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낮 최고 기온은 30도가 넘지만 7월보다 살만한 느낌이죠? 입추가 지나니 거짓말처럼 아침 저녁으로는 선선한 바람도 불고 낮에도 그늘만 잘 찾아 다니면 견딜만 해졌습니다. 우리 모두 고비를 잘 넘겼습니다.
무더웠던 올 여름, 모두를 위로한 것은 그림같은 하늘과 노을이었죠. 요즘 SNS에 하늘 사진이 도배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매일 하늘에선 멋진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한 주의 시작인 지난 월요일에도 파란 하늘과 그림같은 구름에 이끌려 카메라를 챙겨 나섰습니다. 어디를 가볼까 하다가 주변 지인들에게 추천받은 은평 한옥마을에 다녀왔어요.
구파발 인근에 있는 한옥 마을. 서울에서 이 정도 규모의 한옥마을이 새롭게 조성된 것이 흥미롭습니다. 예전엔 전주를 가야 했는데 이제 멀리 갈 필요가 없어졌네요. 다만 상점과 식당이 주가 된 전주 한옥마을과 달리 은평 한옥마을은 실제 주민들이 한옥 형태로 지은 집에 거주하는 마을이라 느낌은 오히려 북촌 한옥마을쪽에 가깝습니다. 물론 이 좋은 뷰(?)를 십분 활용하는 카페들과 음식점도 많습니다만.
생각보다 규모가 꽤 큽니다. 전체를 다 둘러 보는 데 한 시간 가까이 소요될 정도였어요. 이제 막 지은 한옥 형태의 집들은 너무 깨끗하고 매끈해서 전통 가옥의 느낌은 덜하지만 사각형의 도시 건물들보다야 훨씬 정겹고 운치있죠. 청명한 날씨와 우아한 기와 지붕의 형태는 제법 먼 길을 찾아 온 보람을 느끼게 했습니다.
다른 한옥마을들도 그렇지만 은평 한옥마을의 즐거움 역시 크고작은 골목들에 있습니다. 멀리서 보기엔 비슷비슷해보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한옥의 틀을 유지한 채 집 구조나 창의 방향, 층 수가 제각각이라 그 하나 하나를 구경하는 재미도 있고요. 그래서 이 날 한옥 마을의 거의 모든 골목들을 다 둘러본 것 같아요.
정겨운 담장까지. 개인적으로 이곳은 유명한 카페에 가지 않더라도 골목 산책만으로 찾아올 가치가 있을 것 같아요. 특히 이 날처럼 날씨가 좋을 때는 깨끗한 한옥이 더 돋보입니다.
집집마다 심은 나무와 꽃들을 보는 즐거움도 있습니다. 여러 꽃과 나무, 화분의 색들이 한옥을 이루는 선, 색과 어우러져 만드는 조화가 정말 멋집니다. 이 날 낮기온이 32도까지 올라 한낮엔 팔과 목 뒤가 따가웠지만 그래도 카메라 챙겨 여기까지 오길 잘했다 싶었어요. 사진 찍기에 좋은 곳입니다. 물론 거주민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요.
제가 방문한 월요일은 유명한 카페들의 휴무일이 몰려있는 날입니다. 주말을 막 지난 터라 외부 방문객들이 많지 않아서 한적하게 여유 부리며 골목을 산책하고, 꽃 구경을 할 수 있었습니다. 종종 주민들과 얼굴을 마주보기도 했는데,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표정에 여유가 느껴졌어요.
한낮의 더위에 지쳐서 유명하다는 카페에 들어가 봤는데, 커플들로 빈자리 없이 가득 차서 발길을 돌렸습니다. 이미 이름이 많이 알려졌는데, 주민들과 서로 불편함 없이 공유하는 명소가 되면 좋겠습니다.
고즈넉한 전통 가옥이 가득한 동네지만, 길 하나 건너면 네모 반듯한 현대식 건축물이 공존하는 재미있는 동네입니다. 아직 곳곳에 건물이 한창 올라가고 있을 정도로 이제 막 태어난 그리고 알려지기 시작한 동네인데 앞으로 더 성숙해질 모습이 기대됩니다. 서울에 이렇게 산책하기 좋고, 사진 찍기 좋은 곳이 생겨 반갑습니다. 다음에 날 좀 선선해질 때쯤 다시 가보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