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여년만의 폭염이 절정에 달한 8월 초, 무슨 바람이 불어서인지 시흥에 있는 관곡지 연꽃테마파크에 다녀왔습니다. 더위를 끔찍하게 싫어하고 실제로 약하지만 묘하게 매년 가장 더운 시기에 꼭 한 번은 연꽃 구경을 다녀오곤 합니다. 이유를 생각해 보면 주로 연꽃 사진을 찍는 즐거움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것도 습관이라면 습관이겠죠.
그동안은 주로 양수리 두물머리에 있는 세미원을 찾았습니다만, 이번에 처음으로 시흥 관곡지를 찾았습니다. 연꽃으로 워낙에 유명한 곳이지만 집과 먼 곳인데, 친구와 함께 용기를 냈죠. 매년 7월 말 열리는 연성문화제가 끝난 직후, 게다가 폭염이 기승이었던 날이라 공원은 비교적 한가했습니다.
끝이 쉬 보이지 않는 습지에 연잎과 꽃이 빼곡히 들어선 것이 한여름 관곡지의 매력입니다. 7,8월이 절정인 연꽃들은 아직 공원 전체에 만개하기 전이었지만 더러는 그 사이에서 내일이라도 터질 듯 익은 봉오리를 뽐내고 있었습니다. 위치에 따라서도 개화 정도가 꽤 달라서, 입구쪽은 꽃을 찾기 어려운 반면, 안쪽에 들어가니 분홍빛 연꽃이 이곳저곳 탐스럽게 매달려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숨막힐 듯한 더위에 꽃구경은 커녕 공원 안을 걷는 것도 여의치 않았지만, 나란히 핀 꽃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제법 큰 공원의 반대편 끝까지 도달해 있더군요. 관곡지 연꽃테마파크는 연꽃 관람을 쾌적하게 할 수 있도록 관람로와 습지가 직선으로 반듯하게 조성돼 있는 것이 인상깊었습니다. 중간쯤에 있는 연못도 함께 꽃놀이 나온 가족, 연인 단위의 일행이 함께 걷고 사진 찍으며 추억을 만들기에 좋아 보였습니다.
사실 폭염을 감수하고 시흥까지 달려간 수고와 그간의 기대에 비하면 이 날 연꽃 공원의 풍경은 다소 아쉬웠습니다만, 그래도 역시 연꽃은 색이며 실루엣 모두 최고의 피사체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고 왔습니다. 종종 시든 잎 하나 없이 동그랗게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깨끗한 꽃봉오리를 발견하면 처음 연꽃을 보는 아이처럼 신나서 다다가..지는 못했습니다. 폭염이 심해서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사진 몇 장을 후다닥 찍고 얼른 근처 그늘로 몸을 피했죠.
당초 일몰 시간까지 머물며 시간과 빛에 따라 달라지는 공원 풍경과 꽃을 담아올 계획이었습니다만,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아 녹초가 된 바람에 공원 둘레를 크게 한 바퀴 돌아본 것에 만족하며 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그래도 그 걸음 중간에 보고 담은 장면들은 빛이 좋아서인지 선명하고 화려하게 담겼습니다. 연잎 위에 맺힌 물방울도, 너른 논에 가득한 녹색 벼들도.
관곡지 연꽃 테마파크도 충분히 아름답습니다만, 역시나 연꽃은 클로즈업 촬영이 많기 때문에 앞으로는 편히 가던 두물머리를 계속 찾게 될 것 같습니다. 이 날의 기온과 풍경, 사진들은 가장 더웠던 여름으로 두고두고 기억될 2018년 8월의 한 페이지로 갈무리 해 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