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열시 삼십분 집을 나서는 길, 떨어지는 비를 보며 한참을 서있다가 '그냥 가지 뭐.' 더이상 잃어버릴 우산이 없어서 그러다 비 맞는 게 익숙해지고 좋아지고. 언제부터였더라, 우산 챙기게 된 게 오랫만에 신발에 속옷까지 흠뻑 젖으니 기분 너무 좋아. 잠깐 쓰다 마는 휴대폰쯤이야 젖으면 버리면 되는데 그동안 왜 핑계를 댔지? ' 모든 비 오는 날이 우산 쓰는 날은 아니다 ' 부르지도 않았던 그 때 나를 만난 걸 보니 자기야, 나 좀 어려진 것 같아. ^^
한바탕 쏟아진 후의 이 하늘과 햇살, 구름은 필연(必然) 이며, 비의 즐거움을 아는 사람도, 마냥 성가시고 짜증났던 사람도 누구나 공평하게 누릴 수 있는 선물이다. 이렇게 그리움도 눈물 후에 깨끗이 씻겨 내려간다면 기꺼이 나도 서럽고 구슬프게 좀 더 울고싶다, 그 후에 저렇게 깊고 파래지고 싶다.
나란히 선 벤치를 보면 일단 앉는 버릇, 으레 니 무릎을 베고 눕던 습관 그렇게 보던 너의 얼굴과 눈을 감고 나눈 대화들. 세상에 모든 것들이 지나고 나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건 똑같지만, 유독 그 시간들과 우리 모습만 가슴 터질 듯 그리운 건 그냥 단순한 '그리움' 정도일까, 그것밖에 안될까.
스무살의 내 가장 아름다운 추억을 꼽아 보자면 갑자기 내린 소나기에 여자친구 손을 잡고 나름 커다란 다리를 뛰어서 건넜던 일이다. 근처에 버스정류장도 없고 다리 중간이라 택시도 잡을 수 없어서 그냥 무작정 손을 잡아 끌고 뛰었는데 지금이야 영화 속 장면처럼 낭만같아도 그 땐 젖은 머리며 옷이며 추워서 떠는 이 부딪히는 소리에 얼마나 미안했던지. 얼마 전 운전을 하다 그 다리를 지나치면서 잠시 스무살때의 그 느낌이 되살아나 가슴이 먹먹해지며 그 때 뭣도 모르고 젖은 머리가 섹시하다는 말을 서로 건넸던 너무 어렸던 시절이 눈물나게 그리워졌다. 8년이 지난 지금의 내가 그 소나기를 다시 맞게 된다면, 다시 그렇게 누군가의 손을 움켜잡고 뛸 수 있을까. 아마 지금은 갈아입을 옷에, 주머니에 든 휴대전화 걱정에 ..
해질녘 내 키보다 길고 늘씬한 그림자를 보면서 꼭 저만큼 키가 커야지 기도했던 적이 있었는데, 지금 그보다 훨씬 더 컸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림자는 나보다 훨씬 크다. 하지만 지금은 그림자만큼 키가 크고싶지는 않다, 포기한건지 만족하고 있는건지. 그래서인지 요즘은 내 그림자 본 기억이 없다.
어린이날, 이 아이들이 부러운 건 더운 날씨 때문이 아니라 옷 젖을 걱정 없이 뛰어놀 수 있는 몸과 마음의 '가벼움'이 아닐까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는 꿈은 이미 깨진 지가 오래, 이제 아이들의 표정을 보고 몸짓을 보며 아직 남아있는 조금이라도 잡아두기 위해 노력할 수 밖에 이 시절의 표정을 다시 갖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