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이 꽃의 색과 실루엣으로 가을을 떠올리곤 합니다. 무더운 여름을 버티는 힘으로, 매서울 겨울을 이겨낼 힘으로 말이죠. 저와 어머니 모두 좋아해서 가을이면 모자지간에 꽃 얘기로 웃음꽃을 피우기도 하고요. 그래서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생각이 납니다. "갈 때가 됐지."라고.
축제가 이미 끝났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뜨겁게 달아올랐던 열기는 이제 식었을 테지요. 그래도 이제나마 그 곳을 찾은 것은 축제는 끝났지만 가을은 지금이 절정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음날, 꽃 가득한 공원에 도착해 아직 가득히 피어 살랑이는 코스모스 꽃밭을 보고 말했죠. ‘이제야 가을인 걸 알겠네.’라고.
구리 한강시민공원은 매해 가을 짧게라도 늘 다녀오는 곳입니다. 몇 번은 구리시에서 개최하는 코스모스 축제 기간과 겹쳐 꽃보다 많은 사람들을 구경하고 오기도 했죠. 얼마 전 하늘 공원을 다녀오는 길에 찾아보니 2018년 구리 한강 시민공원 코스모스 축제는 10월 5일부터 7일까지. 이미 끝난 뒤더군요.
그래도 꽃은 그새 지지 않았을테니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한적한 꽃밭을 산책할 기회를 얻을 수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아침 일찍 다녀왔습니다. 마침 기온이 뚝 떨어져 초겨울처럼 쌀쌀한 날이었습니다. 풍경은 축제가 끝나고 그 여운마저 날아가 한없이 평온했고요. 평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역시 시선을 가득 채우는 꽃, 꽃, 꽃.
가져온 카메라를 꺼내 2018년 가을을 기록합니다. 매 해 그랬듯 이번에도 파란 하늘 아래 코스모스 살랑이는 장면으로 가을을 기억하게 될 것 같습니다.
돌아 보니 작년과 같이 올림푸스 PEN-F 카메라를 가져왔더군요. 벌써 3년 가까이 제 손에 있는 친구인데, 이만큼 오래 쓴 카메라가 있나 싶습니다. 나와 맞는 카메라를 사용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란 생각이 듭니다. 반면에 렌즈는 아직 17mm F1.8 렌즈 외에는 정착할 것을 찾지 못해 여러 제품을 전전하고 있습니다만. 이날은 요즘 여행, 일상용으로 전천후 사용 중인 7-14mm F2.8 PRO 렌즈를 챙겼습니다. 역시나 넓은 꽃밭을 광활하게 담기 위함입니다.
F2.8 대구경 렌즈의 심도 표현
꽃밭 속에서 사진에 담을 한 송이를 찾다 보면 무척 특별한 일을 하고 있다고 느껴집니다. 누구도 다 셀 수 없는 이 많은 꽃 중에 저와 일대일로 마주 보는 나름 큰 인연을 발견하는 것이니까요. 잎이 깨끗하고 색 선명한 꽃을 찾고 나면 조리개를 활짝 열어 주인공인 꽃만 부각되는 방법으로 사진을 담습니다. 이 때 이 렌즈의 F2.8 조리개 값이 힘을 발휘합니다. 초광각 렌즈임에도 F2.8로 조리개 값이 밝아서 배경 흐림을 수월하게 연출할 수 있습니다. 물론 7mm보다는 14mm 촬영에서 그 효과가 더 좋습니다.
더불어 주 피사체에 가까이 다가갈 수록 배경과의 분리가 확실해 더욱 극적인 심도 연출이 가능하고요. 위 이미지는 14mm 광각에서 F2.8 최대 개방 조리개 값으로 촬영한 것으로 광각의 느낌과 배경 흐림 연출을 두루 갖췄습니다. 흔히 광각 촬영에서는 이미지 전체가 선명한 원경을 떠올리는데, 이렇게 넓은 프레임과 배경 흐림이 조화를 이룬 광각 이미지도 재미있습니다. 이래서 광각 렌즈도 일단 조리개 값이 밝은 것이 좋다고 하는 것이겠죠.
코스모스 가득한 꽃밭에서 마치 홀로 솟아있는 듯한 보랏빛 한 송이가 무척 돋보입니다. 매년 느끼는 것이지만 가을에 그냥 잊고 지나갈 수 없는 곳입니다.
20cm 근접 촬영
다음으로 인상적이었던 것은 광각 렌즈로서는 우수한 근접 촬영 능력이었습니다. 7-14mm F2.8 PRO 렌즈의 최단 촬영 거리는 약 20cm로 실제 촬영해 보면 상당히 가까워서 놀랄만큼 가까이 다가갈 수 있습니다. 사실 이것은 그 동안 다양한 올림푸스 렌즈를 사용하며 느낀 공통적인 장점이기도 합니다. F2.8 개방 촬영과 20cm 근접 촬영을 조합하면 초광각 렌즈 하나만으로도 꽃밭의 넓은 전경과 클로즈업 사진을 모두 촬영할 수 있습니다.
- 20cm 근접 촬영 -
그래서 이 날은 주로 근접/개방 촬영으로 코스모스를 담았습니다. 꽃밭 전체를 담는 것은 사진보다는 눈이 더 좋고, 한 송이를 담는 것은 사진이 더 좋더군요.
꽃을 담을 때 제가 가장 좋아하는 구도는 꽃 아래에서 해를 맞서고 역광으로 꽃을 촬영하는 것입니다. 빛을 받은 꽃잎의 디테일이 좋고, 화창한 햇살이 만드는 플레어의 따뜻한 느낌을 좋아합니다. 이 때 꽃과 하늘의 노출차가 심하기 때문에 카메라의 노출 보정을 이용해 꽃잎의 디테일이 잘 나오도록 조절하시면 실패 없이 촬영할 수 있습니다. 이 날 역시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꽃 사진을 찍었는데, PEN-F의 틸트 LCD 덕분에 그나마 수월하게 로우 앵글 촬영을 했습니다.
코스모스와 억새, 남산 위에서 바라보는 가을의 서울 전경 등. 올 가을은 다른 해보다 부지런히 서울과 근교를 다니면서 짧은 가을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7-14mm F2.8 렌즈가 늘 함께하고 있고요. 이제 가을이 한 달 정도 더 남았을까요?
좀 더 부지런히 다녀봐야겠습니다.
축제는 하나 둘 끝나고 있지만 가을은 지금이 절정이니, 주변을 유심하게 둘러 보세요. 평범한 산책로 위에도 가을의 기적이 펼쳐져 있을지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