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N을 선택했다면, 이제 어떤 PEN으로 결정할 것인가.
아마 검색을 통해 이 포스팅을 보는 분이라면 세상의 수많은 카메라 중 올림푸스의 PEN 시리즈를 구매하려고 반쯤 결정을 하셨을 테고, 이제 생소한 몇 개의 PEN 카메라 중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 지 고민 중이실 겁니다. 혹은 비슷해 보이는 카메라 사이에 왜 가격차가 존재하는지, 그리고 그 가격을 추가로 지불할 가치가 있을지 궁금하실 수도 있고요.
미러리스 카메라에 대해 제가 느끼는 장점-DSLR 카메라와 동등한 수준의 결과물을 얻을 수 있으면서 월등히 작고 가볍다-들을 가장 충실하게 담고 있는 제품이 여럿 있는데, 올림푸스에서는 PEN 시리즈가 그렇습니다. OM-D 시리즈는 상위 제품의 경우 PEN 시리즈보다 성능에 우위가 있지만 그에 수반되는 크기와 부피 증가로 휴대성에 손해가 있어 개인적으로 PEN 시리즈를 더 좋아합니다. SLR 스타일의 헤드(머리)가 없는 반듯한 사각 실루엣, 클래식한 디자인 요소도 그렇고요.
현재 판매 중인 PEN 카메라는 최상위 시리즈인 PEN-F와 얼마 전 출시된 E-PL9이 있습니다. 약 2년간의 텀이 있는 제품이다보니 E-PL9이 최신 이미지 프로세서와 편의 장치 채용 등에 장점이 있으나 PEN-F는 시리즈의 선두 기함으로 여전히 최신 카메라보다 우월한 점이 여럿 있으니 비교가 영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두 제품을 모두 사용하고 있는 사용자 입장에서 두 제품의 특징과 장단점을 비교해 보려 합니다. 카메라를 선택하는 데 가이드가 되길 바랍니다.
1.디자인
두 카메라는 모두 전통적인 PEN 시리즈의 디자인을 따르고 있습니다. 필름 P&S 또는 RF 카메라를 연상 시키는 사각형 실루엣에 가죽 질감의 그립을 두른 레트로 스타일이 그것입니다. 때문에 나란히 놓고 보면 어렵지 않게 같은 회사의 제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전면의 OLYMPUS PEN 로고가 가장 큰 역할을 하지만요.
하지만 상세히 보면 두 카메라의 외형은 그 느낌이 상당히 다릅니다. PEN-F는 과거 필름 카메라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는 느낌을 곳곳에서 받습니다. 상,하판의 메탈 소재가 주는 단단함과 빈 틈 없는 버튼과 다이얼 배치가 그렇고, 필름 감기 놉을 연상 시키는 전원 다이얼과 모태가 된 필름 카메라 PEN-F의 것을 가져온 전면 다이얼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배치가 익숙하지 않은 이에겐 복잡해보일 정도로 프로페셔널한 인상입니다.
[PEN-F]
[E-PL9]
반면 E-PL9은 간결하고 깔끔합니다. 전면에는 렌즈 마운트 버튼을 제외한 어떤 버튼도 없고, 상단 다이얼 역시 촬영 모드 다이얼과 멀티 다이얼 두 개로 최소화했습니다. 거기에 컬러 그립의 면적을 크게 늘려 그립의 색상만으로 완전히 다른 카메라로 보이는 디자인을 도입했습니다. 전반적으로 PEN-F가 직선 중심의 실루엣, 기계적인 매력을 강조한 남성적인 디자인이라면 E-PL9은 곡선을 가미하고 색상으로 멋을 낸 여성적인 디자인입니다. 디자인에서는 양쪽 모두 개성이 있으니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주기보단 각자의 취향이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치겠습니다.
2.휴대성(크기 / 무게)
두 카메라 모두 DSLR 카메라에 비해 월등히 작고 가볍습니다. 경량화에 중점을 두기보단 스타일을 강조한 시리즈라 무게가 경쟁 제품대비 가벼운 편은 아니지만 종합적인 휴대성은 미러리스 카메라 중 중상급에 속한다고 평가합니다. 미러리스 카메라 시장 트렌드가 고성능 제품 중심으로 변하는 요즘엔 그 이상이 될 수도 있고요.
두 제품의 휴대성 자체는 크게 차이나지 않습니다. 크기와 무게는 아래와 같습니다.
크기
PEN-F : 124.8 x 72.1 x 37.3 mm
E-PL9 : 117.1 x 68 x 39 mm
무게
PEN-F : 373 g (본체) | 427 g (배터리 포함)
E-PL9 : 332 g (본체) | 380 g (배터리 포함)
크기는 PEN-F가 폭과 높이 모두 약간씩 넓지만 두께는 디스플레이 형태의 차이로 E-PL9쪽이 미세하게 두껍습니다. 하지만 모두 1cm 미만의 차이라 휴대성이 크게 갈린다고 볼 수는 없겠습니다. 무게 역시 약 40g 정도 차이로 큰 차이를 느끼기 어려운 수준입니다. 물론 여성 사용자는 이 크기와 무게 차이가 생각보다 크게 체감될 수도 있으니 참고할 요소로는 충분히 가치가 있겠습니다.
3.이미지 품질(화소)
동일한 포맷의 이미지 센서, 같은 렌즈군을 사용하는 카메라의 결과물은 큰 틀에선 고유한 특징을 유지하고 있지만-심도 표현과 주변부 표현 등- 기술의 발전에 따라 분명히 향상 또는 변화합니다. 그래서 PEN-F와 E-PL9의 결과물은 일반적인 사용자의 눈에는 그 차이가 크지 않을 수 있지만 비교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두 카메라의 표면적인 차이는 화소입니다. PEN-F는 2000만 화소, E-PL9은 1600만 화소 이미지 센서를 탑재했는데, 출시는 E-PL9이 2년 가량 뒤지만 상위 제품인 PEN-F의 2000만 화소 이미지 센서가 좀 더 고화질, 고성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E-PL9의 경우 이미지를 처리하는 프로세서가 플래그쉽 카메라 E-M1 Mark II와 동일한 TruePic VIII으로 컬러 표현과 고감도 이미지 품질 등에서 이점을 기대할 수 있고요.
- PEN-F(왼쪽) | E-PL9(오른쪽) -
- PEN-F(왼쪽) | E-PL9(오른쪽) -
- PEN-F(왼쪽) | E-PL9(오른쪽) -
동일한 장면을 촬영한 두 장의 이미지를 비교하면 화소수로 인한 디테일 차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역시나 고화소인 PEN-F가 세부 묘사에 우위가 있는데, E-PL9은 상대적으로 샤프니스를 높여 한계를 극복하려는 인상이 있습니다. 풍경 촬영 등 디테일이 중요한 촬영이 중심이라면 고화소에 추가 지출을 할 가치가 있겠죠.
[PEN-F(왼쪽) & E-PL9(오른쪽) 컬러 비교]
컬러 표현 역시 두 카메라에 차이가 있습니다. 센서와 이미지 프로세서가 다르니 다른 것이 자연스럽죠. 색감 차이야 카메라의 특성 혹은 개성이니 어느 쪽이 우위에 있는지는 개인의 취향에 맡겨야겠습니다.
4.촬영성능
상급 제품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는 두 개의 기둥으로 이미지 품질과 촬영 성능을 꼽습니다. PEN-F와 E-PL9 역시 퍼포먼스에서 크고 작은 차이가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인 AF 성능은 사실상 동등합니다. 위상차 검출 AF 시스템을 도입한 OM-D E-M1 MArk II와 달리 PEN-F과 E-PL9은 일반적인 컨트라스트 검출 방식의 하이스피드 이매저 AF를 채용했습니다. 연속 촬영에서는 PEN-F가 초당 10매, E-PL9이 초당 8.6매로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이 역시 큰 차이는 아니며 엔트리급 미러리스 카메라임을 감안하면 E-PL9의 연속 촬영 성능 역시 준수한 편입니다.
가장 큰 차이는 손떨림 보정 장치로 PEN-F는 타사 미러리스 카메라를 통틀어 최고 수준의 5축 손떨림 보정 장치가 채용된 반면 E-PL9에는 3축 손떨림 보정 장치로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실 촬영에서도 크지 않지만 야간/실내 촬영 중 몇몇 순간에 촬영의 성패가 갈리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물론 그보다 큰 것은 사용자가 두 카메라를 보며 느끼는 신뢰감의 차이가 아닐까 싶습니다만. 두 카메라의 성능 차이는 가격차에 비해 크지 않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손떨림 보정 장치의 차이만으로도 충분한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5.부가 기능
- PEN-F의 모노크롬 프로파일 -
두 카메라의 지향점은 분명히 다릅니다. PEN-F는 프로페셔널과 하이 아마추어를 타깃으로 하고 있고, E-PL9은 첫 카메라를 고민하는 이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두 카메라의 부가 기능 역시 이런 특징이 잘 드러나서 PEN-F의 경우는 5천만 화소 고화질 촬영과 타임랩스 촬영, 라이브 컴포지트 등 고급 촬영 테크닉을 다수 담고 있지만, E-PL9의 경우에는 해당 기능을 제외하거나 간략화 해 AP 모드로 병합했습니다. 전자는 전문적이지만 어렵고, 후자는 쉽지만 완성도는 다소 떨어집니다.
- E-PL9의 HDR 촬영(AP모드) -
PEN-F의 고화질 촬영 기능과 타임랩스 기능을 자주 사용합니다. 양쪽 모두 E-PL9에는 없는 기능이라 아쉬움이 있습니다. 클래식 스타일의 맛을 살린 모노크롬 프로파일도 무척 좋아하는 기능입니다. 그에 대응하는 E-PL9의 부가 기능은 AP 모드와 아트 필터를 들 수 있는데, 새로 추가된 인스턴트 필름 아트 필터로 촬영의 재미에서 우위를 점합니다. AP모드는 E-M10 Mark III에서 처음 선보인 것으로 HDR과 별사진 촬영, 장노출 촬영 등을 간편한 설정으로 가능하게 한 자동 모드입니다. 이 카메라를 주로 사용할 엔트리급 사용자에게 무척 유용하겠습니다. AP 모드의 내용과 예제는 이전 포스팅에 정리해 둔 적이 있습니다.
더 섬세하고, 선명하게 - 올림푸스 PEN-F의 5000만 화소 촬영 기능
이토록 다채로운 흑백 사진 - 올림푸스 PEN-F의 모노크롬 프로파일 활용
압축의 미학, 올림푸스 E-M1 Mark II의 인터벌 촬영 & 타임랩스 무비
올림푸스 PEN E-PL9의 새로운 아트 필터 '인스턴트 필름'
올림푸스 OM-D E-M10 Mark III - AP 모드
어찌 보면 두 카메라는 부가 기능에서 각 카메라가 목표로 하는 사용자층을 정확히 명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렵지만 결과물이 확실한 PEN-F, 쉽게 근사한 사진과 영상을 얻을 수 있는 E-PL9 중 어떤 것을 선택할 지 생각하면 의외로 답이 쉽게 나올 수 있겠죠.
6.동영상
[PEN-F로 촬영한 Full HD 동영상]
4K 동영상 보급이 가속화 된 현재 PEN-F의 Full HD 동영상 촬영 성능은 아쉽습니다. 물론 출시가 2016년이라 당시로서는 Full HD가 주류였다지만 사용자 입장에서는 한 걸음 빠른 4K 동영상 탑재를 바랐으니까요. 2018년 출시된 E-PL9은 4K 동영상 촬영이 가능합니다. 두 카메라의 동영상 촬영 결과물을 비교하면 역시 해상도가 4배 큰 4K 동영상의 표현이 압도적입니다.
[E-PL9로 촬영한 4K 동영상]
다만 E-PL9의 4K의 동영상 촬영 기능 역시 크게 만족스럽지는 않습니다. 일반 촬영 모드에서 동영상 녹화 버튼을 누르는 방법으로는 4K 동영상 촬영이 불가능하며 동영상 촬영 모드로 진입을 해야 합니다. 따라서 수동 조작에 한계가 있고, ALL-I 등 저압축/고화질 촬영도 지원하지 않아 활용에 한계가 있습니다. 두 제품 모두 영상 촬영용으로는 만족스럽지 않지만 그래도 역시 4K 해상도를 자랑하는 E-PL9쪽이 한 수 위입니다.
7.배터리 성능
PEN-F는 OM-D와 PEN-F의 중-상급 제품에서 사용하는 BLN-1을, E-PL9은 엔트리급 OM-D와 PEN 시리즈용 배터리 BLS-50을 사용합니다. 두 배터리는 크기 차이가 있는데, 크기가 작은 카메라에서 사용하는 BLS-50가 배터리 크기는 물론 용량 역시 적습니다. 두 배터리의 용량은 1220mAh(BLN-1) /1175mAh(BLS-50)입니다. 다만 실제 배터리 성능은 용량과 반대로 나타났습니다. 하나의 배터리로 촬영할 수 있는 사진 수는 PEN-F가 약 330매, E-PL9이 약 350매로 E-PL9이 높습니다. 이미지 프로세서 개선, 손떨림 보정 장치의 차이에 따른 전력 소모 차이 등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실 사용 성능이 앞서는 E-PL9의 손을 들어줄 수 밖에요.
8.가격
마지막 항목이지만 구매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 중 하나인 가격. 시리즈의 최상위 제품인 PEN-F와 엔트리급 제품인 E-PL9의 가격 차이는 큰 편입니다. 렌즈킷 기준 PEN-F의 가격은 17mm F1.8 렌즈 포함 1599000원, E-PL9은 14-42mm F3.5-5.6 줌렌즈 포함 899000원입니다. 물론 70만원 차이에는 두 킷에 포함된 렌즈의 가격 차도 있습니다. PEN-F에 포함된 17mm F1.8 렌즈가 M.ZUIKO 프리미엄 렌즈로 단품 가격이 580000원입니다. 반면 14-42mm F3.5-5.6 표준줌 렌즈는 그에 비해 저렴한 가격이고요. 이를 감안하면 PEN-F 카메라와 E-PL9 카메라의 가격 차이는 생각보다는 크지 않습니다. 게다가 출시 2년이 지난 PEN-F는 최신 제품인 E-PL9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격이 안정되어 있으니 실제 체감 구매가는 적게는 10-20만원 정도로 볼 수도 있고요.
두 제품은 동일 카테고리의 상급기종과 보급기종으로 완성도에서 PEN-F가 앞서지만 2년의 시간차로 생긴 E-PL9도 엄연히 존재합니다. 그래서 구매 전 비교해 볼 가치가 있고요. 실제로 8가지 항목 비교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결과를 보입니다. 저라면 물론 썩어도 준치라고 늙었지만(?) 상급 제품인 PEN-F를 구매하겠지만 그 가격을 더 지불할 가치가 있는지는 의견이 분분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주변에 추천한다면 저렴한 E-PL9쪽을 추천할 테고요. 개인적으로는 첫 카메라 구매라면 쉽고 저렴한 E-PL9을 추천하지만, 카메라에 익숙한 사용자라면 손맛이 있고 시간이 지나도 충분한 가치를 유지할 PEN-F쪽에 투자해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