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하게 한 상, 푸짐해서 실패?
청국장 하면 늘 아버지의 호통과 창문 여시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나신 아버지는 청국장이란 음식을 결혼 후 어머니를 통해 처음 접하셨고 그 향(?)에 십수년간 적응을 하지 못하셔서 어머니가 저녁식사로 청국장을 하신 날엔 한겨울에도 창문을 활짝 여셨습니다. 향으로 대표되고 건강으로 설명하는 청국장 그리고 그와 가장 잘 어울리는 보리밥. 이 둘을 메인 테마로 한 식당이 있어 다녀왔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한 말이지만 이 가게의 꾸밈없는 이름이 담백한 음식과 참 많이 닮았습니다. 청국장과 보리밥 잠실점에 다녀왔습니다.
사실 잠실점이지만 신천역에서 가깝고 가깝다고 해도 꽤 거리가 있는 편입니다. 바로 앞에 9호선 지하철 공사중이니 개통되면 접근성은 크게 향상 되겠네요.
식당은 총 2층으로 되어 있고 테이블과 룸까지 꽤 많은 좌석이 있습니다. 이날은 평일에다 저녁식사 시간이 지난 아홉시쯤 방문해 매장이 한산했습니다.
메뉴는 보리밥과 청국장을 메인으로 수육, 두루치기, 떡갈비 등의 고기 메뉴이 추가되는 정식이 인기가 있다고 합니다. 이날은 수육 정식을 주문했고 밑반찬이 상에 올려졌습니다. 샐러드부터 각종 나물과 콩을 이용한 다양한 밑반찬이 푸짐합니다. 저 중 두부와 함께 무친 나물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정식 주문시에 밥을 쌀밥과 보리밥, 쌀/보리밥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좋았습니다. 예전엔 참 많이 먹었는데 요즘 도통 먹지 못하는 꽁보리밥을 주문했습니다.
놋그릇에 보기좋게 담긴 꽁보리밥. 빙글빙글 재미있는 식감과 씹을수록 고소한 맛 때문에 좋아합니다. 더불어 나물을 넣고 비빔밥을 해 먹기에도, 청국장과 함께 먹기에도 쌀밥보다 더 좋습니다.
청국장을 담은 뚝배기에 불을 올리고 수육 정식의 주인공격인 수육이 상에 놓이며 식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고기는 구릿빛으로 맛깔나게 삶아져나오고 미나리 무침과 무김치를 선택해 싸먹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와 함께 보리밥에 넣어 비벼먹을 수 있는 다양한 종류의 나물이 함께 제공됩니다. 이렇게 보니 수육에 청국장, 나물 비빔밥까지 총 3가지 색다른 식사를 즐길 수 있는 정식 메뉴입니다. 정식 가격이 13000원인데 가격대비 메뉴 구성의 다양함과 푸짐한 양에서 좋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밑반찬과 청국장 모두 간이 강하지 않은 점 역시 제가 이 식당에 좋은 인상을 받은 점이었습니다. 청국장 그리고 보리밥으로 건강식을 표방하는만큼 음식의 염도가 높지 않아 담백하게 즐길 수 있고 덕분에 자극적인 것에 길들여진 사람들도 먹다보면 '왠지 건강해지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겠습니다.
테이블에 준비된 '청국장과 보리밥 맛있게 즐기는 법'
가만히 보니 우리 어머니가 자주 하시던 말씀이라 익숙합니다. 다만 저는 가장 중요한 마지막 줄을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 그래서 요즘 집에서 통 보리밥을 먹을 수 없나 봅니다.
이렇게 색색의 나물을 보리밥 위에 올려 비빔밥을 준비합니다. 평소 비빔밤을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저 푸짐한 나물들을 그냥 돌려보낼 수 없어 잘 먹지 않는 시금치 나물까지 몽땅 올려보았습니다.
나물을 올린 보리밥 위에 이 곳의 특제 소스인 청국장 비빔장을 올려 간을 맞춥니다. 나물에 이미 간이 되어 있으니 비빔장을 넣기 전에 미리 맛을 보라는 이모님의 말씀. 하지만 역시 나물 간이 강하지 않기도 했고 여기 와서 이 청국장 비빔장 맛을 보지 않을 수 없으니 소심하게 두 스푼 넣어 비벼 먹습니다. 고추장 소스보다 고소한 맛이 강해 제 입맛에는 아주 좋았습니다. 점심 메뉴로 이렇게 비빔밥만 먹어도 아주 든든하겠다 싶습니다.
이렇게 밥을 다 비빌때쯤이면 청국장이 보글보글 끓습니다. 두부와 호박으로 맛을 낸 청국장을 작은 그릇에 담으면 수육과 비빔밥, 청국장까지 한 상 즐길 준비가 끝납니다.
본격적인 식사, 역시나 고기에 가장 먼저 손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제철 미나리 무침과 무김치를 고기와 함께 올려 상추 등 쌈채소에 싸먹으면 늦은 저녁의 서운함이 싹 가실 정도로 든든한 기분이 듭니다. 평소 하나만으로 든든한 메뉴들을 한번에 세가지나 즐길 수 있으니 웰빙이란 말이 무색하게 포식을 즐기게 됐습니다. 음식이 짜지 않아서 원없이 들어간 것도 큰 이유 중 하나입니다.
게다가 밥을 먹고 난 후에는 후식 코너에서 달콤한 미숫가루 슬러시와 청국장 과자, 강정, 찐감자 등의 주전부리를 즐길 수 있습니다. 식사가 워낙 든든해서 스낵은 맛만 보았는데 저 미숫가루 슬러시가 아주 좋더군요. 아주아주 달콤해서 이 곳에서 유일하게 '건강하지 않은'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이렇게 식사부터 후식까지 늦은 밤 푸짐하게 즐겼습니다.
마지막 나오는 길, 후식 코너에 있던 청국장 쌀과자와 강정을 별도로 구입할 수 있는 것이 반갑더군요. 강정은 흔히 먹을 수 있는 것과 그리 다르지 않은데 청국장 쌀과자가 고소한 맛과 뻥튀기 같은 독특한 식감 때문에 인상적으로 남았습니다.
청국장과 보리밥이라는 메뉴 자체도 그렇지만 염도가 높지 않은 음식들 덕분에 다른 곳보다 더 '건강한' 음식점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제 동선과 조금 거리가 있어 자주 방문하지는 않겠지만 먹는 내내 부모님 모시고 꼭 다시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곳이었습니다. 이것저것 다양하게 맛보느라, 그러다 배가 무척 든든해 만족스러웠던 청국장 정식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