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생겨도 어쩌겠어, 내새끼인데.
20년이 다 돼가는 옛날 유선 이어폰과 블루투스 무선 통신을 탑재한 최신 무선 이어폰의 비교라니.
이 포스팅은 그다지 유용한 정보가 되지 않는 것은 물론 구매 결정에도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 확실합니다.
순전히 개인적인 취향에 의한 이 비교는 어쩌면 큰 맘 먹고 구매한 신제품에 대한 불만이자, 제조사에 대한 불평에 가까울 수 있습니다.
그래도 어딘가에 저와 같은 궁금증을 가진 분이 계실거란 생각에 사진과 짧은 소감을 남겨보려 합니다. - 사실 기계처럼 찍어둔 사진을 소비하기 위함이지만-
얼마 전 수명을 다한 애플 에어팟을 대신할 무선 이어폰으로 뱅앤올룹슨의 이어셋(EARSET)을 구매했습니다. 평이 그리 좋은 제품이 아니지만 큰 고민 없이 구매를 결정한 이유에는 몇 번의 재구매를 거치며 10년 넘게 사용하고 있는 유선 이어폰 A8에 대한 신뢰와 애정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A8의 무선 버전으로 출시된 이어셋을 영입해 유/무선 세트를 갖추고 싶은 욕심도 있었고요. -아이고 부질없다-
이어셋 패키지를 개봉하면서 마침 옆에 놓여있던 A8이 눈에 띄었습니다. 출시 십 년이 훌쩍 지난 현재도 여전히 아름다운 A8의 디자인을 보니 직속 후계인 이어셋과 나란히 놓고 비교해 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리고 곧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 유선 이어셋(A8)과 무선 이어셋은 누가 보더라도 형제입니다 -
사실 A8의 무선 버전에 대한 요구는 아주 오래됐습니다. 어느 영화에서 A8 디자인을 컨셉으로 한 무선 이어폰이 소품으로 등장하기도 했고요. 특유의 클립형 디자인과 고음 위주의 플랫한 음색을 무선으로 충실히 구현해낸다면 비싼 가격을 지불할 용의가 있다는 분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저도 그랬고요.
하지만 현재의 기술로 무선 이어폰을 A8 디자인 그대로 만들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뱅앤올룹슨의 노오력이 부족했을 수도 있고요.
제조사는 A8의 DNA를 이어받았다는 점을 내세웠지만 그것이 오히려 이 제품이 혹평을 받는 데 일조했습니다. 나란히 놓고 비교해보면 얼마나 그 차이가 큰지 누구나 알 수 있죠.
멀리서 보면, 혹은 흘려 보고 스쳐 보면 둘은 꽤나 닮았습니다. 특히 A8의 트레이드마크인 클립의 디자인 때문에 두 제품에 대해 잘 알지 못하더라도 둘이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음은 쉽게 유추할 수 있죠. 제조사에서 제공하는 제품 사진들도 각도를 잘 조절해 찍어서 A8에 근접할만큼 매력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아쉽게도 저는 그런 실력이 없어서 이어셋의 단점들을 감추기 어렵더군요.
사실 두 이어폰의 디자인은 그 틀이 같습니다. 오픈형 이어폰으로 반원 형태의 클립(행거)을 이용해 유닛을 귀에 고정시키는 방식입니다. 메탈 소재로 제작된 클립이 보기에 아름다우며 동시에 내구성 역시 좋습니다. 귀에 닿는 부분에는 고무를 덧대 착용감을 고려했습니다. 스피커(드라이버) 지름 역시 대동소이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둘의 디자인이 크게 다른 것은 역시 스피커를 둘러싸고 있는 유닛의 존재 때문입니다. 아날로그 방식의 유선 이어폰은 가느다란 케이블 하나로 유닛에 소리를 전달하는 단순한 구조인 데 반해, 무선 이어폰은 통신 모듈과 회로, 배터리 등이 탑재돼 상대적으로 유닛부가 비대해졌습니다. 게다가 소재가 플라스틱으로 변경되면서 오리지널의 우아한 느낌이 퇴색됐습니다.
그 중에 이어셋이 나아 보이는 것은 떨어지는 내구성으로 지적받는 A8의 스피커 그릴보다 단단한 설계가 적용됐다는 것입니다. 이른바 '철망 눌림' 현상이 심한 편에 속했는데 이어셋은 확실히 나아졌습니다.
유닛의 비대함은 두께에서 엄청난 차이로 나타납니다. 오리지널의 간결함은 온데간데없고 그저그런 무선 이어폰 중 하나가 됐다고 평가해도 할 말 없는 수준입니다. 복잡한 회로와 통신 모듈, 내장 배터리가 필요한 무선 이어폰의 구조상 한계에 따른 것이지만 외형상 조금 더 세련되게 처리할 수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게다가 USB-C 타입 충전 단자 역시 본체에 직접 배치했으니 좌,우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이보다 더 줄이기는 어려웠겠죠. 개인적으로 충전 편의성 때문에 뱅앤올룹슨의 이전 제품인 H5를 내친 적이 있어서 이어셋의 충전 방식 자체는 좋아하지만 저것이 최선이었을까 싶습니다. 유닛부의 무게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라 착용감이 유선 이어폰에 비해 체감할 수 있을만큼 떨어지거든요.
거기에 로고도 과거 Beoplay 브랜드의 로고를 배치하다보니 저렴한 이미지가 한층 가중됩니다. -불만,불만,불만-
하지만 구매 한 달이 지난 현재도 이어셋을 잘 사용하고 있는 것은 유선 이어폰 A8보단 못하지만 소재와 디자인에서 현재 시중에 있는 블루투스 이어폰 제품들 중 상위권에 분류할만큼의 완성도를 충분히 갖췄고, 사운드 역시 애플 에어팟보다 만족스럽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어렵게 유/무선 세트를 갖췄으니 또 다른 대안이 나타날 때까지는 잘 써봐야지요.
- 억지로 날려보는 하트 -
유선 이어폰 A8과 디자인을 비교하면서 장점이라곤 그라파이트 브라운 컬러의 고급스러움을 제외하면 하나도 없다고 할 만큼 아쉬움이 많습니다.
그래도 제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A8의 후손이라는 이유만으로 적지 않은 애정이 가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대로 그치지 말고 언젠가 지금보다 더 발전된 기술로 완벽한 무선 버전 A8 이어폰이 출시되길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