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 성과 구시가광장, 바츨라프 광장 등 랜드마크가 많은 프라하에서 이 곳은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곳입니다. 그도 그럴것이 이렇다할 대형 건축물이나 광장도 없는, 상점보다 주거지가 많은 동네니까요. 저 역시 두 번째 프라하 여행에서 묵을 숙소를 찾으며 이 지역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머물면서, 다녀와서 이 소박하고 멋스러운 동네의 이름이 정겹게 남았습니다. 화려하기만한 프라하 여행을 꿈꾸는 이에게는 조용하고 재미없는 뒷골목에 지나지 않지만 도시의 낭만을 머금고 산책을 즐기기에, 그리고 되도록 이 땅에서 오래오래 머물기에는 프라하에 이 동네만한 곳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름은 요세포프(Josefov)입니다.
프라하 구시가광장 북쪽에 위치한 요세포프(Josefov) 지구는 과거 유대인들이 모여 살던 지역으로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요세프 2세의 이름을 딴 것입니다. 본래 이름은 '유대인 지구'라는 의미의 지도프스케호 몌스토(Židovské město)였지만 1850년 현재 이름으로 바뀌었다고 하네요. 유대인들이 모여 자신만의 문화를 잇던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는데, 유대 구청과 여러개의 회당, 그리고 사망한 유대인들의 넋을 기리는 공원 묘지가 그것입니다. 현재는 무척 평화롭고 조용한 '구시가광장 뒷골목'처럼 보이지만 프라하 역사의 한 페이지를 간직하고 있는 곳입니다.
저는 두 번째 프라하 여행의 숙소를 이 요세포프 지역으로 선택한 덕에 매일 요세포프의 아침, 오후, 저녁, 밤풍경을 볼 수 있었습니다. 골목 중간중간 프라하의 건축물과 다른 양식의 건축물이 눈에 띄었지만 그 외에는 별다른 점이 없는 평화로운 동네였습니다. 언제나 시끌벅적한 구시가 광장 뒷편에 있어 더 고요하게 느껴지기도 했고요. 숙소는 유대 구청 건너편의 아파트였는데, 상점도 드문 안쪽 골목에 있어서 창 밖으로 보이는 골목 풍경을 보며 맥주를 마시는 게 한동안 여행의 낙이 되었습니다. 번화가와 상대적으로 떨어져있어 숙소 가격도 저렴했고요.
- 요세포프의 밤거리 -
옛 유대 묘지 (Starý židovský hřbitov)
숙소에 도착해 짐을 푼 것은 해가 진 후였습니다. 그래서 요세포프의 풍경은 다음날 아침에서야 처음 볼 수 있었는데, 채비를 하고 아파트 계단을 내려가던 중 요세포프의 유대인 공원 묘지를 발견하고 놀랐습니다. 그때 처음 이 요세포프 지역에 대한 호기심이 생긴 것 같습니다. 요세포프 북서쪽 지역에 제법 큰 규모의 공원 묘지가 조성돼있는데, 비석이 어지럽게 세워진 모습이 밤에 보면 꽤나 을씨년스럽습니다. 이 지역에 모여 살던 유대인들의 넋을 기리는 장소인데 제한된 시간동안 내부 관람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프라하 시내를 둘러보는 다양한 여행 상품 중 많지 않지만 이 요세포프 지역을 둘러보는 코스도 있다고 하는데, 이 때 이 유대인 공원 무덤과 스타로나바 시나고그, 클라우스 시나고그 셋은 빠지지 않는다고 하네요.
이러한 역사적인 의미 외에, 이 지역을 주목하고 여행 중 요세포프에 머물며 좋았던 점을 몇가지 꼽자면,
프라하의 대표적인 랜드마크인 구시가광장과 가까워서 시내 관광 코스를 짜기 편합니다. 물론 광장하고 더 가까운 숙소도 많지만 그만큼 가격이 오르기 때문에 가격 대비로 요세포프는 아주 좋은 선택지입니다. 더불어 광장을 벗어나 파리지앵길을 건너 도착하는 요세포프는 관광객이 많지 않아 비교적 조용하고 안전하게 머물 수 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십 분 안에 걸어갈 수 있는 구시가광장, 그길로 화약탑까지 도보로 여행하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아, 왼쪽으로는 블타바 강과 카렐교가 가장 예쁘게 보이는 마네수프 다리가 있고요.
요세포프 북쪽의 체흐 다리(Čech bridge)를 건너면 이 도시에서 손꼽히는 크기의 레트나 공원(Letna Park)이 있습니다. 오르기 어렵지 않은 작은 언덕이지만 블타바강과 프라하 구시가지구의 스카이라인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멋진 공간입니다. 저는 여행 두 번째 아침 이곳에서 해 뜨는 풍경을 맞았는데, 그 여행의 모든 장면을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녁 해지는 풍경을 보면 또 다른 감동이 있을거라 기대했지만, 짧은 여행기간 탓에 아쉽게 다음 여행으로 미뤄야 했습니다. 구시가 광장과 블타바 강 그리고 레트나 공원 이 셋만으로도 요세포프에 숙소를 잡을만한 이유는 충분합니다.
그리고 아래 소개하는 요세포프 내 유적지도 시간날 때 둘러보면 색다른 프라하 여행이 되겠죠.
클라우스 시나고그 (Klausova synagoga)
스타로나바 시나고그 (Staronová synagoga)
마이셀로바 시나고그 (Maiselova synagoga)
실내 관람을 좋아하지 않아서 위 건축물들은 외관을 보고 어떤 의미가 있는 건축물인지 확인해 보는 데 그쳤지만 프라하의 다른 건축물에서 느낄 수 없는 멋과 유대인들의 생활 흔적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요세포프 지역에 관심을 갖게된 분들이라면 가볍게 둘러보아도 좋겠습니다. 위 세곳의 시나고그는 공통적으로 유대인들이 예배를 드리던 예배당이며 그 건축 양식이 저마다 달라 외부는 물론 내부를 둘러보는 재미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 관람료를 내고 내부 관람이 가능한데, 일부는 관람 가능한 시간이 극히 짧아서 미리 확인이 필요합니다. 숙소 건너편에 있던 스타로나바 시나고그는 오후 한 시가 되자 더 이상 관람이 불가능하더군요.
유대 구청 (Židovská radnice)
여행 중에는 매일 숙소 창 밖을 통해 쉽게 볼 수 있었던 저 시계탑이 유대 구청의 시계탑이었다고 하니 재미있습니다. 히브리어로 만들어진 시계는 바늘이 일반적인 시계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고 하는데, 그것보다는 아침 햇살을 받았을 때 참 예쁜 색으로 반짝이던 시계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요세포프, 거리의 즐거움
시내 유명 랜드마크에 비할 수는 없지만 요세포프 지역 역시 프라하에 여행오는 이들 중 상당수가 단체 관람등을 통해 방문하는 곳입니다. 처음 숙소를 들고 나설 때는 이 한적한 동네에 무엇이 있길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나 싶었는데, 다녀와서 이 지역에 대해 알아보면서 새롭게 알게된 것이 많습니다. 때문에 관람객들을 맞는 크고작은 시장도 열리는데, 건축물 못지 않은 볼거리입니다. 대표적인 것으로 스타로나바 시나고그 건너편, 클라우스 시나고그까지 이어지는 골목에 즐비한 기념품 상점을 들 수 있습니다. 사실 하벨 시장에서 파는 것들과 다르지 않은데, 그보다 좀 더 한적한 골목에서 여유있게 둘러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여기서 저도 프라하 그림이 새겨진 수첩과 연필을 구매했죠.
그 외에도 블타바 강을 따라 요세포프 바깥 골목을 크게 돌다보면 한가로운 골목 곳곳에 세워진 재미있는 조각상이나, 색다른 건축물 그리고 광장, 성의 사람들과 다른 여유로운 사람들의 표정을 볼 수 있습니다. 큰 볼거리 없이 그저 골목을 산책하는 기분인데, 이것이 여행인듯 여행이 아닌 것 같은 즐거움이 있습니다. 이 멀고 낯선 도시에서 여유를 즐기는 일종의 '시간의 사치'였달까요. 그렇게 걷다 마음에 드는 카페나 식당을 찾아 들어가면 또 그만한 여행이 없을 것입니다.
이 요세포프에서 제가 가장 좋아한 공간은 단연 제가 머문 아파트였지만, 두번째를 꼽는다면 카프카의 이름을 딴 작은 카페였습니다. 사실 식당이며 상점이 많지 않아서 아침 식사를 하러 보이는 대로 들어간 곳인데 내부 분위기며 음식의 모양새가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맛이 있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오후 내내 앉아 종종 창 밖 풍경을 보며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면 그것만으로도 아주 행복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 여행에서는 꼭 그렇게 해 볼 생각입니다.
이 요세포프에서 발견한 보너스 같은 것이 있다면 한국 관광객에게 특히 유명한 레스토랑 믈레니체(Mlejnice)였습니다. 꼴레뇨와 립 등 고기 요리로 익히 알려져있는 믈레니체의 1호점이 구시가광장에, 2호점이 요세포프 외곽 골목에 있습니다. 1호점은 늘 사람이 많아 자리 잡기가 쉽지 않은데 상대적으로 2호점은 여유있게 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전날 꼴레뇨를 먹어서 이날은 립을 먹었는데, 립도 충분히 괜찮았습니다. 물론 프라하 여행을 자주 하거나 거주하시는 분들은 믈레니체보다 다른 로컬 음식점을 추천하지만 한 번쯤은 가볼만한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제든 구시가광장과 블타바 강에 달려갈 수 있는 여유롭고 소박한 골목. 거기에 괜찮은 식당 하나, 마음에 드는 카페 하나. 이 정도면 한달쯤 프라하에 머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것이 유명하지 않은 요세포프를 이렇게 장황하게 소개하는 이유입니다. 스치는 여행보다 머무는 여행을 하고 싶은 분들에게 이 낡은 골목은 도시의 낭만을 찬찬히 잘근잘근 씹으며 걷기 좋은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