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다 지난 봄. 지나간 일들도, 지나간 사람도 지난 계절처럼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다시 꽃을 보기를 기다리는 계절 동안 여름의 햇살이, 가을의 단풍이, 가을의 눈꽃과 입김의 따스함이 마음의 빈자리를, 그리움을 채워줄 수 있을까. 노랑색은 과연 봄 만의 색일까, SIGMA DP2
스무살의 내 가장 아름다운 추억을 꼽아 보자면 갑자기 내린 소나기에 여자친구 손을 잡고 나름 커다란 다리를 뛰어서 건넜던 일이다. 근처에 버스정류장도 없고 다리 중간이라 택시도 잡을 수 없어서 그냥 무작정 손을 잡아 끌고 뛰었는데 지금이야 영화 속 장면처럼 낭만같아도 그 땐 젖은 머리며 옷이며 추워서 떠는 이 부딪히는 소리에 얼마나 미안했던지. 얼마 전 운전을 하다 그 다리를 지나치면서 잠시 스무살때의 그 느낌이 되살아나 가슴이 먹먹해지며 그 때 뭣도 모르고 젖은 머리가 섹시하다는 말을 서로 건넸던 너무 어렸던 시절이 눈물나게 그리워졌다. 8년이 지난 지금의 내가 그 소나기를 다시 맞게 된다면, 다시 그렇게 누군가의 손을 움켜잡고 뛸 수 있을까. 아마 지금은 갈아입을 옷에, 주머니에 든 휴대전화 걱정에 ..
한방울 한방울 빗방울이 새겨지고 또 흘러내려 사라지는 창문을 보고 있다보면 예전의 난 멍하니 이 비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누구를 생각했는지 궁금해진다. 머리가 비었는지 가슴이 죽었는지, 비어버려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 그저 시선뿐인 응시 이제는 그리 반갑지 않은 비 오는 날, SIGMA DP2
영화처럼 시작된 '손편지'의 이야기가 오늘이 일년 째 되는 날. 홍대 앞 그 친구가 잘 아는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내가 좋아할 거라며 추천한 옛날식 카페에서 정성으로 내린 커피를 마시며 십년 전 편지를 서로 보면서 얼굴도 빨개지다가 조금씩 떠오르는 그시절 얘기로 두시간을 훌쩍 보낸다. 뜻밖의 선물을 받고 기쁘고 고마워하고 다음엔 어떤 곳을 가볼지 궁금해하며 아직 생소한 길을 걸으며 차마 다 못한 얘기를 한마디라도 더 쏟아내다가 돌아가는 길엔 오늘 시간이 너무 짧았다며 투덜대본다. 이렇게 하루를 보내고 돌아오는 길엔, 왠지 정해진 인연이란 게 정말 있을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