의 장
축제 곳곳에는 연등을 직접 만들고 소원을 적어 달 수 있는 참여 공간이 다수 마련돼 있습니다. 이에 소망이나 이름, 좌우명 등을 멋진 붓글씨로 적어 주는 서예가들의 모습 역시 낯설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연등을 감상하는 것이 이 축제의 주된 목적이지만 이렇게 작게나마 직접 참여하는 것 역시 정월 대보름 축제를 더욱 즐겁게 하는 요소입니다.
축제의 클라이막스, 불꽃 축제
'피융- 팡!'
하나하나 새롭지만 반복되니 어느덧 조금 지루해진 축제를 이 정도에서 빠져 나갈까 생각하던 차에 등 뒤로 경쾌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이 날 축제의 절정을 알리는 불꽃이 까만 하늘 위를 수 놓고 있더군요. 8시부터 약 30분간 이어진 이 불꽃 놀이는 축제에 모인 수만명의 시선을 순간 한 곳에 모으는 힘이 있었습니다. 모두가 잠시 땅 위에 펼져진 화려한 연등을 외면하고 하늘을 보며 환호하고 사진이며 동영상을 찍는 풍경도 저를 꽤나 설레게 했습니다. 다른때 같았으면 불꽃 사진만 찍었겠지만 이 날 밤에는 연등과 사람들의 모습을 함께 담으려 노력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유명 불꽃 축제처럼 화려하지 않지만 축제에 들뜬 마음을 순간 울컥하게 하기에는 충분한 에어 쇼였습니다.
- 불꽃놀이 동영상 -
축제에 빠질 수 없는 먹거리
세시간쯤 쉬지 않고 축제장 곳곳을 반쯤 뛰듯 걸어 다니다 보니 금방 출출해 지더군요. 순간 오늘 저녁도 거르고 이 곳에 달려 왔다는 것을 깨달았고 때마침 축제장 옆에서 진동하는 냄새와 자욱한 연기를 발견했습니다. 좁은 차도 너머에는 축제에 빠질 수 없는 먹거리가 이미 한바탕 펼쳐져 있습니다. '그렇지, 이게 빠질 수 없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대만 음식으로 배를 좀 채워 보려는데 좁은 야시장 골목길에 사람이 가득 차서 혼밥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야시장 음식들이 대부분 그렇지만, 대만의 고유 음식이나 간식 보다는 세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간단한 먹거리가 대부분입니다. 대만인들이 좋아하는 일식은 물론 한국식 음식도 많이 보였습니다. 떡볶이와 치킨 등 자극적인 음식들이 대부분이었지만요.
- 별에서 온 치킨..? 이 곳에서도 도민준의 인기가 대단합니다 -
- 아니, 오른쪽엔 배..백주부님? -
결국 저는 사람에 밀려 대로변에 있는 밀크티 가게에서 두부 푸딩을 잔뜩 넣은 밀크티로 허기를 달랬지만 등불 축제 못지 않게 야시장의 북적대는 분위기와 다양하고 이색적인 먹거리를 구경하는 것 역시 즐거웠습니다. -취두부 냄새만 빼면요-
열정에 놀라고 규모에 감탄한
대만 최고의 축제
어디서 다 모였는지 이 넓은 축제 공간을 가득 채운 사람들의 뜨거운 열정에 놀랐고, 서울에선 상상한 적 없는 엄청난 양의 연등과 그 화려함에 네시간 내내 감탄했습니다.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대만 최대의 축제 '대만 등불 축제'는 대만이 가장 화려하고 즐거운 2월 정월 대보름에 맞춰 대만 여행을 떠나볼 만한 이유 중 하나로 추천할 수 있겠습니다. 제게는 쫓기듯 2월 말 급하게 타이베이로 던져진 지난 여행이 첫번째 대만 여행에 더 없이 좋은 시기였다고 느끼게 해 준 장본인이었으니까요.
이런 축제를 어디에서 또 볼 수 있을까요? 아마 2월의 대만이 아니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2017 타이완 등북 축제가 곧 펼쳐집니다.
http://taiwan.net.tw/2017taiwanlantern/
2016년에 이어 당연히 2017년에도 대만 등불 축제가 열립니다. 이미 그 준비가 한창이더라고요. 홈페이지를 통해 2017 대만 등불 축제 일정과 장소 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내년 축제는 THSR 윤린 역 인근에서 열린다고 합니다.
지난 등불 축제를 뒤늦게 추억하니, 2017년 새 해를 여는 축제는 어떤 모습일지 기대가 됩니다. 그 때쯤 다시 한 번 대만 여행을 갈 수 있기를 기대해 봐야겠네요.
특별하지 않음에서 오는 행복, 2016 타이베이 (Taipei)
#0 타이페이 여행의 시작- 유독 잠이 오지 않는 이유는 부족한 준비 때문일까?
#0.5 특별하지 않음에서 오는 행복, 2016년 겨울의 타이페이
#1 출발, 타이베이 - 수월한 여행을 위한 준비해야 할 것들 (통신, 교통, 숙소)
#3 나홀로 타이베이 여행자를 위한 숙소 추천, 포시패커 호텔 (Poshpacker hotel)
#4 저렴한 가격 빼고는 추천하지 않는 타이베이 메이스테이 호텔 (Meistay hotel)
#7 대만 현지에서 즐기는 딘 타이 펑의 샤오롱바오 (타이베이 딘 타이 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