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사한 카메라가 늘 가방 속에 있다는 것은 근사한 일입니다. 우연히 발견한 장소, 마주치는 장소와 눈과 맘을 사로잡는 것을 놓치지 않고 담아낼 수 있으니까요. 몇 대의 카메라를 가지고 있지만 그 중 가장 긴 시간 함께하는 카메라는 단연 작고 가벼운데다 모양새까지 근사한 올림푸스 PEN-F입니다. 일상의 장면들을 담아내는 데일리 카메라로 가장 많은 사진을 찍기도 했고요. 편한 스마트폰 카메라 대신 카메라를 꺼내 찍은 사진들을 보면 단연 '컬러'가 압권입니다.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에선 느낄 수 없는 선명하고 또렷한 일상의 '색' 말이죠.
<일상 속에서 발견하는 다양한 컬러>
때로는 장면을 가득 채운, 더러는 한쪽 구석에서 작지만 '반짝'하고 빛나는 컬러 때문에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 몇 걸음 더 다가가 사진을 찍는 수고를 기꺼이 감내하게 됩니다. 그리고 제 마음을 사로잡은 그 컬러를 사진을 보는 이도 쉽게 느낄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됩니다. 형태가 아닌 색, 그 중에서도 특정 컬러만을 강렬하게 말이죠. 그럴 때 자주 사용하지 않는 카메라의 기능들을 다이얼을 돌리고 버튼을 눌러가며 하나씩 찾아보는데, 올림푸스 카메라에서는 아트 필터가 그런 존재입니다.
최근 올림푸스 카메라는 부가 기능이 정말 많습니다. 신제품엔 새로운 기능과 함께 늘 전작의 기능들을 빠짐없이 탑재하기 때문인데요, PEN-F만 해도 컬러 프로파일, 모노크롬 프로파일, 아트 필터, 컬러 크리에이터 등 커스텀 이미지 관련 기능이 네 가지나 탑재돼 있습니다. 그 중 아트 필터는 간단한 조작으로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이미지 보정 효과로 올림푸스 카메라 사용자들에게 가장 유명한 기능 중 하나로 꼽을 수 있습니다. PEN-F에서도 아트 필터 효과는 여전히 건재하며, 전면 크리에이티브 다이얼로 사용하기가 전보다 더 쉬워졌습니다.
특정 컬러를 강조하는 '셀렉티브 컬러'
PEN-F에는 열 다섯개의 아트 필터 효과가 탑재돼 있습니다. 재미있는 미니어처 효과를 연출하는 '디오라마'나 그림같은 효과를 내는 다이나믹 톤, 수채화 효과 등이 유명합니다. 특수 렌즈를 사용하거나 PC의 이미지 보정 프로그램을 사용해야 얻을 수 있는 효과들을 카메라 내에서 빠르고 간편하게 적용할 수 있는 것이 최대 강점이죠.
올림푸스 카메라의 아트 필터 효과 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셀렉티브 컬러'입니다. 촬영 장면 속에 있는 다양한 컬러 중 특정 컬러만을 남기고 나머지 색을 모두 흑백 처리해 주제를 부각시키고 강렬한 느낌의 결과물을 얻을 수 있어서 좋아하는데, 보정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간편하고, 효과 역시 좋습니다.
아래는 그간 PEN-F와 함께하며 발견한 일상과 여행의 '색'입니다. 셀렉티브 컬러를 사용해 색을 남기고, 더러는 후보정으로 느낌을 부각시켜 보았습니다.
빨강 - 오키나와 슈리 성의 여름에서
오키나의 옛 이름 '류큐 왕국'의 성 '슈리'는 선명한 붉은 색으로 만들어진 성입니다. 태평양 전쟁 중 성의 상당 부분이 소실돼 원형을 보기 위해서는 비싼 입장료를 내구 유료 관람 구역에 들어가야 합니다. 한여름처럼 뜨거웠던 오키나와의 오후 햇살 아래서 슈리 성은 특유의 붉은 색으로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셀렉티브 컬러 기능이 가장 좋은 효과를 보이는 색으로 빨간색을 꼽을 수 있죠. 빨간 장미와 자동차, 옷과 소품 등이 있는 풍경을 셀렉티브 컬러로 찍으면 근사하고 감성적인 결과물을 얻을 수 있습니다.
주황 - 도시의 야경에서
상세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도시의 야경은 대부분 주황색 위주입니다. 세계 어느 도시를 가도 가로등과 다리 조명들은 주황색이 가장 많습니다. 몇몇 유럽 도시들은 거리 조명은 물론, 건축물의 지붕이며 벽까지 주황색 일색이라 밤거리를 걷다 보면 몽환적인 느낌에 취하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서울의 야경 역시 그 비중은 적지만 한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들은 대부분은 주황색으로 빛나죠.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응봉산에서 서울의 야경을 촬영한 뒤 주황색만 남겨 보았습니다. 아무래도 그 비중이 많지 않아서 허전한 느낌이 들지만 평소 보던 서울과는 무언가 달라보이죠?
노랑 - 길 위에서
대표적인 자연의 색 중 하나인 노란색은 부드러움과 강렬함을 모두 가진 매력적인 컬러입니다. 봄의 시작을 알리는 꽃의 노랑은 한 없이 부드럽고 포근하지만, 길 위에 그어진 노란 선은 빨간색 이상으로 강렬하거든요. 도시의 풍경이 빛을 잃은 흐린날 혹은 비오는 날에도 노란색은 평소보다 더 선명해집니다. 멈추지 않을 것처럼 비가 쏟아지던 날의 제주, 텅 빈 차도로 끝이 보이지 않을만큼 길게 이어진 노란 차선이 눈을 사로잡았습니다. 흑색 아스팔트와 대비되는 노란색 선이 셀렉티브 컬러를 활용하기에 제격이죠.
초록 - 노부부의 뒷모습에서
지난 봄과 한창인 여름은 녹색이 흔한 계절입니다. 나무가 푸르러서 그 색 덕에 기분이 좋아지고, 사람들은 다른 계절에는 잘 입지 않는 밝고 화려한 색의 옷을 입습니다. 우거진 숲의 녹색보다 더 기억에 남는 '그린'은 연두빛으로 곱게 옷을 맞춰 입으신 노부부의 뒷모습에서 찾았습니다. 부쩍 더워진 오후 날씨에 힘이 드셨는지 공원 입구 바위에 나란히 앉아 더위를 식히고 계셨는데 그 풍경이 절로 웃음을 짓게 해서 서둘러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냈습니다. 이만큼 '프레시'한 커플이 또 있을까요?
파랑 - 꿈꾸던 바다에서
'파랑'하면 으레 하늘, 바다를 떠올리게 됩니다. 또 다른 의미로는 어머니께서 어디서 듣고 오셨는지 '너는 파란색 옷을 입어야 좋대'라고 하신 말이 생각 나기도 하고요. 오키나와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인 '미라부 해변'의 색은 하늘과 바다가 온전히 푸른빛 뿐이라 여행 전 기대를 채우기 좋았습니다. 사실 이곳의 풍경은 셀렉티브 컬러를 사용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푸른색 뿐이었죠. 화창한 하늘의 푸른 색이야 그렇다 치고, 투명한 바다의 색을 보며 제가 좋아하는 어느 가수의 앨범 제목이 떠올랐습니다.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남색 - 여름날의 내 손목 위에서
어머니의 조언 때문인지 제 옷장의 대부분은 파란색과 남색 옷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옷뿐만 아니라 가방, 액세서리를 구입할 때도 고민 끝에 네이비 컬러를 선택할 때가 많고요. 어느 날 카페에 앉아 친구를 기다리던 중 제 손목을 보는데, 셔츠와 시계, 팔찌까지 모두 남색으로 '깔맞춤'한 모습이 재미있더군요. 가방까지 파란색을 든 날이라 살짝 창피하기도 했습니다. 뭐, 옷장을 보니 앞으로도 종종 이 '깔맞춤'이 계속될 것 같지만요.
셀렉티브 컬러, 일상의 재발견
전면 크리에이티브 다이얼을 돌려 간편하게 설정하는 아트 필터, 그 중에서도 특정 색을 부각시키는 셀렉티브 컬러는 평범한 장면을 색다르게 연출하는 방법 중 하나이면서, 일반적인 사진과 다른 결과물로 나만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기술입니다. RAW 촬영 위주의 제 습관에서도 종종 일부러 아트 필터를 찾아 이 기능을 사용하는 것은 이 셀렉티브 컬러만이 주는 특별한 감흥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음에는 다른 기능을 한 번 활용해보아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