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나도 책 좀 읽자'라는 다짐으로 E-book 리더 크레마 카르타를 덜컥 구매했습니다. 일 년이 지난 현재도 서재에 그리 많은 책이 있지 않지만 그 전까지 읽던 책의 수를 생각하면 가볍게 들고 다닐 수 있는 전자책이 저와 책 사이, 쉽게 좁혀지지 않을 것 같던 거리를 가깝게 해 준 것은 분명합니다. 최근에는 주요 베스트셀러 책들은 대부분 전자책으로 함께 발매되기 때문에 오프라인 서점에 가는 대신 온라인 서점 사이트에서 미리보기로 책을 접한 후 구매하고 있습니다. 종이책을 넘겨 보는 감성적인 면에선 부족함이 있어도 쿠폰, 적립금 등을 구매하면 종이책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간편하게 휴대할 수 있고, 어디에서나 다운받아 볼 수 있으니 확실히 편합니다.
- 물론 스마트폰으로도 볼 수 있지만 -
스마트폰 앱을 통해서도 전자책을 읽을 수 있지만 역시나 작은 화면으로 보는 것이 불편하고 웹서핑, SNS의 방해로 책장이 쉬 넘어가지 않습니다. 그런 이유로 구매한 크레마 카르타는 작고 가벼워서 지하철이나 카페에서 다만 몇 쪽씩이라도 짬을 내 독서 습관을 기를 수 있고, 실제 종이를 보는 듯한 디스플레이는 오래 보아도 눈이 피곤하지 않아 좋습니다. 그러다 최근 지인의 전자책 뷰어 솔루션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 크레마 카르타의 단종 소식을 듣게 됐고, 그동안 느꼈던 크레마 카르타의 단점을 바탕으로 소형 태블릿을 고려해 보라는 이야기를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패드 미니와 크라마 카르타 둘을 놓고 전자책 뷰어로 어떤 것이 좋고, 혹은 종합적으로 어떤 것이 유용할지 고민하는 제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애초에는 고민하던 그에게 선물할 요량이었지만 사정상 아이패드 미니를 제가 사용하게 된 덕분(?)입니다. 사실 전자책을 효과적으로 이용하고 싶은 사용자들이 한번쯤 고민하게 되는 부분이기도 하죠. 그래서 이번 포스팅에서는 E-book 리더 활용을 중심으로 두 기기의 장단점을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가장 먼저 두 기기의 사양을 살펴보면,
크레마 카르타 (한국 이퍼브)
- Freescale i.MX6 SoloLite 1 GHz 싱글 코어 프로세서
- 512 MB 메모리
- 6.0인치 1072x1448 카르타 패널 전자종이
- 8 GB 내장메모리
- micro SDHC (최대 32 GB 지원)
- Wi-Fi
- 안드로이드 4.0
- 1500 mAh 배터리
- 카메라 없음
- 163 x 114 x 8mm
- 182 g
2015년 발매된 한국 이퍼브의 크레마 카르타는 E-Ink 디스플레이를 탑재한 전자책 뷰어입니다. 6인치의 카르타 패널을 탑재한 제품의 크기는 작은 종이책과 비슷하지만, 두께는 8mm로 매우 얇고 무게 역시 200g이 되지 않아 매일 휴대하기에도 불편함이 없습니다. 종이의 질감을 잘 표현하고 오래 보아도 눈에 피로가 없는 E-Ink 디스플레이가 무엇보다 큰 장점입니다. 해상도 역시 전작 크레마 시리즈보다 높은 300ppi 수준으로 눈으로 픽셀 구별이 되지 않아 마치 진짜 종이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됩니다. 다만 싱글 코어 프로세서와 512MB 메모리는 안드로이드 4.0을 구동하기에도 벅차게 느껴집니다.
아이패드 미니 (애플, 3세대 기준)
- 애플 A7 칩 (1.3 GHz 듀얼코어)
- 1 GB 메모리
- 16 / 32 /64 GB 저장 공간
- 7.9인치 QXGA(2048 x 1536) LCD 디스플레이
- 외장 메모리 사용 불가
- Wi-Fi / 블루투스 / LTE
- 6471 mAh
- 애플 iOS 10
- 134.7 x 200 x 7.5 mm
- 331 g (Wifi) | 341 g (셀룰러)
아이패드 미니는 애플의 소형 태블릿 시리즈로 7.9인치 디스플레이, 340g 내외의 무게로 휴대성이 좋은 태블릿으로 꼽힙니다. 9.7인치 아이패드 시리즈가 있지만 전자책 뷰어 용도로는 다소 크고 무겁고, 가장 최신 제품인 4세대는 크레마 카르타와 직접 비교하기에 가격 차이가 있어 2,3세대가 상대적으로 인기가 있습니다. 선명한 레티나 디스플레이는 크레마 카르타와 달리 화려한 '컬러 화면'이고, 출시 시기가 일 년 정도 빠르지만 성능은 아이패드 미니가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습니다. 무엇보다 음악, 동영상 등의 멀티미디어와 다양한 앱을 활용할 수 있는 '아이패드'라는 것이 가장 큰 장점입니다.
크레마 카르타 vs 아이패드 미니
전자책 뷰어로서의 가능성
두 제품을 함께 혹은 번갈아가며 사용해 보았습니다. 하루씩 번갈아 들고 다니기도 하고, 컨디션이 좋은 날에는 두 개 모두 챙겨 나서기도 했습니다. 오직 독서에만 집중한 날, 음악과 함께 독서를 하고 중간중간 SNS를 하며 시간을 보낸 날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 달쯤 지나니 각각의 특징과 장단점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게 됐습니다. 성능이나 화려함만을 보면 누가 보더라도 아이패드 미니의 손을 들겠지만 주 목적을 '전자책'으로 한정 지으면 우열을 가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직접 사용하며 느낀 두 제품의 평가 항목을 다섯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1. 휴대성 - 크레마 카르타
종이책보다 작고 가볍게 들고 다닐 요량으로 E-book 리더를 선택했으니 휴대성은 무엇보다 중요한 평가 요소입니다. 그리고 크레마 카르타는 휴대성을 중점으로 전자책을 사용한다면 아이패드 미니보다 단연 월등한 기기입니다. 163 x 114 x 8mm의 크기는 포켓 사이즈의 몰스킨 수첩보다 크지만 일반적인 수첩보다 작은, 핸디북 스타일이며 두께가 얇아 가방에 넣기 부담이 없습니다. 무게 역시 아이폰 7 플러스와 비슷한 수준이고요.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어디에서나 크로스백에서 혹은 백팩의 보조 포켓에서 꺼내 짧은 시간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아이패드 미니는 134.7 x 200 x 7.5 mm의 크기가 상대적으로 부담스럽게 느껴지고 무게 역시 두 배에 가깝습니다. 물론 나란히 화면을 켠 상태에서는 그 크기와 화려함이 충분히 보상해주지만, 상대적으로 독서에 활용하기엔 제약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오직 독서'만 한다면 작고 가벼운 크레마 카르타가 장점이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크고 무거울뿐, 아이패드 미니 역시 충분히 컴팩트합니다-
2. 디스플레이 - 어떤 책을 주로 보시는지?
이 역시 '오직 독서'만을 기준으로 한다면 전자책에 최적화 된 E-Ink 디스플레이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습니다. 종이의 질감을 충실하게 표현하는 전자 잉크는 크레마 카르마 화면에 켜켜이 종이가 겹쳐져 있는 듯한 느낌을 줄 때가 있습니다. 심지어 패널의 단점이 잔상까지 마치 종이 뒷면이 비치는 것처럼 느껴지니까요. 오래 화면을 보아도 눈이 피곤하지 않은 E-Ink의 장점 역시 LCD와 번갈아 보면 확연히 느껴집니다.
-크레마 카르타의 E-ink는 독서를 위해 탄생한 디스플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죠-
-물론 레티나 디스플레이의 영롱함도 포기하기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진이 많은 책을 읽거나 PDF 포맷의 전자책을 이용할 때는 아이패드 미니가 월등합니다. 흑백 E-Ink 디스플레이는 사진의 생동감을 전혀 표현하지 못하는 데다 성능마저 느려서 페이지가 표시되는 데 한참을 기다리기 일쑤입니다. 반면 아이패드 미니는 검증받은 PDF 뷰어로서, 그리고 화려한 레티나 디스플레이로 책 속에 첨부된 사진을 보는 데 탁월합니다. 예를 들어 제가 쓴 '인생이 쓸 때, 모스크바' 속의 사진들 역시 크레마 카르타로 볼 때는 책을 읽는 데 방해만 될 뿐이지만, 아이패드 미니로 보면 반대로 글이 따분하게 느껴질 수 있죠.
-이게 사진인지, 그림인지-
-아, 이제 사진이 사진같아 보인달까-
한 가지 더, 백라이트와 블루 라이트로 책을 보기엔 눈이 너무 쉽게 피로해지는 LCD의 장점을 해소하기 위해 아이패드 미니의 나이트 시프트 모드를 활용하면 효과적입니다. 블루 라이트를 제거한 노오란 화면이 기본 화면보다 장시간 독서에 더 유리하거든요. 과거의 태블릿은 텍스트 위주의 책을 보기엔 확실히 약점이 많았지만, 나이트 시프트 모드가 추가돼 그 갭을 다소 극복했습니다.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크레마 패널의 단 한가지 장점에 비해 아이패드 미니의 다양한 활용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 있겠네요.
-나이트 시프트 기능 탑재로 아이패드도 전자책 뷰어로서 경쟁력을 갖게 됐습니다.-
3. 하드웨어 성능 - 아이패드 미니
하드웨어 성능에서는 두말 할 필요 없이, 일말의 궁금함이나 비교할 필요도 없이 아이패드 미니의 압승입니다. 크레마 카르타는 오직 전자책 활용을 위해 만들어진 전용기로 1GHz의 싱글 코어 프로세서와 512MB의 낮은 메모리 용량으로 제작됐습니다. 사실 전자책만을 위해서는 그리 높은 사양이 필요하지 않다는 말에 동의하면서도 굳이 7-8년 전 스마트폰과 비슷한 초저사양을 채택해야 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습니다. 그렇다고 '전자책'에 한정된 작업에서 쾌적한 성능을 보이느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운영체제는 구글 안드로이드 4.0으로 구동되는데 책을 불러올 때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고 버그도 제법 있어서 프리징을 경험할 때도 있습니다. 내장 웹 브라우저를 통해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다고 하는데, 실제 사용하는 분들은 없을 것입니다. 그옛날 PC 통신 생각나는 답답한 움직임에 '내가 왜 이짓을 해야하나' 싶어지거든요.
반명 아이패드 미니는 제가 사용하는 제품이 2014년에 발매된 아이패드 미니3 세대임에도 전자책 뷰어로서는 넘치는 성능입니다. 게임이나 웹서핑 등의 활용이 없다면 모든 작업이 부드럽게 이뤄지고요. 주로 전자책을 읽는 데 활용하고 있지만, LTE 모델을 사용중이라 종종 웹서핑과 동영상 감상을 하고, 음악과 함께 독서를 할 때도 있는데 적어도 이런 목적으로는 차고 넘치는 성능입니다. 무엇보다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구매하고 서재에서 다운로드 받을 때 크레마 카르타와 아이패드 미니 둘의 성능 차가 극명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마음 먹고 독서를 하러 나서는 날이 아니면 아이패드 미니에 손이 가는 날이 많더군요.
4. 부가 기능 활용 - 보류
-반면 크레마 카르타는 오직 독서만을 위한 기기입니다-
'전자책 활용'을 대전제로 했기 때문에 E-book 외의 활용에 대해서는 어느 쪽이 좋다는 평가를 하기 어렵습니다. 태블릿의 유혹을 뿌리치고 크레마 카르타를 구매하시는 분들은 다른 기능에 현혹되지 않고 오직 책에만 집중하기 위해 구매를 결정하셨을테니 부가 기능이 전무한 점이 오히려 장점이겠죠. 반면에 아이패드 미니의 다재다능함을 경험한 사용자는 오직 전자책만을 위해 10만원대 중반 가격의 크레마 카르타를 구매하기보단 중고 가격 기준으로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아이패드 미니를 구매해 화려한 화면과 iOS의 무한한 능력을 만끽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 선택일 것입니다. 게다가 PDF 뷰어를 자주 사용하고, 종종 레티나 디스플레이로 포트폴리오를 보여줄 일이라도 있으면 고민할 필요 없이 아이패드 미니가 좋은 선택이겠죠.
-음악, 동영상, 인터넷, SNS, 문서 작업까지. 아이패드로는 할 수 있는 게 정말 많습니다-
그래서 사실 두 기기가 모두 있으면 좋습니다. 책만 읽고 싶은 날엔 크레마 카르타를, 그 외에는 아이패드 미니를 챙기면 되니까요. 다만 그건 아무래도 낭비가 될 수 있으니 용도를 고려해서 결정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저는 아직까지는 독서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어 못난이 크레마 카르타 쪽에 더 정이 갑니다.
5. 내구성 - 아이패드 미니
-답답한데 연약하기까지 한 카르타 패널. 근데도 빠질 수 밖에 없는 매력-
내구성은 어느 한 쪽이 확연한 우위에 있다고 말하기 어렵지만 크레마 카르타의 카르타 패널이 가진 취약점에 대해서는 숙지가 필요합니다. 충격에는 LCD나 E-Ink나 별 차이가 없지만 크레마 카르타의 E-Ink는 압력에 취약해 소지품 등에 패널이 직접적으로 눌리면 쉽게 손상이 생긴다고 합니다. 이에 대한 제조사의 대처 역시 부족해 사실상 패널 교체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하고요. 반면에 아이패드 미니야 정식 못지 않게 많은 사설 수리점을 통해 비교적 쉽게 교체가 가능하니 상대적으로 좀 더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겠습니다. E-Ink 디스플레이는 LCD나 OLED 등 다른 디스플레이가 갖지 못한 독자적인 매력이 있음에도 잔상과 속도 내구성 등의 약점도 비교적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결론은? 아니면 추천은?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아직 크레마 카르타와 아이패드 미니를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3주 정도 사용했을 때는 본래의 목적인 독서에 더 적합하고 휴대하기 편한 크레마 카르타쪽을 남기기로 했으나 책을 읽지 않는 시간에 아이패드 미니가 채워주는 즐거움들 - 웹 서핑과 음악, 동영상, SNS- 이 대단히 매력적이었고, 아이폰-맥으로 이어진 제 작업 환경에 아이패드의 적당히 큰 화면이 가져다 주는 이점이 작게나마 분명히 있었습니다. 선명한 레티나 디스플레이를 볼 때의 즐거움도요.
아직까지는 '결국 정답은 둘 다'라는 뻔한 결론이지만, 독서를 위해 선택한 두 기기의 장단점을 비교하고 제게 어떤 기기가 적합한지 고민하는 과정이 재미있었습니다. 아무래도 대부분 아이패드를 챙겨서 외출하겠지만, 책에 집중하고 싶을 때 크레마 카르타가 없으면 정말 허전할 것 같습니다. 두 개 모두 가지고 있으면 독서량이 두 배로 늘지 기대하며 좀 더 저울질 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