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끝나고 남은 여름 빛이 남은 열기를 털어내던 날이었습니다. 서울역에서 약속된 일정을 마친 후, 돌아가기 전 서울로 7017에 잠시 들러 늦여름 하늘을, 열기와 사람들의 표정들을 담았습니다.
날씨가 너무 좋아 바로 들어가기 아쉽기도 했고, 마침 가방에 카메라도 챙긴 날이었거든요.
서울역과 가까운 곳에 살고, 서울로 7017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방문해 보고 싶었지만 좀처럼 기회가 닿지 않다 이렇게 우연히 갑작스레 둘러보게 됐네요.
기다림에 대한 보상인지 날씨가 정말 근사했습니다.
이 날 사진은 요즘 다시 적응 중인 라이카 M-P와 SUMMILUX-M 35MM F1.4 ASPH 렌즈로 촬영했습니다.
늦여름, 오후, 서울
서울 한복판에 조성된 고가는 풀과 나무들이 양쪽에 늘어선 탓에 그 폭이 좁아서 걷기에 좋은 곳은 아니었습니다만, 이 삭막한 빌딩숲 사이에서 이만큼 양껏 녹색을 볼 수 있는 곳이 생겼다고 하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있는 곳이 되겠더라고요. 평일 오후지만 많은 분들이 이 길을 걸으면서 서울에서는 얻기 쉽지 않은 여유를 찾는 모습이었습니다. 점심 시간을 이용해 짧은 산책을 즐기는 직장인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고요.
주변에는 고개를 힘껏 꺾어야 그 끝을 볼 수 있는 고층 건물이 그득합니다. 그래서 그 빌딩숲 사이로 생긴 이 녹색 숲의 모습이 무척 신선하게 느껴집니다. 처음엔 나무들이 놓인 모습이 어지럽게 느껴졌지만, 한 걸음 물러나서 길 전체를 보니 유럽 어딘가에서 본 듯한 근사한 도심 속 풍경이 떠오르더군요. 이 길이 또 하나의 '서울 풍경'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유리로 된 난간 너머로는 사방으로 치열한 서울 풍경이 쉴 새 없이 돌아갑니다. 차들은 어디서 그렇게 다들 모였는지 도로가 빌 틈이 없고, 버스와 지하철 입구로 쉴 새 없이 사람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그에 반해 서울로 7017 위에 있으면 그 바쁜 도시 생활이 마치 남 이야기처럼 느껴집니다. 사방으로 보이는 서울역 풍경을 사진에 담으면서, 이렇게 유심히 이 풍경을 들여다본 적이 언제였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서울역은 늘 어딘가로 떠나는, 그리고 돌아오는 길 중간에 있는 과정이었으니까요. 고개를 들어 볼 생각조차 잘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고가라는 것이 신기한 게, 땅 위에서 조금 높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갑갑한 도시 풍경에서 벗어난 느낌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 속에 있을 때 느끼지 못했던 여유도 찾게 되고요. 서울로 7017을 약 삼십 분간 걸으며 길 위보다 길 밖의 서울 풍경을 본 시간이 더 많았는데, 끝나가는 점심 시간에 발걸음을 재촉하는 회사원들의 일사분란한 움직임과 하나같이 커다란 가방을 들고 서울역에 들어가고 나오는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이 서울로를 중심으로 주변에 생긴 카페와 상점에서 전에 없던 서울의 오후를 즐기는 사람들의 표정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제가 평생 서울에 살면서도 유심히 본 적 없던 모습이었습니다.
늦여름 더위도 만만치 않아서, 서울로 7017은 삼십 여분 간 짧게 걸으며 그동안의 호기심을 채운 정도로 끝났지만, 제가 아는 가장 삭막한 도시인 서울 그리고 그 한복판에 이만한 여유가 들어섰다는 것이 무척 반가웠습니다.
그동안 유심히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서울의 풍경이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했고요. 물론 그림같은 날씨 덕이 절반 이상이었습니다만.
다음엔 해가 질때쯤 가서 분주한 서울의 퇴근 시간을 가만히 앉아 감상해봐야겠습니다. 종종 서울이 느끼고 싶어질 때, 카메라 하나 매고 가기 좋은 곳이 생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