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간의 터키 여행에서 이제 막 돌아왔습니다.
크리스마스를 낀 연말에 어딘가로 떠나야겠다 싶어 출국 사흘 전에 티켓을 끊고, 아무런 준비 없이 무작정 비행기를 탔죠. 오죽하면 비행기에 타기 전까지 숙소도 없었고, 주머니엔 단돈 35유로와 체크카드뿐이었습니다.
그래도 평소 말하는 '떠나면 어떻게든 되더라'는 말대로, 무사히 다녀왔고 충분히 즐겼습니다.
모처럼 사진 욕심을 잔뜩 낸 여행이었습니다. 카메라를 세 대, 렌즈는 일곱 개나 챙기고 삼각대도 매고 다녔습니다. 가벼운 미러리스 카메라라 가능했던 일이었지만, 그래도 수가 워낙 많으니 매일 녹초가 돼서 숙소에선 옷도 못 벗고, 양치도 못하고 잠들기 일쑤였어요.
그래도 그렇게 바쁘게 보낸 결과, 짧은 시간동안 터키 이스탄불과 카파도키아의 여러 매력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일주일간 여행에서 담은 사진을 함께 보며 여행지로서의 이스탄불, 카파도키아의 매력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해요.
사진들은 올림푸스의 신제품 미러리스 카메라 E-M5 Mark III로 촬영했습니다.
카메라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은 이전 포스팅을 참고하세요.
아름다운 항구 풍경
이스탄불에 처음 도착했을 때, 버스의 흐릿한 창 밖으로 보이는 아야 소피아의 실루엣에 마음을 뺏겼습니다. 왼쪽으로는 바다가 펼쳐져 있고, 오른 쪽에는 커다란 돔 형태의 사원 세 개가 도시를 내려다보는 모양새가 그동안 보던 도시와는 또 완전히 달라서 두근거리더라고요.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에 있는 이스탄불에선 바다와 항구 풍경을 보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낚시꾼 가득한 갈라타 다리를 건너면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하루에도 몇 번 왕복할 수 있었고, 바닷가 근처로 식당과 상점들이 즐비해 활기가 느껴졌습니다. 모든 건 뒷편으로 아야소피아와 블루 모스크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겠죠. 제가 가 본 도시 중에서도 이스탄불은 다른 도시와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한 느낌이 있었어요.
아름다운 항구 풍경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중 하나라는 이스탄불의 아야소피아도 다녀왔습니다. 불과 4년만에 지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규모와 내부의 화려함이 압도적이었고, 유럽의 성당과 중동의 사원이 조화된 모습이 특별했어요. 이날은 특별히 오디오 가이드도 구매해 설명을 들으며 관람했는데, 숨은 이야기들이 재미있어서 이스탄불의 많은 사원 중 이곳만은 꼭 가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내부 회랑의 절반 정도가 공사 중이라 조금 아쉽긴 했지만요.
페리와 유람선, 내가 본 가장 근사한 카페
바다를 사이로 아시아 지구와 유럽 지구로 나뉘어 있는 이스탄불은 주요 지역이 페리로 연결돼 있습니다. 저렴한 가격에 이용할 수 있는 페리는 길게는 2-30분 가량 바다 위를 가르며 도시의 스카이라인과 바닷가에 있는 성과 유적들을 볼 수 있는 것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약 90분간 보스포러스 해협을 관광할 수 있는 유람선도 있지만 저는 현지인들과 부대끼며 각 지역의 매력을 둘러볼 수 있는 페리가 더 맘에 들었습니다.
세계 1위 홍차 소비국인 터키에서는 페리 위에서도 차이(çay)를 마실 수 있습니다. 2.5리라의 저렴한 가격에 바다 풍경을 보며 마시는 쌉싸름하고 따뜻한 차는 최고였어요. 페리값에 차 값을 합쳐도 천 원이 안되니 세상에 이런 카페가 또 있을까 싶습니다.
낯선 도시에서의 첫 아침
여행 첫 번째 아침은 늘 특별합니다. 출발 전 확인한 일기 예보에 이스탄불 날씨가 좋지 않아서 걱정했는데 첫 아침엔 눈부신 일출을 볼 수 있었어요. 시차 때문이기도 했고, 밤 늦게 도착한 숙소에서 내내 바깥 풍경을 그리워했기에 해가 뜨기 전에 짐을 챙겨 나섰습니다. 숙소 바로 앞이 바닷가라 오래오래 머물며 아침의 다양한 얼굴을 담았습니다.
그동안의 모든 여행에서 그랬듯, 이번에도 이스탄불에서의 첫 아침 풍경을 잊지 못할 것 같아요.
조화와 이질감의 공존, 이스탄불 거리 풍경
이스탄불의 풍경은 유럽과 아시아, 중동이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었습니다. 그 덕분에 거리 풍경 역시 다른 도시에서 볼 수 없던 장면들이 있더군요. 처음엔 이질감이 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니 이것이 터키, 이스탄불만의 모습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즐기게 됐어요. 맘 먹고 떠난 여행인만큼 열심히 사진도 찍었습니다. 멋진 사원과 바닷가 풍경, 음식도 좋았지만 다른 곳에 없는 거리 풍경이 있다는 것으로 이스탄불 여행은 만족스러웠어요.
지구같지 않은 땅, 카파도키아
이번 여행에서의 작은, 하지만 간절한 소망은 카파도키아의 열기구를 타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겨울철엔 악천후로 열기구가 뜨는 날이 극히 적다는 것을 미리 보기도 했고, 이스탄불에서도 계속 일기예보를 확인하며 카파도키아 행을 망설였지만, 실패하더라도 후회하지 않는 것이 낫다는 결정 하에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네브쉐히르로 향했습니다.
역시나 열기구는 실패했지만, 지구에서 가장 지구같지 않은 땅이라는 카파도키아의 몇몇 지역을 둘러보며 대자연에 감동했습니다.
여행지에서의 여유
카파도키아, 괴레메에서 다시 이스탄불로 돌아오던 날 역시나 아침 열기구 일정은 취소됐고 종일 제법 비가 내렸습니다. 그 김에 괴레메 시내를 둘러보며 기념품을 사고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여유를 즐겼습니다. 시골 마을인 괴레메에는 사진 속에서나 보던 올드카가 참 많았습니다. 동네 곳곳에서 까다로운 올드카를 관리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고요. 덕분에 마을 풍경이 더 멋져 보였습니다. 남미 느낌도 났고요.
미식 여행
세계 3대 미식국 중 하나라는 터키에서는 먹고 싶은 것, 가고싶은 식당이 많았습니다. 마침 물가도 저렴해서 음식은 원없이 먹고 왔어요. 식자재가 워낙 풍부한 곳이라 평범한 호텔 조식이 웬만한 유럽 고급 호텔보다도 월등히 나았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에서 백종원님이 다녀가신 이스켄데르 케밥. 페리 행선지를 잘못 알아 건너편 아시아 지구로 넘어갔는데, 마침 터미널 근처에 식당이 있어서 운 좋게 다녀왔어요. 음식도 맛있고, 한국 관광객에게 친절하기도 해서 매우 만족스러운 식사였습니다.
지금 세계에서 가장 핫한 셰프라는 솔트배의 누스렛 스테이크 하우스도 다녀왔습니다. 2019년의 마지막 여행에서 나를 위한 선물이라며 10만원짜리 통 양갈비를 혼자 시켰습니다. 동경하던 식당에 왔다는 감격에, 난생 처음 맛보는 신선한 양고기의 식감과 향은 만족스러웠지만 혼자 먹기엔 양이 너무너무 많았어요. 거기에 멋 부린다고 굽기를 미디엄-레어로 선택한 바람에 거의 생고기를 먹어야 했습니다.
그 결과 돌아올 때까지 배탈로 고생하긴 했지만, 그래도 터키 여행에서 충분히 의미있는 순간들이었어요. 그 외에도 단 것 좋아하는 제게도 힘들었던 달디 단 터키 디저트들도 기억이 납니다. 음식 얘기는 앞으로 차근차근 더 해볼까 해요.
일주일이라면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열심히 다닌 덕분에 많은 순간들을 새기고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이스탄불은 여행의 즐거움들을 폭 넓게 품고 있는 도시로, 많은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곳이에요.
앞으로 느긋하게 열어 볼 터키 사진들도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