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를 확인해보니 여행 둘째날, 아직 주변 풍경이 낯설고 여행의 설렘이 식지 않은 날이었습니다.
이제 막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되는 날이었지만 별다른 계획이 없었습니다. 그저 숙소에서 나와 십 분 거리에 있는 해운대 바닷가를 찾아갔습니다. 마치 본능처럼.
계획이 전혀 없는 여행은 아니었지만 둘째날이었던 화요일은 통째로 비워져 있었습니다.
가장 큰 이유를 꼽자면 날씨. 부산에 도착한 첫 날, 11년만의 황사 주의보로 눈앞이 온통 노란색이었습니다.
마치 눈 앞에 렌즈 필터를 끼운 것 같기도, 그런 색 고글을 쓴 것 같은 답답한 날씨였어요. 저멀리 풍경은 먼지에 가려 보이지도 않았고.
두 사진을 비교해보면 하루만에 얼마나 큰 날씨의 변화가 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첫 날 '이런 날씨에는 어디도 갈 수 없겠다.' 싶어 둘째날 화요일 일정을 비워뒀는데 거짓말처럼 화창한 날씨에 아침도 거르고 우선 가까운 바다로 향했던 것이죠. 그토록 보고싶던 바다로.
시리도록 푸른 하늘. 이날은 종일 날이 좋았습니다. 일기예보에는 미세먼지가 없는 날이 아니었는데도 전날과 대비돼 청량하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삼 년 전엔 한창 공사중이던 엘시티는 이제 하늘을 찌르듯 솟아 그 위세를 자랑합니다.
날씨는 종종 여행의 행복을 크게 좌우합니다. 화창한 풍경을 보고 햇살 맞으며 가만히 바닷가에 앉아만 있어도 좋을 것 같던 이날처럼.
전날엔 얼마 보이지 않은 사람들이 이 소소하지만 벅찬 행복을 즐기러 달려 나온 것인지, 해운대 바닷가에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방파제로 이어지는 콘크리트 보도에 주저 앉아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근사했습니다.
그 반대편으로는 푸른 바다와 그 풍경을 향해 줄을 드리운 어부들의 모습들이 있었어요.
양쪽으로 펼쳐진 모습이 너무나도 큰 대비를 보이는 것이 해운대의 매력이자 비애 아닐까요.
한쪽으로는 해변과는 아무래도 어울리지 못하는 고층 빌딩들이 늘어선 모습, 반대로 고개를 돌리면 수십년 전과 그리 다를 것 없는 한적한 해안가 풍경. 개인적으로는 후자쪽이 훨씬 좋습니다만.
이렇게 좋은 날엔 그냥 걷기만 해도 즐겁습니다. 해운대에서 오전을 다 보내고 뒤늦게 '오늘 뭐하지?'라는 생각이 들어 이틀 후 일정이었던 해운대 스카이 캡슐 열차 타기, 청사포 해변 가기, 달맞이 고개 벚꽃 놀이를 이날로 앞당겼습니다. 열차의 창문 밖으로, 언덕 위 카페의 큰 창문 너머로, 머리 위를 가득 채운 분홍빛 벚꽃잎 사이로 화창한 하늘을 감상했습니다. 새삼 날씨에 감사하며 하루를 보냈습니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제게 바다와 고층 빌딩이 맞닿은 해운대의 모습은 여전히 신기합니다.
한적한 강릉 바다같은 여유는 없어도 즐비한 식당과 카페, 상점들 덕분에 편하게 여행을 즐기기에 편한 것은 부정할 수 없죠.
누군가에게는 일상과 여행의 중간 어디쯤인 동네 해운대.
다시 찾게 될 날도 이렇게 화창하면 좋겠습니다. 그땐 사람들처럼 가만히 앉아 해 질 때까지 있어 보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