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두달간 사용 중인 올림푸스 미러리스 카메라 PEN E-PL9에 대해 간단한 중간 평가를 해 보려고 합니다. 다른 후기처럼 정해진 항목을 길게 늘어놓기보다는 하이엔드 미러리스 카메라 PEN-F과 E-M1 Mark II를 사용하다 올림푸스에서 제일 작고 가벼운 엔트리급 미러리스 카메라를 사용하면서 느낀 득과 실 위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보는 이에 따라 별 차이가 없을 수도, 더러는 타협 못할 아쉬움을 느낄 수도 있겠습니다. E-PL9으로의 기변을 고려 중인 분들께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디자인
클래식 디자인에 반해 PEN-F를 오랫동안 사용 중인 제가 올림푸스 E-PL9을 선택한 것은 디자인, 그 중에서도 시원한 블루 컬러 때문입니다. 처음엔 오직 컬러 때문에 이 카메라를 선택했지만 사용할 수록 디자인 완성도가 높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엔트리급 미러리스 카메라로서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실루엣, 작은 카메라의 약점인 빈약한 파지감을 메꿔 주는 돌출 그립부, 뛰어난 휴대성까지. 특히 그립부의 안정감은 PEN-F보다도 우위에 있습니다. 디자인이야 보기 좋은 것이 가장 먼저라지만 손에 쥐는 느낌이 좋다면 그 평가는 더 좋아질 수 밖에요.
PEN-F처럼 클래식한 디자인은 아니지만 올림푸스 미러리스 카메라만의 디자인 언어를 세련된 스타일로 새롭게 해석했다고 생각합니다. 실버 프레임에 가죽 느낌의 스킨을 조합한 최근 레트로 디자인 트렌드를 충실히 따르면서도 스킨의 범위를 넓혀 스킨 컬러에 따라 카메라 디자인까지 완전히 달라 보이는 장치를 더했습니다. 이 카메라의 주 타깃층인 여성 사용자들이 좋아할 만한 스타일입니다.
180도 틸트 모니터
E-PL 시리즈는 올림푸스 미러리스 카메라 중 유일하게 180도 틸트 조작을 지원하는 LCD 모니터를 탑재하고 있습니다. OM-D 시리즈와 PEN-F에 스위블 방식의 모니터를 탑재한 바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방식이 조작의 편의성면에서 더 좋습니다. 물론 동영상 촬영을 염두에 둔다면 결론이 달라지겠지만요.
카메라 아랫쪽으로 젖혀지는 틸트 디스플레이는 여성 사용자들이 선호하는 셀피 촬영을 고려한 것이지만, 상단 약 90도까지 조절할 수 있는 등 비교적 자유로운 조작 덕분에 다양한 구도를 설정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이/로우 앵글. 덕분에 일상의 장면을 촬영할 때 기존에 할 수 없었던 다양한 시도가 가능합니다.
동물과 시선을 맞춰 촬영할 수 있는 것은 틸트 방식 모니터의 대표적인 장점이죠.
피사체를 기존과 다른 각도, 예를 들면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 보면 익숙한 사진들과는 다른 나만의 장면이 됩니다. 개인적으로 꽃을 이렇게 로우 앵글로 담아 햇살과 함께 담아내는 것을 선호합니다.
풍경 사진에서도 로우 앵글을 적절히 활용해 촬영자의 시점을 그대로 전달할 수 있습니다. 마치 곁에서 함께 쪼그리고 앉아, 혹은 고개를 숙이고 풍경을 바라보는 것처럼요.
하이 앵글은 요즘 선호도가 무척 높은 촬영 구도입니다. 특히 SNS용 사진, 그 중에서도 음식 사진을 촬영할 때 이른바 탑 뷰로 위에서 정직하게 내려 찍는 방식이 음식 사진 촬영 구도로 사랑받고 있는데, 이 때 화면 틸트를 적절히 활용하면 의자에서 일어나지 않고도 손쉽게 원하는 구도의 결과물을 얻을 수 있습니다.
너무나도 더웠던 이번 여름엔 외출을 잘 하지 못하고 주로 음식 사진을 찍을 때 E-PL9을 활용했는데, PEN-F의 스위블 방식보다 더 간편하고, 왜곡 없이 균형 잡힌 프레임을 구성하기에도 용이했습니다. 요즘 디지털 카메라의 용도 중에서 SNS 활용을 빼 놓을 수 없는만큼, 틸트 LCD의 자유로움은 확실한 장점으로 느껴졌습니다.
아트 필터
촬영의 즐거움과 창의적인 표현 능력을 동시에 갖춘 올림푸스 카메라의 아트 필터는 경쟁 카메라 대비 올림푸스 카메라의 장점으로 많은 분들에게 손꼽히고 있습니다. 이에 부응하고자 올림푸스는 신제품마다 새로운 아트 필터를 추가하고 있는데, E-PL9에서는 인스턴트 필름 아트 필터가 추가됐습니다. 일회용 카메라로 촬영한 듯한 색 왜곡과 강한 명함 대비가 주는 독특한 느낌이 재미있는 결과물을 만들어 주고, 특히 SNS 사진으로 활용하기에 좋습니다.
그 외에도 기존의 올림푸스 아트 필터를 모두 사용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으로 미니어처 효과인 디오라마,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빈티지, 블리치 바이패스 등이 있는데 PC와 스마트폰 보정 과정 없이 촬영과 동시에 감성적인 표현이 더해진 재미있는 결과물이 나와 요즘 부쩍 자주 사용하게 됩니다. 눈으로 보는 장면이 어떻게 표현될까,하는 호기심과 기대감도 있고요. 다음에 추가될 아트 필터 때문이라도 올림푸스의 신제품을 기대하게 됩니다.
AP모드
그래도 카메라를 만진 시간이 좀 되는 터라 카메라의 자동 모드는 거의 사용하지 않지만, 이 카메라를 주로 구입할 엔트리 유저들에게 AP 모드는 간편한 촬영과 효과적인 장면 표현을 동시에 충족시켜 줍니다. 카메라 조작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이 간편한 메뉴 선택만으로 야경 장노출 이미지와 HDR 촬영, 별 사진 촬영까지 즐길 수 있게 되고, 무음 촬영을 통해 정숙이 요구되는 자리에도 대응할 수 있습니다. 저는 주로 무음 촬영을 위해 AP 모드를 사용하는데, 종종 다른 기능들도 이용하면 편의성 대비 결과물이 꽤 근사합니다.
키스톤 보정은 시점과 렌즈 왜곡 등으로 인한 피사체 왜곡을 손쉽게 보정할 수 있는 기능입니다. 흔히 건축물을 곧게 세우는 데 사용하는데, 다이얼 두 개 만으로 상하/좌우 틀어짐을 간편하게 조절할 수 있고, 효과 역시 실시간으로 화면에 표시됩니다. 여행지의 건축물을 담을 때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겠습니다.
E-PL9을 통해 처음 사용해 본 라이브 컴포지트 기능은 야경 촬영에서 인상적인 결과물을 안겨 줬습니다. 삼각대에 카메라를 고정시킨 후 라이브 컴포지트 메뉴를 선택한 뒤 셔터만 누르면 끝. 약 2초에 한 장씩 사진을 촬영해 한 장으로 합성하는데 흡사 장노출 이미지처럼 빛과 움직임의 궤적이 담긴 결과물을 손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아래가 F11 조리개, 50초의 셔터 속도를 설정해 촬영한 장노출 이미지인데, 촬영의 편의성을 고려하면 라이브 컴포지트의 결과물이 제법입니다.
4K 동영상
4K 동영상은 확실히 반갑습니다. 어느덧 구형 카메라가 되어 버린 PEN-F가 최대 Full HD 동영상 촬영을 지원하기 때문입니다. 여행마다 4K 동영상 촬영에 대한 갈증이 있었는데 막내 미러리스 카메라가 오히려 형보다 낫군요(?) 물론 동영상 촬영 모드에서만 4K 동영상 촬영이 가능한 번거로움(?)이 있지만, 그래도 Full HD보다 눈에 띄게 선명한 4K 동영상 촬영 결과물을 보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이는 OM-D E-M10 Mark III와 같은 방식으로 두 카메라가 PEN, OM-D라는 다른 플랫폼에서 사실상 비슷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카메라라는 추측에 힘을 실어줍니다.
1600만 화소
PEN-F를 집에 두고 E-PL9을 사용하며 느낀 가장 큰 아쉬움은 역시나 화소 수입니다. 평소 화소를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진 않지만, 1600만 화소는 역시나 요즘 PC와 스마트폰 환경에서 아쉽습니다. 스마트폰 카메라의 화소 수도 비슷한 수준까지 향상됐으니까요. 특히 풍경 사진이나 정물 사진의 일부를 트리밍 해서 사용할 때 고화소 특유의 섬세한 묘사가 아쉽습니다. 상위 제품들과 차별화를 둔 엔트리급 카메라의 한계가 뚜렷하게 느껴집니다. 물론 이 카메라로 사진과 여행을 시작하는 분이라면 1600만 화소가 큰 불편함으로 느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뷰파인더의 부재
- 외장형 뷰파인더를 지원하는 E-P5 -
PEN-F 사용자인 저는 종종 카메라를 얼굴에 가까이 가져가는데 위가 허전합니다. 뷰파인더가 없습니다. 엔트리급 미러리스 카메라로서 당연한 선택이지만 아쉬운 것이 사실입니다. 기존 PEN 시리즈에서 잘 갈고 닦아 놓은 착탈식 외장형 뷰파인더 시스템을 지원하지 않는 것이 원망(?)스럽습니다. 뷰파인더만 지원한다면 엔트리급 사용자로서는 PEN-F 부럽지 않은 카메라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죠. 올림푸스의 PEN 라인업을 살펴보면, 사실상 E-P 시리즈가 단종된 상태에 하이엔드 라인업 PEN-F와 엔트리 시리즈 E-PL 시리즈 둘이 남은 셈인데, 허리 라인이 부실하다는 인상이 있습니다. 많은, 어쩌면 대부분의 사용자에게 뷰파인더 없는 미러리스 카메라가 어색할 것이 없을지 몰라도, PEN-F 사용자인 제게는 확실한 '상실'입니다.
E-PL9은 엔트리급 미러리스 카메라로서 이 카메라의 타깃층이 원하는 것들을 충실하게 갖추고 있습니다. 셀피가 가능한 LCD와 보정 없이 재미있는 결과물을 얻을 수 있는 아트 필터, 4K 동영상과 손쉬운 자동 모드, 그리고 갖고 싶은 디자인. 물론 보다 사진에 집중한다면 상위 제품에 비해 여러모로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만, 이 라인업에서 요구하는 것들을 모범생처럼 잘 담아냈다고 생각합니다. 예측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면이 재미없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처음 사진을 시작하는, 카메라를 구입하는 지인들에게 사진으로 보여주고 숫자로 설명하며 추천할 만한 제품으로 손색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괜찮은 제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저는 다시 PEN-F를 쥐겠습니다만, 여름이 끝날 때까지는 E-PL9과 좀 더 함께하려고 합니다. 파란색이 여름과 무척이나 어울리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