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 가량 사용한 올림푸스 E-PL9의 가장 큰 장점은 매일 가지고 다니게 된다는 것입니다. 작고 가벼워서 가방에 넣기에도, 어깨에 메고 다니기도 부담없어서 외출 때 고민이 필요 없죠. 거기에 제가 좋아하는 블루 컬러로 청량감을 더한 디자인이라 이번 여름에 가장 많이 사용할 카메라가 될 것 같습니다.
작고 가벼운 미러리스 카메라는 무엇보다 일상의 다양한 장면들을 기록할 때 가장 빛이 납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E-PL9로 지난 일주일간 기록한 일상의 장면들, 그리고 짧은 소감들을 통해 PEN-F나 OM-D E-M1 Mark II보다 친밀한 이 카메라만의 장점에 대해 이야기 해 보려 합니다.
거리 위 장면들
여름은 뜨겁지만 눈부십니다. 그리고 지난 일주일 중 며칠은 가히 눈부실 정도로 날씨가 좋았습니다. 덥고 습하지도 않아 집에 있기가 아쉬울 정도였죠. 이런 날 카메라 하나 들고 집 근처 나들이만 해도 근사한 장면들을 제법 만나게 됩니다. 점심 약속이 있어 나선 길에 제가 주로 머무는 홍대/상수를 돌며 마음에 드는 장면들이 나타날 때마다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냈습니다. 빛과 그림자가 만드는 감각적인 실루엣이 있었고, 일부러 그 자리에 놓은 듯 존재감을 뽐내는 피사체가 있었습니다. 한가롭게 배를 깔고 휴식을 취하는 고양이를 만나기도 했습니다. 작고 가벼운 카메라는 이럴 때 가장 어울립니다. 뷰파인더가 없어 강렬한 낮에는 화면을 보고 찍기가 좀 불편하다는 것 외에는요.
놓칠 수 없는 풍경
더위를 끔찍하게 싫어하는 저는 여름에는 외출을 최대한 자제합니다. 올 여름도 이렇게 지나가나 싶었는데 지난 주말엔 장마가 잠시 소강 상태를 보이면서 그림같은 하늘에 선선한 바람까지 부는 이상적인 날씨가 이어졌죠. 늦은 오후까지 침대에서 뒹굴다 이런 날을 그냥 보내긴 너무 아깝다 싶어 한강 공원으로 나섰습니다. 한강 주변을 걷는 동안 ‘유럽 날씨다 유럽 날씨.’라고 몇 번이나 혼잣말을 하며 눈에 보이는 풍경들을 담았습니다. 질리도록 많이 본 흔한 서울의 풍경도 날씨가 달라지니 완전히 새로워 보이더군요. 카메라는 아마 이럴 때 필요한 거겠죠.
아, 그리고 풍경 사진에는 12mm 광각 단렌즈가 있으면 더 좋습니다. 개인적으로 올림푸스에서 가장 좋아하는 렌즈들 중 하나입니다.
#먹스타그램
여행도, 외출도 뜸한 요즘 제 카메라의 주 용도는 음식 사진 촬영입니다. 먹기는 매일 먹어야 하니까요. 얼마 전엔 여름 더위를 앞두고 몸 보신 겸 홋카이도식 징기스칸 양고기 구이를 먹었는데 생고기의 영롱한(?) 빛깔에 익어가는 모습이며 보기만 해도 느껴지는 식감을 잊지 않고 기록해 두기 위해 열심히 사진을 찍었습니다. 워낙에 유명한 곳이라 고기를 구워 주시는 직원분들도 편하게 사진 찍으시라며 배려해 주시더군요. 블로그와 SNS 포스팅 용으로 미러리스 카메라를 사용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덕분에 즐거운 식사 시간이 기록으로 남았습니다. 끝까지 참으려다 구워진 양갈비를 보고 결국 주문해 버린 기린 생맥주 한 잔을 들이켰을 때의 감동이 사진을 보니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E-PL9은 180도 틸트 디스플레이를 탑재했는데, 이것이 음식 사진을 찍을 때 PEN-F의 스위블 디스플레이보다 좀 더 편하더군요. 가볍게 음식 사진 찍기 좋은 카메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티타임과 분위기
먹은 후에는 어김없이 마시게 됩니다. 특히나 무더운 오후엔 어김없이 카페를 찾아 시원한 에어컨 바람 아래서 아이스 커피를 마시며 피서를 즐기는데, 카페에서도 식당 못지 않게 사진을 찍게 됩니다. 요즘 인테리어 잘 해 놓은 카페도 많고, 음료들도 어찌나 예쁘던지요. 얼마 전부터는 비엔나 커피, 아인스패너에 빠져있는데, 아이스 아인스패너를 테이블 위에 올려 두면 크림이 눈 처럼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 것이 보기에 무척 좋습니다. 이럴 때는 카페 인테리어와 뒷 배경에 놓인 잔까지 슬쩍 비치도록 연출해서 F1.8 최대 개방 촬영을 하면 마음에 드는 사진이 나옵니다.
카페 사진을 찍을 땐 아트 필터를 많이 사용합니다. E-PL9도 기존 올림푸스 카메라들에 있던 아트 필터를 모두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분위기에 맞게, 혹은 컬러나 톤을 조금씩 비틀어서 사진을 찍으면 재미있죠.
요즘 내 관심사들
이제 두 달 째에 접어든 가죽 공예, 얼마 전에는 어머니께 선물할 지갑을 만들어 드렸는데요, 복이 들어온다는 빨간색을 바탕으로 어머니께서 좋아하시는 노란색과 보라색을 덧대 화려하게 만들었습니다. 바느질 하는 동안 한 컷, 완성된 후에 또 한 컷, 그렇게 제 새로운 취미를 발전사를 기록할 겸, 어머니께 드리기 전에 미리 사진으로 생색낼 겸 사진을 찍었습니다. 만들고 나니 아직 서툰 면이 많이 보이지만, 이제 겨우 한 달 됐으니 시간이 지날 수록 좋아지겠죠. 그 때 이렇게 기록해 둔 사진들이 소중한 발자취로 새롭게 보일 것입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첫 번째 가방 제작에 사용할 가죽을 직접 구매했습니다. 신설동 시장을 둘러 보고 다양한 가죽들을 비교해 보며 고민하는 시간이 무척 즐거웠습니다. 그렇게 결정한 것은 제가 좋아하는 녹색의 물소 송아지 가죽. 시장을 돌아보는 동안에도 왼쪽 어깨에 쭉 카메라를 들고 다녔는데, 저를 매료시키는 가죽을 구경할 때면 어김없이 사진을 찍어 뒀습니다. 작고 가벼운 카메라의 매력이 이럴 때도 발휘됩니다. 물론 휴대폰이 훨씬 더 간편하긴 하지만, 나중까지 열어보게 되는 사진들은 아무래도 카메라로 찍은 것들이더군요.
신설동 가죽 시장은 구경하는 즐거움이 큰 곳이라 시간 날 때마다 카메라 들고 자주 가게 될 것 같습니다. 사진 찍는 즐거움도 있어요.
일상이 반짝 하고 빛날 때
그 외에도 일상이 반짝 하고 빛을 내는 순간 가방 혹은 어깨, 아니면 책상 위에 카메라가 있었습니다. 얼마 전에 감격적으로 재회한 첫 번째 조카에게 조심스레 손가락을 내미니 작은 손으로 꽉 붙잡더군요. 그 순간이 퍽 감동적이라 카메라를 들고 몇 번이나 다시 애원(?)을 했습니다. 생명이 태어나고 조금씩 자라는 모든 순간들을 되도록 많이 담아두라고 동생을 만날 때마다 당부하는데, 아쉽게도 아직은 잘 먹히지 않네요. 삼촌이라도 볼 때마다 열심히 남겨놔야겠습니다.
아, 아이를 촬영할 때는 필히 AF 보조광을 해제하고 되도록 셔터음도 나지 않도록 무음 모드를 설정합니다. E-PL9의 경우에는 AP 모드에서 무음 촬영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PEN Lite,
가벼움 그리고 친근함
작고 가벼운 카메라는 산책과 식사, 담소, 취미 등 제 일상의 모든 순간을 기록할 수 있는 간편함이 함께 사용하고 있는 PEN-F가 채워주지 못하는 작은 틈을 메워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실 크기와 무게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지만 좀 더 캐주얼한 외형부터 다양한 앵글을 연출하는 데 유리한 틸트 디스플레이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마 DSLR 카메라나 E-M1 Mark II처럼 큰 카메라를 사용하고 있었다면 이 장점이 좀 더 크게 와 닿았겠죠.
물론 아쉬운 점이 없지 않습니다. PEN-F를 함께 사용하다 보니 전자식 뷰파인더의 부재가 크게 느껴지더군요. 특히 해가 강한 오후의 야외 촬영에선 LCD만 보고 촬영하는 데 불편함이 있어 저도 모르게 자꾸 카메라를 눈으로 가져다댔습니다. 전작 E-PL8은 외장 뷰파인더를 사용할 수 있었는데 E-PL9에서 제거된 것이 무척 아쉽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제가 자주 사용하는 무음 모드는 드라이브 설정이 아닌 AP 모드에서 선택하게 되는데, 이 때 조리개 값과 셔터 속도 등을 직접 선택할 수 없는 자동 모드로 촬영이 되는 점이 아쉬웠습니다.
사용할 수록 E-PL9은 상위 제품과 명확하게 차이를 둔 엔트리 유저와 여성 타깃 제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양한 활용이 목적이라면 조금씩 한계와 불편함이 느껴지지만, 가벼운 촬영에 이만한 것이 드물다 싶거든요. 지난 일주일의 일상들을 담으면서 그 매력과 한계를 좀 더 분명하게 체감했고, 앞으로도 이 카메라는 가벼운 서브 카메라로 용도에 맞게(?) 사용하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