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죽공예 두 번째 습작 - 여행용 가죽 수첩 커버

요즘 가장 재미있는 건 역시나 가죽을 만지는 것입니다. 이제 막 한 달이 됐는데 여전히 수업 시간이 곧 끝나버릴까 아쉽고, 완성 못한 녀석을 공방에 두고 오는 것이 몹시 서운합니다.


첫 번째 습작인 카드 지갑을 완성한 후에는 제가 원하는 소품을 만들게 됐는데, 어머니께 선물할 지갑을 생각했지만 지갑만 두 번 연달아 만들기는 뭔가 지루하고 억울하여 이번에도 저를 위한 액세서리를 만들었습니다. 곧 떠날 여행에서 사용할 수첩 커버입니다. 제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몰스킨 포켓 사이즈 수첩을 넣어 휴대할 수 있고, 그 외에 간단한 현금과 명함 등을 함께 소지할 수 있도록 디자인했습니다.


첫 번째 가죽 공예 습작 카드 지갑에 대한 포스팅은 아래에 있습니다.


가죽공예 첫 번째 습작 - 앞,뒤가 다른 배색 카드 지갑


- 매일 꺼내 보면서 흐뭇해합니다 -


여행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매일 휴대할 제품이다 보니 소재와 색상 선택을 고민했는데, 이번에는 시간이 지나며 태닝되는 맛이 있는 카멜색의 가죽을 선택했습니다. 수첩도 그렇듯 이런 것들은 손때 좀 타고 얼룩덜룩해야 멋지잖아요. 그래서 처음에는 전체를 같은 가죽으로 만들거나 혹은 비슷한 톤의 가죽만 내부에 덧대서 얌전하게 제작할 생각이었지만 역시나 막판에 배색 병(?)이 도져 화려한 녹색 가죽을 두르게 됐습니다.


사실 수첩과 펜, 관련 액세서리에 유난히 관심이 많은 저는 크기별로 몇 개의 수첩 커버를 가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제가 만든 것과 거의 비슷한 녀석도 이미 가지고 있죠.



이건 티스토리에서 몇 년 전 선물로 받은 통가죽 수첩 커버입니다. 역시 몰스킨 포켓 사이즈 노트를 기준으로 제작됐고, 연밤색으로 태닝되는 느낌이 무척 좋습니다. 그 후 모든 여행에서 어김없이 이 녀석과 함께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이 있다면, 가죽이 두꺼워서 내구성은 좋으나 수첩에 비해 부피와 무게가 큰 것이었습니다. 때문에 따로 가방을 잘 들지 않는 제 습관에서는 여행지에 가져가서도 막상 낮동안은 숙소에 두고 올 때가 많았죠. 그리고 심플한 내부 포켓도 조금 더 제 여행과 사용 패턴에 맞춰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닮았지만 완전히 다른 커버를 하나 만들어 보기로 했죠.



이번에도 역시 카드지갑과 제작 과정은 비슷했습니다. 커버의 형태와 덮는 범위, 체결 방식과 내부 포켓 용도 등을 고려해 대략적인 디자인을 하고, 수첩의 크기에 조금씩의 여유를 둬서 패턴을 만들었습니다. 내부에 추가할 포켓들도 별도로 패턴을 만들었죠. 다음으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가죽 선택 시간. 바탕이 되는 면은 일찌감치 카멜 컬러로 결정했지만 내부 포켓도 같은 것으로 마감하자니 역시나 심심하다는 느낌에 기분이 꼬물거려서 올리브색으로  배색을 뒀습니다. 그리고 가장 신경 쓴 SD 메모리 카드 포켓과 펜 홀더는 빨간색 가죽으로 포인트를 줬습니다. 결국 또 배색 병이 도진 것이죠.


그리고 나서는 각 칸에 맞춰 배치한 뒤 바느질, 또 바느질. 저는 바느질 하는 시간이 너무 즐거워서 커버 전체를 사선 스티치로 두르고 싶었지만, 좀 더 다양한 제품을 만들고 스킬을 배우려면 제작 속도를 끌어올릴 필요가 있겠다 싶어 접합 부분만 바느질로 마감하기로 했습니다. 각 포켓을 겹친 뒤 그리프로 가이드를 뚫고 오후 내내 무아지경의 상태로 바느질을 했습니다. 물론 샌딩과 엣지 코팅 역시 신경 써서 해야 했고요.


- 나 잘했지? 하면서 보냈던 사진 -


그렇게 수업 시간을 살짝 넘겨 가까스로 커버가 완성됐습니다. 마지막으로 커버를 닫을 가죽 스트랩을 달았는데 역시 그놈의 '색상 고민' 때문에 처음에는 계획도 없었던 에메랄드빛 가죽을 붙여 마무리했습니다. 너무 튀는 배색에 선생님도 '응?' 하시는 반응이었지만, 막상 붙이고 나니 괜찮았어요. 녹색 좋아하는 제 취향에 정확하게 부합합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몰스킨 수첩 커버의 디테일은 이렇습니다. 아날로그 느낌이 좋아 단추보다는 가죽 스트랩을 달았는데, 그 색이 눈에 확 들어올 정도로 튑니다. 게다가 바탕면과 달리 텍스쳐도 독특한 가죽이라 세상에 둘 없다는 특이함을 뽐내고 있죠. 얇고 길게 늘인 끈은 이렇게 아무렇게나 묶어 고정하면 됩니다. 이 자연스러운 느낌을 좋아합니다.



커버는 뒷면의 길이를 길게 해 측면과 앞면의 일부분을 덮을 수 있도록 디자인했습니다. 이것도 처음부터 제가 고수했던 디자인이고, 그 끝에 펜 홀더를 추가로 달았습니다. 빨간색의 작은 홀더에서 어떻게든 튀어 보겠다는 제작자의 강한 의지가 엿보입니다. 사실 처음 디자인 할 때는 스트랩을 녹색으로 달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빨간색으로 포인트를 둔 것인데, 결과적으로는 신호등 배색이 되었네요.



왼쪽 내부에는 두 개의 포켓을 넣었습니다. 아랫쪽 포켓은 보딩 패스와 명함 등을 넣을 수 있는 일반적인 크기로 제가 좋아하는 올리브 컬러를 넣었습니다. 카멜색과 톤온톤 느낌으로 배색이 괜찮습니다. 태닝이 되면 좀 더 잘 어울릴 것으로 예상합니다. 상단에는 제게 필요한 SD 카드 포켓을 추가했습니다. 아무래도 여행에서 카메라를 늘 휴대하다보니 추가 메모리 카드를 휴대하기가 마땅찮았는데요, 이렇게 여분을 휴대할 수 있게 됐습니다. 작은 포켓은 강렬한 빨간색으로 마무리.



후면 포켓은 최대한 얌전하게 디자인했습니다. 욕심대로 하다가 총천연색이 될 것 같아서요. 현지 화폐를 접어서 간단히 휴대하거나, 버스나 기차 티켓을 넣을 것을 고려해 크기를 달리해 나눠 놓았습니다. 지폐는 물론 단골 카페의 쿠폰도 잘 들어가서 마음에 듭니다. 아무래도 왼쪽 커버보다는 사용 빈도가 낮아서 상대적으로 신경을 많이 쓰지 않았는데, 여기에 또 과감하게 배색을 넣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조금씩 늘고 있는 사선 스티치. 바느질이 이렇게 재미있는 일이라는 것을 중학교 가정 시간에는 몰랐습니다.



다만 이번에도 고질적인 제작 실수가 발생했는데, 그리프가 저도 모르게 자꾸 안쪽으로 들어가서 기준이었던 몰스킨 클래식 노트 하드 커버 포켓 사이즈가 잘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지만, 반복해서 수첩을 넣고 빼기를 반복하며 가죽이 조금 늘어났고, 혹시나 해서 소프트 커버 노트를 사다 끼우니 아주 잘 맞더군요. 앞으로 소프트 커버 수첩 쓰면 되지 뭐, 하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첫 번째 카드 지갑도 그렇지만, 이번에 완성한 수첩 커버는 어디에 가던 매일 휴대하며 일기 겸 아이디어 노트를 충실히 해 줄 것입니다. 그래서 태닝이 잘 되는 가죽을 골랐고요. 여행을 마치고 돌아올 때쯤엔 저도 이 녀석도 멋지게 그을려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다음엔 뭘 만들어 볼까요? 마침 낡은 가죽 시계줄이 눈에 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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