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전 '30대 남성의 가성비 시계 라인업'이란 제목으로 제가 가진 시계를 소개한 바 있습니다. 기계식 시계에 관심이 있지만 큰 돈을 지출하기보단 다양하게 즐기고 싶은 분들을 위해 제 생각을 정리한 것이었어요. 애플 워치가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시계가 된 현대에도 기계식 시계에 매력을 느끼는 분들이 많은지 제 블로그에서 꾸준히 인기 있는 포스팅이 됐습니다.
그 후로 일 년간 영입과 방출이 이어진 끝에 보유한 시계는 5개로 늘었습니다. 육-해-공 그리고 드레스워치까지 카테고리별로 갖춰진 라인업은 하나 하나 제 고민과 이야기가 담겨 있기도 하고 저와 같은 취향, 예산을 가진 분들에게 추천할 만 하다 싶어 이번 포스팅에서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필드 워치 - 해밀턴 카키 필드 메카니컬 38mm (H69439411)
https://www.hamiltonwatch.com/ko-kr/h69439411-khaki-field.html
모델명 : H69439411
무브먼트 : H-50 (수동)
파워 리저브 : 80시간
케이스 크기 : 38mm
케이스 소재 : 스테인리스 스틸
커버 글라스 : 사파이어 크리스탈
러그 너비 : 20mm
방수 : 50m
1960년대 미군에게 지급됐던 필드 시계를 복각한 해밀턴의 필드 워치는 오리지널리티와 가성비 측면에서 압도적인 매력이 있습니다. 정가 60만원대, 실 구매가 4-50만원대에서 이 정도 스토리와 성능 그리고 스타일의 폭을 갖춘 시계는 흔치 않습니다. 다른 시계처럼 화려하지 않아도 방출하고 나면 또 이만한 시계가 없다 싶어서 벌써 세 번째 구매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5구 보관함의 마지막 한 칸이 비자 가장 먼저 이 시계가 떠오르더라고요.
블랙 다이얼과 올리브색 나토 밴드를 채용한 기본 모델이 큰 성공을 거둔 후 화이트/브라운 다이얼과 브론즈 케이스, 42mm 대형 모델 등 다양한 파생 모델이 출시되고 있습니다. 저도 38mm 케이스, 블랙 다이얼, 올리브색 나토 밴드로 출시된 기본 블랙 모델을 사용하다 이번에는 화이트 다이얼 모델로 구매했습니다. 오리지널리티는 떨어지지만 줄질을 더 다양하게 할 수 있는 매력이 있습니다.
지난 포스팅을 보니 2018년에 첫 번째 카키 필드 메카니컬을 구매했더군요. 이 모델을 처음 구매하는 분들께는 역시 오리지널을 가장 잘 재현한 블랙 다이얼-나토 밴드 모델을 추천합니다. 드레스 워치로는 빛이 나지 않지만 데일리로 착용할 필드 워치로는 제격인 시계입니다. 아래는 블랙 모델을 사용하며 작성한 포스팅입니다.
같은 시계를 세 번이나 구매하는 스스로를 합리화하고자 이번에는 오리지널 블랙 다이얼 말고 후에 출시된 화이트 다이얼 모델을 구매했습니다. 전용 메탈 브레이슬릿 모델이 포함된 것을 구매했는데, 역시나 이 시계는 나토 밴드나 가죽 스트랩이 어울린다고 생각해서 브레이슬릿은 따로 처분했습니다.
화이트 다이얼에 대한 호불호가 갈리지만 블랙 모델보다 다양한 밴드에 잘 어울리는 것이 장점입니다. 빈티지한 노란색 마킹과의 대비가 검정색보다 좀 더 귀여워 보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둘 다 가지고 있으면 좋겠지만 당분간은 화이트 모델을 재밌게 차 볼 생각입니다.
다이버 워치 - 오리스 Divers Sixty five 40mm
https://www.oris.ch/en/watch/divers-sixty-five/01-733-7707-4357-07-8-20-18%EF%BB%BF
모델명 : 01 733 7707 4357-07 8 20 18
무브먼트 : Oris 733 (오토매틱)
파워 리저브 : 38시간
케이스 크기 : 40mm
케이스 소재 : 스테인리스 스틸
커버 글라스 : 사파이어 크리스탈
러그 너비 : 20mm
방수 : 100m
진한 그린 다이얼과 베젤 테두리로 살짝 보이는 브론즈의 조화에 맘을 뺏긴 시계입니다. 2년 전 스스로에게 주는 생일 선물로 구매했습니다. 평소 다이버 시계를 좋아하지 않지만 캐주얼-포멀을 넘나드는 남성용 시계를 고른다면 다이버 시계가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특히 다이버 시계에 대한 선호도가 높기도 하고요.
자사의 60년대 다이버 시계를 복각한 식스티 파이브는 볼록한 돔 글래스와 알루미늄 베젤, 노란색 원형 인덱스 등 빈티지 시계 특유의 디자인을 비교적 잘 살렸습니다. 녹색 다이얼과 브론즈 소재의 조합은 그 매력을 더욱 부각시킨다고 생각합니다. 셀리타 범용 무브먼트와 짧은 파워 리저브 등 가격 대비 사양은 좋다고 할 수 없습니다만 200만원대 다이버 시계 중에서는 분명한 장점이 있습니다.
빈티지 디자인을 기반으로 하는 시계의 장점은 다양한 밴드와 잘 어울리는 것입니다. 기본 메탈 브레이슬릿부터 빈티지 가죽 스트랩, 나토 스트랩과 러버 밴드까지 이 시계와 어울리지 않는 밴드가 드물다 할 정도입니다. 저는 브레이슬릿 모델로 구매했지만 어느 시계든 브레이슬릿을 좋아하지 않는 터라 가죽/나토 스트랩 위주로 착용하고 있습니다.
재킷과 점퍼, 스웻셔츠 등 다양한 차림에 두루 어울리는 것이 이 시계의 큰 장점입니다. 수트를 입을 때는 가죽 스트랩이나 브레이슬릿을 붙이면 충분히 점잖고, 캐주얼한 차림에는 나토 밴드를 두르면 밀리터리 워치 못지 않은 느낌을 낼 수 있습니다. 지금도 다양한 컬러로 파생 모델이 계속 나온만큼 당분간 오리스를 대표하는 시계가 될 것 같습니다. 최근에 출시한 브론즈 케이스 모델도 색다른 매력이 있네요.
파일럿 워치 - 오리스 Big Crown pointer date 40mm
모델명 : 01 754 7741 3167-07 5 20 58BR
무브먼트 : Oris 754 (오토매틱)
파워 리저브 : 38시간
케이스 크기 : 40mm
케이스 소재 : 스테인리스 스틸
커버 글라스 : 사파이어 크리스탈
러그 너비 : 20mm
방수 : 50m
지금은 한 물 간 듯 하지만 최근까지 브론즈 케이스의 시계들이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저도 브론즈 케이스를 채용한 시계들에 관심이 생겼고 디자인과 스토리, 가격 등을 고려해 오리스의 빅 크라운 포인터 데이트를 선택했습니다. 같은 브랜드의 시계 특히 무브먼트까지 같은 시계를 추가하는 게 영 맘에 들지 않았지만 이 시계는 항공 시계로서의 스토리와 제가 좋아하는 그린 다이얼 그리고 브론즈 케이스와의 조화까지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브론즈 시계입니다.
이 시계 역시 1940년대 자사 파일럿 시계의 외형을 복각한 모델입니다. 그리고 그린 다이얼/브론즈 케이스의 이 모델은 80주년 기념 에디션이고요. 수도원의 스테인드 글라스를 연상시키는 시/분침에 기차길 모양의 인덱스를 두른 것이 빈티지 시계의 느낌을 물씬 풍깁니다. 빨간색의 긴 침이 날짜를 표시하는 것이 이 시계의 특징입니다. 기본 스트랩도 빈티지한 느낌의 가죽으로 두른 것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https://mistyfriday.tistory.com/3716?category=792284
클래식한 디자인이지만 의외로 이런저런 차림에 두루 어울립니다. 밴드 선택의 폭도 의외로 넓습니다. 시계에 포함된 녹색, 베이지색, 빨간색 계열의 색으로 매치하면 형태를 가리지 않고 잘 어울립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다이얼 디자인이 다이버 시계보다 빈티지해서 아주 캐주얼한 차림보다는 셔츠/재킷 정도의 차림에 차는 것이 좋습니다.
개인적인 취향 그리고 유행이 가장 많이 반영된 시계라 다른 것들보다는 추천하기가 어렵습니다. 다만 취향에만 맞으면 더 높은 가격대의 시계도 부럽지 않을만큼 이 시계만의 매력이 큽니다. 제 컬렉션에서 노모스 탕겐테와 함께 가장 오래 남지 않을까 싶은 시계입니다.
파일럿 워치 - 스토바 Flieger 클래식 40mm
https://www.stowa.de/Flieger+Klassik+40.htm
모델명 : Flieger Klassik 40
무브먼트 : ETA2824-2 / SW200 (오토매틱)
파워 리저브 : 38시간
케이스 크기 : 40mm
케이스 소재 : 스테인리스 스틸
커버 글라스 : 사파이어 크리스탈
러그 너비 : 20mm
방수 : 50m
다이얼의 디자인을 기준으로 하면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시계입니다. 오래 전부터 독일 파일럿 워치 B-Uhr의 복각 모델을 구매하고 싶었지만 예산 문제 상 10만원대 티셀 시계 등 몇몇 저가형 시계들로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오리지널에 가까운 스토바 플리거 모델을 구매했습니다.
세계 1,2차 대전 당시 독일 공군에 지급됐던 파일럿 워치의 디자인은 현재 다양한 브랜드에서 채용할만큼 인기가 있습니다. 매우 간결한 디자인 덕분에 캐주얼/포멀 웨어를 넘나드는 활용성을 자랑하는 것이 장점이죠. 저는 10만원대 티셀 제품과 30만원대 라코 제품을 사용해 봤는데 각자 몇 가지 단점들이 있었습니다. 스토바 제품 역시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오리지널 플리거를 만들던 회사인 만큼 기본 플리거를 충실히 재현한 것과 무브먼트/로고/케이스 소재 등 다양한 옵션을 제공하는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플리거는 타입 A,B로 나뉘는데 B 타입의 다이얼이 유니크하긴 하지만 역시 처음부터 갖고 싶던 A 타입을 선택하는 것이 낫겠다 싶더군요. 예전부터 생각한 대로 다이얼에 로고를 생략하고 다이얼 크기를 40mm로 선택해 기본 형태에 가장 가깝게 구매했습니다.
역시 듣던 대로 그리고 기대했던 대로 플리거의 활용도는 대단히 넓습니다. 메탈/가죽/나토 스트랩이 두루 어울리고 어느 옷차림에도 매치가 어렵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빈티지 가죽 스트랩을 두르고 필드 자켓에 매치하는 것을 가장 선호합니다. IWC의 파일럿 워치도 아름답지만 가격과 오리지널리티를 고려하면 스토바 플리거가 100만원 대 가격에서 B-Uhr에 대한 욕심을 충족시킬 수 있는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드레스 워치 - 노모스 Tangente 35mm
https://nomos-glashuette.com/en/tangente/tangente-101
모델명 : Flieger Klassik 40
무브먼트 : NOMOS ALPHA (수동)
파워 리저브 : 43시간
케이스 크기 : 35mm
케이스 소재 : 스테인리스 스틸
커버 글라스 : 사파이어 크리스탈
러그 너비 : 18mm
방수 : 30m
기계식 시계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해 준 모델입니다. 생긴 것은 문방구 시계 또는 판촉용 시계처럼 생겼지만 심플한 디자인, 빛에 따라 다른 느낌으로 빛나는 파란색 핸즈, 아름다운 알파 무브먼트까지 매력이 많은 시계입니다. 35mm의 작은 크기, 약 6mm의 얇은 두께로 드레스 워치로 사용할 때 매우 근사하기도 하고요. 인하우스 무브먼트 시계를 200만원대에 구매할 수 있다는 상징적인 의미도 있습니다.
벌써 십 년째 사용 중인 시계지만 여전히 질리지 않고 잘 사용 중입니다. 가끔 재킷에 구두까지 말끔히 차려입게 되는 날이면 어김없이 이 시계에 손이 갑니다. 수동 무브먼트라 태엽을 손으로 직접 돌려야 하는데 그 나름의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리고 시계 돌아가는 째깍째깍 소리가 다른 시계보다 좋아서 종종 손목을 귀에 대고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기도 합니다.
요즘 유행에는 동떨어진 디자인,크기의 시계지만 첫 번째 '드림 워치'였던 만큼 앞으로도 계속 제 컬렉션의 한 자리를 차지할 것입니다. 훗날 자녀에게 물려주고 싶은 시계기도 하고요.
수백만원대의 럭셔리 시계는 없지만 제 취향을 듬뿍 담고 있는 라인업입니다. 거기에 육-해-공-드레스 워치까지 카테고리별로 잘 구성돼 있어 개인적인 만족도도 높고요. 아직까지는 가성비 중심의 마이크로 브랜드보다는 배경 스토리와 접근성, 사후 지원에 이점이 있는 기성 브랜드의 제품들을 선택했지만 앞으로 시야를 좀 더 넓혀 볼 생각입니다.
스마트워치가 이미 대중화 됐고 저 역시 계속 애플워치 욕심에 시달리긴 하지만 기계식 시계의 매력은 앞으로도 스마트워치가 대체하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새롭게 기계식 시계에 관심을 갖게 될 분은 늘어날 것으로 생각하고요. 제 개인적인 취향이 담긴 시계들이 그 선택에 참고가 되길 바랍니다. 저는 이렇게 다섯 개로 몇 년을 즐긴 뒤 오십 살쯤 오메가 문워치를 들이려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