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죽 공예에 푹 빠져 지낸 지 벌써 한 달이 지나고, 세 번째 습작을 완성했습니다.
첫 번째 과정인 카드지갑을 만들며 모든 것이 신기하고 당황스러웠던 것이 지난 주 일 같은데, 이제는 제법 선생님께 ‘이제 샌딩을 하면 되나요?’라고 묻거나 바늘이 엉켜도 ‘풀 수 있어요.’라고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카드 지갑과 수첩 커버에 이어 세 번째로 만든 것은 어머니께 선물할 여성용 지갑입니다. 제가 가죽 공예를 배우고 싶었던 이유, 그리고 목표 중 하나였던 어머니 선물을 드디어 만들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그 동안 제가 쓸 것들만 만들어서 죄송한 마음이 있었거든요. 그리고 이제 이 다음 과정이 꿈에 그리던 제 가방 제작이라는 사실도요.
지난 두 번의 가죽공예 습작은 지난 포스팅에 정리해 놓았습니다.
가죽공예 첫 번째 습작 - 앞,뒤가 다른 배색 카드 지갑
수업을 앞두고 어머니와 지갑 디자인, 그 중에서도 특히 제가 집착하는 배색에 대해서도 합의를 끝냈는데, 공방 수업에서 자신있게 ‘여성용 장지갑이요’라고 말하니 아직 제가 그 수준은 아니랍니다. 그래서 장지갑 대신 반지갑으로 진행하게 됐습니다. -부족한 아들이라 엄마 미안-
제가 만든 여성용 지갑은 똑딱이 단추로 여닫는 반지갑 형태로 내부는 지폐 칸 하나와 카드 칸 여섯 개로 이뤄져 있습니다. 반지갑으로 디자인 구상을 마치고 보니 가벼운 것을 좋아하시고 휴대하시는 카드 수량이 많지 않은 어머니께는 오히려 더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라고 합리화를 합니다.-
처음은 역시나 패턴 작업입니다. 재미있는 작업은 아닙니다만 머릿속에 있는 제품 디자인이 처음으로 현실화되는 과정이라 무척 중요하죠. 이번에는 제가 사용할 것이 아니라 독특한 형태나 컬러 보다는 사용하기 좋고 익숙한 요소들을 위주로 했습니다. 다만 배색만은 이번에도 쉽게 포기할 수가 없어서 어머니께서 좋아하시는 빨강, 노랑, 보라색을 총동원하기로 했습니다. 기본 컨셉은 돈을 부른다는 빨간색에, 단추를 열면 쌔뜩한(?) -어머니께서 잘 쓰시는 말인데 뜻은 어림짐작만 할 뿐입니다- 색이 보여 기분이 좋아지는 지갑으로 정했습니다.
게다가 안쪽에 배치할 노란색과 보라색의 푸에블로 가죽이 색과 질감 모두 마음에 들었습니다. 특히 보라색은 빈티지하면서도 고급스러운 것이 마음에 쏙 들어서 제가 다 신이 나더군요. 나중에 저도 저 가죽을 이용해서 뭐라도 하나 만들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 만큼요. -수첩 커버 하나 더?-
반지갑은 생각보다 제작이 수월했던 것이, 양 쪽으로 카드칸 세 개가 있는 내부 형태가 첫 번째로 제작한 카드 지갑을 두 개 나란히 붙여 놓은 형태라 이해하기가 쉬웠습니다. 거기에 뒤쪽에 커버를 여유있게 둘러 접을 수 있도록 한 것이죠. 그래서 안쪽에 들어갈 푸에블로 가죽 세 장을 카드 지갑 제작때와 같이 재단하고 본드로 고정했습니다.
커버와 접합할 양 옆쪽과 아래쪽을 빼고 위쪽을 바느질로 접합한 후 엣지 마감을 하면 내부는 완성입니다. 거기에 양 쪽에 똑딱이 단추를 다니 얼추 지갑처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다음으론 완성된 내부를 감쌀 커버를 결합합니다. 커버는 스크래치에 강한 오일 레더를 선택했고 색상은 선명한 빨간색으로 했습니다. 커버를 씌울 때 내부 공간이 확보 되도록 양 끝을 맞추고 접어 고정하는 것이 신선하고 재미있었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외부의 약 80% 이상을 두르는 긴 바느질, 아직 서툴고 실도 잘 끊어 먹지만(?) 가죽공예에서 단연 이 바느질이 가장 재미있습니다. 그간 해 본 바느질 중 가장 긴 구간이라 시간도 꽤 오래 걸려서, 다음 수업 시간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렇게 바느질까지 끝낸 후 겉면을 사포와 엣지 마감 용액으로 마무리하면 완성. 총 5-6시간 정도 소요됐습니다. 아직은 배우는 단계라 속도보다는 테크닉을 익히고 확인하며 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라는 두 번째 합리화-
빨간색에 노란색 스티치는 어머니도 저도 좋아하는 조합입니다. 역시 사선 스티치로 진행했고, 앞, 뒷면 전체에 이어집니다. 전면에는 어머니 성함을 각인했습니다. -최근에 개명을 하셔서 헛갈렸다는- 스크래치에 강한 가죽이라 지갑용으로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내부는 겉면보다 재미있죠. 왼쪽에는 노란색, 오른쪽은 보라색입니다. 스티치는 역시 노란색이고요. 어머니께서 쓰실 거라 겉면부터 너무 화려하면 부담스러우실 수 있어서 내부에 멋을 부렸습니다. 다행히 미리 사진을 보여 드리니 모두 좋아하시는 색상이라며 기뻐하시더군요.
지폐칸 윗쪽, 가죽 내부가 노출되는 부분은 바깥쪽과 같은 가죽을 덧댔습니다. 가죽 내부가 노출된 것보다 깔끔한 인상을 주고 소지품 손상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사실 이 부분을 또 다른 색상으로 덧대 내부를 좀 더 화려하게 연출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지만 제가 쓸 게 아니니까요.. -녹색을 덧대 신호등을 만들고 싶었다는..-
이렇게 어머니께 드릴 지갑이 완성됐습니다. 자세히 들여다 보니 바느질 선이 기울고 가죽에 손톱 자국이 남는 등 미숙한 점 투성이지만 그래도 제가 처음으로 만든 지갑이니 기뻐하실 거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만 원 짜리 한 장과 잠깐 배워 잘 써 먹고 있는 캘리그라피로 간단한 메시지를 적어 선물할 계획입니다.
- 엄마 부자되세요, 아 내가 많이 벌어야갔구나 -
이제 다음 시간부턴 기대하던 가방 제작입니다. 전과 달리 가죽 시장을 돌며 직접 가죽과 부자재를 고르는 등 한 단계 발전한 수업이 진행될 것 같아 기대 중입니다. 지갑 제작 과정도 블로그에 포스팅 하겠습니다.
- 완성이 되긴 할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