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이번 여름의 위로를 꼽는다면 낮과 밤 쉴새 없이 펼쳐지는 아름다운 하늘이겠죠. 특히 붉고 노란 빛, 종종 분홍과 보랏빛으로 물드는 노을을 보는 재미가 대단합니다. 더위가 한 풀 꺾인 요즘엔 이 축제같은 일몰을 기대하는 맘에 해질녘만 되면 엉덩이가 들썩이는데요, 지난번 노들섬 노들 여행에 이어 이번엔 아예 한강 다리 위로 노을을 마중나가 봤어요. 결과는 성공.
https://mistyfriday.tistory.com/3703
이번 여름 몇 번에 걸쳐 노을 사냥(?)에 나섰지만 난지 한강 공원에서, 노들섬과 선유도, 서울숲에서 생각처럼 탁 트인 뷰를 맞을 수 없었기에 이번엔 아예 한강 다리 위에서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목적지는 이전에 야경 감상차 다녀왔던 달맞이 근린공원 아래 있는 동호대교. 철제 구조물과 밤에 들어오는 조명의 색이 아름다운 곳이죠. 이날은 더위가 채 가시지 않은 8월 초였는데, 오후 여섯시쯤 도착해 해넘이를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오랜만에 걸어서 건너보는 한강 대교 풍경. 강남으로 넘어가는 방면 왼쪽으로 탁 트인 풍경이 펼쳐집니다. 저 멀리 잠실 롯데타워도 흐릿하게나마 보이고요. 이렇게 쉬운 것을 왜 그동안 한강 공원의 무성한 수풀 뒤에서 발 동동 굴렀는지. 생각보다 일몰 시간이 늦어서 결국 걸어서 동호대교를 왕복했습니다. 이렇게 한강 다리를 걸어서 걸으면 낯선 곳을 여행하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이 날 일몰 시간은 저녁 7시 50분이었어요. 압구정에서 다리 반대편으로 건너가 해가 지는 서쪽을 바라보며 걸었습니다. 일곱시가 넘으니 대기가 조금씩 금빛으로 물들어 햇살 닿는 지하철의 금속 표면이 달아올랐습니다. 강 위라 바람이 꽤 불어서 더위로 고생하진 않았지만, 기다렸던 시간이 다가오니 마음이 분주해졌습니다. 챙겨 간 카메라를 손에 꼭 쥐고 다리 위 좋은 위치를 찾았습니다.
늦은 오후의 붉은 햇살은 서울의 재미없는 아파트, 빌딩들도 낭만적으로 보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붉게 상기된 듯한 이 시간의 빛을 개인적으로 좋아해서 한 발짝 움직일 때마다 가로로, 세로로 연거푸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이 날의 노을 쇼. 그간 감탄할 만큼 아름다운 노을이 펼쳐질 때는 늘 실내에서 작은 조각만 들여다 보는 것으로 만족했는데 이날은 운이 맞았어요. 여느 날보다 화려한 노을이 펼쳐졌고, 저는 어느 때보다 좋은 자리에서 그 시간을 맞았습니다. 주황색으로 시작해 붉은 빛으로 달궈지는 대기를 원없이 감상했습니다. 매일 이 다리를 지나는 듯한 사람들도 멈춰 서서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을 정도로 특별했습니다.
그리고 이 절정의 시간에 강 위를 가르며 여름을 만끽하는 사람들의 모습까지. 2021년 여름에 많은 장면들을 봤지만 이 날 본 하늘과 다리 위, 강물 위의 모습들이 가장 많은 수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요즘 서울 여행하며 느낀 것은 생각보다 한강 위에서 여가를 즐기는 분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패들 보드와 웨이크보드, 요트 등.
노을 쇼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해는 도시의 스카이라인 너머로 사라졌고, 잔열과 남은 색들이 대기 위에 퍼졌습니다. 해넘이의 골든 타임은 해가 진 순간이 아니라 해가 사라지고 난 후라는 것을 그간 왜 몰랐을까요. 발길 돌리다 아쉬움에 다시 달려간 적이 한두번이 아닌데.
이날 노을은 참으로 변화 무쌍해서 몇 분 사이로 색이 완전히 바뀌어 버렸습니다. 구름의 형태도 수없이 뭉치고 흩어지기를 반복했고요. 늘 그렇듯 마지막 순간 구름의 형태가 가장 드라마틱했고, 붉은색에서 보라색, 푸른색으로 이어지는 그러데이션 역시 가장 선명했습니다. 두 시간의 기다림이 아깝지 않은 날이었어요.
하늘이 완전히 깜깜해진 뒤에도 여운이 가시지 않아서 동호 대교 위. 달맞이 근린 공원 위에서 서울의 야경 몇 장을 더 담았습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발이 묶이면서 요즘 틈 날 때마다 서울과 근교 여행을 하고 있는데 그때마다 내가 꽤 멋진 도시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화려한 노을로 기억될 2021년 여름이 끝나기 전에 몇 번 더 노을 여행을 해 볼 계획입니다. 다음엔 어디가 좋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