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11월의 절반이 지나고 아침이면 차가운 공기에 연신 입김이 부옇게 피어오릅니다. 보내기 싫지만 이제 가을을 보내고 겨울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할 때죠.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두어달쯤 전부터 시작됐을 듯한 2018년 가을.
어차피 곧 겨울이 올테니 다른 해보다 조금 일찍 정리하며 이별하려고 합니다. 그래도 이번 가을은 지난해보다 많이 다니며 설레는 순간을 자주 맞았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약 두 달간 담은 2018년 가을 풍경 중 저만의 베스트 샷을 추려보았습니다. 여행, 짧은 나들이, 일상까지 다양한 순간에서 가슴 뛰는 장면들을 만났습니다. 운이 좋았죠.
모든 사진은 매일같이 함께하는 올림푸스 PEN-F 카메라로 담았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가을을 그냥 보내기 아쉬운 분들은 사진 속 장소에 한 번 다녀오셔도 괜찮을 거예요.
제주의 가을 바다
- 제주 봄날 카페 -
서울에 채 가을이 내려앉기 전, 참지 못하고 제주로 마중을 다녀왔습니다. 서울보다 뜨거운 날씨, 햇살도 따가웠지만 여름과는 분명 달랐습니다. 이따금씩 불어오는 바람 때문인지, 눈 앞을 가득 채운 파란 하늘과 바다 때문인지는 몰라도 말이죠.
짧은 시간이었지만 친구와 함께 부지런히 다니며 많이 보고, 먹고, 즐기고, 웃다 왔습니다. 공항에서 곧장 달려간 애월의 카페 창 밖으로 펼쳐진 파란 가을 풍경이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 제주 새별오름 -
- 제주 신창 풍차 해안도로 -
마음맞는 친구와 간 여행에서는 원하는 사진 촬영을 맘껏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해가 수평선 너머로 완전히 사라져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다 풍경을 담았고, 비를 맞으며 새별오름에 있는 외톨이 나무를 담았습니다. 혼자 떠난 여행 못지 않게 사진을 많이 담아서 즐거웠고, 불평 없이 종일 운전해 준 그에게 고마웠습니다. 그동안 제주는 해외보다 더 거리감이 느껴졌던 곳이었는데, 이번 가을 여행을 계기로 계절마다 찾게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언덕 위에 내린 가을빛
집과 멀지 않으면서도 계절마다 화려하게 옷을 갈아입는 풍경 때문에 어느새 일년에 너댓 번은 찾는 곳이 됐습니다. 그 중에서도 하늘공원이 가장 아름다운 계절, 가을에 억새 축제를 앞두고 축제 준비 한창인 풍경을 보고 온 것도 이번 가을 잘 한 일 중 하나로 꼽습니다. 마침 날씨가 그림처럼 좋은 날이어서 오후 내내 억새밭 사이 흙길을 걸어도 피곤한 줄 모르겠더라고요. 이번 가을 가장 날씨가 좋았던 날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가볍게 억새 부대끼는 소리 좀 듣고 오자던 계획을 바꿔서 노을 지고 깜깜해질 때까지 하루를 바닥까지 박박 긁어 즐기고 왔지요.
미리 보는 2018 서울 하늘 공원 억새 축제 (올림푸스 PEN-F)
억새 사이로 보이는 노을은 언제 봐도 아름답습니다.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을 거예요. 파란 하늘과 붉은 노을이 만든 완벽한 그러데이션을 보는 순간 나이 먹고 나선 잘 뛰지 않는 제가 해가 있는 쪽으로 종종걸음을 달리고 있더군요.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던 것이 마냥 숨이 차서만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날 노을을 오랫동안 잊을 수 없을 거예요. 적어도 다음 가을까지는.
코스모스 흐드러진 풍경
가을에는 유독 '해마다 찾는 곳'들이 많습니다. 억새 가득한 하늘공원이 그렇고, 코스모스 흐드러지게 피는 구리 한강시민공원이 그렇습니다. 올해는 축제가 끝난 후 한 발 늦게 찾았는데 다행히 꽃은 한창 피어있더군요. 한바탕 축제를 즐긴 사람들도 빠져나간 후라 혼자 꽃밭을 독차지하고 즐겼습니다. 이 날 역시 하늘이 붓으로 그린 것처럼 아름다워서 혼자였지만 무척 즐겁게 꽃놀이를 즐겼습니다. 똑같이 생긴 꽃을 해마다 담는 데도 몇시간 동안이나 질리지 않았던 걸 보면 말이죠.
코스모스꽃 가득한 구리 한강 시민 공원을 다녀와서. (올림푸스 PEN-F & 7-14mm F2.8 PRO)
다만 처음 찾았을 때보다는 여기저기 사람 손길의 흔적들-콘크리트와 플라스틱-이 많이 보이는 곳이 돼서 아쉬웠습니다. 제가 갔던 날도 넓은 코스모스 밭이 지난해의 절반으로 줄고 그쪽에선 공사가 한창이더군요.
내년에도 변함없이 가을이면 코스모스 찾아 오겠지만, 그 때 많이 실망하지 않을까 벌써부터 걱정입니다.
두 물이 만나는 풍경
- 남양주 다산 생태공원 -
새 책 출간을 앞두고 원고 정리에 소중한 가을 며칠이 뭉텅이로 지나갔습니다. 이대로 보내긴 영 아쉬워서 근처 나들이라도 가자 싶어 무작정 향한 곳이 익숙한 남양주입니다. 원래 두물머리를 가려고 했지만, 폐기차역에 끌려 중간에 차를 세웠고 걸음이 그대로 다산 생태공원까지 향했습니다. 늘 북적이는 두물머리와는 또다른 매력이 있는 한적함과 여유로움이 좋았습니다. 여기서 바라보는 팔당호 풍경도 두물머리 소경 멋지 않게 멋지더군요. 특히 바닥이 훤히 보일만큼 깨끗한 물이 반가웠습니다. 그 위로 파란 하늘이 선명하게 비치는데, 이번 가을은 나들이 운 하나는 좋다 싶더군요. 나설 때마다 날씨가 그림같았으니까요.
남양주에서 담은 늦가을 풍경들 (올림푸스 PEN-F & 17mm F1.8)
- 남양주 물의정원 -
그냥 돌아가기 아쉬워 들린 물의 정원도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며칠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잊을 수 없는 가을 풍경을 보았을 거란 생각에 아쉽기도 했지만요.
내년엔 잊지 말고 가을이 절정일 때 물의 정원을 찾아와야겠습니다.
익숙한 풍경 위에도 가을이
삭막하다는 이유로 제가 사는 도시를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가을만큼은 다릅니다. 가을만큼은 이 도시가 꽤나 근사해 보이거든요. 그래서 제가 가을을 사랑하는지도 모르지만.
서울에도 물론 가을이 찾아왔습니다. 열심히 다닌 덕분인지 지난해, 그 전 해 가을보다 조금 더 화려하고 멋진 것 같습니다. 갈수록 미세먼지가 심해져서 파란 하늘 보기가 쉽지 않지만 운이 좋으면 외국인 친구에게 마구 자랑하고 싶은 풍경들을 담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재미없는 남산 N타워 전망대를, 다만 30분이라도 들렀다 내려오는 게 아닐까 싶어요.
서울에서 가을 풍경이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고궁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얼마 전에 다녀온 창경궁도 곳곳이 빨갛고 노랗게 물들어 한옥과 멋진 조화를 이루는 것이 근처에 있는 외국인 관광객에게 우쭐대고 싶을만큼 근사했습니다.
게다가 요즘은 한복을 입은 사람들도 많아서 운치를 더하는 것 같아요. 찾아보니 삭막한 줄만 알았던 서울에도 꽤 많은 수의 고궁들이 있더군요. 아직 가을이 며칠 남았으니 한,두 곳 정도 더 다녀올까봐요.
서울 창덕궁에 내려 앉은 가을 풍경 (올림푸스 PEN-F & 7-14mm F2.8 PRO)
일상 속에서 발견한 가을
여름내 마시던 아이스커피가 언제부터 따뜻한 커피로 바뀌면 가을이 왔다 싶습니다. 별 일 없이 흐르는 일상에도 이렇게 가을이 내려앉는 것을 종종 느끼곤 합니다.
옷차림이 바뀌고, 마음이 분주해지고 그렇게 멈춰있는 것 같았던 시계가 벌써 한참 움직였음을 새삼스레 알게 됩니다.
그 외에도 많죠. 퇴근 길에 운 좋게 멋진 노을을 마주쳐 감격에 사진을 찍는다거나, 혹은 미리 언덕 위 공원에서 기다려 결정적 순간을 담는다거나 하는.
이럴 때 매일 카메라가 가방 속에 있는 것이 다행이다 싶습니다.
이렇게 털어보니 이번 가을 잘 보냈군요.
겨울은 가을처럼 화려하지 않겠지만, 또 다른 가슴 뛰는 순간들을 만나길 바라며 항상 카메라를 준비해 둬야겠습니다.
이렇게 쓰고 나니 꼭 겨울이 코앞에 온 것 같지만, 아직 가을이 조금 남았으니 또 기대해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