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날엔 역시 양갈비 생각이 납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이면 더더욱요.
일 년 반의 회사 생활을 마치던 날, 퇴사 기념으로 먼저 탈출에 성공한 동료들과 파티를 하기로 했습니다. 파티라고 해봐야 거창한 것은 아니고 좋은 곳에서 함께 식사하는 거죠. 모두 양고기를 좋아하고 특히 제가 몹시 좋아하는 터라 메뉴는 일찌감치 결정, 장소를 고르던 중 얼마 전 이태원에서 지나친 곳이 생각 났습니다. 깔끔한 가게 전경이 심상찮다 했더니 미쉐린 가이드 2020에 선정된 집이더군요. 상호명은 교양식사입니다.
고기집같지 않게, 아니 고급 식당처럼 꾸민 인테리어에 나란히 앉아 먹을 수 있는 바 좌석과 테이블이 있습니다. 이번엔 신경 써서 메뉴판도 찍어 왔어요. 대표 메뉴는 프렌치랙. 10개월 미만의 어린 양을 공수한 고기들 중에서도 가장 귀한 부위라고 하죠. 거기에 안심, 갈비, 등심이 있습니다. 안심은 교양식사에서만 맛 볼 수 있는 메뉴라고 해서 프렌치 랙과 안심을 주문하려 했습니다만, 최근 안심이 공수가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프렌치 랙과 등심을 주문했습니다. 미쉐린 가이드에 선정된 집이라 가격대가 높을 것으로 예상했습니다만 다른 집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좋은 날이니 맥주도 주문했죠. 메뉴판을 보니 이집은 양고기집보다는 양고기가 안주인 술집으로 보이더군요. 맥주부터 와인, 중국/일본술까지 주류가 다양했습니다. 물론 귀한 술은 가격대도 높아서 이날은 맥주로.
귀한 메뉴인 프렌치 랙과 갈비로 식사를 시작했습니다. 고기 빛깔이 좋고 손질도 깔끔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 순간이 가장 기분 좋죠. 밑반찬에 건배를 한 잔 하면서 분위기를 즐겨 봅니다.
숙련된 솜씨로 구워지는 고기들. 특히 이집은 고기 굽는 솜씨가 좋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스스로도 만족스러웠던지 직원분께서 '잘 구웠죠?'라고 말씀하셨죠.
잘 구워진 고기. 첫 점은 역시 고추냉이를 올려 먹습니다.
일 년 반의 고생(?)이 한 점에 위로받는 기분입니다. 교양식사가 다른 양갈비집과 다른 점을 하나 더 꼽으면 고기에 곁들일 향신료들이 다양한 것인데요, 고추냉이와 함께 구운 소금, 허브 솔트, 쯔란에 간장 소스, 명이나물까지 다채롭게 곁들일 수 있습니다. 이렇게 곁들임이 다양하면 고기 주문 수가 자연스레 늘어나겠죠.
이렇게 고기가 계속 구워집니다. 프렌치 랙과 갈비, 등심을 먹었는데 역시 갈비가 기름기가 가장 많고 식감이 부드러워 제 취향에 맞았고 기름기 적고 담백한 등심은 함께 간 일행들이 좋아했습니다. 사실 프렌치 랙이 가장 귀한 부위라던데 제 취향은 지방과 육향이 강한 갈비였어요. 프렌치 랙은 야스노야에서 먹은 시그니처 생 양갈비가 더 괜찮았어요.
함께 구운 토마토와 양파, 대파와도 함께 먹습니다. 이 구운 채소 때문에라도 양갈비집에 자주 가고 싶습니다. 고기의 신선도가 좋아서 양고기 특유의 향이 부담스럽지 않았고, 이른바 겉바속촉으로 굽는 솜씨도 좋았습니다. 다른 양갈비 집, 최근에 좋은 인상을 받은 야스노야나 양인환대랑 비교해 특별히 나은 점이 있기보단 세심한 배려 그리고 좋은 분위기 덕분에 즐겁게 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이 좋았어요. 아, 허브 솔트는 어떤 고기와도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집에 가져가고 싶더라고요.
세 명이서 고기 4인분을 먹고 마무리로 스프 카레를 주문했습니다. 삿포로 스타일의 스프 카레는 얼마 전에 야스노야에서 접한 적이 있어서 아무래도 그곳과 비교가 되더라고요. 야스노야의 스프 카레는 테이블에서 카레를 데워가며 먹는 것과 달리 교양식사의 스프 카레는 조리 완료 된 카레가 그릇에 담겨 서빙되는 방식입니다.
교양식사의 스프 카레의 가격은 13000원. 양은 한 명 내지 두 명이 먹을만한 양입니다. 야스노야는 2만원이 넘는 가격에 양도 좀 더 푸짐하고요. 가격도 양도 달라서 직접 비교는 어렵지만 메뉴의 구성 자체는 비슷해 보였어요. 향긋한 카레국(?)에 다양한 채소들.
카레만 비교하면 야스노야보단 교양식사쪽이 취향에 좀 더 맞았습니다. 일반 카레처럼 무겁지 않은 스프 카레의 장점을 잘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가격이나 양에 대한 만족도도 좋았어요. 여기에 마늘밥을 곁들이면 더 맛있다던데, 배가 너무 불러서 다음을 기약했습니다.
미쉐린 가이드 2020에 등록된 양갈비집이라 기대가 무척 컸습니다. 분위기와 조리 숙련도 등은 기대만큼이었고 고기의 품질과 맛은 그동안 다닌 양갈비 중 상급에 속했습니다. 제가 손가락에 꼽는 집들과 비교하면 일장일단이 있어서 최고로 꼽을만큼은 아니지만 앞서 말한 장점만으로도 좋은 이들과 다시 한 번 가고 싶은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