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오카 소도시에서 즐기는 뱃놀이의 낭만
지난 여름 후쿠오카 여행에서 저는 대부분 후쿠오카 시내의 쇼핑 센터와 먹거리를 즐기는 데 시간을 보냈지만 그럼에도 이곳만의 특별한 즐길 거리를 몇가지 찾아냈습니다. 그 중 하나가 후쿠오카 현 남부의 '야나가와'라는 작은 도시에서 즐긴 뱃놀이와 음식입니다. 이미 후쿠오카 여행 코스 중 하나로 사랑받는 야나가와 뱃놀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저도 한 번 뱃놀이의 여유를 즐겨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다큐멘터리 영상 속 일본 뱃놀이는 특유의 고즈넉한 분위기 때문에 가만히 배 안에 앉아만 있어도 영혼이 맑아질 것 같은 기대를 하게 했거든요.
그리고 이 야나가와 뱃놀이를 중심으로 한 야나가와 하루 코스도 잘 짜여 있어서 왕복 교통과 뱃놀이부터 현지 음식, 박물관 등 주요 관광지를 하나로 묶은 패키지가 구성돼 있더군요. 시간도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아 아침에 출발하면 오후 중으로 후쿠오카에 다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야나가와는 일본 후쿠오카 현 남부, 지쿠고 지방 남서부에 위치하는 소도시로 텐진 역에서 기차로 약 40분만에 도착하는 곳입니다. 도시 내부에 물길이 나 있어 배를 타고 도시를 횡단하는 뱃놀이 코스가 관광 코스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예로부터 후쿠오카 남서부 지역의 상업의 중심지로, 간척지를 중심으로 다양한 해초류 양식이 이뤄지는 곳이라고 합니다. 규슈 여행에서 많이 찾으시는 유후인이나 나가사키 지역보다 후쿠오카에 근접한 장점 때문에 뱃놀이와 함께 야나가와 시를 하루만에 둘러볼 수 있는 것이 장점입니다.
교통부터 관광, 음식까지 한번에 해결하는 야나가와 패스
생소한 야나가와 여행을 가장 쉽고 간편하게 즐기는 법은 이 '야나가와 1 day 패스'를 구매하는 것입니다. 야나가와 역 왕복 기차 요금은 물론 뱃놀이 체험 가격과 현지 음식점에서의 특식, 박물관 입장권 등이 포함돼 있어 추가금 없이 이것 하나만으로 야나가와에서 모든 것을 즐길 수 있습니다. 가격은 1인 기준 5150엔으로 비싼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후쿠오카 남부 소도시에서의 짧지만 강렬한 낭만을 생각하면 한번쯤 내게 선물해 볼만한 하루입니다. 뱃놀이 사진을 중심으로 양 옆에 해당 티켓이 있는데 절취선을 따라 잘라서 제출하면 됩니다. 오른쪽은 왕복 기차표와 뱃놀이 탑승권, 현지 음식점 식사권이며 왼쪽은 박물관과 관람 시설 입장권과 할인권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해당 티켓에는 날짜가 적혀있어 당일 사요암ㄴ 가능하다고 하니 참고하세요.
전용선을 타고 야나가와로 출발!
그렇게 첫번째 티켓을 뜯는 것으로 야나가와 원데이 투어가 시작됩니다. 실내에 있는 텐진 기차역 가장 오른쪽 플랫폼에 가면 대개 기차가 미리 와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플랫폼에서 야나가와는 물론 다자이후로 가는 기차도 탑승하기 때문에 열차 종착역과 시간표를 미리 확인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역 안에 시간표가 있고 야나가와 관광 티켓을 판매하는 안내소 직원분이 한국어를 어느정도 할 줄 아시니 기차 시간을 물어보면 실수가 없을 것입니다. 야나가와로 가는 열차는 오무타행 급행과 특급열차 두가지가 있는데 야쿠인역부터 후스카이치역 사이를 무정차하는 특급 열차가 소요시간이 짧습니다. 특급 열차를 탄다면 야나가와까지 46분이 걸린다고 합니다. 물론 급행 열차를 타고 십분 정도 차이니 상관 없습니다.
이 외에도 특급과 급행 열차는 또 하나의 차이가 있는데 녹색 급행 열차는 우리나라 지하철과 같은 좌석 배치로 양 끝에만 세로로 긴 좌석이 배치된 것과 달리 특급 열차는 일반 열차처럼 2X2로 좌석이 배치돼 있습니다. 두 열차 모두 야나가와까지 무정차로 잘 데려다 주기 때문에 좌석 선호 혹은 열차 시간에 맞춰 선택하면 되겠습니다.
평화로운 시골 마을에 도착
후쿠오카 남서부 경제의 중심지라고는 하지만 후쿠오카 도심에 비해 야나가와는 그저 작은 시골마을 같습니다. 국내 여행에서도 종종 느끼는 지방 소도시 고유의 느낌이랄까요. 휘황찬란하지 않지만 깔끔하고 친숙한 느낌이 보는 이에게도 여유를 선사합니다. 50여분 후 도착한 야나가와 기차역에서 출구 주변을 둘러보며 그런 여유를 잠시 느꼈습니다. 물론 셔틀 버스까지 저를 안내하는 현지 관광 안내원의 과한 친절 때문에 그 여유를 즐길 시간은 길지 않았습니다만.
야나가와에 도착하자마자 여행은 '본론'을 향해 달려갑니다. 야나가와 기차역 앞에는 역과 뱃놀이 선착장 사이를 왕복하는 셔틀 버스가 세워져 있습니다. 계단을 내려와 바로 이 셔틀 봉고에 올라탑니다. 어릴적 태권도 학원 버스를 타는 기분을 잠시 느꼈습니다. 물론 셔틀 버스 요금은 무료입니다. 선착장까지는 약 십분 정도가 소요됩니다. 가까운 거리죠?
폭우? 다이조브 다이조브요
봉고차를 타자마자 바람이 심상치 않더니 내릴때쯤 되어서는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의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우산을 챙기지 않은 저는 버스에서 선착장 대기소까지 걸어가는 동안 이미 옷이며 머리가 흠뻑 젖었고 당연히 이 비가 어느정도 그친 후에 뱃놀이가 시작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문 밖의 비는 점점 더 거세게 내렸고 우산이 없는 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며 다음 배를 탑승해야겠다 생각했지만 말 없이 빙그레 웃는 아주머니의 표정을 보고 저는 꼭 이번 배를 타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이래서야 뱃놀이가 가능하겠냐는 표정을 짓는 제게 아주머니는 '에에, 다이조브, 다이조브'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저는 이 날 첫번째 배의 마지막 선원으로 나무배에 탑승했습니다.
이날 이 뱃놀이를 담당하신 새까만 얼굴의 뱃사공 아저씨는 세차게 쏟아지는 비따위 내 알 바 아니라는 표정으로 출항을 준비중이셨습니다. 물론 위아래로 우비를 입으셨고 저 그리고 함께 배를 탄 인원 모두 흰색 우비를 제공 받았습니다. 양 끝에 열명 남짓 되는 사람이 앉은 야나가와의 작은 목선은 이렇게 출발합니다. 비가 갑자기 쏟아진 것이 오늘만은 아닌지 공기는 축축하고 물은 흙탕물이 되어 있습니다. 야나가와에 올때 까지만 해도 뱃놀이 장면을 멋지게 담아 보려던 꿈에 부풀어 있었지만 비에 흙탕물에 배 가장 끝자리에서 보이는 풍경에 카메라를 떨구게 되었습니다.
약 한시간동안 이어지는 뱃놀이는 이제 막 시작 됐지만 비는 점점 더 거세집니다. 그저 기대했던 장면을 보지 못하겠다는 아쉬움 정도였던 뱃길이 어느새 오늘 뱃놀이가 무사히 끝날 수 있을지 걱정해야 하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만약 물에 빠진다면 이 수로의 깊이는 얼마인지, 내 재산 손실은 얼마가 될지 걱정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빗물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았고 우비를 때리는 소리가 무척 시끄러웠습니다. 사실 이대로 비가 계속될까 두렵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이 불안이 길게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아저씨의 '수그리'라는 어색한 한국말과 함께 몇 번의 다리를 지났을까, 거짓말처럼 날씨가 활짝 갰습니다. 섬날씨는 역시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건가 봅니다. 돌다리를 사이로 세상이 둘로 나뉜 듯 등 뒤로는 아직 먹구름이 가득한데 배가 나아가는 방향은 제가 기대한 것만큼은 아니어도 그럴듯한 뱃놀이 풍경이 펼쳐져 무척 기뻤습니다. 이 때부터 우비 안에 감춰뒀던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었습니다. 야나가와까지 온 걸음을 한 번에 보상받는 기분이었어요.
날씨가 화창하게 갠 후 사람들은 그제서야 아껴뒀던 탄성을 내뱉고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야나가와의 풍경을 감상합니다. 배가 흐르는 물길 양쪽에는 전통 가옥과 시간이 만든 이곳만의 조경이 펼쳐집니다. 날씨가 달라지는 것만으로 조금 전까지 있던 곳과 완전히 다른 곳이 된 느낌입니다. 파란 하늘 아래 나무며 풀, 기와의 색이 그림처럼 선명해집니다. 진짜 뱃놀이를 즐기는 기분에 저는 배가 작게 흔들릴 정도로 들썩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알아들을 수 없지만 내내 일본어로 야나가와에 대해 설명해 주시던 뱃사공 아저씨도 상의를 벗어 던지고 더 힘을 내셨습니다. 이 모습이 멋져서 마치 사진 속 장면 같아서 한참 동안 풍경을 외면한 채 뱃사공 아저씨의 에너지를 사진에 담았습니다. 파란 하늘과 녹색 여름을 배경으로 뱃사공 아저씨의 움직임이 이 도시만이 보여줄 수 있는 장면을 아주 오랫동안 펼쳐 놓았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여행온 대만 꼬마 아이도 잠시 나와 노를 저어 보았습니다. 날씨만큼 사람들의 표정도 화창해지고 어느덧 햇살이 따가워지면서 사람들은 하나둘씩 비닐 우비를 벗고 자유롭게 뱃놀이를 즐겼습니다.
뱃놀이 코스 중간쯤에 위치한 이 고정된 나무배는 선상 매점이라고 합니다. 간단한 간식부터 기념품까지 다양한 종류의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이 곳은 실제로 물 위에 떠 있는 나무배라고 합니다. 배에서 내리지 않고도 주문이 가능해서 야나가와 뱃놀이의 또 다른 즐거움으로 손꼽히는데요, 아쉽게도 비가 오는 날엔 영업을 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텅 빈 매점선을 스치며 지나가는 마음이 어딘가 아쉬웠습니다. 시원한 음료수라도 한 잔 하면 이 여름날 야나가와 뱃놀이를 즐기는 기분이 단숨에 끝까지 오를 것 같은데 말예요.
종착점에 가까워오자 시간차를 두고 출발한 다른 배와 하나둘 마주치기 시작합니다. 얕은 높이로 물 위에 떠 있는 배를 보니 순간 내가 저렇게 위태로운 상태인가라는 생각에 등 뒤 나무를 손으로 꼭 쥐게 됩니다. 사진 속 배의 뱃사공은 야나가와 뱃놀이 코스 유일의 여성 뱃사공이라고 하는데요, 여린 몸에도 남자분들 못지 않게 파워풀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렇게 야나가와 뱃놀이가 끝났습니다. 한시간 가량의 이 날 뱃놀이는 폭우와 날씨, 배를 가득 채운 사람들 때문에 제가 기대한 여유와는 다소 거리가 멀었지만 그 동안 해보지 못한 색다른 경험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이보다 조금 더 작은 배에 뱃사공 아저씨와 단 둘이 이 뱃길을 한바퀴 돌아보고 싶습니다. 아무 말 없이 사색에 잠기며 즐기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야나가와에서 즐기는 전통 장어덮밥
배에서 내려 걸어 나오면 한가로운 야나가와의 마을 풍경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점심 시간이 가까워 온 시각, 한적한 마을에는 행인마저 드문드문 보이고 오랜 세월을 품은 전통 가옥과 나무로 만든 배들이 이곳만의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비가 온 후 날씨가 활짝 갠 터라 이 작은 마을이 한결 운치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내 거짓말처럼 다시 먹구름이 끼고 세찬 비가 내렸습니다. 몸을 피할 곳을 찾던 저는 겸사겸사 점심 식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야나가와 관광 티켓에 포함된 식사권은 야나가와 시내의 식당 20여곳에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음식인 장어덮밥 혹은 전통 해산물 음식을 선택해 먹을 수 있습니다. 위치는 대부분 뱃놀이 종착점 주변에 있어 뱃놀이 후 여운을 즐기기에 좋습니다. 제가 찾은 곳은 장어 덮밥집입니다. 세차게 내리는 비를 피해 1층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티켓을 떼어 내면 자동으로 장어 덮밥 주문 완료. 비를 맞아 으슬으슬한 몸을 녹여줄 맑은 차 한잔이 놓입니다.
그리고 잠시 후 제 앞에 펼쳐진 호사. 장어구이와 달걀을 올린 전통 방식의 장어 덮밥입니다. 네모난 나무 도시락 위가 장어 덮밥, 오른쪽에는 오이를 곁들인 무침, 그리고 장어 맑은국입니다. 이 날 장어 덮밥은 부드러운 장어 구이의 식감 그리고 따끈하게 쪄낸 듯 지어진 찰밥, 입맛을 돋우는 새콤한 무침 등 나무랄 데 없이 다 좋았습니다. 물론 아침까지 거르고 서둘러 야나가와 투어를 강행한 탓에 점심 식사가 더 꿀맛이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이 날 먹은 장어덮밥은 소중한 사람에게 꼭 한 번 먹이고픈 생각이 들 정도로 만족스러웠습니다.
점심을 먹고 나오니 다시 화창하게 갠 날씨, 쉴 새 없이 오락가락하는 날씨 아래서 남은 시간동안 야나가와 영주 타치바나 가(家) 별장 오하나와 그 옆에 딸린 기타하라하쿠슈 기념관에 들렀습니다. 귀족의 별장이던 오하나 2층에서는 그시절 영주의 권력을 엿볼 수 있는 아름다운 정원을 한 눈에 볼 수 있고 기념관 내부에는 손톱보다 작은 자기와 집기 등 일본 미세 공예 솜씨를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사료들이 전시돼 있었습니다. 이 외에도 야나가와의 몇몇 중요 관광 명소가 있으니 기차역으로 다시 돌아가는 셔틀 버스를 타기 전까지 일정대로 즐기면 되겠습니다.
야나가와 기차역으로 돌아오는 봉고차를 탄 것이 오후 두시반, 다시 기차를 타고 후쿠오카 시내로 돌아오니 네시가 조금 안 된 오후였습니다.
이렇게 탈 많은 야나가와 반나절 투어를 마쳤습니다. 조금 다른 후쿠오카 여행을 계획하시는 분이라면 하루 아니 반나절 쯤은 이 야나가와의 여유와 멋, 맛을 즐겨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되겠네요.
날씨만 좋다면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멋진 아침 혹은 오후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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