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도 벌써 절반이 지났습니다. 매 해 은행나무 풍경을 보러 가던 곳을 사진으로 검색해 보니 이미 다 떨어졌더군요. 이런저런 일로 바쁘게 지내느라 한 발 늦어버렸습니다. 어느새 아침 저녁으로는 겨울 바람이 부는 11월, 가을이 끝나기 전에 짧게 나들이를 다녀 왔습니다.
출사를 가기 전, 어떤 카메라와 렌즈를 들고 나갈까 고민할 때가 많지만 선택은 대부분 이 조합입니다. 멋진 디자인과 아날로그 조작계의 손맛이 마음에 드는 PEN-F, 가장 좋아하는 프레임에 탁월한 기동성을 자랑하는 17mm F1.8. 올 가을에는 7-14mm F2.8을 주로 사용했지만 역시나 작고 가벼운 단렌즈 조합이 저는 가장 좋습니다.
오래된 기차역
찬바람 불면 자연스레 생각나는 양수리 두물머리를 갈 계획이었지만, 새로운 풍경에 걸음이 멈췄습니다. 양수에 가는 길에 있는 옛 기차역 구 능내역을 짧은 오후 나들이의 시작점으로 잡았습니다. 폐 기차역을 왕왕 찾습니다만, 능내역을 처음이었습니다. 다른 곳처럼 덩그라니 있는 곳은 아니고 마치 시골 동네 중간에 있는 작은 기차역을 연상시키는 모양새였습니다. 제법 많은 분들이 찾는지 골목길에 있는 가정집 중 몇몇은 카페로 개조돼 운영되고 있더군요.
폐기차역의 오래된 느낌을 담기 위해 PEN-F의 모노크롬 프로파일을 사용했습니다. PEN-F의 기능 중 가장 좋아하고, 자주 사용하는 것입니다.
PEN-F의 모노크롬 프로파일에 대한 내용은 지난 포스팅에 정리해 놓았습니다.
이토록 다채로운 흑백 사진 - 올림푸스 PEN-F의 모노크롬 프로파일 활용
흑백사진으로 담은 부산 여행 - 올림푸스 PEN-F의 모노크롬 프로파일 활용
제 방보다 조금 큰 정도의 작은 기차역 대합실은 마치 일본 영화에서 본 것 같았는데, 지금은 오래된 정취를 찾아 온 이들을 위해 사진 전시를 진행하고 있더군요.
그 외에도 안팎으로 기차역에 쌓여있는 시간, 낡은 것의 아름다움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오래 머물만큼 볼거리가 많지는 않았지만, 한적한 풍경 속에서 여유를 즐길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더 이상 기차가 다니지 않는 철길은 이제 산책로로, 그리고 자전거길의 배경으로 멋진 정취를 풍기고요. 낡은 건물 속에 자리잡은 카페들에도 여유가 넘쳐 보였습니다.
가을빛 산책길
능내역에서 나와 걷다보면 다산 생태공원이 있습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고향으로 그의 생가와 흔적들을 보존한 다산 유적지 앞의 공원으로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지점에 있어 팔당호의 근사한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두물머리 대신 선택한 곳인데 그보단 작지만 한적하게 산책 하기에는 더 좋았습니다.
거울처럼 맑은 물에 비친 가을 풍경, 공원에 가득한 꽃과 낙엽들 그리고 가을 나들이 나온 사람들. 탁 트인 호수 풍경이 마음에 들었고, 북적대지 않지만 활력이 있어서 좋았습니다. 삼십여 분이면 돌아볼 수 있어서 폐능내역과 함께 둘러보기 좋겠더군요.
근처에 있는 다산유적지는 다산 정약용에 대한 이야기를 훑으며 보존돼 있는 한옥들을 감상하기 좋았습니다. 곳곳에 포토 스팟도 있어서 두물머리 못지 않은 배경이 되더군요.
늦은 오후빛으로 물든 물의 정원
물의 정원 역시 이번에 처음 알게 된 곳입니다. 양수 두물머리 근처, 운길산 역 옆에 있는 곳인데 일몰 시간에 맞춰 두물머리로 가다 머리를 돌렸습니다. 역시 생소한 풍경이라는 점에서 마음이 이끌렸지요. 커다란 호수 공원같은 느낌인데, 역시 한적함이 매력입니다. 이곳은 다른 곳보다 가을이 빨리 지나는지 얼추 겨울 풍경같기도 했지만 깨끗한 공기 덕분에 물에 비친 반영이 근사했습니다.
유독 가을엔 반영이 멋지죠. 서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았지만 물과 마을, 산이 있는 풍경을 보니 어릴 적 외가집 풍경을 보는 것처럼 정겨웠습니다.
저는 오후 늦게 방문했지만 물의 정원은 새벽녘 물안개 피어오르는 모습이 기대가 됐습니다. 다음에 서둘러 와서 담아볼까 싶습니다.
걷기 좋은 가로수길도 조성돼 있고요. 싸늘해진 날씨 탓인지 공원을 찾은 사람이 많지 않아서 두어 시간 여유롭게 산책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일주일만 빨리 왔어도 화려하게 물든 풍경을 볼 수 있었을 거란 생각에 내심 아쉽기도 했습니다.
오후 다섯 시가 채 되지 않아 공원에는 붉은 노을이 내려 앉았고, 풍경은 붉게 물들었습니다. 따로 보정이 필요없는 아름다운 가을빛입니다.
다른 때와 달리 이 사진들은 보정을 하지 않은 JPG 이미지입니다. PEN-F에서 모노크롬 프로파일과 함께 자주 사용하는 컬러 크리에이터를 통해 붉고 노란 가을색을 강조했습니다.
오후 다섯 시가 넘어 해가 지고 공원은 깜깜해졌습니다. 한가운데 있는 멋진 다리를 주인공으로 장노출 이미지를 담아볼까 싶었지만 워낙에 춥기도 했고, 다리에 조명도 없던 터라 다음을 기약하고 발길을 돌렸습니다.
목표였던 두물머리를 가지 못했지만 그동안 몰랐던 남양주의 새로운 매력을 본 하루였습니다.
지도를 보니 아직도 못 가본 곳이 많더군요. 겨울이 오기 전 한 번 더 찾아가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