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타이베이 여행의 시작에서
숙제부터 해치우는 마음으로
본격적인 타이베이 여행 첫날, 중정기념당으로 향하는 마음은 사실 그리 신나지 않았습니다. 준비 없이 일단 도착 해버린 타이베이에서 맞은 첫날밤, 포시패커 호텔의 좁은 1인실 방에서 그저 창 틈을 통해 들어오는 오토바이와 자동차 소리를 배경삼아 타이베이에서 가볼만한 곳을 찾다 결정한 곳이 중정기념당이었습니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여기부터 다녀오자'
검색 결과에 가장 많이 나온 곳이었기도 했거니와 주변에서 워낙 많은 이야기를 들어 이름은 이미 알고 있던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우선 이 곳을 일단 다녀오지 않는다면 매일밤 다음날 일정을 계획할 때마다 이 이름이 그리고 존재가 음료 위에 올린 초콜릿 칩처럼 인중을 간지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본격적인 여행 첫째날 아침 가장 먼저 이 곳으로 향했습니다. 지루하지만 꼭 해야하는 숙제부터 일단 해치워야겠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비가 올듯말듯 잔뜩 찌푸린 하늘을 몇 번 올려다보며 '이래야 내 여행이지'라는 말을 하며 시작된 여행입니다.
중정기념당은 지하철 빨간색 단수이 라인 끝자락에 위치합니다. 타이베이 메인역에서 두 정거장 거리인 Chiang Kai Shek Memorial Hall역에 위치합니다. 도심과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어 마음만 먹으면 매일 갈 수도 있는 곳입니다. 마침 저는 숙소가 타이베이 메인역 근처에 있어 이 날 외에도 여행 후반 야시장 탐색 후 한번 더 이곳을 찾았습니다. 타이베이 지하철역은 노선이 많지 않고 역 이름이 주요 관광지의 명칭을 딴 것이라 찾아 다니기가 어렵지 않았습니다.
타이베이 중정기념당(中正紀念堂, 중정지녠탕)
중정기념당은 중화민국의 초대 총통 장제스를 기념하기 위해 1980년에 지은 기념관입니다. 대만인들에겐 특별한 지도자인 장제스에 대한 존경심이 만든 이 거대한 공간은 생각보다 대규모로 지어졌고 기념관 본당 앞에 거대한 광장이, 그 양 옆으로 국립극장과 콘서트 홀이 멋스럽게 지어져 있습니다. 기념당 건물은 높은 위치에 대리석으로 지어져 그 위용이 대단하며 주변으로 넓은 공원과 연못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정신을 지탱하는 기둥 장제스의 의미 외에도 현재는 타이베이 시민 그리고 이 도시를 찾은 외국인이 편하게 찾으며 휴식을 즐기는 공간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타이베이 첫 여행이라면 꼭 한 번 가보아야 할 곳으로 손꼽힙니다.
지하철역 출입구와 바로 연결된 중정 기념당의 캠퍼스입니다. 멀찍이 보이는 화려한 색상의 전통 건물이 이 곳이 '대단한 곳'이라는 것을 금방 알게 해 줍니다. 입구에 서 있는 안내판을 확인한 후 중앙 광장에 들어서면 좌,우에 쌍둥이처럼 사이좋게 선 대만 국립극장과 콘서트 홀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날 날씨가 무척 흐렸지만 주황색과 붉은색이 어우러진 건축물은 회색 하늘에 아랑곳하지 않고 선명한 색을 뽐냈습니다.
- 대만 국립극장 건물 -
화려한 색깔의 국립극장과 콘서트 홀 건물에 좌,우로 한번씩 시선을 빼앗긴 후엔 저멀리 우뚝 선 중정기념당 본당을 발견할 차례입니다. 흰색 외벽과 파란색 지붕이 조화를 이룬 본당 건물은 국립극장, 콘서트홀 건물에 비해 준엄하고 웅장한 느낌을 줍니다. 멀리서 볼 때도 알았지만 상상 이상으로 큰 건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타이베이 그리고 대만의 대표적인 관광지 중 하나답게 아침 일찍 찾았는데도 사람들이 무척 많았습니다. 날씨가 화창했다면 파란 하늘 아래 웅장한 기념당의 모습을 담을 수도 있었겠지만 대만의 겨울날씨는 만만치 않았습니다.
중정기념당까지 가기 위해선 꽤 많은 계단을 올라야 합니다. 오직 이 기념당만을 위해 올려진 높은 계단은 왠지 장제스에 대한 이들의 존경심이 만든 재단 같은 인상을 줬습니다.
계단을 따라 중정 기념당 가까이까지 오르면 이렇게 중정기념당 캠퍼스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습니다. 멋지게 그리고 대규모로 조성된 정원과 국립극장, 콘서트홀 건물, 맞은편에 보이는 정문은 명나라의 아치형 건축 양식을 본따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크지 않은 도시 타이베이에서 보기 드문 대규모 건축물과 공간입니다.
보통때는 이 아래로 쭉 뻗은 광장의 모습을 볼 수 있지만 제가 타이베이를 찾았던 때는 가장 큰 명절 중 하나인 정월대보름 시즌으로 그에 맞춰 다양한 문화 행사가 진행중이었습니다. 중앙 광장에는 공연, 행사를 위한 무대를 설치하고 있었고 기념당에 오르는 계단 앞에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겨울왕국' 관련 전시가 진행중이었습니다. 여러모로 제가 타이베이 그리고 중정기념당을 찾은 시기는 그리 좋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기념당 내부에 들어서자 거대한 돔 형 건물의 웅장함이 어깨 언저리를 짓누릅니다. 장제스에 대한 그들의 경외심만큼 높이 올려진 지붕에는 정교하고 아름다운 문양이 새겨져 있습니다. 후에 용산사에 가서 느낀 것이지만 대만인들의 솜씨는 그 섬세한 면에서는 정말 탁월합니다. 미세한 조각, 문양들에 새겨진 빈틈없는 디테일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눈을 더 크게 뜨고 다가가게 됩니다.
장제스를 위한 기념관답게 기념당 내부에는 오로지 '장제스'만이 모셔져 있습니다. 계단을 이만큼 걸어온 사람들보다도 또 수십 미터 높은 곳에서 인자한 표정으로 앉은 대만 총통 장제스의 모습이 '하다 하다' 정말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장제스 동상의 양 옆에는 중화민국 국기가, 뒷쪽으로는 그가 강조했던 정신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야말로 장제스는 대만에서 '국부'로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 중정기념당 천장의 문양 -
이 건축물의 웅장함을, 그리고 내부의 모습과 그에 비친 대만의 문화를 엿보는 사람들이 늘 가득합니다. 사진을 찍고 건축물의 구석구석을 감상하는 일이 주가 되겠죠.무료 개방되는 중정기념당의 운영 시간은 오전 아홉시부터 오후 다섯시까지로 그 이외 시간에는 거대한 문이 닫혀 안을 볼 수 없습니다.
매 시 정각마다 펼쳐지는 근위병 교대식
건축물의 웅장함 다음으로 눈길을 사로잡는, 그리고 중정기념당의 가장 유명한 이벤트는 머니머니해도 장제스를 지키는 근위병 교대식입니다. 눈 한 번 깜빡이지 않는 근위병들은 사람들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앞만 보며 장제스 동상을 지키는데요, 매 시각 정시마다 근위병 교대식이 펼쳐집니다. 다섯명이 한 조인 근위대가 절도 있는 움직임으로 교차하는 모습이 흥미로운 볼거리입니다. 교대식이 가까워지면 기념당 중앙 공간 비워지고 사람들은 안내선 밖에서 카메라를 들고 모여듭니다.
레고 블럭을 연상시키는 절도있는 움직임, 다섯명이 하나의 콘트롤러로 연결된 인상을 주는 통일된 움직임으로 천천히 장제스 동상 앞에 모여 경례를 표하고, 때맞춰 새로운 근위대가 역시 절도있는 걸음으로 다가옵니다. 한국에선 국군의 날에나 볼 수 있는 군인들의 멋진 모습을 이 곳에서는 매시간 볼 수 있습니다. 표정 변화 한 번 없는 근위대 두 팀은 정해진 움직임에 맞춰 임무를 교대합니다. 한시간마다 교대하는 꼴인데 미동도 없이 가만히 서 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한시간의 근무 시간이 결코 만만치 않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근위병 교대식은 타이베이에서 가장 포토제닉한 이벤트 중 하나입니다. 10분간 사람들은 군화 소리만이 들리는 기념당 안의 적막을 함께 즐기며 사진으로 이벤트를 담습니다. 그리고 교대식이 끝나자마자 근위병 주위를 둘러싸고 사진을 찍습니다. 물론 그 동안에도 근위병들은 마치 동상처럼 무표정으로 앞만 바라볼 뿐입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중정기념당 주변에 조성된 연못과 공원을 즐기는 것도 이 공간을 여행하는 좋은 방법입니다. 사실 건축물과 교대식만을 감상하기에는 이 곳까지 온 시간이 아쉬우니까요. 더불어 이 공원을 따라 중정기념당을 나서면 그 길로 타이베이의 대표적인 번화가 중 하나인 융캉제에도 닿을 수 있으니 여러모로 중정기념당은 타이베이 여행에서 꼭 한 번 가봐야 할 곳입니다. 물론 특별히 이 건축물과 장제스에 대한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면 첫번째 여행에서 한 번 정도 '기념 도장'을 찍는 것만으로 충분할 것입니다. 타이베이에는 그것 말고도 할 것이 많으니까요.
- 중정기념당 정문 -
중정기념당의 밤
여행 후반 저는 스린 야시장에 간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말보다 시장은 볼 것이 많지 않았고, 저녁을 거하게 먹은 터라 시장의 먹거리에도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한시간만에 야시장 투어를 끝내고 나온 시각이 여덟시, 이대로 숙소에 들어가기 아쉬워 다시 한 번 중정기념당으로 향했습니다. 그 웅장한 건축물이 밤에는 어떻게 빛날까 궁금했거든요. 그리고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사람이 없는 중정 기념당은 그 때보다 더욱 고고해 보였고 밤하늘 위에서 밝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국립극장 건물과 정문 역시 저마다 다른 색으로 밤하늘을 밝히는 모습이 아름다워 생각보다 긴 시간동안 중정기념당의 밤을 즐겼습니다. 비록 화창한 날씨 아래 중정기념당의 모습을 볼 수 없었지만 아름다운 야경을 보고 담은 것으로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숙제를 해치우러 간 곳이었지만 중정기념당의 위용과 건축의 아름다움은 타이베이 여행에 작지 않은 부분을 차지했습니다. 특히나 여행의 시작에서 그들의 정신을 이런 식으로나마 엿볼 수 있었다는 것이 꼭 필요한 시간 중 하나가 아니었나 싶기도 했고요.
물론 다시 타이베이를 찾는다면 중정기념당을 찾지 않을 것입니다. 한 번 감탄한 것만으로 충분한 곳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중정기념당은 타이베이 여행자들이 적어도 한번은 꼭 찾아가봐야 할 곳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리고 가급적 빠를수록 좋겠습니다.
특별하지 않음에서 오는 행복, 2016 타이베이 (Taipei)
#0 타이페이 여행의 시작- 유독 잠이 오지 않는 이유는 부족한 준비 때문일까?
#0.5 특별하지 않음에서 오는 행복, 2016년 겨울의 타이페이
#1 출발, 타이베이 - 수월한 여행을 위한 준비해야 할 것들 (통신, 교통, 숙소)
#3 나홀로 타이베이 여행자를 위한 숙소 추천, 포시패커 호텔 (Poshpacker hotel)
#4 저렴한 가격 빼고는 추천하지 않는 타이베이 메이스테이 호텔 (Meistay hotel)
#7 대만 현지에서 즐기는 딘 타이 펑의 샤오롱바오 (타이베이 딘 타이 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