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에 처음 본 그 맛에 사로잡혀 몇 년간 사랑했던 음식이 감자탕(뼈해장국)이었습니다. 군 복무 시절, 타 부대 출장 때나 주어진 소중한 외식의 기회마다 어김없이 뼈해장국을 먹으러 갔으니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할까요?
지금은 돈코츠 라멘에 밀려 몇 달에 한 번 먹는 음식이 됐습니다만, 요즘처럼 가을 바람 쌀쌀하게 불 때면 저절로 생각이 나곤 합니다.
종로 근처 맛집을 검색하던 중 뼈해장국으로 유명한 곳이 있어 다녀왔습니다. 을지로에 있는 동원집입니다. 오래된 식당이지만 다수의 방송에 출연해 이제는 꽤 오래 기다려야 맛 볼 수 있는 곳이 됐습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감자탕과 다른 '감자국'이 주 메뉴인 이 곳은 32년이 된 식당입니다. 노포가 많은 을지로에서도 손꼽히는 맛집 중 한 곳인데, 최근에 방송을 몇 회 타면서 전국적으로 유명해졌죠. 개인적으로 최근 수요미식회에 나온 식당은 신뢰하지 않습니다만, 그 외에도 많은 입소문이 있으니 의심하지 않고 맛 보러 갔습니다.
메뉴는 감자국이 7000원, 순대국 6000원입니다. 식사 메뉴 외에도 안주로 감자국과 머리고기, 순대 등을 팔고 있습니다. 실제로 가게 안에는 퇴근 후 술 한 잔 걸치는 회사원들과 삼삼오오 모인 어르신들이 많았습니다.
사람이 많이 기다림이 길었습니다. 가게 밖에서 2-30분, 주문 후 또 다시 20여분이 걸렸습니다. 식사 메뉴 감자국은 뼈해장국 한 그릇에 공기밥이 나옵니다. 가격 대비 양이 푸짐하다는 말을 들었는데, 저는 대식가라 그런가 일반 프랜차이즈 식당과 큰 차이가 없었어요.
감자탕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궁금했는데 확실히 이름처럼 사뭇 다른 메뉴입니다. 감자탕이 걸죽한 국물에 건더기 위주의, 어쩌 보면 전골에 가까운 음식인 데 비해 감자국은 국물이 상대적으로 묽습니다. 감자와 삶은 등뼈가 들어가는 것은 같습니다. 동원집의 감자국은 국물이 묽은 편이라 기존 감자탕에 익숙하신 분이면 멀겋다는 생각을 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보기에는 굉장히 빨간데, 맵지도 짜지도 않은 편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먹은 후 속이 편해서 더 좋습니다. 감자는 하나가 들어가 있는데 포슬포슬하고 좋았습니다.
고기도 다른 곳보다 좋은 고기를 쓰는지 뼈와 쉽게 분리되고 냄새도 나지 않더군요. 다만 아쉬웠던 것은 따로 삶은 등뼈를 국과 함께 끓여내는 시간이 짧은 탓인지 국물과 양념이 고기에 충분히 배지 않아 다소 겉도는 느낌이었습니다. 고기를 찍어 먹을 양념장이 따로 없어서 좋은 고기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도 아쉽더군요.
대신 뼈에서 바로 고기를 뜯어 먹지 말고 해체 후 국물에 밥까지 말아 함께 먹으면 정말 맛있습니다. 국물이 담백한 편이라 마치 닭곰탕을 먹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가끔 먹는 감자탕이 맛은 있어도 속이 좀 부담스러울 때가 있는데, 동원집의 감자국은 해장국 먹듯 즐길 수 있어 좋았습니다.
하지만 감자탕 마니아들에게는 대체할 음식이 되지 못하고, 또 다른 스타일의 돼지 등뼈 음식으로 생각하시는 게 좋겠더군요. 진득한 감자탕은 또 그것대로 먹고싶은 걸 보면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