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공기가 아직 차가운 3월 마지막 금요일 저녁, 정말 오랜만에 두물머리를 찾았습니다.
사진 아니면 산책을 핑계로 계절마다 찾던 곳이었는데 지난가을과 겨울에는 결석을 했네요. 운 좋게 근처에서 업무를 보고 야경을 보고 싶어 달려갔습니다. 일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반쯤 뛰듯 빠르게 걸었습니다.
서울 근교에 좋은 곳이 많지만 두물머리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그리고 자주 가는 포토 스팟입니다. 단순히 사진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강가로 길게 뻗어 안쪽 두물경까지 이어지는 산책로가 제가 아는 그 어떤 곳보다 좋습니다. 휴일만 피하면 사람도 그리 많지 않아서 좋아하는 노래 이어폰에 흐르게 두고 잘 닦인 길을 걷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걸음을 서둘렀지만 아쉽게도 제가 도착하니 이미 해가 거의 다 넘어가 있더군요. 도착하자마자 찍은 사진에서 아쉬움이 느껴집니다. 손에 든 카메라를 보니 2년 전 이 카메라를 처음 받아들고 왔던 곳이 이곳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생각에 빠져있는 동안 해는 능선 너머로 모습을 감췄고 풍경은 색을 잃고 탁해져 있었습니다. 일반 촬영으로는 좋은 결과물을 얻기 어려운 환경이다보니 삼각대를 펼쳐 장노출 촬영을 하기로 했습니다. 사실 두물머리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풍경이 깊은 밤의 검은 풍경이다 보니 한편으로는 마음이 설렜습니다. 마침 모여든 사람들도 찬바람에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하나둘 사라졌고요.
마치 이 넓은 두물경에 나 혼자만 있는 것 같은 느낌. 그 설렘을 담아 사진을 찍기 시작합니다. 긴 셔터 시간만큼 한 장, 한 장이 신중합니다.
파도 없이 잔잔한 두물머리 한강은 장노출로 담았을 때 실크같은 느낌으로 표현됩니다. 서울에 있는 한강도 파도가 심한 편은 아니지만 이곳의 물결이 특히나 깔끔하고 매끈하게 담기는 것도 이곳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고요.
빛이 미약하게 남은 풍경을 F13의 높은 조리개 값으로 담는 데 약 25초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덕분에 눈에 거의 보이지 않는 구름의 형태와 능선의 모습들이 담겼지만 이것만으로는 역시 아쉬워서 밤이 조금 더 깊어지길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이윽고 눈으로는 나무의 모습마저 희미하게 보이는 깊은 밤이 됐습니다. 가로등과 건물의 불빛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 두물머리 풍경은 해가 진 후에는 셔터 속도를 확보하기가 어렵습니다. 조리개 값을 비교적 밝은 F4-5.6 정도로 설정해도 셔터 속도와 ISO 값에 따라 노출 부족이 발생하거든요. 특히 장노출 촬영의 관건인 셔터 속도가 중요한데, 가급적 긴 속도를 바라게 되죠. 그것이 좀 더 오랜 시간 이 풍경을 담아줄 테니.
60초의 셔터 속도
올림푸스 카메라의 사양 중 제가 좋아하는 것이 셔터 속도입니다. 포컬 플레인 셔터를 사용하는 미러리스 카메라 대부분이 최장 60초의 셔터 속도를 다이얼 조작만으로 설정할 수 있거든요. 경쟁 제품 격인 캐논, 소니의 미러리스 카메라는 최장 30초까지 셔터 속도 설정이 가능합니다. 장노출 촬영을 좋아하는 제게는 이점이 매우 마음에 듭니다. 최상위 제품인 E-M1 Mark II / E-M1X뿐 아니라 엔트리 제품인 E-PL9도 동일한 60초 셔터 속도를 설정할 수 있는 점도 인상적입니다.
밤이 아주 깊어 배의 형태도 가물가물할 때 60초의 장노출 촬영을 시작했습니다. 조리개 값을 F5.6으로 낮췄지만 그래도 광량이 부족해서 ISO 감도를 400으로 설정해야 했습니다. 60초간 풍경의 움직임을 담은 사진은 한강이 마치 얼음처럼 매끈하게 담겼습니다. 1분이라는 긴 시간이지만 풍경은 거의 변하지 않았고 떠 있는 배만 좌우로 아주 조금씩 흔들린 것만이 사진에서 보입니다.
평범한 풍경이라도 장노출 촬영을 적절히 활용하면 환상적인 느낌으로 담을 수 있습니다. 조명은 빛 갈라짐이 더해져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 아름답고 어둠 속에 숨은 보석 같은 야경이 사진 속에 담깁니다.
명암이 워낙에 강하기 때문에 종종 기대 이상으로 강렬한 결과물을 얻을 수도 있고요.
한 장에 1분이 넘는 촬영 시간, 촬영 후에도 그만큼 이미지 처리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야경 촬영 때는 유독 시간이 빨리 갑니다. 저는 주로 좋아하는 앨범이나 팟캐스트를 들으며 시간을 보내는데, 그것마저 끝나면 고요한 풍경 속에서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러다 보면 쓰고 싶은 글, 담고 싶은 장면, 여행하고 싶은 곳이 차곡차곡 머리와 마음에 쌓입니다. 이런 매력 덕분에 야경에 점점 빠져들고, 좀 더 긴 시간 동안 찍을 수 있는 올림푸스 카메라를 선호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음엔 또 어떤 곳의 야경을 담게 될지 기대됩니다. 그때도 올림푸스와 한 장에 60초씩 함께 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