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마흔이 됐습니다. 한국식 나이 대신 만 나이를 쓴다고 하니 한 두살 벌겠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마흔 살 생일엔 스스로에게 좀 특별한 선물을 하고 싶었습니다. 마침 요맘때쯤 '앞으로 남은 시간 내내 찰 시계가 있으면 좋겠다.'하는 맘이 한창이었고, 결론은 오메가 문워치가 되었습니다.
저렴하면서도 정확하게 시간을 알려 주는 쿼츠 시계들 그리고 최근엔 스마트폰과 스마트워치까지 가세하면서 이제 기계식 시계는 소수가 즐기는 액세서리 또는 사치품의 영역이 된 것 같습니다. 생필품이 아니다보니 시계를 선택할 때 취향 그리고 시계에 깃든 이야기가 전보다 더 존중을 받는 것이 느껴지고요. 문워치에 끌린 이유입니다. 무려 '달에 다녀온 썰'을 품은 시계.
우주에 관심이 많다거나 한 것은 아닙니다. 기계식 시계에는 관심이 많지만 럭셔리 시계까지는 욕심을 내지 않았고요. 그러니 며칠 전까지도 문워치 구매 의사는 전혀 없었습니다. 우주에 대한 호기심, 오메가 브랜드에 대한 동경보다는 얼마 전 발매 된 문스와치의 역할이 컸습니다.
30만원대에 오메가 문워치와 같은 디자인의 시계를 살 수 있다는 것으로 크게 화제가 됐던 오메가X스와치 콜라보 제품. 이 제품을 통해 문워치의 디자인을 진지하게 접했습니다. 그러다 관심이 생겨서 명동 부티크에 줄을 서 볼까 했지만 출시 전날부터 시작된 줄서기 행렬로 포기. 그렇게 시작된 관심이 결국 문워치 구매로 이어졌어요. 스와치 그룹의 전략에 당한 케이스죠.
20대에 생긴 첫 드림 워치는 노모스 탕겐테였습니다. 그리고 삽시간에 두 번째 드림 워치가 된 문워치를 입양했어요. 그간 옷차림, 장소별로 시계를 골라 차는 즐거움을 누렸는데 이번 기변을 위해 그간 하나씩 모아 온 것들을 상당 수 정리하게 됐어요.
#내돈내산 취향 듬뿍 담은 기계식 시계 라인업 소개 & 추천 (다이버/파일럿/필드워치)
달에 다녀 온 시계
스피드마스터 문워치는 전 세계에서 가장 상징적인 타임피스 중 하나입니다. 여섯 번의 달 착륙 미션을 완수한 전설적인 크로노그래프는 오메가의 선구적인 모험가 정신을 잘 보여줍니다. 스테인리스 소재의 42mm 문워치는 각 열마다 5개의 아치형 링크로 구성된 디자인이 돋보이는 폴리싱 및 브러싱 처리된 브레이슬릿을 장착하고 있으며, 전면과 케이스백의 사파이어 크리스탈 글래스가 특징입니다. 달에서 착용했던 4세대 스피드마스터 스타일에서 영감을 받은 이 시계에는 비대칭 케이스, 블랙 스텝 다이얼, 아플리케 오메가 로고, 양극 산화 처리한 알루미늄 베젤 링의90개가 넘는 도트 마커숫자 90 옆으로 도트 마커가 장식되어 있습니다. 이 시계의 세컨즈 서브 다이얼, 30분 카운터와 12시간 카운터 그리고 센트럴 크로노그래프 기능은 오메가 코-액시얼 마스터 크로노미터 칼리버 3861로 구동됩니다.
오메가를 대표하는 시계로 나사의 달 탐사에 사용된 시계입니다. 기계식 수동 무브먼트에 42mm의 케이스 크기, 검정색 다이얼, 크로노그래프와 타키미터 등의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1969년 달 탐사 이래 현재까지 디자인이 거의 그대로 유지되는 것은 그만큼 완성도 높은 시계란 이야기겠죠.
최근 기계식 시계 트렌드 중 하나로 과거 자사의 유명 제품을 복각하는 것을 꼽을 수 있는데, 문워치는 생산 중단 없이 50년 이상 제작/판매되고 있으니 그 자체로 클래식이고 빈티지라 할 수 있습니다. 케이스 소재 역시 큰 변화가 없어서 요즘 시계처럼 블링블링하지 않습니다. 성공의 상징이라는 롤렉스 서브마리너의 존재감과 비교하면 무척이나 수수한 외모입니다. 정가는 그 못지 않은데도요. 하지만 일부러 복각 시계를 찾는 제 취향엔 오히려 잘 맞았습니다. 그리고 여러 한정판, 파생 모델들을 보며 욕심이 더 커졌습니다.
세대/모델별 특징
구형(311.30.42.30.01.006) vs 신형(310.30.42.50.01.002)
구매를 결정 후엔 오십 년 이상 발매 된 모델 중 어느 세대 모델을 구매해야 할지 알아봐야 했습니다. 한정판이나 파생 모델이 아닌 일반 모델을 구매하려고 보니 아무래도 가시권에 있는 것이 현행과 직전 세대 구형 모델이었어요. 둘의 외형은 비슷하지만 -관심 없는 사람이 보기엔 똑같죠-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가장 큰 차이는 역시 무브먼트겠죠. 구형 문워치는 1997년부터 판매 된 모델인만큼 구형 1863 무브먼트를 사용하고 있고, 신형은 여러모로 향상된 3861을 탑재했습니다. 둘의 차이는 아래와 같습니다.
<오메가 1863>
유서 깊은 수동 와인딩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 달에서 착용한 칼리버의 새로운 버전. 로듐 도금 마감. 파워 리저브: 48시간
<오메가 3861>
코-액시얼 이스케이프먼트가 장착된 수동 와인딩 무브먼 트. METAS에서 15,000가우스 이상의 자기장 환경에서도 영향을 받지 않는 탁월한 항자성을 입증 받은 마스터 크로노미터. 실리콘 밸런스 스프링이 장착된 프리 스프렁 밸런스. 로듐 도금 마감, 스트레이트 제네바 웨이브의 브릿지. 파워 리저브: 50시간
1861 | 3861 |
크로노그래프 스몰 세컨즈 타키미터 투명 케이스백 |
항자성 크로노그래프 크로노미터 마스터 크로노미터 인증 스몰 세컨즈 타키미터 투명 케이스백 |
구형 문워치의 무브먼트는 달 탐사에 사용된 321 무브먼트를 대량 생산용으로 개량한 구구형 831 무브먼트를 개량한 버전입니다. 일부 부품에 차이가 있는 1861/1863으로 나뉘는데 기본적인 성능은 같습니다. 직접 태엽을 감는 수동 무브먼트에 파워 리저브 48시간으로 평범한 사양입니다. 핵 기능이 없는 것에서 꽤 구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요즘 무브먼트보다 오차가 심하고 자성, 충격에도 약하다고 해요. 반면 3861은 1863의 약점들을 개선한 고성능 무브먼트입니다. 높은 정확도를 가진 제품에 부여되는 마스터 크로노미터 인증에 항자성, 충격에 강한 코엑시얼까지. 리테일 가격이 백만원 넘게 인상됐음에도 신형에 대한 평가가 훨씬 좋은 이유입니다.
사파이어 글라스 모델을 구매하면 시스루백을 통해 무브먼트를 볼 수 있습니다. 보기엔 둘 다 아름다워 보이지만 성능은 꽤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거기에 크기와 두께가 미세하게 줄었고, 브레이슬릿의 완성도가 높아진 것이 신형의 장점입니다. 가격 빼고는 모든 점에서 신형이 좋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
사파이어 vs 헤잘라이트
거기에 전면 글라스와 후면 케이스 구조에 따라 구형과 신형이 각각 두 모델로 나뉩니다. 전면 글라스의 소재에 따라 사파이어 크리스탈 모델과 헤잘라이트 글라스 모델로 불리고요. 사파이어 글라스는 스크래치에 강해서 대부분의 고급 시계에서 사용되는 소재입니다. 운모로도 불리는 헤잘라이트 글라스는 문워치의 기본 사양이라는 오리지널리티, 돔형 글라스의 곡률이 좀 더 아릅답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가격은 사파이어 크리스탈 모델쪽이 백만원 가량 높습니다.
가장자리 곡률이 헤잘라이트쪽이 좀 더 자연스럽게 제작되어 있어서 문워치 고유의 디자인이 좀 더 돋보이는 것이 헤잘라이트 모델의 장점입니다. 반면 사파이어 글라스는 구조상 가장자리에 흰색 테두리가 보이는 '밀키링' 현상이 있습니다. 처음엔 크게 신경 쓰이지 않지만 한 번 인지하면 계속 신경 쓰일 수도 있어요.
위 사진을 보면 밀키링이 도드라집니다. 실제로 보면 이 차이가 꽤 커서 같은 시계인데도 운모 모델의 디자인이 더 멋져 보입니다. 때문에 관리의 어려움을 감수하고도 헤잘라이트 모델을 선택하는 분들이 많다죠.
거기에 백케이스 구조에 차이가 있습니다. 사파이어 크리스탈 모델은 무브먼트를 볼 수 있는 시스루 백, 헤잘라이트 모델은 케이스로 막힌 솔리드 백 방식입니다. 이 역시 헤잘라이트 모델 쪽이 오리지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전면 밀키링의 단점보다 시스루백의 장점을 더 크게 생각해서 비교 후 사파이어 글라스 모델을 선택했어요.
다음으로 밴드. 메탈 브레이슬릿과 가죽, 패브릭 밴드 모델 중 하나를 고를 수 있습니다. 각자의 선호도가 있겠지만 브레이슬릿이 별도 구매 가격이 높기 때문에 대체로 메탈 브레이슬릿 모델을 구매 후 다른 밴드를 추가하는 것이 좋습니다.
결과적으로 대상 모델은 총 넷.
1. 구형 헤잘라이트
2. 구형 사파이어
3. 신형 헤잘라이트
4. 신형 사파이어
그리고 구형 사파이어 모델을 중고로 구매했습니다. 충분히 안정된 구형 모델의 가격에 이점이 있었고, 바뀐 무브먼트가 매력적이지만 기존 문워치 역시 긴 시간 검증된 제품이라는 믿음이 있었거든요.
거기에 압도적인 '덕후 박스'의 존재도 맘에 들었습니다. 물론 구성품인 루페나 플레이트, 스트랩, 툴을 실제 사용할 일은 없겠지만 어차피 이 시계도 필수품이 아닌걸요.
시계를 깨끗이 닦고 제가 좋아하는 스트랩을 제가 좋아하는 나토 밴드로 교체했습니다. 브레이슬릿보단 가죽 스트랩과 나토 밴드를 주로 사용하게 될 것 같아요. 첫인상은 매우 좋습니다. 42mm라지만 실제 다이얼 크기는 가지고 있는 40mm 시계와 비슷해서 18cm인 제 손목에 넘치지 않고 맞습니다. 어떤 밴드를 둘러도 잘 어울리는 것도 맘에 들고요.
그동안 여러 시계들을 경험해보고 바꿔 차 보고 싶었다면, 마흔이 되니 평생 착용할 하나의 시계를 갖고 싶어졌습니다. 오래 고민한 건 아니지만 오메가 문워치라면 수십 년 하나만 차기에 충분할 거란 믿음이 있습니다. 어떤 시계보다 매력적인 스토리가 있고, 앞으로도 큰 변화 없이 다음 그 다음 세대로 이어질 것 같아 좋습니다. 앞으로 재미있게 차 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