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이른 추위에 가을이 실종됐다고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곳곳에 가을이 한창입니다. 여느때처럼 앉아서 글이며 사진에 둘러싸여 있다가, 이대로 가을이 정말 끝나버릴까 싶어 짐을 챙겨 나섰습니다. 카메라와 헤드폰 그리고 생수 한 병, 셋만 있으면 되겠더군요.
이맘때쯤 늘 생각나는 곳이 상암 하늘공원입니다. 계절마다 가지만 역시 억새 가득한 가을만큼 아름다울 때가 없죠. 작년엔 코로나19 때문에 건너뛰었는데 다행히 올해는 하늘공원의 가을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제 집과는 서울의 끝과 끝 정도의 거리지만 버스 한 번 타면 갈 수 있으니 조금만 여유를 부리면 충분합니다. 오가는 길에 보는 동네 풍경도 근사하고요.
해마다 이맘때쯤 억새 축제를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시기에 생각이 났던 것 같아요. 작년과 올해는 축제가 없지만 억새가 시들거나 자라지 않는 것은 아니니 가족, 친구, 연인끼리 그들만의 축제를 즐기러 가기 좋습니다. 제가 간 날도 평일이었는데 사람들이 제법 많았습니다. 기대만큼 언덕 위 공원은 억새풀로 가득했고요. 올해는 특히 억새의 은빛 풀이 더 풍만하게 느껴졌어요.
가을 햇살 받아 반짝이는 은빛 억새들 사이를 걷는 기분이 참 좋죠. 바람에 흔들려 서로 쓸리는 소리를 듣는 것도 좋아서 잠시 헤드폰을 벗고 바람을 만끽하며 산책을 했습니다.
그 아름다움이 절정인 억새밭과 이제 조용히 사그라들면 다음 계절을 기약하는 핑크뮬리, 눈에 띄지 않지만 묵묵히 계절을 밝히는 코스모스까지. 멀리서 보면 억새뿐인 것 같아도 구석구석 가을 정취가 가득한 것이 하늘공원의 매력이 아닐까 싶어요. 이날 점심때쯤 도착해서 해 질 때까지 있었는데 지루할 틈이 없었습니다.
손꼽아 기다렸던 일몰 시간. 때맞춰 많은 사람들이 공원 끝에 있는 전망대에 모였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멋진 가을 노을을 즐겼습니다. 셔터 소리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던 오후 여섯 시. 해는 부쩍 이른 시간에 떨어졌고, 저는 적당히 사진을 몇 장 찍고 가만히 기대서 이런저런 생각들을 했습니다. 정말로 요즘은 이런 시간이 필요해요. 적당히 쓸 데 없는 생각들로 보내는.
전망대에 아무도 없을 때까지 노을을 다 감상하고 골든 타임의 끝자락을 사진에 담아 왔습니다. 바람이 쌀쌀했던지 다음날까지 머리가 띵하고 으슬으슬하지만 곧 괜찮아지겠죠. 멋진 가을산책이었습니다. 서울에서 가을 풍경이 가장 멋진 곳 중 하나니 짧은 가을 끝나기 전에 다녀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