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포스팅을 통해 후지필름 X100 시리즈의 오랜 팬이며 이만큼 제 취향에 맞는 카메라도 없다고 말해 왔습니다만, 얼마 전 영입한 X100V를 일주일만에 방출했습니다. 이유를 꼽자면 좋은데, X100V 시리즈에선 이 이상 바랄 것도 바랄 수도 없을만큼 잘 나온 카메라인데 왠지 맘이 안 간달까요? 제 카메라 기변 역사에 최단기 방출로 남을 X100V에 대한 소감을 마지막으로 정리해 봅니다. 아래는 지난 포스팅입니다.
후지필름 X100V 감상 - 1.시리즈의 오랜 팬이 보는 X100V
후지필름 X100V 감상 - 2.바뀐 렌즈는 흐릿하지 않다던데?
후지필름 X100V 감상 - 3.후지는 감성일까, 화질일까? (vs 라이카 M10)
이상적인 올인원 카메라, 단 목적에 맞는다면.
렌즈 일체형 카메라의 장점이라면 동급 기준 렌즈 교환식 카메라보다 휴대성이 뛰어나고 이미지 품질과 성능이 최적화 된 것입니다. 때문에 여행/일상용 또는 서브 카메라로 사용할 때 최고의 효율을 보입니다. 그간 다양한 일체형 하이엔드 카메라가 탄생, 소멸하는 동안 후지필름 X100 시리즈가 굳건히 지킨 이유도 이런 장점을 잘 활용했기 때문이고요. 거기에 디자인과 인터페이스에서 느껴지는 감성까지.
X100 시리즈 고유의 매력은 X100V에서도 짙게 느껴집니다. 예쁘고, 작고, 가볍고 거기에 화질과 성능까지 좋아져서 플래그쉽이 아니라면 여느 최신 카메라에 꿀리지 않습니다. 단순히 최신이라 가장 좋은 것이 아니라, X100 시리즈의 약점들을 두루 보완한, 시리즈의 완성형에 가깝습니다. 일상 스냅과 거리 사진, 여행용으로 사용할 올인원 카메라를 찾는다면 X100V은 적어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만한 제품이에요.
높은 화소, 평이한 화질
2600만 화소로 X100F의 2400만 화소에 비해 소폭 증가했습니다. 200만 화소뿐이라 쩨쩨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APS-C 포맷에서 3000만 화소 이상의 고화소는 오히려 득보다 실이 많기 때문에 화소수는 앞으로도 현행을 유지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고해상도 동영상 촬영을 위해서라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출시 후 2년이 지난 현재도 최신 이미지 센서인 X-Trans CMOS 4의 결과물에 대해선 불만이 없습니다. 오히려 APS-C 포맷의 한계치까지 성능을 향상시켰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화소수나 고감도 이미지 품질에서 풀 프레임 이미지 센서와 비교해도 그 차이가 크지 않거든요. -물론 최신/플래그쉽 풀 프레임 카메라와는 얘기가 또 다르지만-
머잖아 후속 제품인 X100VI에서 X-Trans CMOS 5가 탑재되겠지만 이보다 더 좋아질 여지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센서의 성능은 훌륭합니다. 실제로 X 시리즈의 상위 제품인 X-T4, X-Pro3에서도 같은 센서를 사용하고 있으니 이미지 품질만으로 차기 제품의 차별화를 가져가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센서의 성능이 곧 결과물의 품질로 이어지냐고 물으면 그건 얘기가 좀 다릅니다. 붙박이 렌즈의 한계가 있거든요.
아래는 조리개 값에 따른 결과물의 차이를 비교한 것입니다.
F2 최대 개방에서의 해상력 열세가 심하지 않지만 뚜렷하게 보이고 조리개 값이 높아지면서 점차 나아집니다. 가장 많이 사용하는 F2-8 구간의 이미지를 비교하면 그런 경향이 뚜렷합니다. 다만 결국 말끔하게 해소되지 않는달까요. 최상의 결과물을 보이는 F8에서도 아쉬움이 완전히 가시지 않습니다. 좋게 말하면 화질이 고른 편이고 반대로 말하면 그게 그거라고 할 수 있겠죠. 이미지 센서에 비해 렌즈의 성능이 부족해 나타나는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이미지를 100% 확대한 것이라 일반적인 촬영/감상 환경에서는 이 정도로 신경 쓰이지 않을테고 다른 요소를 고려하면 X100V의 화질은 합격점입니다. 그저 '더 좋을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해서 아쉽다'는 얘기.
어두울 때 발휘되는 X-Trans CMOS 4의 능력
동세대 경쟁 모델에 비해 여러모로 뒤떨어지는 라이카 카메라를 사용하는 제게는 X100V의 고감도 이미지 품질이 그저 고마울 뿐입니다. ISO 6400의 고감도에서도 꽤나 깨끗한 결과를 보이는데 APS-C 포맷이 이만큼이나 발전했구나 하며 놀라요. 이면조사형 센서가 사랑받는 이유겠죠. 거기에 F2로 조리개 값이 밝아서 야간/실내 대응 능력도 좋습니다. 손떨림 보정이 여전히 없다는 점이 아쉽지만서도.
심도 표현의 제약
23mm F2, 환산 35mm 후지논 렌즈는 전천후로 활용할 수 있는 렌즈지만 렌즈 교환식 카메라에서 기대하는 얕은 심도 표현에는 제약이 있습니다. 풀프레임보다 작은 APS-C 포맷, 배경 흐림에 불리한 23mm 광각 등. 그나마 근접 촬영에 F2 최대 개방 조리개 값을 활용하면 어느 정도 연출이 가능하다지만 얕은 심도, 아웃 포커스 효과를 즐긴다면 X100V은 추천할 만한 카메라는 아닙니다.
물론 이는 X100 시리즈의 공통적인 특징이고 개성입니다. 아마 X100V를 구입하려는 분들 중 상당수가 이에 대해 인지하고 있을 테고요. 거기에 제 촬영에서도 얕은 심도 표현의 비중이 높지 않아서 이점은 장/단점을 논하기는 어렵습니다. 작은 렌즈에 너무 많은 것을 바랄 순 없을 테니, 차라리 환산 50mm에 F1.2 내지 F1.4의 조리개 값을 갖는 X200(?) 시리즈 출시를 바라보는 게 나을 지도 모르겠네요. 실현 확률은 없어 보이지만.
1/2000초, 내장 ND 필터
렌즈 셔터를 사용하는 이 카메라의 셔터 속도는 최단 1/2000초입니다. 전자식 셔터로 이를 더 줄일 수 있지만 플리커나 젤로 현상 등 전자 셔터의 단점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기계식 셔터를 우선해 사용하게 됩니다. 그리고 F2에서 1/2000초는 아쉬울 때가 많습니다. 빛이 충분한 낮에는 노출 과다 때문에 개방 조리개 값을 설정하기 어렵거든요.
이를 해소하기 위해 내장 ND 필터가 채용됐습니다. 약 4스톱 효과로 야외 개방 촬영에서 상당한 효과가 있습니다. 이것만 잘 활용해도 X100V의 활용도가 꽤 넓어지는 느낌이에요. 켜고 끄기가 좀 번거롭지만.
원형 보케는 F2 전용
개방 촬영에서의 크고 선명한 원형 보케. 이는 인물/정물 촬영 등에서 결과물을 더 아름답게 만듭니다. X100V 역시 개방 촬영에서 원형 보케를 연출할 수 있고요. 하지만 조리개 값에 따라 바뀌는 보케의 모양이 다소 아쉽습니다. F2에서는 기대만큼의 선명한 원형 보케를 만들지만 F2.8부터 다각형의 형태로 바뀝니다. 큰 불편사항이 아닐 수도 있지만 보케 표현이 F2로 제한된다는 점이 올인원 카메라로서 못내 아쉬웠어요.
장점이 많은 10cm 접사
10cm까지 다가갈 수 있는 근접 촬영은 최단 촬영 거리가 70cm로 제한된 라이카 카메라 사용자에게 몹시 탐나는 것입니다. 게다가 이전 세대까지 이어지던 개방 촬영에서의 소프트 현상이 말끔히 해결되기도 했고요. 특히 제가 즐겨 하는 음식 촬영에서의 만족도가 높다 보니 라이카 카메라를 대신할 올인원 카메라로 탐을 냈던 거고요. 다만 광각 렌즈의 왜곡은 여기서도 때때로 아쉬움이 있습니다.
총평 - 웰 메이드의 헛점
X100V를 짧게나마 사용하면서 X100 시리즈 시대의 정점을 지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APS-C 포맷으로는 상한선에 가까운 화소수, 카메라의 컨셉을 고려하면 차고 넘치는 AF 성능, 내심 기대도 하지 않았던 4K 동영상 촬영과 틸트/터치 LCD까지. 이 모든 것들이 10년 넘게 고수해 온 아날로그 디자인 & 인터페이스 위에 얹어지니 앞으로 더 좋아질 수 있을까 싶더라고요. 전체적인 성능 역시 렌즈 교환식 X 시리즈의 것들을 적극 수용하면서 감성을 빼고 봐도 꽤나 경쟁력 있는 카메라가 됐습니다.
다만 제가 X100V를 빠르게 방출한 것은 너무나도 잘 만든 나머지 X100 시리즈 고유의 매력이 희미해졌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간 시리즈를 사랑해 온 사용자들의 기대를 충족시키 위해, 그리고 제품 자체의 경쟁력을 의식한 나머지 많은 것들을 수용/반영한 X100V의 매끈함, 편안함이 영 낯설었습니다. 전작인 X100F 까지도 이 시리즈는 제게 독보적인 매력을 가졌지만 X100V를 사용하는 동안 비슷한 화질/성능의 렌즈 교환식 X 시리즈들과 자꾸 비교를 했습니다. 비슷한 모양, 크기, 가격 사이에서 저울질을 하는 여러 개의 추들 중 하나가 된 거죠.
그래도 십여 년 전 X100의 패키지를 처음 열었을 대의 기분, 다음날 첫 촬영을 하며 느낀 소소한 즐거움이 남았습니다. 애착을 만들었던 특유의 불편함도요. 근사하고 유능해 진 X100V에선 그것들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더라도 그간 열광하고 누렸으니 그걸로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