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새 기계식 시계를 들였습니다. 최근에 애플 워치와 노드그린 시계가 컬렉션에 추가됐지만 평소 기계식 시계를 좋아해서 아무래도 그 기분이 다릅니다. -아무래도 가격대가 다르기 때문이겠죠-
얼마 전 백화점에서 습관처럼 오리스 매장에 들어선 게 시작이었고, 그날 저녁부터 검색을 시작해 약 40시간만에 결제를 완료했습니다. 한 눈에 반한다는 게 이런 거겠죠.
그 날 진열장 속에서 반짝이던 많은 시계들 중 제 마음을 사로잡은 모델입니다. 오리스의 파일럿 워치 시리즈인 빅 크라운 포인터 데이트 80주년 에디션. 홈페이지와 사진들을 통해 이미 본 시계지만 실물로 보니 그 느낌과 감흥이 완전히 다르더라고요. 이번 기회에 알게 됐는데, 이 모델은 1930년대 출시된 파일럿 워치 빅크라운 시리즈의 80주년을 기념하는 모델이라고 합니다.
소개 페이지에는 그 당시 것으로 보이는 시계도 등장하죠. 바늘과 세컨드 창 등 디자인은 현행 빅크라운 포인터 데이트 모델과 다르지만 다이얼 바깥쪽을 31개의 날짜 표시로 두른 것과 철도 모양의 구분선 등 몇몇 포인트 때문에 연속성이 느껴지긴 합니다.
헤리티지를 강조하기 위해 케이스를 브론즈로 제작한 것도 특징입니다. 일반 모델에도 브론즈 케이스가 있지만 그것들을 조합해서 80주년 기념 모델이란 이름을 붙인 것이죠. 거기에 브론즈 케이스와 가장 잘 어울리는 짙은 녹색 다이얼까지. 그 외에는 일반 모델과 크게 다를 것이 없어서 다른 한정판처럼 금세 완판되는 인기를 누리진 못하고 있습니다만, 취향에만 맞는다면 이만큼 매력적인 시계가 또 있을까 싶습니다. 오리스 빅크라운 포인터 데이트 80주년 기념 모델의 사양은 아래와 같습니다.
사양
모델 번호 : 01 754 7741 3167-07 5 20 58BR
무브먼트 : Oris 754, base SW 200-1. 오토매틱
파워 리저브 : 38시간
진동 수 : 28,800 A/h
케이스 소재 : 브론즈, 스테인리스 스틸(후면)
케이스 지름 : 40mm
전면 유리 : 돔 사파이어 글라스, 내부 무반사 코팅
후면 유리 : 미네랄 글라스
방수 : 50m (5 bar)
러그 폭 : 20mm
몇 년 전부터 시계 시장에서 트렌드로 자리 잡은 브론즈 케이스가 눈에 띕니다. 이런 복각 시계들에 어울리는 빈티지한 느낌을 내기 좋으면서, 수분과 땀 등에 의해 발생하는 파티나 현상이 '나만의 시계를 만드는 즐거움'으로 마니아층에 어필하고 있습니다. 현재 보유 중인 식스티 파이브도 주변부나마 베젤에 브론즈 소재가 적용된 모델을 사용할만큼 개인적인 선호도가 높아 이번에도 브론즈 케이스를 선택했어요. 볼록한 돔형 글라스도 매력적입니다.
무브먼트는 오리스 754 오토매틱 무브먼트인데, 셀리타 제조 범용 무브먼트를 수정한 것으로 특별히 장점이 되긴 어렵습니다. 38시간 파워 리저브도 내세울 것 없고요. 후면 유리를 미네랄 글라스로 한 꼼꼼한 원가 절감도 단점으로 꼽고 싶어요. 케이스 지름은 40mm, 러그 폭 20mm로 일반적인 남성 시계의 크기입니다.
오리스 빅크라운 포인터 데이트 모델은 2021년 8월 기준 27가지 모델을 판매 중입니다. 이 중에선 같은 케이스에 밴드 소재/색깔만 바꾼 것도 있지만 그것을 제외해도 케이스 소재와 다이얼 컬러, 기념 에디션 모델 등 선택의 폭이 대단히 넓습니다. 특히 전설적인 야구 선수를 기념하는 클레멘테 에디션과 오리스의 고향인 홀스타인 에디션은 일반 모델과의 차별점이 확실하죠. 그에 비하면 제가 구매한 80주년 에디션은 노멀한 편에 속합니다.
구매 결정 후 두 모델을 놓고 고민했습니다. 80주년 기념판이 여러모로 끌렸지만 이미 같은 브랜드의 다이버즈 식스티 파이브 그린 다이얼 모델을 사용 중이라 다른 색상 모델을 구매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블루 다이얼 모델을 옆에 놓고 마지막까지 고민했는데 브론즈 케이스에 가치를 두기로 했습니다. 블루 다이얼 모델은 베젤부분에만 브론즈 소재가 적용됐고 케이스는 스테인리스 스틸로 제작됐습니다.
언박싱
저는 신라 면세점 사이트에서 백화점 정가보다 약 30% 저렴한 가격에 구매했습니다. 한시적 국내 판매가 허용된 모델들을 각 면세점 웹사이트에서 시중 가격보다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으니 혹 관심 있으신 분들은 찾아 보세요.
저는 결제 후 배송까지 약 2주의 시간이 걸렸습니다.다만 제품이 오래된 재고인 듯 패키지의 상태가 좋지는 못했습니다. 거기에 구형 상자 패키지를 받은 것이 아쉬웠어요. 최근 오리스는 이 종이 상자 패키지를 간소화하고 가죽 소재의 여행용 케이스를 포함시키고 있다고 하죠.
상자를 열면 시계가 있습니다. 2주간의 기다림이 길었던 터라 반가움이 컸어요. 이미 매장에서 실물을 보았지만 막상 내것이 되면 느낌이 또 다르다죠? 브론즈 소재의 케이스와 녹색 다이얼, 클래식한 디자인의 시침, 분침 그리고 빈티지 스타일 스트랩까지 완벽한 클래식 룩의 시계입니다. 현재 같은 오리스 브랜드의 다이버즈 식스티파이브 그린 다이얼 모델을 사용하고 있으면서도 이 시계를 선택한 이유고요. 같은 그린-브론즈 구성인데도 디테일 때문에 느낌이 꽤 많이 다릅니다.
상자 아래 책자에 보증서와 캐런티 카드 등이 들어 있습니다. 면세점 구매라 그런지 오리스 정품 버클이 추가로 들어 있습니다. 기본 버클이 케이스와 같은 브론즈 소재로 되어 있는데, 그래서 범용인 실버 스테인리스 스틸 버클을 추가로 증정한 것 같습니다.
남성용 시계로 가장 보편적인 40mm 지름의 케이스. 스테인리스 스틸 소재와 느낌이 완전히 다른 브론즈 소재의 느낌이 돋보입니다. 멀리서 보면 은은한 금빛으로 보이기도 하면서 반짝이는 실버 스테인리스에서 느낄 수 없는 빈티지한 매력이 있어요. 2,3년 전에 출시된 비교적 신제품이지만 마치 오래된 시계처럼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겠죠.
거기에 '코인 베젤'로 불리는 베젤의 디테일은 클래식한 느낌을 더욱 강조합니다. 용두에도 같은 마감 처리를 했는데 마치 태엽이 맞물린 것처럼 보이죠. 기본적으로 스테인리스 스틸 소재에 비해 광이 덜한 브론즈 케이스지만 새제품에는 반질반질 윤기가 나게 처리를 해 놓았습니다. 이제 이 케이스가 사용하면서 점차 탁해지고 녹이 슬게 되겠죠.
많은 브랜드에서 브론즈 케이스에 녹색 다이얼을 공통적으로 채택할만큼 둘의 조화는 탁월합니다. 거기에 다이얼의 숫자 인덱스와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연상시키는 시침,분침의 디자인도 마음에 들어요. 날짜를 표시하는 방식 역시 다른 시계들과 다른데, 별도의 날짜 창을 다이얼 뒷면에 배치해 표시하는 일반 시계와 달리, 이 시계에는 날짜를 표시하는 별도의 날짜침이 있습니다. 빨간색 포인트가 있는 긴 바늘이 그것입니다.
매장에선 비닐에 싸여 있어서 상세히 보지 못했는데, 가까이서 들여다 본 케이스의 마감과 완성도가 기대 이상입니다. 전체적으로 헤어라인이 보이는 브러시드 처리가 되어 있어서 폴리시드 마감보다 흠집이 눈에 띄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오리스 로고가 양각으로 새겨져 있는 용두는 반짝이는 폴리시드 마감이 되어 있어 상대적으로 눈에 띄네요.
케이스 뒷면은 스테인리스 스틸 소재와 시스루 백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처음엔 의아했는데 이 부분에 브론즈 소재가 적용되지 않은 것은 피부 알러지 때문이라고 하네요. 무브먼트를 볼 수 있는 시스루 백은 늘 환영입니다. 오리스의 상징인 레드 로터도 잘 보이네요. 특별히 내세울 것 없는 셀리타 수정 무브먼트지만 그래도 막혀있는 것보단 이렇게 보이는 것이 좋습니다.
가죽 스트랩을 체결한 모습입니다. 옆면에 스티치가 없는 심플한 형태의 가죽 스트랩으로 자연스럽게 태닝 된 브라운 컬러, 검은색 옆면 마감이 빈티지 스트랩의 기본 공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러그쪽에 두 줄 스티치가 없는 것이 조금 아쉽지만요. 브라운 컬러가 브론즈 케이스와 잘 어울립니다. 그러니 제짝 스트랩으로 선택된 거겠죠. 지난 포스팅을 찾아보니 식스티파이브 기본 스트랩은 스티치 포인트가 있네요. 같은 스트랩인 줄 알았는데.
https://mistyfriday.tistory.com/3499
아쉬운 점이라면 스트랩이 다소 두꺼운 편입니다. 예전에 다이버즈 식스티 파이브용 가죽 스트랩 역시 두께 때문에 착용감이 그리 좋지 못한데 이번에도 이 스트랩은 고이 모셔두거나 방출하고 별도 구매한 스트랩들을 사용하게 될 것 같습니다.
스트랩에는 도구 없이 스트랩을 교체할 수 있는 이지 링크 구조가 적용돼 있습니다. 이거 한 번 사용해 보면 그 다음부턴 이것만 찾는다죠.
스트랩 끝단의 스티치 포인트. 러그쪽에도 있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래도 가죽의 품질이나 단면 마감 등은 특별히 나무랄 데 없이 좋습니다. 오리스가 스트랩을 잘 만들기로 유명하다더군요.
이렇게 오리스의 그린 다이얼 시계 두 개를 갖게 됐습니다. 같은 브랜드 시계를 두 개 구매하는 건 정말 피하려고 했는데 이만큼 마음에 드는 디자인과 스토리, 가격을 만족시키는 시계가 없었어요. 가장 좋아하는 녹색으로 컬렉션을 구성한 것, 다이버 시계인 식스티 파이브와는 다른 느낌으로 연출할 수 있다는 것으로 만족하며 잘 운용해봐야겠습니다.
제 블로그 유입 중 적지 않은 분들이 오리스 시계에 관심을 갖고 계시던데, 조만간 오리스의 육/공 시계 둘을 비교해 봐야겠습니다.
'파일럿 시계 빅크라운 포인터 데이트 vs 다이버즈 워치 식스티 파이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