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부산으로 이른 바캉스를 다녀왔습니다. 수영복을 챙기거나 바다에 뛰어들어 해수욕을 즐기진 않았지만 초여름 해운대의 눈부신 햇살과 바닷가를 채운 사람들의 들뜬 분위기 덕분에 여름의 낭만을 경험하는 데에는 부족하지 않았습니다.
- 결국 못 참고 신발과 양말은 벗었지요 -
역시 여행에서 남는 건 사진이라 해운대가 가장 빛나는 오후에 해운대 백사장부터 동백섬을 걸으며 2018년 여름의 조각들을 사진에 담았습니다. 평소와 달랐던 것은 컬러가 아닌 흑백 사진이었다는 점인데요, 바다와 백사장의 색이 제가 본 어느 날보다 선명했던 날 굳이 흑백 사진을 찍는 것이 처음엔 저도 의아했지만, 몇 장 찍어보니 명과 암의 극명한 대비로 만들어지는 흑백 사진만의 매력에 곧 빠졌습니다.
그래서 이번 포스팅에서는 PEN-F의 모노크롬 프로파일로 촬영한 여행 사진들을 통해 컬러와 또 다른 흑백 사진의 매력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 해운대, 부산 -
- 광안리, 부산 -
흑백 사진에 담긴 여행
1박 2일간의 짧은 여행동안 해운대와 광안리의 풍경을 사진에 담았습니다. 재미있게도 첫째날의 날씨는 화창하고 햇살도 강해서 화려한 해운대의 이미지와 잘 어울렸고, 둘째날엔 흐린 날씨가 광안리의 소박하고 어딘가 쓸쓸한 분위기와 절묘하게 어우러졌습니다. 물론 두 날, 두 장소의 사진 역시 상반된 느낌이라 해운대 사진에선 명암의 차가 강조된 장면들이 주를 이뤘습니다. 피사체 역시 실루엣으로 간결하게 표현됐을 때 더 마음에 들었고요.
컬러와 흑백 사진의 차이로 색을 배제한 피사체의 윤곽과 명암이 더욱 강조되는 것을 꼽습니다. 아래는 동일한 장면을 컬러와 흑백으로 촬영한 것입니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이야 아무래도 다채로운 컬러가 있는 오른쪽 사진이겠지만, 왼쪽 흑백 사진에서는 이미지의 특정 부분 혹은 피사체가 보다 강조돼 감각적으로 느껴집니다. 백사장 위에서 눈에 띄는 분홍색 양산은 컬러 사진으로 주변 풍경과 대비를 주었을 때도 재미있지만, 흑백 모드에 컬러 필터를 적용해 배경과의 명암 대비를 강조하는 방법도 흥미롭습니다. 이 날처럼 해가 강한 날씨에선 흑백 사진의 표현이 더욱 간결해져 컬러와 차별되는 매력이 도드라집니다.
흑백 사진의 상반된 두 가지 매력
반면 광안리에서 찍은 사진들은 흐린 날씨 때문에 전체적으로 명암이 평탄하게 표현될 때가 많았습니다. 앞서 살펴본 흑백사진 특유의 강한 인상이 제 힘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럴 때 실루엣 위주의 하이 컨트라스트 모노크롬 프로파일을 사용할 경우 밋밋하고 재미없는 결과물이 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이미지 커브값과 컨트라스트 세팅을 조절해 명부와 암부 모두를 디테일하게 표현하는 다이내믹 레인지 강조 설정을 적용했습니다.
이렇게 촬영된 사진은 특정 피사체보다는 장면 전체로 읽힌다는 점에서 또 다른 흑백 사진의 표현으로 꼽을 수 있죠. 풍경 사진에서 사용하면 장면 속 피사체의 디테일을 하나하나 섬세하게 감상하는 즐거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흐린 오후의 광안리를 촬영할 때는 주제와 배경의 조화를 고려해 구도를 설정하는 것에 좀 더 신경을 쓰게 됐습니다.
모노크롬 촬영이 즐거운 카메라 PEN-F
PEN-F의 모노크롬 프로파일은 총 세 가지 프리셋이 제공됩니다. 커브값과 샤프니스, 필름 그레인 효과 등을 서로 달리 한 세 가지 옵션인데 물론 사용자가 원하는 설정으로 변경할 수 있습니다. 모노크롬 프로파일에 대한 대략적인 내용은 이전 포스팅에 정리한 적이 있습니다.
이토록 다채로운 흑백 사진 - 올림푸스 PEN-F의 모노크롬 프로파일 활용
저는 개인적으로 두 가지 타입의 설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쉽게 표현하면 하나는 매끈하고 진한 하이 컨트라스트 모노크롬 세팅, 다른 하나는 명/암부 대비를 줄이고 필름 그레인 효과를 더해 아날로그 필름 느낌을 쫓은 하이 다이내믹레인지 타입의 세팅입니다. 이 두 값을 1,2에 놓고 번갈아가며 사용하고 있습니다. 부산 여행에선 해가 강했던 첫째날 해운대에선 첫 번째 세팅을, 흐린 날씨가 계속된 둘째날엔 두 번째 세팅을 사용해 상반된 느낌을 내 보았습니다.
[모노크롬 프로파일 설정별 비교]
- 콘트라스트 +2, 샤프니스+1 (왼쪽) | 콘트라스트 -1, 샤프니스 -1 (오른쪽) -
- 컬러 필터 옐로우 (왼쪽) | 컬러 필터 블루 (오른쪽) 적용 -
- 올림푸스 뷰어 3 편집화면 -
모노크롬 프로파일로 촬영하면 당연히 컬러 사진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로 RAW+JPG 촬영을 하는 편인데, 이미지 저장 공간이 부담된다면 올림푸스 이미지 편집 프로그램인 올림푸스 뷰어를 사용해 RAW 파일에서 모노크롬 프로파일 이미지를 비롯, 아트 필터와 컬러 프로파일 등 다양한 이미지 설정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사실 올림푸스 뷰어 프로그램은 악명이 높아 얼마 전에 처음 사용해 보았는데, RAW-JPG 변환 결과물의 이미지 품질이 기대 이상으로 좋더군요. 반대로 말하면 올림푸스 카메라 내 이미지 프로세스가 그만큼 시원찮다는 얘기기도 합니다. 그래서 조만간 올림푸스 뷰어에 대한 포스팅을 작성해보려 합니다.
모노크롬 촬영을 좋아하는 사용자에게 PEN-F는 매우 편한 카메라입니다. 전면의 레버를 통해 어떤 촬영 모드에서도 즉시 모노크롬 프로파일을 적용할 수 있고, 후면 멀티 셀렉터로 컬러 필터를 적용하는 과정 역시 간편해서 피사체에 따라 자주 변경해 사용합니다. 일례로 비슷한 함께 사용했던 E-PL9이나 OM-D E-M10 Mark III같은 엔트리급 미러리스 카메라는 물론 최상위 제품인 E-M1 Mark II와 비교해도 모노크롬 촬영의 편의성 면에서는 PEN-F와 차이가 있었습니다.컬러로 촬영을 진행하던 중이라도 흑백으로 담고 싶은 장면을 만나게 되면 다가서며 레버를 돌리면 준비가 끝나니까요.
클래식을 내세운 PEN-F의 디자인과 모노크롬 촬영은 무척 조화롭게 느껴집니다. 특히 필름 카메라 PEN-F의 전면 다이얼을 재해석해 컬러 프로파일, 모노크롬 프로파일, 아트 필터 등 표현의 폭을 넓히는 장치로 활용한 점은 사용한 지 2년이 넘은 현재도 이 카메라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점으로 꼽고 있습니다. 만약 흑백 위주의 촬영을 진행하게 된다면 그 후보 중 PEN-F가 한 자리를 차지할 것입니다.
명암의 대비가 분명한 여름, 찜통 더위에 사진은 고사하고 외출하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지만 담아놓은 사진들을 보면 멋진 계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흑백 사진 촬영하기 좋은 계절이라 올 여름은 주로 PEN-F의 모노크롬 프로파일을 이용할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