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매일 가방에 있는 올림푸스 PEN-F의 장점은 역시 작고 가볍다는 것입니다. 가장 좋아하는 17mm F1.8, 12mm F2.0 단렌즈와의 조합이 500g대로 가방에 넣고 다니기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게다가 레트로 디자인이 보기에도 멋스러워서 자꾸 손에 쥐고 다이얼을 이리저리 돌려보게 됩니다. 멋진 디자인의 미러리스 카메라가 항상 가방에 있으니 언제든 꺼내 사진을 찍을 수 있고, 덕분에 제 일상이 전보다 근사하게 기록되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들은 찍고 나서 다시 열어보는 일이 드문데, PEN-F로 찍은 사진은 집에 와서 PC로 열어보고 SNS에 업로드하고 있어요.
일본 여행을 다녀와 이제 다시 일상용 카메라로 활약중인 올림푸스 PEN-F. 이번 포스팅에서는 이 카메라의 특별한 기능보다는 일상의 기록으로 PEN-F를 활용하며 남은 사진들을 통해, 늘 카메라가 곁에 있다는 것이 일상을 얼마나 즐겁게 할 수 있는지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멋진 일상은 아니지만, 하루에 꼭 한 장씩 즐겁게 담았거든요.
Day 1. 서울에 산다는 것.
제가 사는 도시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입니다. 사람이 너무 많고, 성장에 급급해 지어진 건물들은 아름답지도, 철학이 있지도 않거든요. 사람들의 벌이에 비해 물가도 비싸고, 설상가상 요즘은 매일 공기 걱정을 해야하는 곳이 됐습니다. 하지만, 지난 한 주간 저는 서울에 사는 것이 제 생각보다 훨씬 멋진 일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화창한 날씨, 선선한 공기만으로도요. 여전히 복잡하고 삭막한 곳이지만 며칠간 서울은 미세먼지 걱정 없는 화창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 년여만에 남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이런 날씨에 결국 참지 못하고 말이죠.
서울에서 가장 높은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도시 풍경은 유럽 도시의 화려함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래도 꽤 살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삭막하다고만 생각한 도시에 제 생각보다 녹지가 많더군요. 이 날 남산 위에 모인 사람들 역시 저와 같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즐겁고 여유로워 보였는데, 아마도 제 마음이 모처럼 여유로워졌기 때문이겠죠. 멋진 날씨에 나도 모르게 이끌려 남산 전망대까지 가는 버스를 타면서, 가방에 PEN-F와 12mm F2.0 렌즈가 있다는 것이 든든하게 느껴졌습니다.
Day 2. 새로운 공간
대부분의 시간은 글을 쓰거나 남의 글을 읽는 데 보냅니다. 혹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써야 할 이야기를 떠올리고, 종종 첫번째 책에 쓰지 못한 것들에 대해 후회하기도 합니다. 그런 생각들을 하기엔 조용한 카페가 가장 좋은 배경인데, 아쉽게도 이 대도시 서울 안에서는 그런 공간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다 얼마 전, 의외의 장소에서 마음에 드는 공간을 발견했는데요, 서울에서 가장 붐비는 명동 한복판에 있는 카페입니다. 4층에 위치한 카페인데, 명동에 있다는 것을 종종 잊을만큼 인적이 드물고 테이블도 많아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게다가 완벽하게 독립된 야외 테라스도 있고요. 일주일에 한, 두번 꼭 만나는 친구와 함께 야외 테이블에 앉아 해가 질 때까지 지나면 기억나지 않을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사진은 노을이 지고 그림자가 점점 길어지는 여섯시 반의 풍경입니다. 어느새 해가 많이 길어졌죠?
Day 3. 얼마만의 가족 식사인지
우리 가족은 가족이 모두 모여 식사하는 일이 드뭅니다. 그간은 서로 바쁘다보니 그랬고, 여동생이 결혼을 한 후로는 더 뜸해졌습니다. 지난주 동네에 있는 청국장집에서 모처럼 세 식구가 모여 저녁을 먹는데 이게 얼마만인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부모님들은 '음식 사진 찍어서 뭣하려고'라고 의아해 하시지만, 사실 이 날의 사진은 음식보단 간만에 마련된 가족 식사 풍경을 담는 데 더 큰 목적이 있었습니다. 처음엔 사진 그만 찍고 식기 전에 먹으라고 하시던 어머니도 LCD 화면 속 사진을 보시더니 근사하다며 좋아하셨습니다. 테이블이 좁을 정도로 푸짐하게 차려진 한 상, 이렇게 사진으로 담으니 두고두고 보며 기억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Day 4. 보통은 혼밥을 합니다.
어쩔 수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실은 혼밥을 꽤 좋아하는 편입니다. 건너편에 앉은 이와 어떤 대화를 할지 고민하지 않고 음식에 집중할 수 있어서, 언제나 원하는 메뉴를 먹을 수 있고 맛집 앞에서 기꺼이 줄을 설 수 있어서 좋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밥을 먹을 수 있는 것도 좋습니다. 처음 혼자 식당에 들어서 '한 명이요'라고 말할 때는 죄를 지은 것처럼 움츠러 들었지만,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창가쪽 자리에 앉아 즐겁게 식사를 합니다. 종종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넉살도 늘었습니다.
가끔 업무로 홍대를 찾습니다. 그 땐 일부러 점심 시간이 조금 지난 시각에 나만의 점심 시간을 갖는데요, 이 날은 간단하게 먹을 수 있으면서 맛있는 메뉴를 떠올리다보니 수제 버거가 생각났습니다. 브레이크 타임이 없는 곳을 찾다보니 버거 4.5라는 곳에 닿게 됐는데요, 네 테이블이 간신히 들어가는 아주 작은 실내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평소 감자 튀김을 먹지 않지만, 근사한 세트 메뉴를 받고 싶어서 칠리 프라이를 추가한 것은 혼밥의 낙 중 하나입니다. 누가 보아도 즉석에서 만든 듯한 버거는 호주산 소고기로 만든다는 패티가 무척 맛있었습니다.
혼밥의 또 하나 즐거움이라면 역시 음식 사진입니다. 음식이 나오자마자 눈보다 먼저 카메라로 담는데, 혼자인 것이 조금 쑥쓰러운 곳에서는 PEN-F의 '무음 모드'를 사용합니다. 철컥 철컥 셔터 소리 없이 사진을 담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Day 5. '셔츠 찾으러 왔어요'
일주일 전에 주문한 셔츠가 완성 됐다는 반가운 전화. 바로 다음날 점심 시간에 테일러 숍을 방문했습니다. 대부분 저는 저렴한 이월 상품 위주로 옷을 구매하지만, 종종 이렇게 몸에 꼭 맞는 셔츠, 재킷에 투자할 때가 있습니다. 다른 계절보다 옷차림에 신경 쓰이는 여름, 아무래도 더위를 많이 타고 땀이 많아 모양 못지 않게 소재를 신중하게 고르게 되는데, 올여름은 크고 넓은 남색 스트라이프 셔츠를 선택했습니다. 셔츠를 맞추기 위해 찾은 날도 매장 내 멋진 남성복들의 사진들을 잔뜩 찍었습니다만, 이날도 가방에서 PEN-F를 꺼내 똑같은 장면을 다시 담았습니다. 잘 갖춰입은 남성복은 남자들의 가슴도 떨리게 할만큼 매력적인 것 같아요. 종이가방에 담긴 셔츠를 받아들고 나오는 길, 제 체형에 꼭 맞춘 맞춤 셔츠를 입고 멋진 곳에 갈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즐겁습니다.
Day 6. 이런 날씨에 집에만 있는 건 죄를 짓는 것 같아서.
한창 즐길 땐 주말만 기다렸는데, 요즘은 부쩍 게을러져서 자전거에 먼지만 쌓이고 있습니다. 토요일도 그렇게 침대에 누워 아이패드 속 화면이나 보다 끝날뻔 했지만, 문득 이런 날씨를 창문 너머로만 보는 것은 큰 잘못을 하는 것 같아 무작정 자전거와 물 한병을 챙겨 나섰습니다. 매일 달리는 중랑천 코스에서 조금 더 힘을 내 서울숲과 뚝섬까지 달렸는데 날씨와 풍경 보는 재미에, 선선한 오월 바람이 주는 상쾌함에 힘든 줄 모른 날이었어요.
평소에는 지하철로 찾아온 뚝섬 유원지, 한시간 조금 넘게 자전거를 타고 도착하니 작은 텐트들이 강가에 빼곡합니다. 봄날에 어울리는 풋풋한 연인들이 유난히 눈에 띄던 늦은 오후, 저는 인파가 드문 유원지 외곽 잔디밭에 드러누워 음악을 들었습니다. 운동화까지 벗어 던지고 누워 있으니 그냥 웃음이 터질만큼 기분이 좋더군요. 사실 집을 나서면서 이 날의 풍경도 한 두 장면은 담고 싶어 안장 가방에 PEN-F와 12mm F2.0 렌즈를 챙겼습니다. 그리고 잔디밭에 앉아 담은 사진 한 장은 이 날의 여유로움이 담겨있어 제게는 꽤 기분 좋은 사진이 되었습니다.
Day 7. "오늘은 쉽니다"
어제 40km 넘는 자전거 라이딩이 무리였던지 욱씬거리는 다리와 엉덩이 통증에 잠을 깼습니다. 아무래도 오늘도 자전거를 타는 것은 무리겠다 싶어, 일본에서 사 온 봉지 라멘을 끓여 먹고 하루 푹 쉬려고 합니다. 엊그제 찾아온 맞춤 셔츠를 이제야 열어서 입어보고 좋아하는 타이를 매보며 휴일 오전의 여유를 즐겨봅니다. 스트라이프와 와이드 칼라, 손목 이니셜 등 기대 이상으로 마음에 드는 올 여름 셔츠를 사진으로 담아 놓기에도 책상 위 PEN-F가 제격입니다. 내일은 새 셔츠를 입어야겠습니다.
일상을 기록하는 즐거움
그 즐거움에 어울리는 카메라
매일 휴대할 수 있는 카메라는 일상의 소중한 장면들을 근사하게 담아줬고, 이렇게 휴일을 맞아 지난 한 주를 돌아보며 미소지을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멋진 디자인에 끌린 PEN-F는 작은 크기와 가벼운 무게, 그리고 2000만 화소의 고화질 이미지로 요즘은 스마트폰 카메라보다 먼저 제 생활을 담는 카메라가 됐습니다. 멋진 날씨와 만남, 음식 등 평범한 일상에도 하루에 꼭 한 장면씩은 보석같은 순간이 펼쳐지는 것 같습니다. 언제 마주칠지 모르는 그 장면을 위해 앞으로도 되도록 매일 카메라를 가지고 다닐 생각입니다. 현재로서는 작고 가볍고, 게다가 멋진 올림푸스 PEN-F가 최선의 선택이라, 애착을 갖고 사용하고 있습니다.
A shot a day, 여러분의 일상도 그냥 지나치지 말고 한 장면씩 남겨 보시면 어떨까요? 그건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까요.
- 눈부신 오월, 서울 풍경 -