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히 이어가는 (전)회사 근처 맛집 썰. 그 중 오늘은 특식입니다.
퇴사 전 그간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쓰지 못했던 제 몫의 회식비를 소진하기로 결정하고, 퇴사를 이틀 앞둔 날 점심 회식을 예약했습니다. 비싸고 양 적은 메뉴를 찾던 중, 막내가 좋아하는 스시로 결정하고 법카용으로 가장 좋은 오마카세집을 찾았습니다. 회사 근처 서래마을에 괜찮은 스시집들이 많아서 가고 싶은 곳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는데, 예약이 힘들었어요. 1순위였던 스시만은 일주일치 점심 예약이 다 차 있었고 2순위였던 스시타노에 다녀왔습니다.
평일 점심 1부를 예약했습니다. 열 두시부터 한 시 반까지 진행되는 코스로 가격은 6만원입니다. 원래 가격은 7만원이지만 5주년 기념 이벤트로 할인 중이라고 하더군요. 서래마을 오마카페 가격대에선 중간쯤에 위치하는데, 스시의 구성이나 완성도 역시 중급에 위치한다고 하니 중급 스시야 중 평이 좋은 오마카세를 맛보고 싶으신 분은 스시타노 한 번 찾아보셔도 좋겠어요.
아무래도 오마카세는 하나 하나 직접 쥐어주시는 스시를 바로 받아 먹을 수 있는 바 좌석이 좋겠다 싶어 바 좌석으로 예약했습니다. 열 두시가 조금 넘어 도착했는데 이미 바 테이블은 예약 손님으로 모두 차 있었습니다. 안쪽에는 테이블 좌석도 있더군요.
사실 이렇게 비싼 스시는 처음 먹어봤어요. 법인카드라 가능한 일이죠. 최대한 촌티 안내려고 표정관리하며 들어갔는데, 정갈하게 준비된 좌석을 보고 마음이 녹아내렸습니다.
본격적인 식사에 앞서 잘 정돈된 식자재, 그리고 오늘의 담당 요리사. 예약 인원 수와 혹 못 먹는 음식이 있는지 확인 후 코스가 시작됩니다. -두근두근-
처음으로 나온 메뉴는 차완무시. 식사 전 가볍게 속을 데우고 입맛을 돋우는 메뉴라고 하죠. 저는 작은 그릇에 나오는 한숟갈짜리 일본식 달걀찜으로 알고 있습니다.
새우와 버섯, 은행 등을 올린 부드러운 일본식 달걀찜. 혹 너무 빨리 먹으면 촌스러울까봐 작은 수저도 다 채우지 않을만큼 조금씩 떠 먹었습니다. 배고플 때 깨작깨작 음식을 넣으니 갑자기 허기가 더 크게 몰려오더군요.
시작은 생선회. 방어와 이름을 기억 못하는 제철 생선을 두 점씩 올려줍니다. 그간 다닌 횟집에서의 모습을 생각하면 이 무슨 여백이며 감질나는 구성이냐 하겠지만 덕분에 한 점 한 점 음미하며 먹었습니다. 생선의 식감은 쫄깃하고 살에는 찰기가 있었습니다. 횟감이 신선하기 때문이겠지만 괜히 이렇게 한 점 한 점 감질나게 먹으니 더 맛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어서 참치. 이건 한 점씩. 게 눈 감추듯 입 안에서 녹은 두 점을 먹으며 조만간 무한리필 참치집 가서 입 안 가득 참치살을 채워보리라 다짐해 보았어요.
스시를 먹기 전에 단감을 넣은 샐러드가 나옵니다. 왜 고급 식당은 비쌀 수록 양이 적어지는지 늘 의아하지만 맛만은 정말 좋았어요. 상상하지 못한 조합이었는데, 달콤함과 고소함의 조화가 참 좋았습니다. 아쉽게도 저 드레싱의 재료가 뭔지 지금은 기억나지 않아요.
본격적으로 스시가 이어집니다. 한 점 한 점 즉석에서 쥐어 설명과 함께 먹는 스시는 좋은 식사를 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더 풍성하게 느껴집니다. 도미부터 시작해 한치, 참치 등으로 이어졌어요. 네타에 간장이 발라져 있어 따로 간장을 찍을 필요 없이 바로 먹어도 된다는 것, 왠지 영상에서 본 것처럼 손으로 집어 먹어야 할 것 같은데 괜히 눈치가 보이는 것 정도가 기억납니다.
참치 초밥은 두 점이 나왔는데 고소함이 그야말로 전에 경험한 적 없는 수준이고, 입에서 녹아내린 뒤의 아쉬움이 원망스러울 정도였습니다. 참치 뱃살 초밥은 어쩐지 식당 앞 모형 초밥처럼 예쁘게 생긴데다 맛도 가장 좋아서 기억에 남습니다.
그간 먹었던 초밥과의 차이라면 밥알 사이에 공기층이 있어 입 안에 넣고 싶을 때 밥알 하나 하나의 질감이 느껴졌다는 것, 밥 위에 올린 네타의 서로 다른 식감과 맛이 확연히 느껴졌다는 것 정도입니다.
이 날 베스트를 꼽는다면 위 사진의 초밥, 생선살 위에 성게알을 올린 초밥이었는데, 이 초밥을 포함해 몇몇 초밥은 접시에 놓지 않고 바로 손으로 받아 먹었습니다. 재료와 밥알이 흩어지기 쉽기도 하고, 바로 먹어야 제맛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어요. 친절한 주방장님이 이렇게 한 점 한 점 쥐어 포토타임까지 주신 후 받아 먹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성게알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재료가 신선해서 비린내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특유의 녹진한 맛이 탱글한 새우살, 그리고 공기층 두터운 밥알과 섞이고 흩어지면서 미각이 극대화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이어서 삶은 전복 위에 전복 내장 소스를 올린 전복 초밥, 포슬하게 익힌 고등어 살 올린 고등어 초밥, 장어 초밥 등이 이어졌습니다. 참고로순서는 사진과 다릅니다. 대략 이런 구성이라는 것 정도 참고하시면 되겠어요. 약 한 시간동안 이어지는 코스는 생각보다 구성이 푸짐해서 디저트를 먹을 때쯤에는 꽤 배가 불렀어요. 남은 회식비를 생각하면 2부 한 바퀴 더 돌고 싶었지만, 회사원의 점심 시간은 그리 여유롭지 못하니까요.
스시와 초밥 중간에 나오는 튀김, 해산물 덮밥, 마무리 우동도 기억에 남습니다. 특히 쫄복 튀김이 정말 맛있었어요. 언젠가 대만발 귀국 비행기에서 간식으로 나온 망고 젤리가 너무 맛있어서 염치 불구하고 하나 더 달라고 했던 날이 생각날 정도로.
스시로만 채우지 않고 중간중간 이렇게 다양한 메뉴가 나와서 한 시간 반이 지루하지 않고 입맛도 물리지 않았습니다. 완급 조절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무리 우동은 뭐, 그럭저럭. 아마 가장 아쉬운 것 하나를 꼽자면 이 우동이 되겠네요. 오마카세 코스만으로 허기가 가시지 않은 게 아니라면 스킵하셔도 좋을 것 같아요. 좋은 회와 초밥, 튀김으로 이어진 코스의 마무리치고는 평이했어요.
마무리로 나온 아이스크림까지 깨끗하게 비우고 약 80분의 오마카세 코스가 끝났습니다. 한 점씩 받아먹을 때는 조금 감질나기도 했지만 코스가 마무리되니 꽤 배가 부르면서도 부담스럽지 않아 만족스러운 식사였어요. 실내 분위기와 친절도, 음식 구성 모두 만족스럽습니다. 근처 스시야 중에서 꾸준히 좋은 평을 받는 이유를 알겠더군요.
먹고 나서 자연스럽게 가족, 연인, 좋아하는 사람들 생각이 나면 다른 설명이 필요 없겠죠.
더 많은 곳을 가보고 평가해야겠지만 가격이 아깝지 않은 스시 오마카세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