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 년 전에 반해 다음 여행 때 꼭 다시 와야지 다짐했던 부산 영도 흰여울 문화마을을 얼마 전 다시 다녀왔습니다.
'재방문 때는 날이 화창했으면 좋겠다'는 기대와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조금씩 바뀌어 이제 젊은 사람들이 찾는 핫플레이스의 모습을 갖춘 것을 보니 다시 오길 잘했다 싶었습니다.
영도에 오기 전 보수동 책방골목과 깡통시장을 들렀습니다. 깡통시장 앞에서 버스를 타니 다리를 건너 영도로 넘어오고 곧이어 흰여울문화마을 정류장에 닿았습니다. 바다 너머 섬을 이렇게 편하게 올 수 있다니.
벚꽃이 다 떨어지기 전이라 바닷가 큰 나무에 가득 매달려 있거나 이미 떨어져 바닥을 물들인 분홍빛 꽃잎들이 마을 풍경을 예쁘게 단장해 놓았더군요. 버스 정류장에서 마을 산책로를 향해 내려가는 길에 본 분홍색 벽 사이 벚꽃이 떨어져 있는 풍경이 시작부터 맘을 설레게 했어요. 저 너머에 바다까지 보였으니까.
아쉽게도 이날도 날이 잔뜩 흐렸습니다. 삼 년 전 왔을 때도 날이 꾸물꾸물해서 아쉬웠는데.
영도 그리고 흰여울 문화마을의 매력이라면 역시 바다를 따라 마을 산책로를 걷고, 카페에 앉아 차를 마실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마을 카페들은 서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싸울 필요 없이 어디 세워도 오션 뷰가 될 정도로 풍광이 넉넉하거든요.
마을쪽 산책로와 마을 아래 바닷가 산책로 둘 중 하나를 골라 걸어도 되고, 순서대로 선택해 왕복해도 좋습니다.
저는 마을에 들어설 때는 마을 골목을, 섬을 빠져나갈 때는 무지개 계단을 타고 내려가 해안가 산책로를 걸었습니다.
바닷마을이란 말이 참 어울리는 곳입니다. 때때로 낯선 모양과 인테리어의 상점이 바다와 겹쳐 보이면 외국 어느 멋진 도시의 풍경같기도 합니다. 대부분 바다가 바로 보이는 큰 길로 걷게 되지만 좁고 미로처럼 구석구석 뻗어있는 골목을 탐험하듯 돌아다니는 것도 흰여울 문화마을을 즐기는 좋은 방법입니다.
물론 여전히 많은 주민들이 사는 곳이니 소음 등에 유의해야겠죠. 그래도 지난 번 왔을 때보다 눈에 띄게 상점과 카페들이 늘었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큰 도로쪽에 몰려 있어서 예전처럼 숨 죽이고 걷지는 않았습니다. 안쪽 골목 곳곳에도 카페나 작업실 등등 새 공간들이 만들어지고 있어서 몇 년 지나면 이곳은 주민들보다 외지 사람들이 많은 관광지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기억력이 나쁜 탓인지, 지난 번과 다른 길로 걸었던 건지 큰 길의 모습은 대체로 익숙한데, 그 주변으로 처음 보는 상점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기념품 파는 곳, 사진 찍어주는 곳, 아이스크림 파는 곳 등등. 국내 유명 관광지들을 돌며 드는 생각들인데, 배경만 다르고 먹거리나 기념품 등은 어딜 가도 비슷비슷해지는 것이 요즘따라 더 아쉽습니다. 당분간은 국내 여행만 다녀야 해서 그런 것 같아요.
그래도 왼쪽엔 재미있는 집과 가게들, 오른쪽으로 넓게 펼쳐진 바다를 번갈아보며 걷는 것은 다른 곳에서 쉽게 누릴 수 없는 이곳만의 호사입니다. 상점들은 기꺼이 '여기서 사진 찍고 가세요'라고 자리를 마련해 두고, 카페들은 찾는 이들이 더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도록 최대한 크고 예쁜 창을 달아 놓았습니다.
삼 년 전에 갔던 피라(Fira)를 다시 찾았습니다. 이보다 예쁜 카페들이 많이 생기긴 했는데, 좀 더 가볼까 다음 가게도 봐볼까 하며 걷다가 마을 끝자락에 있는 여기까지 왔습니다. 규모는 작은 곳이지만 뷰가 참 좋은 곳입니다. 새로 생긴 힙한 카페들처럼 북적대지도 않아서 여유롭게 차 마시기도 좋고요.
돌아올 때는 긴 계단을 따라 내려와서 파도 그림이 바닥에 그려져있는 산책로를 걸었습니다.
종일 날이 흐렸던 데다 바닷바람까지 불어서 날이 꽤 쌀쌀했어요. 그래서 풍경을 감상하기보단 최대한 빨리 섬을 빠져 나오기 위해 바쁘게 걸었습니다. 또 와야지, 그땐 꼭 날이 화창했으면 좋겠다 같은 생각들을 하면서.
고양이를 심심찮게 마주칠 수 있는 바닷마을. 주인 없는 고양이들을 위해 마을 곳곳에 먹을 것들을 뿌려두는 마음씨가 여전히 남아있는 곳.
이런 여유가 사라지기 전까지는 이 마을이 지금처럼 아름다울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때까지는 부산에 올 때마다 들러 바닷마을의 변화를 조용히 지켜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