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일본 라멘을 먹던 날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처음 먹어 본 일본 라멘은 걸죽하고 느끼한 국물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면이 익지 않은 채 나와서 제대로 익혀 달라고 했던 기억도 납니다. 그런 제가 지금은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라멘을 먹고, 주변에도 라멘집을 추천하는 나름 라멘 마니아가 됐으니 재미있는 일이죠.
시간이 날 때마다 서울, 기회가 되면 지방까지 라멘 투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서울 라멘 문화의 중심지 홍대 인근 라멘집들에 대한 소감들을 정리하려고 합니다. 방문한 곳 중 홍대와는 거리가 멀거나 도저히 좋은 말이 나오지 않는 곳들은 제외했습니다.
홍대 일본 라멘집 10곳 탐방기 - 1.합정-상수 신흥 강자 편
홍대 일본 라멘집 10곳 탐방기 - 2.홍대 터줏대감 라멘집
홍대 일본 라멘집 10곳 탐방기 - 3.TV 방송 라멘집
포스팅의 내용은 제 개인적인 취향에 따른 주관적인 평가 혹은 소감으로, 메뉴는 해당 음식점의 대표 메뉴 또는 제가 선호하는 기본 돈코츠 라멘을 기준으로 했습니다.
첫 번째는 합정-상수 라인의 신흥 라멘 강자 세 곳입니다.
세상 끝의 라멘
영업시간 : 11:30 - 22:00
브레이크타임 : 15:00 - 17:00
휴무 : 매주 월요일
합정역에 있는 세상 끝의 라멘은 오픈한 지는 오래되지 않았지만, 수많은 홍대 라멘집들 사이에서 차별화 된 메뉴와 맛으로 입소문을 타고 있습니다. 최단 기간에 세 번이나 방문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메뉴/가격
이 집의 대표 메뉴는 오사카식 쇼유 라멘 끝라멘. 그리고 중화 소바인 첫라멘과 하루 20그릇 한정 미소 파이탄이 있습니다. 라멘 종류를 고른 뒤 토핑에 따른 구성을 선택하는 방식입니다. 토핑 없이 국물과 면으로 간소하게 즐길 수 있고 달걀과 차슈, 멘마 등의 고명을 잔뜩 올려 푸짐하게 맛 볼 수도 있습니다. 전체 토핑을 선택한 끝라멘의 가격은 만 원. 비싼 편이죠.
맛
개인적으로 쇼유 라멘을 좋아하지 않지만 이 곳 끝라멘은 아주 맛있게 먹었습니다. 돈코츠보다 부담히 적은 맑은 국물은 감칠맛이 강해서 간이 센 편인데도 자꾸 떠먹게 됩니다. 면은 얇은 호소멘이 아닌 적당히 두께가 있고 곧은 면인데 맑은 국물과 잘 어울립니다. 무엇보다 고명으로 올린 수비드 조리 목살, 닭가슴살은 입에서 녹는다고 표현할 정도로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쇼유라멘 좋아하시는 분은 한 번쯤 방문해 볼 만한 곳입니다.
- 미소파이탄 -
끝라멘도 맛있지만 개인적으로 제가 좋아하는 메뉴는 닭뼈 육수에 미소를 섞은 미소 파이탄입니다. 하루 20그릇 한정 판매한다고 하는데, 점심/저녁으로 수량을 나눠 놓았는지 저녁 시간에도 일찍 가면 맛을 볼 수 있습니다.
특이사항
간이 조금 센 편이지만 라멘에 대한 많은 고민과 노력이 녹아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 면 추가 가격이 500원이라는 것이 대식가인 제게는 좋은 소식이었습니다.
길(吉)라멘
영업시간 : 평일 11:30 - 22:00 | 주말 12:00 - 22:00
브레이크타임 : 평일 15:00 - 17:00
휴무 : 없음
합정과 상수 사이, 당인리 발전소 근처의 골목길에 꼭꼭 숨어있는 길라멘 역시 오픈한 지 오래 되지 않아 후기가 많지 않지만, 다녀 온 분들의 평가가 매우 좋았습니다. 듣기로는 사장님이 홍대 라멘 1세대격인 하카타분코와 인연이 있는 분이라고 하네요. 실내가 별도의 테이블 없이 바(bar)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드라마 심야 식당의 구조를 생각하시면 이해가 쉽겠습니다.
메뉴/가격
메뉴는 간단합니다. 오리지널 돈코츠 라멘과 매운 돈코츠 라멘 그리고 차슈 덮밥. 개인적으로 메뉴 세 개가 넘지 않는 집을 선호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3000원짜리 미니 차슈 덮밥은 라멘과 함께 먹기 좋은 구성입니다. 추가 토핑은 차슈/달걀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가격은 오리지널 돈코츠 라멘이 8000원, 매운 돈코츠 라멘이 9000원입니다. 저렴한 가격은 아닙니다만, 요즘 홍대 라멘 값이 너무 뛰어서 평균 수준이라고 해야겠네요.
맛
길라멘의 오리지널 돈코츠 라멘은 입보다 눈으로 먼저 먹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보기에도 진한 육수에 그릇의 2/3 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넓은 차슈, 쪽파와 목이 버섯. 담음새로는 제가 다녀본 집 중 상위권이었습니다.
육수 맛은 하카타에서 먹었던 돈코츠라멘의 꼬리꼬리함(?)이 덜하고 구수함이 강합니다. 이 점에서 라멘을 평소 즐기지 않는 사람도 맛있게 드실 수 있지만, 돈코츠 라멘의 오리지널리티를 기대했던 분들에게는 다소 아쉬울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육수의 농도나 염도 등은 추가로 요청할 것 없이 균형이 좋아서 개인적으로는 만족도가 높았습니다.
길라멘의 오리지널 돈코츠 라멘은 주인공인 육수를 맛있게 먹기 위해 면과 차슈, 고명이 서포트를 해 주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고명의 풍부하고 다채로운 맛을 즐기시는 분께는 조금 허전할 수도 있겠습니다.
특이사항
3000원에 추가할 수 있는 미니 차슈동은 가격 대비 만족도가 매우 높습니다. 저는 라멘을 먹을 때 늘 면 추가를 하는 편이지만, 길라멘에서는 면 대신 미니 차슈동을 추천합니다.
오레노 라멘
영업시간 : 11:30 - 21:00
브레이크타임 : 15:00 - 17:00
휴무 : 없음
상수역과 합정역 사이 골목길에 있는 작은 라멘집입니다. 제가 방문했을 때만 해도 후기가 많지 않았는데, 다시 확인하니 미쉐린 가이드에 추가 되면서 핫한 라멘집이 되었더군요. 공덕, 인사동에 추가 매장도 오픈했습니다.
메뉴/가격
돈코츠 라멘이 아닌 닭육수 베이스의 토리빠이탄이 주메뉴입니다. 그 외에 토리 쇼유, 시오 라멘, 카라빠이탄이 있습니다. 가격은 모두 8000원으로 역시 ‘업계 평균’. 기본 고명은 닭고기인데, 추가 토핑으로 삼겹살 차슈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 달걀까지 추가하면 가격은 만 원이 넘어가지만 정말 푸짐한 식사가 될 것 같습니다.
맛
대표 메뉴인 토리빠이탄을 먹었습니다. 국물이 뽀얗지만 그 색이 돈코츠와는 확연히 다릅니다. 육수는 역시나 돼지고기 육수의 기름진 느낌 없이 닭고기 육수의 담백함이 강합니다. 구수한 맛이 잘 끓인 닭곰탕을 먹는 느낌이기도 하고요. 고명도 돼지고기 차슈가 아닌 삶은 닭고기가 올라갑니다. 중간중간 불에 그을린 닭껍질이 씹히는데, 이게 또 별미네요. 일본 라멘을 좋아하시지 않는 분들도 얼마든지 드실 수 있는 ‘다른 장르’의 라멘. 그래서 주변에도 가장 많이 추천하는 집입니다.
특이사항
무려 면 추가가 무료입니다.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음으로는 2편 홍대 인근 전통 강자들, 3편 방송 출연 라멘집으로 나머지를 소개하겠습니다.
혹시 이곳들 말고 맛있는 라멘집 있으면 알려주세요, 다녀와서 소감 남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