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멘 마니아의 주말은 늘어지게 늦잠 잔 후 브런치로 라멘 한 그릇 때우는 즐거움이죠. 주말과 휴일에는 최대한 외출을 자제(?)했던 지난날 회사원 시절. 그래도 가끔은 이렇게 화창한 날 일찌감치 몸 움직일 때도 있습니다. 핑계는 사진이 되기도, 공원 산책이나 친구가 되기도 하죠. 이날은 서울역 근처에 있던 터라 오랜만에 그곳에 다시 갔습니다. 유자 향 나는 라멘집, 유즈라멘.
그때가 벌써 2년 전이죠, 첫 방문 때 평일 점심 회사원들 러시로 한참을 기다렸던 생각이 나서 방문 전에 걱정을 좀 했지만 오히려 주말 점심때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가게 전경이며 메뉴가 그대로인 것이 얼마나 반갑던지. 어려운 시기에 갑작스레 사라지는 집들이 많다보니 요즘엔 이런 것에도 반가움을 느낍니다.
빈티지한 가구들과 주인의 취향 묻어나는 귀여운 피규어들로 채워진 이색적인 분위기 역시 그때와 같습니다. 적어도 이곳에서는 시간의 흐름이 그리 빠르게 느껴지지 않는군요.
메뉴는 역시 유자가 든 유즈라멘이 중심입니다. 소금 베이스의 유즈시오, 간장 베이스인 유즈쇼유 라멘이 있고 매운 맛을 더한 메뉴가 더 있습니다. 원래 있었는지 모르지만 츠케멘도 있네요. 예전에 왔을 땐 트러플 백합 라멘이 한정 메뉴로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없네요. 메뉴 설명이 자세하게 되어 있어서 처음 방문하는 분들도 선택에 그리 어려움이 없겠습니다.
저는 이집의 유즈시오 라멘을 가장 좋아합니다. 유자향이 강하기 때문에 육수는 담백한 소금 베이스 육수를 선택하는 편이 좋더군요. 이곳 라멘의 특징은 닭육수와 해물 육수를 섞어 육수가 부담스럽지 않고 깔끔한 맛을 낸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토핑도 넉넉하게 올라가 있습니다. 차슈는 이베리코 돼지고기를 쓴다고 합니다.
아, 이날 아쉬운 소식이 있었는데요. 본래 유즈라멘은 루꼴라가 토핑으로 올라가는 것이 다른 지비과의 큰 차별점이었는데 루꼴라 농장 침수로 조달이 불가능해 줄기콩이 대신 토핑으로 나왔습니다. 개인적으로 그리 선호하지 않는데다 루꼴라와 유자의 달콤 쌉싸름한 조합에는 비할 수 없어서 아쉬움이 컸습니다.
그래도 육수맛은 여전하더군요. 테이블마다 유자 소스가 비치돼 있어 원하는만큼 더할 수 있습니다. 다만 단맛이 강하기 때문에 많이 넣으면 라멘이 맛 없어요.
제가 이 집 라멘을 좋아하는 이유에는 면도 있습니다. 자가 제면하는 집은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지만 제 입맛에는 이 집 면이 곡향도 적당히 나고 삶기도 적당해서 좋더군요. 아, 저는 조금 덜 삶은 면을 주문해 먹습니다. 그리고 면과 육수는 무제한으로 추가가 가능하다니 저같은 파이터들에게 제격이죠.
이날은 사이드 메뉴로 가라아게를 추가해봤는데, 이게 아주 별미입니다. 튀김이 바삭하게 잘 되어있고, 갓 튀겨 나와 입에서 김이 나올 만큼 따끈합니다. 고기에 염지가 잘 되어있어 맥주가 그냥 당기더군요. 그래서 맥주를 추가할 수 밖에 없었어요. 다음부턴 라멘과 함께 꼭 가라아게도 주문하려고요.
돈코츠 라멘처럼 종종 떠오르는 라멘은 아니지만 잊을만 할 때 찾으면 좋을 곳입니다. 깔끔한 육수와 유자 향, 잘 삶은 면의 조화가 좋아요. 특히 루꼴라와의 이색 조합이 좋은 곳인데, 다음 방문 때는 루꼴라도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