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휴대하는 서브 카메라로 PEN-F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로 다른 카메라에서 찾아보기 힘든 특별한 장치를 들 수 있습니다. 클래식 PEN-F의 전면 다이얼을 계승한 디지털 PEN-F가 선보이는 다양한 기능은 다른 카메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거나, 이만큼 편하게 사용할 수 없습니다. 단순히 오리지널을 재현한 것을 넘어 디지털에 최적화 된 역할을 부여했다는 점에서 PEN-F의 외부 인터페이스 중 가장 높게 평가하는 부분입니다.
- 이 전면 다이얼이 현대식으로 멋지게 부활했죠 -
특히 이 전면 다이얼을 가장 오른쪽으로 돌려 사용하는 모노크롬 모드는 제가 가장 자주 사용하는 기능입니다. 다이얼을 딸깍, 딸깍 두 단계만 돌리면 손쉽게 흑백/컬러 모드를 전환할 수 있어 좋아하는 흑백 사진을 찍기에 무척 편합니다. 클래식의 재탄생을 표방한 PEN-F는 디자인뿐 아니라 모노크롬 모드와 거친필름 효과로 결과물에서도 클래식을 접목했는데, 전면 다이얼은 PEN-F의 흑백 모드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한 핵심 장치입니다.
- 출처 : http://www.thephoblographer.com -
PEN-F의 출시 소식을 들은 직후 이 특별한 모노크롬 모드에 관심이 컸고, 지난해 프라하 여행에서 모노크롬 모드를 활발히 활용해 여행을 담았습니다. 기존 올림푸스 카메라들보다 한결 풍부해진 흑백 이미지는 물론 콘트라스트와 샤프니스를 조절할 수 있고 컬러 필터와 필름 그레인 효과까지 세부적으로 적용할 수 있어 컬러 못지 않게 다채로운 흑백 이미지를 담을 수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 PEN-F의 모노크롬 모드로 담은 체코 여행 사진 >
거친 입자 표현과 풍부한 계조 표현이 인상적인 흑백 사진 중 몇 장은 무척 마음에 들어서 오랜만에 PEN-F를 다시 사용하는 요즘도 일상의 사진 중 상당수를 모노크롬으로 담고 있습니다. RAW 단독 촬영 설정에서도 다이얼을 돌려 모노크롬 모드로 설정하면 흑백 JPG 이미지와 RAW 이미지 두 장을 얻을 수 있는 것, 세 가지 모노크롬 프로파일을 저장해 간편하게 전환할 수 있는 것 등이 사용하며 느낀 장점입니다.
"컬러를 버리고 빛에 집중"
- 컬러 이미지 -
- 모노크롬 설정 : 콘트라스트 +1, 샤프니스 +1, 거친필름 효과 OFF, 모노크롬 컬러 N(일반) -
위 이미지는 동일한 환경을 촬영한 컬러/흑백 사진입니다. 화려한 봄의 색이 눈을 사로잡는 컬러 사진에 비해 흑백 사진이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반대로 색이 없기 때문에 능선에 떨어진 빛의 형태와 강 건너 능선, 건물이 만드는 스카이라인 등을 좀 더 섬세하게 읽을 수 있기도 합니다. 빛에 대한 이해, 색을 빼고 명과 암으로 장면을 쓰고 또 읽는 흑백 이미지가 컬러 사진이 당연시되는 최근도 꾸준히 그 생명력을 유지하는, 오히려 전보다 더 주목받는 이유가 아닐까요?
- 컬러/모노크롬 이미지 비교 -
눈을 현혹하는 컬러를 한꺼풀 벗겨내고 나면, 단순해진 장면에서 이야기를 읽기가 한결 쉬워집니다. 그래서 흑백 사진은 좀 더 직관적이지만, 때문에 컬러보다 더 어렵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노출 설정도 컬러 사진보다 훨씬 신경 쓰이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흑백 사진과 컬러 사진을 동시에 촬영하며 연습 중인데, PEN-F는 제가 사용해 본 많은 카메라 중 컬러와 모노크롬을 가장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카메라입니다. 이 장점이 장면을 두 가지 방법으로 읽는 기회를 꾸준히 제공합니다.
- 모노크롬 설정 : 콘트라스트 +1, 샤프니스 +1, 거친필름 효과 OFF, 모노크롬 컬러 N(일반) -
- 모노크롬 설정 : 콘트라스트 +2, 샤프니스 +2, 거친필름 효과 OFF, 모노크롬 컬러 N(일반) -
- 모노크롬 설정 : 콘트라스트 0, 샤프니스 0, 거친필름 효과 Low, 모노크롬 컬러 N(일반) -
빛과 그림자의 명암 차가 만드는 실루엣을 담을 때 컬러보다 흑백이 더 근사할 때가 많습니다. 아직 익숙치 않지만 찍다보면 컬러보다 모노크롬 모드가 더 어울리는 장면들을 하나씩 발견하게 됩니다. 그 때 카메라를 보지 않고 다이얼을 돌려 모노크롬 모드를 설정할 수 있는 점이 일상에서 PEN-F를 사용하는 즐거움이죠.
- 모노크롬 설정 : 콘트라스트 -1, 샤프니스 -1, 거친필름 효과 OFF, 모노크롬 컬러 N(일반) -
- 모노크롬 설정 : 콘트라스트 +1, 샤프니스 +1, 거친필름 효과 OFF, 모노크롬 컬러 N(일반) -
그렇게 담긴 흑백 사진은 컬러 사진보다 더 감정이 풍부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좀 더 따뜻한 느낌, 극적인 분위기, 슬픈 감정 등. 노인의 거친 피부를 일부러 흑백으로 담아 감정을 강요하는 방식은 좋아하지 않지만 흑백 사진만의 언어는 다양한 장면에 적용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 가지 모노크롬 프로파일
PEN-F의 모노크롬 모드는 세 가지 프로파일을 저장해 흑백 사진을 다양함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콘트라스트와 샤프니스, 컬러 필터 그리고 그레인 효과 등으로 흑백 사진을 디자인할 수 있는 기능인데, 컬러 사진 못지 않게 흑백 사진의 비중을 높게 사용하는 고급 사용자들의 까다로운 기준을 충족하기 위한 배려입니다. OK 버튼으로 소환되는 퀵 메뉴에서 몇 번의 터치/클릭으로 모노크롬 프로파일을 간편하게 전환할 수 있습니다.
저장할 수 있는 모노크롬 프로파일은 총 세 개로 콘트라스트, 샤프니스, 거친필름 효과, 모노크롬 컬러 등의 기본적인 흑백 모드 설정과 컬러 필터, 주변 비네팅 효과 등까지 비교적 많은 옵션을 제공합니다. 각 메뉴는 사용자가 여러 단계로 직접 변경할 수 있습니다. 콘트라스트를 높여 강렬하고 인상적인 하이 콘트라스트 모노크롬 사진, 반대로 명암이 고루 표현되는 부드러운 톤의 흑백 사진 등을 설정해 등록하면 흑백 촬영의 즐거움이 배가될 것입니다.
- 모노크롬 프로파일 1 : 콘트라스트 +1, 샤프니스 +1, 거친필름 효과 OFF, 모노크롬 컬러 N(일반) -
- 모노크롬 프로파일 1 : 콘트라스트 +2, 샤프니스 +2, 거친필름 효과 High, 모노크롬 컬러 N(일반) -
- 모노크롬 프로파일 1 : 콘트라스트 -2, 샤프니스 -2, 거친필름 효과 Low, 모노크롬 컬러 N(일반) -
위 세 장의 이미지는 서로 다른 설정의 모노크롬 프로파일 설정을 적용한 결과물로 동일한 장면이지만 콘트라스트와 샤프니스, 거친필름 효과를 조절한 것만으로도 확연히 다르게 보입니다.
- 모노크롬 설정별 확대 이미지 비교 ( 왼쪽부터 1,2,3,) -
이미지를 확대 비교하면 그 차이를 더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첫번째 프로파일은 콘트라스트와 샤프니스를 +1로 설정한 일반적인 모노크롬 이미지, 두 번째는 콘트라스트와 샤프니스를 높여 명암 대비를 극대화한 이미지입니다. 거친 필름 효과로 노이즈를 입혀 아날로그 흑백의 느낌을 더했습니다. 세 번째 이미지는 상대적으로 어두운 하늘 아래 도시의 그림자 부분까지 부드럽게 표현되도록 콘트라스트를 -2로 설정했습니다. 부드러운 인물 사진에 어울릴 것으로 보입니다.
컬러 필터 활용
모노크롬 모드에서 후면 레버를 조작하면 컬러 필터를 적용할 수 있습니다. 장면 내 특정 컬러를 제어하는 컬러 필터를 적용하면 하늘과 건축물, 나무 등의 명암을 보다 세밀하게 조절할 수 있죠.
- 컬러 필터 적용 : 파란색 Level Off, 녹색 Level +2 (왼쪽) | 오렌지색 Level +3, 녹색 Level Off (오른쪽) -
위 두 장의 이미지는 서로 다른 컬러 필터를 적용한 결과물입니다. 왼쪽 이미지는 블루 필터와 녹색 필터의 Level 값을 변경해 하늘을 짙게, 나무는 더 푸르게 표현했고 오른쪽 사진은 팔각정의 붉은 빛을 오렌지 필터를 사용해 선명하고 화려하게 살렸습니다. 나무의 녹색은 Level 값을 낮춰 건축물의 디테일이 더욱 돋보이게 했고요. 콘트라스트, 샤프니스 설정과 컬러 필터까지 고려하면 흑백 사진이 단순히 '흑과 백'으로만 이뤄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동시에 컬러 사진보다 더 어렵게 느껴지고요. 하지만 작은 변화로도 극적인 변화를 얻을 수 있는 이 매력이 자꾸 흑백 다이얼을 만지작거리게 합니다.
PEN-F로 남기는 근사한 일상의 모노크롬
여러 카메라를 사용하다 보면 컬러뿐 아니라 흑백의 톤 역시 브랜드, 카메라별로 제법 크게 다르다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올림푸스 PEN-F의 모노크롬 이미지는 제가 좋아하는 라이카 카메라의 모노크롬 이미지보다 다소 투박한 느낌이지만 그 '매끈하지 않음'이 이 카메라가 지향하는 클래식을 표현하는 데 더 적합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엇보다 전면 다이얼로 흑백과 컬러를 쉽게 넘나드는 이 쾌적함 덕분에 좀 더 많은 장면을 흑백과 컬러로 담으며 그만의 매력을 찾아가는 데 더없이 좋은 카메라라는 것이 두 달째 사용하며 느낀 점입니다. 요즘도 하루에 한 장면씩 근사한 흑백 사진으로 일상을 담으며 이 카메라의 또다른 가능성을 한창 발견하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